• CNN 한국어 방송하게 되면?
        2007년 03월 13일 01:3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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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어 자막방송을 검토중이라는 CNN의 로고.
     

    10일 서울에서 벌어진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의 시위를 진압하던 경찰이 취재기자 10여 명을 무차별 폭행한다. 기자 신분을 표시하는 완장을 찬 기자, 방송사 마크가 찍힌 카메라를 든 기자에게 진압용 방패와 곤봉이 망나니 칼춤 추듯 휘날린다. 뒤에서 날아온 곤봉에 뒤통수를 맞고 쓰러지고, 방패에 얼굴 찍혀 바느질당한 기자.

    한국기자는 얻어터지고, 미국 미디어재벌은 환대받고

    9일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 거대 미디어그룹인 타임워너사 회장을 만난다. 극진한 대통령의 환대를 받고 청와대 나선 타임워너사 파슨스 회장은 잔뜩 고무돼서 "뉴스전문채널 CNN의 한국어 방송을 검토하고 있다"고 자랑한다. 뻔히 한국의 방송위원회가 이를 금지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 한미FTA 협상의 뜨거운 주제인 줄 알면서.

    한국기자는 얻어터져 피 흘리고 쓰러지는데, 미국 미디어재벌은 대통령과 희희낙락. 이틀간의 이 장면들 보면서 차라리 기자들처럼 얻어맞아 피 흘리며 쓰러지는 것이 낫겠다 싶다. 자국 대통령에게 모욕당하는 한국 신문과 방송을 보는 것 보다는.

    하지만 이처럼 배배꼬인 필자의 감정은 새 발의 피다. 더 충격적인 것은 ‘CNN 한국어방송’ 발언이다. 항상 그랬듯, ‘문제가 생기면 발뺌부터’라는 정치문법이 또 등장한다. 이번에도 청와대는 시장 개방 문제는 언급되지 않았다고 발뺌했다.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서울에서 한미FTA 협상이 벌어지는 때 대통령이 이해 당사자인 미국 미디어재벌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분별없는 행위다.

    오얏나무 밑에서 갓을 고쳐 쓰면 도둑으로 오인되기 쉬우므로, ‘오얏나무 밑에서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말이 어찌 이리도 오늘에 와서 무시당할까. 그것도 외국위성방송 한국어 더빙 허용이 정부 내부에서 결정되었다는 소문이 광화문 하늘을 떠돌고 있는데.

    일각에서는 ‘CNN 한국어 방송’은 외국 뉴스를 빠르고 편하게 접하는 환영할 만한 일로 받아들이는 모양이지만 과연 그럴까? 딱딱하게 접근하면, 보도채널 제한적 승인제도가 무너지는 것이며, 더 나아가 헌법재판소마저 그 필요성을 인정한 방송과 신문의 겸영금지제도가 붕괴되는 일이다.

    죽어나는 놈은 누구?

       
      ▲  CNN 허용은 문화주권의 문제라고 주장하며 청와대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공동대책위원회 (사진=YTN)  
     

    감성적으로 접근하면, 현재 한국의 케이블방송에서는 외국방송 25개 채널이 돌아가고 있고, 위성방송은 10개 채널을 돌리고 있음을 상상해 보라. 이들 채널에 한국어 더빙이나 동시통역을 붙여둔다면, 먼저 한국의 방송시장은 순식간에 대규모 구조조정을 겪어야 한다. 영세방송사업자 특히 PP사업자들은 앉아서 옴짝달싹 못하고 말라죽는다.

    그런데 심지어 보도전문채널인 CNN까지 한국어더빙과 동시통역으로 실시간 방송을 때려대면 한국의 보도전문채널 YTN과 MBN은 사실상 버티기 어려워진다. 시차는 있겠지만, 지상파 3사의 보도라인도 만만찮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때 알 카에다의 수장 오사마 빈 라덴을 현장에서 직접 취재해 놓고도 미국의 극우세력들이 비판하자 방송을 포기한 CNN. 90년대 미국의 이라크 침공 때 그 수많은 사람들이 파편에 쓰러질 때 이들은 그냥 전자게임 구경하듯 중계방송으로 세계적 보도전문채널로 성가를 높였다.

    94년 미국이 북한을 선제공격하려는 정보를 미리 입수하고 서울의 고층빌딩에 카메라를 설치했고, 9.11사태 이후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보유설을 흘리며 이라크 침공을 획책하던 부시정권의 선전도구였던 CNN. 심지어 최근에는 일본이 한국 위안부할머니에게 사과를 해야 하는지 여부를 인터넷 설문에 붙이는 집단이다.

    한국 텔레비전 보도와 다를 게 없다 하더라도

    미국의 이해를 가장 앞서 전파해 온, 선전의 첨병 CNN이 한국에서 한국어 방송을 한다면, 예를 들어 앞으로 한국의 주요 선거에서 이들은 어떤 보도를 할 것 같은가? 점쟁이가 아니라도 알 수 있는 내일이요 미래다.

    통신과 방송시장은 45조원 규모며 방송은 8조원 규모다. 그러나 방송시장규모가 아니라 문화적 정체성 붕괴와 한국여론시장의 왜곡이 더 큰 문제다.

    선거 시기 미국방송이 친미사대주의자들을 일방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하면 한국의 선거여론은 상당히 왜곡될 것이고, 급기야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그들의 입맛에 맞는 사람으로 채워지는 상황이 극단적인 예측일까? 하기야 누구말대로 한국의 보도전문채널과 지상파 보도국이 CNN과 뭐가 다르냐고 하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 이 글은 언론노조 기관지인 ‘언론노보’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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