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임 개헌보다 독일식선거제 국민투표를
        2007년 03월 09일 02:2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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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대선은 대접전의 양상이어서 그 전과 달리 노무현 후보에게 투표하려는 마음이 막 솟구쳤으나 민주노동당 당원의 도리로서 권영길 후보에게 투표하였다. 나는 노무현 정부가 해방 이후 최선의 정부였고 소기의 성과도 거두었다고 평가한다. 어떤 인연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도전적인 필체의 사인이 든 벽시계도 사무실에 걸어 두기도 했다.

    나아가 유시민 장관이 사민주의 좌파를 실질적으로 깊이 존중하면서 자신의 운명을 ‘100년 자유주의 정당’에 거는 것을 보고는 대협의 호연지기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의 운명은 민주주의와 법치국가를 규정한 대한민국 헌법이라는 대나무 숲에서 느리지만 노동사회권의 확장과 증대를 중단 없이 누적해가는 중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의 최장집 교수 논쟁은 아주 분명히 민주주의 대 민주주의라는 대결의 정치가 본격적으로 임박하였음을 확인하여 주고 있다.

    먼저 서론격으로 노무현 대통령에게 꼭 청을 하나 할 것이 있다. 최장집 교수가 대통령 탄핵시 헌법을 동원하여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공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방어해주었다는 사실을 상기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작년 7. 26 성북을 보궐선거에서 청와대 비서실 출신 열린우리당 후보의 후원회장으로서 조금이라도 젊은 도전에 미풍양속적 지원을 해주기도 했다는 것이다.

       
      ▲ 노무현 대통령이 3월 8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헌법개정시안 발표에 즈음한 특별기자회견’을 갖고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노무현 대통령이 자신의 숙명이었던 지역주의 정치와의 대결을 감행한 것처럼 최장집 교수 역시 지역주의 정치에 누구보다도 절망하였다. 그리고 민주공화국의 미래를 위하여 지역독점보수정치만은 파탄시켜야 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니라 유럽 사회에서처럼 극좌에서 극우에 이르는 여러 정치세력이 선거를 통하여 자신의 이념을 다수 득표로 연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당정일체의 책임정치라는 것이 최장집 교수의 가르침이다. 이런 가르침은 학자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충국(忠國)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대연방국가인 미국의 통치구조를 본 딴 개헌발의보다는 기존의 지역주의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독일식 선거구제도(및 부정선거범죄처리특별법)로 대체하는 국민투표(헌법제72조)를 이번 대선과 동시에 부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것이 노무현 대통령이 한국 정치개혁과 사회발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다.

    <경향신문>이 던진 “민주노동당 과연 기대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최장집 교수의 답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민주노동당이 현재의 당구조와 성격을 갖고는 기대에 부응하기 어렵다. 제도적 실천으로서의 민주주의를 더 깊이 이해하고 경제적 약자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하는데, 그게 어렵다면 민주노동당 밖에서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 둘 다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경향신문, 『민주화 20년 열망과 절망』).”

    특히 정당 발전이 지체되고 있는 것을 사회경제적 토대나 하부구조의 문제로 환원해 접근해서는 안된다. 정당의 형성과 발전은 사회경제적 구조의 반영이나 표출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 가운에서 각성된 일부 사람들이 비전을 갖고 지도력을 발휘해 헌신한 결과로 이해해야 한다.

    하부구조가 정당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당의 정치적 힘이 하부구조를 조직하는 것이다. 선거경쟁을 핵심으로 하는 민주주의의 제도적 실천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우리는 바로 지금부터 당장이라도 새로운 사민주의 정당을 형성해가는 작업을 할 수 있고, 해야 한다. 한국 정치는 반공 자유당과 보수야당 구조에서 군부파시즘을 거쳐 민주화를 지속하고 있다. 하지만 박정희 대 김대중 구도에 의해 창안된 원한의 정치는 계속되고 있으며, NL – PD와 민족민주운동 – 민중운동의 하릴없는 소비 정치 역시 계속되고 있다. 사민주의 정당의 형성은 이처럼 낙후한 정치 현실에서 완전히 탈주하는 것이다.

    계급적 갈등을 정당을 통하여 수렴하고, 유권자들의 다수 지지를 획득하여 제도화하는 것이야말로 보통 사람들의 노동가치를 존중하고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는 첩경이다.

    그래서 민주노동당의 대통령후보 경선은 단지 민중운동의 의회주의적 버전인 민주노동당의 형식적 대표로서 대선후보에 명함을 내미는 것이 아니라, 2010년을 넘어서면서 본격적으로 전개될 계급 대의정치를 준비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특히 심상정 후보는 이미 그러한 중첩된 운명을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마찬가지 이유로 당 안팎의 지성인들이 홀가분하게 장기투자를 계획하고 있는 것 같다. 안달복달 난리법석은 이제 종료되었다. 정치학 기본 교과서를 반복적으로 학습하여 대의정치 시험장에서 성실하게 답안을 작성하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기도한다.

    그런데 참으로 복잡한 인생이다. 인연이란 것이 있다. 군부파시즘의 헌법파괴가 낳은 상흔을 기억하고 있는 우리들은 민주노동당의 사회운동정당적 소명도 아직은 존중할 수밖에 없다. 이해할만하다. 그래서 우리는 우선 이중경로를 제시한다.

    먼저, 민주노동당 안에서 사민주의적 현대정치 흐름을 형성해나가는 것이다. 동시에 당 밖에서 시민대중의 부드러운 좌익 에너지를 수집해나가는 흐름을 강조하는데, 이를 우리는 마이크로 진보시민정치라 한다. 광역단위별로 사회권 중심의 시민인권운동을 모색해 나가면서, 언제든지 사민당으로 전화될 수 있도록 사실상 창당주비위 역할을 해야 한다.

    이제 100년 미래정당을 기다리는 것이다. 불가능한 것을 알고도 우리의 길을 가는데 무엇이 두려울까. 더 늦기 전에 단순무식한 레드콤플렉스보다 교언영색의 좌파콤플렉스를 넘어설 준비를 해야 한다.

    군사정권에 저항하다가 미국, 독일로 망명하여 열심히 공부하다가 1974년 군사정권이 붕괴된 후 귀국하여 휴식도 하지 않는 채 곧바로 범그리스사회주의운동당(PASOK)을 창당하여 1981년에 그리스 최초의 민주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한 파판드레우와 시미티스 같은 동지가 있다면 우리의 미래도 어둡지만은 않다.

    조만간 보수정당들이 연합하여 우리의 사회정책에 제대로 된 메카시즘을 퍼부으며 반대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는 보수언론 탓을 하지 않고 우리의 객관적인 무능력에 대하여 고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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