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 한계 안에서
    좋은 삶 모색하는 생태경제학 입문
    [책소개] 『기후를 위한 경제학』(김병권/ 착한책가게)
        2023년 02월 25일 10:0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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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후위기 시대, 성장 중독에 빠진 경제를 바꾸고
    정의로운 분배개혁에 도전하는 생태경제학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어려운 도전 앞에 서 있다. 탄소문명과 성장의존 패러다임을 버리고 불평등의 굴레에서도 빠져나와야 한다. ‘정치적으로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운 과제다. 하지만 화석연료를 계속해서 태우고 경제 규모를 무한히 확대하는 가운데 불평등을 방치하는 것은 유한한 지구에서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자연은 우리와 타협하지 않기에 정치적 해결 말고는 다른 선택은 없다. 정치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정치적으로 ‘불가피’하게 만드는 유일한 희망은 시민들의 간절한 요구와 행동이다.

    생태경제학은 그 시작부터 “지구 생태계 한계 안에서 인간의 경제가 존재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해왔다. 이 책은 생태경제학이 기후와 생태 위기 대처를 위해 더 나은 해법을 찾는 데 도움을 주리라는 믿음 아래, 이 실천적 학문이 어떤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으며 기존 경제학과 어떻게 다른지를, 그리고 이 학문이 제시하는 주요 이론과 다양한 주장들, 나아가 특별한 정책 수단들이 무엇인지를 살펴본다. 이 책은 향후 한국 경제와 기후위기에 관한 더 많은 논쟁과 토론을 불러일으키고 더 나은 경제정책 설계와 기후대응 실천에 나서는 데 기여할 것이다.

    기후대응 30년의 처절한 실패가 일깨운 뼈아픈 교훈

    기후위기 대응이 지금까지 실패를 거듭하여 급기야 최후의 방어선처럼 간주된 ‘1.5°C 가드레일’조차 이제는 지키기 어려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과학자들은 이제 기후붕괴가 사회붕괴로 이어지는 ‘기후 엔드게임(climate endgame)’마저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급기야 2022년 4월 세계 곳곳에서는, 지금까지처럼 기후위기 대처를 계속 회피하거나 지연시키면 아무런 준비 없이 사회붕괴 상황을 마주할 것이라며 1,000명이 넘는 과학자들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이는 지경에 이르렀다(뉴스펭귄 2022년 8월 29일자 기사).

    과학자들의 경고가 아니더라도 지금 이 순간 기후위기 한계선을 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현실에서 뼈저리게 체험하고 있다. 매년 신기록을 갈아치우는 홍수와 태풍, 가뭄, 폭염과 열돔현상, 점점 더 거대해지는 산불 등이 그것이다. 세계기상기구(WMO)는 2015년부터 2022년까지가 관측 기록상 지구 평균 온도가 가장 높았던 시기라고 보고했다. 2022년만 해도 폭염으로 스페인에서 700여 명, 포르투갈에서 1,000여 명이 사망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또한 파키스탄의 거대한 국토를 1/3이나 물에 잠기게 했던 대홍수는 1,500여 명의 사망자와 3,300만 명이 넘는 이재민을 발생시키면서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하는 지경까지 몰고 갔다. 그나마 사정이 나았던 한국 역시 집중호우로 서울 일부 지역이 완전 침수되는 대재난을 초래했는가 하면, 강력한 태풍이 포항제철소를 덮쳐 용광로를 꺼뜨리고 2조 원이 넘는 매출 손실을 발생시켰다. 제철소 용광로가 가동된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앞으로 통제 범위를 벗어나 폭주할 기후붕괴와 재난, 그리고 사회붕괴라는 용어를 더 자주 더 많이 미디어에서 듣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떠오르는 의문이 있다. 기후 위험을 평가하는 조직인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가 설립되고 1990년 첫 보고서가 발표된 이래 인류가 기후위기를 명백히 인지하고 대처하기 시작한 지도 30년이 넘었는데 도대체 그동안 어떻게 대처했기에 해결은커녕 훨씬 더 악화되었을까? 마침 이 의문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여 실패의 원인을 해부하여 교훈을 찾고자 했던 학자들이 있었다. 2021년 클라이브 스패시(Clive L. Spash)를 필두로 한 세계의 저명한 생태경제학자와 기후과학자 23명이 “기후완화 30년:왜 글로벌 탄소 배출 추이를 꺾지 못했나?”라는 논문을 공동 집필한 것이다. 이 논문은 기후변화 대응 실패의 원인을 크게 3가지 묶음 즉, ‘화석연료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권력의 문제, ‘잘못된 지식과 정책 패러다임’에서 비롯한 지식인 그룹의 문제, 그리고 ‘익숙한 관성에 안주’하려는 시민들의 습관으로 구분하면서 기후변화 대응 실패의 원인을 분석한다. 이 책에서는 그동안 기후위기 대응을 집요하게 방해하고 지연시키려는 화석연료 기득권이 기후위기 대처에서 거듭된 실패를 불러온 제1원인이라는 논문의 주장을 비롯하여 3가지 원인에 대해 조목조목 살펴보며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교훈을 남긴다.

    화석연료에 의존해온 산업화 문명의 역사가 이미 경제와 사회, 문화, 심리에서 ‘강력한 경로의존’을 만들어냈기에, 이 궤도에서 이탈하는 것이 개인적으로도 집단적으로도 결코 쉽지 않다. 특히 이러한 경제문명을 뒷받침했던 경제학을 비롯한 기존의 경제 패러다임이 미치는 영향은 광범위하다. 이 패러다임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효과적인 정책 수단 개발에 실패했을 뿐 아니라, 화석연료 기득권에 의해 기후위기 대응을 방해하거나 지연시키기 위한 정당화 논리로 이용되기도 했다. 또한 시민들이 탄소집약적 라이프스타일에서 벗어나 새로운 탈탄소문명을 꿈꾸고 실현하려는 동기를 갖도록 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따라서 화석연료에 의존한 경제 시스템의 무한팽창을 당연한 전제로 하는 기존 경제학이야말로 패러다임에서의 궤도 탈출이 절실할지 모른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이 책은 생태경제학이라는 우리에게 아직은 낯설지만 새롭고 실천적인 경제학 전통으로 관심을 돌리게 한다.

    기후와 생태, 불평등 위기의 시대에 꼭 필요한 생태경제학

    이제 기후과학자, 자연과학자들이 아니라 사회와 경제를 연구하는 이들과 정책을 결정하는 이들이 나설 차례다. 자연과학으로 기후의 심각성을 되풀이하여 설명하고 있을 시점이 아니라, 어떻게 모두의 지혜와 역량을 모아 사회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지 사회과학의 지식과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껏 사회과학의 중심을 자처한 경제학은 기후위기를 무시해왔거나 인정했다 하더라도 지나치게 과소평가했다. 경제성장과 기후위기 사이에 놓인 딜레마를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이유다.

    이에 반해 생태경제학은 그 시작부터 “지구 생태적 한계 안에서 인간의 경제가 존재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해왔다. 인간 경제활동에서 과도하게 사용된 화석연료, 그로 인한 막대한 온실가스 배출이 지구 온도를 상승시켜 지구의 탄소 순환체계를 교란하고 지구 안의 생태계를 위험에 몰아넣어 나타난 현상이 바로 기후위기다. 생태경제학은 우리 경제가 어떻게 지구 생태 한계선 안에서 안전하게 작동할 수 있는지 지혜를 줄 수 있다. 최근 무한 경제성장, 무한한 물질소비 확대에 대한 점점 더 커지는 비판적 문제제기나 점차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는 ‘탈성장’도 모두 생태경제학이라는 접근법에 토대를 두고 있다.

    이 책은 생태경제학이 기후와 생태 위기 대처를 위해 더 나은 해법을 찾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이 학문이 어떤 문제의식으로 출발했으며 기존 경제학과 다른 원칙은 무엇인지를, 그리고 그것이 제시하는 주요한 이론 틀, 다양한 주장들과 특별한 정책 수단들을 차례로 검토한다.

    1장은 생태경제학이 탄생한 배경과 역사를 되돌아본다. 니콜라스 조르제스쿠-로겐, 허먼 데일리 등 생태경제학의 선구자들이 활동했던 1960년대의 태동기, 1990~2000년대의 정체성 확립기, 최근의 탈성장론 등장과 급부상 시기까지 생태경제학이 어떤 문제의식을 발전시켜왔고 기존 경제학과 어떻게 차별화되어 왔는지를 크게 세 가지 시대 구분을 통해 확인한다.

    2장에서는 생태경제학을 다른 모든 경제학과 구분을 지어주는 생물리학적 기초를 확인한다. 모든 생명현상이 작동하는 방식과 다름없이 인간의 집단적 생명을 유지해주는 경제활동 역시 자연과 끊임없이 물질대사를 하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경제활동 역시 당연하게도 자연계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열역학 법칙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열역학 제1법칙(에너지 보존 법칙)이 기존의 생산함수를 어떻게 수정하도록 만드는지, 그리고 열역학 제2법칙(엔트로피 법칙)은 경제의 무한성장에 어떻게 한계를 지우는지에 대해서 살펴본다.

    3장에서는 기후위기와 인간 경제가 첨예하게 충돌하는 지점인 ‘경제의 무한성장’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지구의 한계를 이미 부분적으로 넘어버린 인간 경제는 ‘꽉 찬 세상’으로 진입하였고, 무한성장은 기술혁신이나 다른 수단으로도 더 이상 가능한 선택지가 아니게 되었다. 현실에서도 이미 1980년대 이후 선진국을 중심으로 제로성장에 수렴하고 있으며 한국 경제도 이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사실도 살펴본다.

    이 책의 중심 주제를 다루는 4장에서는 지구의 생태적 한계를 넘어서지 않기 위해 무한성장을 제한할 경우 우리 경제가 어떻게 작동하고 유지될 수 있을지 짚는다. 달리던 자전거가 멈추면 넘어지듯, 무한성장을 그만두면 실업과 혼란을 수반하는 경기침체나 공황 상태에 빠져들지 않을까? 이에 대해 생태경제학자들이 해법으로 제시한 ‘정상상태 경제’, ‘도넛 경제’, ‘잘 설계된 성장 없는 경제’, ‘탈성장 경제’, ‘생태사회주의’ 등이 각각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경제성장과 자본주의에 새로운 관점과 방식으로 접근하는지 세부적으로 비교한다. 그리고 OECD 국가의 일원이 된 지 27년이 넘은 선진국 한국 경제가 어떻게 무한성장 궤도에서 빠져나와 생태경제로 전환하고 기후위기 대응에 성공할 수 있을지 짚어본다.

    5장은 생태경제학의 분배정책을 소개한다. 특히 경제의 기본 주제인 성장-분배-시장정책에 대해 생태경제학이 기존 경제학과 달리 어떤 접근을 하는지 확인하는 동시에 왜 파격적인 분배정책을 요구하는지도 알아본다. 나아가 기존 경제학에서 가장 중시하는 시장가격 메커니즘을 어떻게 수용하는지, 또 시장가격을 기후위기 해결에 어떻게 활용하려 하는지 알아본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특히 관심을 끌고 있는 ESG나 RE100을 생태경제학이 평가하는 방식과 금융에 대한 독특한 접근법도 함께 짚는다. 결론 부분에서는 지금까지 정리한 생태경제학의 관점과 정책들을 종합하여 새로운 경제개혁 전략과 정책을 어떻게 구성해낼 수 있을지 시론적인 모색을 한다. 그리고 생태경제가 추구해야 할 7가지 개혁 과제와 기후위기 대응이 안고 있는 2가지 난제인 ‘규모’와 ‘속도’의 문제를 환기하고 이러한 문제들의 해결에 중심적 역할을 해야 할 생태국가를 호명하고 시민의 행동을 촉구한다.

    국내 저자가 집필한 최초의 생태경제학 입문서

    한국에서 생태경제학은 연구하는 사람도 극소수이고 번역된 출판물도 매우 적다. 최근 들어 탈성장 관련 서적들이 꽤 번역되기 시작했지만, 대체로 그 내용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생태경제학의 원리나 이론체계를 충분히 소개해주고 있지는 않다. 그렇기에 이 책은 생태경제학에 관한 입문서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려는 목적으로 집필되었다.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분야를 전공하고 오랫동안 사기업과 시민사회, 공공영역을 모두 경험한 저자가 다양한 문헌과 자료를 바탕으로 생태경제학의 발상과 문제의식, 기본원리들이 어떻게 기존 경제의 관점이나 정책과 확연히 구분될 수 있는지 독자들에게 쉽고 분명하게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이 책은 생태경제학이 지구 생태계와 경제를 관계 짓는 방법, 다른 관점으로 재해석된 경제성장과 분배는 물론이고, 시장 이론이 어떻게 기후위기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밝히는 데 초점을 맞췄다. 또한 생태경제학의 기본원리들이 우리 사회경제의 대전환 과정에도 훌륭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그 시작점이 어디일지 찾기 위해 모색했다. 그러한 의도 아래 녹색성장에서 생태사회주의까지 생태경제학을 둘러싼 다양한 주장들을 폭넓게 소개하고 있지만, 특히 성장 패러다임을 거부하면서도 생태거시경제적 접근법으로 정책 설계를 모색하는 허먼 데일리, 팀 잭슨이나 ‘도넛 경제학’으로 유명한 케이트 레이워스 등의 견해에 무게를 싣는다.

    특히 이 책은 모두 53개의 그림과 표 자료를 통해 흥미를 배가하고 독자의 이해를 도움으로써 입문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여기에는 기후와 경제에 관한 객관적인 현황을 근거로서 보여주는 기초자료는 물론이고 효과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저자가 공들여 직접 구성한 개념도 형식의 그림 자료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면 “순환계에 소화계가 덧붙여진 경제 시스템”, “생태경제학의 다양한 대안들의 상대적 위치”, “생태경제와 생태사회주의의 상대적 위치”, “정의로운 사회와 지속 가능한 사회를 동시에 만들기 위한 전략들의 위치”, “기업이 생태적 책임을 지는 방식에 대한 유형 분류와 국가의 역할”, “부침을 겪어온 성장주의 신화”, “기후위기와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경제 관점들의 구성” 같은 것들이다.

    환경주의자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생태경제학

    저자는 생태경제학의 관점을 빌려 다음의 세 가지 주장을 독자들에게 전하려 한다. 첫째, 무한한 경제성장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고 가능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생태경제학이 명확히 입증했다. 둘째, 글로벌 경제는 이미 지구 생태계의 경계선을 넘었으므로 선진국을 중심으로 무한 경제성장을 멈추고 에너지와 물질자원 처리량 규모를 줄여나가야 한다. 물론 한국도 이를 따라야 한다. 셋째, 경제 규모 팽창을 멈추는 대신 사회구성원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분배를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모든 정책과 실천들은 위의 세 가지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이 책은 기후와 환경에 관심 있는 독자들이 쉽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생태경제학 교양서일 뿐 아니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경제의 전환을 상상하고 재설계하려는 기후운동가나 정책 담당자들에게 풍부하고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것은 물론 이론적, 실천적 통찰력을 크게 넓혀줄 것이다. 특히 기술혁신을 통한 경제성장의 지속과 기후위기 해결의 가능성, 성장주의 이후의 웰빙경제 대안, 정의로운 분배개혁의 과제, ESG와 RE100을 어떻게 볼 것인지의 관점, 사회를 강타하고 있는 에너지 대란을 바라보는 기본 관점 등 우리 사회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 분명한 어조로 다루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향후 생태경제학의 관점에서 한국 경제와 기후위기에 관한 더 많은 논쟁과 토론을 벌이기 위한 촉진제로 활용될 수 있고 그리하여 더 나은 경제정책 설계와 기후대응 실천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실천 없는 사상은 좌절을 부르고, 사상 없는 실천은 실패를 부른다”면서 기후운동 실천과 이를 뒷받침할 경제학 이론을 모두 강조한 생태경제학자 피터 빅터의 조언이 이 책의 필요성을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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