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왜곡에 기초한 패배주의 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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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3월 12일 08:4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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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조기숙교수가 <한겨레>와 <레디앙> 3월 5일자에 제기한 손호철 교수에 반론에 대해 손호철 교수가 매주 월요일 <한국일보>에 연재하고 있는 ‘손호철의 정치논평’ 3월 12일자에 재반론을 쓰면서 이를 발전시킨 ‘전문’을 <레디앙>에 보내왔다. <편집자 주>

    최근 <레디앙>이 중심이 되어 제기한 노무현정부에 대한 진보진영의 논쟁과 관련해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논쟁에 참여했고 이에 나는 <한겨레>(2월 26일자)에 ‘노대통령에 드리는 공개서한’을 통해 반론을 제기한 바 있다. 그러자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조기숙교수가 <한겨레> 3월 5일자와 <레디앙>에 다시 반론을 폈다.

    핵심내용은 1)진보와 좌파는 다르며 노무현 정부는 좌파는 아니지만 진보이며 2) 양극화만으로 김대중, 노무현 정부 하의 서민의 삶이 그 이전보다 나빠졌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이고, 3) 양극화가 그렇게 중요하면 노대통령이 양극화 해결을 위한 공론화에 나섰을 때 진보 지식인들은 무엇을 했느냐는 반론이다.

    이와 관련, 첫 번째 문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제기로 건설적인 논쟁을 위한 중요한 논쟁거리를 조교수가 제공한 것으로 매우 의미가 크다. 그리고 이 문제는 외국의 용법 등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 등이 필요한 주제로 이에 대한 조사를 하고 있어 조사가 끝나면 그간에 이에 대한 다양한 국내의 논자들을 용법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글을 써서 발표를 할 예정이다.

    그러나 두 번째 문제의 경우 1997년 이후 상대적 빈곤만이 심화된 것이 아니라 절대적 빈곤층 역시 급증했다는 사실이 어느 정도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배 아픔’만이 아니라 ‘배 고품’도 문제이다.

    세 번째 문제는 ‘책임전가적인 투정’처럼 들리는데다가 내 자신이 진보지식인 전체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 자신이 전체를 대표해서 답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다만 내 개인의 경우 나의 글과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공동의장 등을 지내며 실천현장에서 한 나의 활동(그 결과로 대학 시절 이후 근 30년 만에, 그것도 소위 ‘참여정부’의 경찰과 검찰에 의해 소환되어 조사를 받아야 했던)이 답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따로 반론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 서강대 정외과 손호철 교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펜을 든 것은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바로잡아야 할 필요성을 느껴서이다. 나는 ‘공개서한’의 마지막 부분에서 조교수를 비판했는데 그 발단은 조교수가 최근 <오마이뉴스>에 쓴 글이었다.

    조교수는 이 글에서 한 정권에 대한 평가는 상대적 평가와 “대선 공약을 얼마나 잘 수행했는지”에 의한 절대적 평가가 있는데 이 두 기준에서 참여정부는 “매우 성공” 내지 최소한 실패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특히 노무현 정부가 실패한 논거로 진보진영이 주목하는 “양극화 해결은 참여정부가 새 정치를 이루고 나서 들고 나온 새로운 의제였지 2002년 대선의 선거공약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선거 내내 후보들은 경제성장을 경쟁할 정도로 양극화에 대한 고민을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나는 ‘공개서한’에서 “양극화로 국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고 있는데 이를 해소하지 못하면 책임이 있고 책임감을 느껴야지, 선거공약이 아니라 괜찮다니 이 무슨 해괴한 논리”냐고 비판했다. 나아가 당시 양극화가 심각한 사회문제였음에도 불구하고 양극화 해소가 대선공약이 아니었다니 하고 놀랐다.

    그러나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고 노대통령의 홍보수석까지 지낸 사람이 이같이 간단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 틀릴 리가 없다고 판단해 “조교수의 주장대로 양극화해소가 노대통령의 2002년 대선공약이 아니라면, 대통령께서 얼마나 우리의 문제를 피상적으로 보고 선거에 임했는가를 보여주는 것으로 더욱 심각한 문제”라고 비판했다.

    그러자 조교수는 나에 대한 3월 5일자 반론에서 노대통령이 양극화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었던 것이 아니며 “우리 사회는 분단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좌파의 뿌리마저 뽑혀 지식인과 언론인의 압도적 다수가 보수적인, 전세계적으로 희귀한 보수 일변도의 사회”라는 구조적 특징 때문에 “만일 그랬다면(인용자주-노대통령이 양극화해소를 주요선거공약으로 들고 나왔다면) 노대통령은 당선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 사회 진보세력의 한계”라고 반박했다.

    쉽게 말해, 노대통령이 양극화에 대한 의식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보수적 한국사회를 고려한 선거 전략상 양극화해소를 공약으로 내걸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선거에서 이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일보>를 보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노무현 정부 출범 4년을 맞아 4년간 이룬 대선공약들과 이루지 못한 공약들을 분석한 기사였는데 양극화 해소, 정확히 말해 빈부격차 해소와 인구의 70% 중산층 시대 진입이 이루지 못한 대선공약으로 버젓이 자리 잡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교수의 주장대로 양극화 해소가 노대통령의 2002년 대선공약이 아니라면”이라는 전제를 달기는 했지만 홍보수석을 한 조교수가 설마 이 같은 사실을 틀릴까 싶어 확인을 하지 않음으로써 부당하게 노대통령이 우리의 문제를 피상적으로 보고 선거에 임한 증거라고 비판을 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 것이다.

    이 문제는 물론 이같이 간단한 사실을 잘못 알아 엉뚱한 주장을 펴온 조교수의 실수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 그러나 양극화해소가 대선 공약이 아니었다는 조교수의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확인하지 않은 나의 지적 게으름도 일정하게 책임이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해 노대통령과 독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그러나 중요한 것들이 남아있다. 우선 조교수의 주장과 달리, 특히 “그것이 우리 사회 진보세력의 한계”라는 큰 소리와 달리, 노대통령이 양극화 해소를 대선공약으로 내걸고도 당선됐다는 사실이다. 사실 이 부분이 내가 이 반론을 쓴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조교수의 주장을 그래도 내버려 둔다면, 보수적 풍토 때문에 한국사회에서 양극화 해소를 대선공약으로 내거는 후보는 결코 당선될 수 없다는 구조적 패배주의가 마치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여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오해를 할까봐, 정확히 해두자면, 나의 주장은 노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양극화해소를 대선공약으로 내걸었기 때문에 대선에서 승리했다는 것이 아니다.

    즉 계급정치의 미성숙과 지역구도 등으로 양극화 해소가 다수 서민의 지지를 얻어내는 적극적인 승리요인으로 작동하지는 않았는지 모르지만 조교수가 주장하듯이 양극화 해소를 대선공약으로 내걸면 “노대통령이 당선되지도 않았을 것”일만큼 부정적인 요인도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양극화 해소를 공약으로 내걸지 않았다는 사실왜곡에 기초해 마치 우리 사회의 보수성 때문에 양극화해소를 공약으로 내걸면 선거에서 승리할 수 없는 것 같은 기이한 패배주의를 유포함으로써 민주노동당, 한국사회당과 같은 진보세력 나아가 범여권의 자유주의적 개혁세력이 대선공약을 내거는데 있어서 지레 겁을 먹고 위축되도록 만드는 행위는 중단되어야 한다.

    그 뿐이 아니다. 양극화 해소가 대선공약이었던 만큼, 양극화 해소가 대선공약이 아니었기 때문에 “양극화 해결에 대한 정책적 수단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없이 어떻게 정부가 정책을 실현할 수 있겠느냐”는 조교수의 반론은 설득력이 약해진다.

    허긴 이라크 파병 등이 언제 대선공약이라서, 따라서 국민적 공감대가 있어서, 노무현 정부가 밀어부쳤느냐만은…. 나아가 양극화 해소가 선거공약이 아니었기 때문에 선거공약이라는 절대적 기준을 가지고 평가할 때 노무현 정부는 매우 성공했다는 주장도 수정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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