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정부에서 사라진 그린뉴딜
    [에정칼럼] 한국판 IRA·탄소중립산업법 추진을 향해
        2023년 02월 27일 10:2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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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정부 들어 사라진 정책 중 가장 안타까운 것으로 ‘그린뉴딜’을 들 수 있다. 지난해 12월 21일 발표된 ‘2023년 경제정책방향’에는 그린뉴딜을 포함한 한국판 뉴딜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2022년 경제정책방향’에서 핵심과제로 제시된 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었다. ‘2022년 예산안’에서 ‘탄소중립·디지털 전환 등 미래형 경제구조 대전환’은 4대 투자 중점 과제 중 하나였고, 12대 중점 프로젝트 중 4대 과제가 ‘뉴딜 등 미래 대비 투자’였다. 하지만 ‘2023년 예산안’에서도 그린뉴딜은 사라졌다. 한국판 뉴딜 홈페이지가 문을 닫았고 국책은행과 금융위원회 등의 부서명에서 ‘뉴딜’이 지워졌으며 뉴딜 인프라펀드에 대한 세제 해택도 지난해 말에 종료됐다.

    그린뉴딜은 미국와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중국 등 주요 국가들이 시행하고 있는 통상적인 정책임에도 윤석열 정부가 한국판 뉴딜을 전 정부 정책이라는 이유로 폐기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2020년 7월 발표된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이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에 충분하고 완전한 계획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2021년 7월에 탄소중립과 상향된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달성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그린뉴딜 2.0’이 마련되면서 정책의 연속성을 이어갈 수 있었다. 또한 그린뉴딜 사업의 범위와 재정 투입 규모가 이전 계획보다 확대됐다. 그럼에도 그린뉴딜 2.0은 2025년까지의 단기간 계획으로, 2025년 이후의 구체적인 목표와 수단이 부재해 장기적인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는 불충분한 전략이었다.

    윤석열 정부 들어 국내에서 그린뉴딜이 사라진 사이, 미국과 유럽연합(EU)은 그린뉴딜 정책을 확장하면서 ‘탄소무역장벽’을 쌓아가고 있다. 미국은 단일 법안 기준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후 입법안으로 평가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발효했다. 총투자 4,370억 달러(약 527조원) 중 84.4%에 이르는 3,690억 달러(약 454조원) 예산을 에너지안보 및 기후대응 부문에 편성했다. 중장기 미국 내 친환경 산업 관련 제조역량 제고를 목적으로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생산설비 밸류체인을 확보해 공급망 안정성을 확보하고 자국 내 생산 및 판매를 장려하겠다는 것이다.

    EU도 2019년 12월 ‘유럽 그린딜’을 발표하면서 유럽기후법 제정,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 목표와 계획, 그린딜 투자계획,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도입을 예고했다. 또한 ‘Fit for 55’와 ‘REPowerEU’로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그린딜 전략을 구체화했다. Fit for 55 입법안은 탄소중립의 중간목표로 2030년까지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1990년 대비 55% 감축하겠다는 선언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 탄소가격 결정 입법안, 감축목표 설정 관련 입법안, 규정 강화 입법안, 포용적 전환을 위한 지원 대책인 사회기후기금을 마련했다.

    탄소가격 설정과 관련해서는 CBAM의 도입과 항공 부문에 대한 탄소배출권 무상할당의 점진적 폐지, 해운·육상운송·건축물 부문의 EU 배출권거래제(ETS) 적용 확대가 핵심 정책이다. 규정 강화와 관련해서는 내연기관을 사용하는 차량은 2035년부터 출시할 수 없다는 규정과 대체연료 구축을 촉진하는 규정 제안 등 교통 및 운송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을 제시했다. 2025년부터 2032년까지 EU ETS에서 약 722억 유로의 사회기후자금을 편성해 건물 재건축, 재생에너지 사용 등을 통해 에너지효율을 높이고 EU내 저소득 국가의 저탄소 전환을 지원한다.

    지난해 5월 발표된 REPowerEU는 Fit-for-55보다 재생에너지 생산 및 에너지효율화 목표를 더욱 상향 조정했다. EU 에너지효율지침에 규정했던 2030년 에너지소비 9% 감축(2020년 기준 예측치 대비) 의무를 13%로 확대했고, 재생에너지 지침에 따른 2030년 재생에너지 목표를 40%에서 45%로 상향했다. 2030년까지 풍력(510GW)과 태양광(600GW) 확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허가 기간을 단축하는 패스트트랙 도입, △탄소배출권 강화, △국가별로 재생에너지 입찰 가격 상향과 재생에너지 구역 할당제 도입 등을 시행한다.

    EU집행위는 또 지난 2월 1일, 미국 IRA에 대응하기 위해 ‘그린딜 산업계획’을 제안했다. ‘탄소중립산업법’을 도입해 2030년까지 EU 차원의 야심찬 친환경 제조업 생산 역량 목표를 설정하는 방안이다. 특히 올해 3월 8일 발표될 ‘핵심광물원자재법’으로 역내 채굴 등 광물 원자재 공급을 강화해 탄소중립산업법 목표 달성에 기여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재생에너지 확대 및 제조업 공정의 탈탄소화 관련 보조금 지원 간소화, 특정 탄소중립 섹터에 대한 세액공제 등 혜택 제공, 특정 친환경 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 신고 기준 완화 등을 제시했다. 중장기적인 계획으로 핵심 기술 개발을 지원하기 위한 투자자금 조성을 위해 ‘유럽국부펀드’를 창설한다는 계획이다.

    국내 정치권에서도 ‘한국판 IRA’을 입법화하겠다는 공언이 나온 바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안이 제시되지는 않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과 EU는 그린뉴딜이라는 큰 우산을 토대로 구체적인 입법안들을 마련하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그린뉴딜이 사라진 진데다 재생에너지 목표와 예산이 줄었고, IRA와 CBAM 등 ‘탄소무역장벽’에 대한 대응과 산업 전환 대비는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애플과 같은 주요 글로벌 기업들의 RE100 압박이 강해지면서 국내 대기업들도 최근 RE100에 빠르게 가입하고 있다. 지난해에만 삼성전자와 현대차, 네이버 등 13개 기업이 RE100에 가입하면서 국내 RE100 참여 기업은 27개로 증가했다. 현재 가입 신청 후 승인 절차를 밟고 있는 기업들까지 감안하면, 올해 말에는 약 40개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지난해에는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량과 주요 8개 대기업의 전력소비량을 비교했더니 이들 기업의 전력소비량이 국내 태양광·풍력 발전량보다 4배 가량 많은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2030년 신재생에너지 목표를 30.2%(185.2TWh)에서 21.6%(134.1TWh)로 큰 폭으로 축소했다. 이에 따라 2030년 재생에너지 공급량이 수요량(RPS+RE100 수요)보다 부족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이는 2030년 RPS 발전사들의 재생에너지 수요 전망(약 120.8TWh)과 RE100 참여 20개 기업의 재생에너지 수요 예측(약 50.2TWh)만을 고려한 것으로 RE100 참여 기업이 더 증가할 경우 재생에너지 부족량은 더욱 늘어날 수 있다. 더구나 여기에는 건물 등에서 사용할 재생에너지는 제외돼 있다.

    글로벌 탄소무역장벽이 현실화하고 있지만, 국내 배출권거래제 가격은 EU 배출권거래제 가격의 7분의 1수준에 불과하다. 한국의 2022년 배출권(KAU22) 가격이 1만6천원(12.6달러)인데 EU 배출권거래제 거래가격은 84유로(89.6달러)로 가격 차이는 7배(77달러)에 이른다. 국내 배출권 유상할당을 통해 EU와 동등한 수준으로 탄소비용을 부과해 관세를 부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반복되는 이유다. 기업에 부과하는 유상할당 재원은 기후대응기금으로 편입해 기업들의 온실가스 감축 투자 및 지자체 지원, 정의로운 전환 등 다양한 사업에 활용될 수 있다.

    한국판 IRA·탄소중립산업법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개선과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NDC 강화에 따른 할당량 조정, 유상할당 대폭 확대, 최저가격제 도입, 발전 부문 기준 강화 등의 배출권거래제 개선 방안들은 이미 정부와 주요 연구기관들도 알고 있다. 문제는 정부의 확고한 정책 의지와 산업계의 협력이다. 2030년 재생에너지 목표 비중은 최근 NGO 기반 연구기관과 단체가 제안한 바와 같이 40%로 높이고 이를 위한 지원제도(가격, 세금, 금융, 기타 R&D, 인허가 등)를 총체적으로 점검 및 확대해야 한다.

    이러한 정책 방향을 포함한 ‘그린뉴딜 3.0’을 추진을 제안한다. 탄소중립 목표와의 연계를 강화한 중장기 그린뉴딜 3.0 계획을 수립해야 할 시기다. 정부는 오는 3월 25일 이전에 20년을 계획 기간으로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을 수립·시행해야 한다. 핵심은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을 위한 부문별·연도별 감축 경로 제시다. 탄소중립 기본계획의 구체적인 정책 패키지(전략, 제도, 투자)로서의 그린뉴딜 3.0 계획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린산업 육성과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한국판 IRA·탄소중립산업법도 그린뉴딜 3.0 계획이라는 큰 우산을 토대로 도입될 필요가 있다. ‘그린뉴딜 3.0’은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산업 전환, 전기차, 그린리모델링 등 그린산업 육성을 위한 법제도 및 투자계획 마련, 산업·노동·지역 전환을 위한 정의로운 전환 법률 제정, 탄소중립을 위한 에너지세제 개편 및 탄소세 도입 등을 포괄하는 정책 패키지다. 특별하고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긴 이야기의 결론은 미국과 EU가 하는 것을 부디 흉내라도 내보자는 것이다. 정부가 안 한다면 비정부기구(시민사회)에서라도.

    * <에정칼럼> 링크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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