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태적 가치와
    정치적 역동성이 살아 숨 쉬는 도시
    [책소개] 『아바나 연대기』(장수환(지은이) / 알렙)
        2023년 03월 04일 11:5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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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쿠바의 아바나라는 도시와 그 안의 건축을 역사적·생태적 관점으로 들여다본다. 벤야민의 말처럼 도시는‘유일무이한 현존성’을 지닌다. 도시는 고유한 역사와 환경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저자는 아바나를 관통한 스페인 식민 지배와 미국의 영향, 혁명이라는 굵직한 역사적 맥락들과 그러한 역사와 환경의 상호작용 끝에 오늘에 이른 아바나라는 도시의 고유성을 생생하게 펼쳐 보인다. 지금까지 라틴아메리카의 한 도시를 이와 같이 탐색한 저작은 국내에 없었다. 이러한 시도를 충실히 수행한 이 책,『아바나 연대기』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지리학과 도시계획학을 공부하고, 직접 라틴아메리카를 오가며 도시와 환경의 역사를 탐구해 온 저자의 노력 덕분이다. 이제 우리는 아바나, 쿠바, 라틴아메리카라는 삶의 공간을 보다 풍부하고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쿠바를 둘러싼 스페인 제국과 미국의 영향, 그리고 쿠바 섬 주변의 정치적·경제적 변화를 함께 살펴본다. 그리고 설탕 산업이 확장되었던 쿠바 동부에서 자연환경의 변화로 창출된 부가 도시에서 개인과 공공의 공간에서 어떻게 표출되었는지를 이야기한다. 전 지구적으로 시공간이 고도로 연결된 지금, 상품의 생산·이동·교환이 특정 지역의 환경과 공간에 영향을 주는 힘은 극도로 커졌지만, 이는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오래전에 시작된 인간의 이야기이다. 쿠바 아바나라는 도시 공간과 자연환경의 변화가 결코 쿠바만의 이야기가 아닌 이유이다.

    저자는 수백 년에 걸쳐 쿠바에서 일어난 도시와 건축, 환경의 역사를 수도 아바나를 중심으로 이야기한다. 특히, 역사중심지구를 포함하는 구 아바나(Old Havana) 지역에 초점을 맞추며, 아바나의 물리적 형성과 관련된 쿠바 섬의 역사를 시간상으로, 또는 주요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한다. 시간상으로는 1519년 이후인 스페인 식민지 시기부터 1898년 쿠바 독립을 거쳐 20세기 전반의 주요 역사적 사건을 중심으로 다루었다.

    구 아바나의 역사는 스페인이 자리를 잡은 15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그 이전 쿠바 원주민들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당시 스페인 정복자들이 조성한 정주지와 거리, 격자 모양으로 구획하여 계획된 도시의 모습은 오늘날 아바나에도 화석처럼 남아 있다. 이후 18세기 후반 세계적 설탕 생산지였던 아이티에서의 혁명을 계기로 설탕의 주요 공급처가 된 쿠바는 19세기 후반 노예무역 금지 전까지는 흑인 노동력을, 그 이후에는 아시아 이민자들을 흡수했고, 이는 쿠바에 독특한 인종과 문화가 형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 대규모 설탕 농업 및 산업은 쿠바 섬의 자연경관도 변화시켰다. 나아가 설탕으로 이뤄낸 경제적 부는 아바나의 웅장한 건축물을 짓는 데 쓰여졌다. 르네상스, 바로크, 신고전주의, 아르데코, 절충주의적 양식 등 다양한 시기의 여러 건축 양식들이 구 아바나에 들어서게 된 이유이다. 이와 같이, 이 책 『아바나 연대기』는 쿠바 아바나의 도시와 건축, 환경을 오가며 그 역사를 펼쳐 보인다.

    이 책은 총 다섯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아바나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에 앞서, 1519년부터 1930년 사이 아바나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본다. 이는 이후 펼쳐지는 아바나의 도시, 건축, 환경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이해할 수 있는 초석을 닦는다.

    2장에서는 ‘구 아바나의 도시계획과 초기 건축’을 다룬다. 이에 앞서 유럽 항해자들이 탐험에 나서게 된 역사적 배경을 사회경제적 차원에서 살피며, 이어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도착과 정복, 아바나의 형성, 도시계획, 식민 초기 건축 형태, 스페인 무데하르 건축 양식의 이식 등을 설명한다.

    3장에서는 ‘역사적 장소들’에 대해 살펴본다. 먼저 스페인 까디스와의 비교를 통해 스페인의 식민지로서 쿠바의 아바나가 받은 영향을 이해하고, 유럽과 중남미를 연결하는 중요한 지리학적 위치였다는 데에서 기인하 아바나 만의 방어 체계를 들여다본다. 이후 아르마스 광장과 그 주변, 아바나 대성당과 성당 광장, 구광장, 산 프란시스꼬 성당과 그 광장, 주택들, 역사중심지구의 다양한 건축 양식, 까사 델 알페레스 프란시스꼬 델 삐꼬, 아바나의 공공 공간 등을 포함한 아바나의 역사가 숨 쉬는 장소들을 두루 살피며 이들을 관통하는 다양한 건축 양식들과 사회·경제·문화적 맥락들을 탐구한다.

    4장은 ‘설탕과 아바나’, 다시 말해 설탕 산업과 아바나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콜럼버스의 도착과 함께 찾아온 사탕수수(그리고 그것을 생산하고 공급하는 산업의 도래)는 쿠바의 역사, 공간, 환경을 크게 뒤바꿔 놓는 계기가 되었다. 그것은 흑인 노동력의 유입과 이민자의 수용을 낳았으며, 대규모 벌목과 숲의 소멸, 대규모 농장의 형성, 철도망의 확대 등을 야기했다. 또, 스페인-미국 전쟁을 거치며 쿠바의 정치 경제를 좌우하게 된 미국의 영향도 이 대목에서 등장한다.

    5장 ‘다시, 아바나’에서는 앞선 논의들을 일별한 후 20세기와 그 이후 쿠바가 직면한 변화에 대해 언급한다. 특히, 쿠바혁명과 함께 사라졌던 국제 관광이 1990년대 이후 되살아나고, 사유화를 포함한 경제 부문의 개혁이 추진된 후 외국 자본가들의 도시 투자, 즉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가 가져올 아바나라는 공간의 변화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또, 식민 지배와 혁명을 포함하는 역사의 누적과 일상의 현재가 공존하는 데에서 아바나의 고유성을 발견하며, 아바나라는 도시, 공간을 음미한다.

    아바나라는 도시의 특성은 이러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이루어진 건축물의 축적으로 볼 수는 없다. 저자는 아바나의 고유성을 ‘과거의 일회성과 현재의 일상성이 교차하는 순간’ 속에서 찾는다. 도시와 환경, 자연의 역사에 대한 저자의 풍부한 해설과 시각 자료를 통해, 우리는 쿠바라는 국가와 아바나라는 도시를 살아 숨 쉬며 변화해 온 역동적 공간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는 쿠바, 나아가 라틴아메리카를 다양한 측면에서 조명함으로써, 이 대륙(사회)에 대한 이해를 객관적・입체적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중남미연구소 HK+사업단은 ‘21세기 문명 전화의 플랫폼, 라틴아메리카: 산업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라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본 사업단은 라틴아메리카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생태문명으로의 패러다임을 전환하기 위해 투여하는 다양한 노력을 비롯해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이 추구하는 대안적 세계관과 삶의 방식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된 연구 결과물을 대중과 공유하기 위해 ‘부엔 비비르 총서’를 기획해 출판하고 있다.

    ‘부엔 비비르(Buen Vivir)’는 안데스 원주민이 추구하는 삶을 표현하는 단어로, 그 핵심 내용은 공동체에서의 조화와 공존이다. 부엔 비비르 총서에는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이 융합해 라틴아메리카의 생태문명을 탐구한 결과가 오롯이 담겨 있다.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구성원인 인간과,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이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는 부엔 비비르의 의미를 되새기며, 부엔 비비르 총서의 출발점으로 쿠바 아바나의 도시 역사와 환경사를 다룬 이 책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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