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해는 누가 입는 겁니까
    [엽편소설①] 사회적 환지통의 징후
        2023년 02월 20일 03:2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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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를 시작하며

    자신의 잘린 오른쪽 발가락이 가렵다고 하는 증상이 있다. 잘렸다는 상실감이 커서 절단된 부위가 가려워 죽을 것 같은 고통이다. 실제 존재하는 병이다. 이것을 환지통이라고 한다. 딱히 치료법이 없고 아무 이상도 없는데 환지통을 앓는 이들이 많다. 왜 우리도 원인불명의 통증 때문에 온갖 대학병원 한의원 다양한 검사를 해봐도 신경성이라고 말하는 통증들도 많다. 스트레르성, 신경성 이런 것도 일종의 환지통이다.

    환지통에 시달리는 이들을 마주하면 장애, 의료, 젠더, 노동, 교육, 계급, 인종, 국가의 얼굴이 보인다. 환지통을 앓는 이들의 서사 속에서 비명이든 절규든 그것을 적어 내려가는 것이 내가 쓰는 엽편소설의 취지다. 그 안에서 이들을 규범하고 있는 언어를 낯설게 하고, 스스로 자신을 재구성 할 수 있길 바란다. 우리 사회가 환지통을 앓는 이들의 이야기가 곧 지금-여기 체제와 무관하지 않다고 여길 때, 이것은 우리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징후이자 증상이란 걸 밝히고 싶다.<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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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해는 누가 입는 것입니까

    은애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은애와 대면하고 있다, 어두웠다. 은애는 복사기에 재무제표 종이를 올려놓았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일정하게 띠를 만들어 통과하는 불빛을 가만 바라본다. 종이를 인식한 거치대로 카피 된 문서가 나오지 않았다. 은애는 복사기 뚜껑을 열고 다시 복사 버튼을 눌렀다. 불빛을 통과해 문서를 인식한 복사기는 종이를 내뱉지 않았다. 은애는 당황해하며 복사기의 뚜껑이란 뚜껑은 죄다 열어본다. 구멍이란 구멍을 다 보며 종이 끝이 끼어 있는 건 아닌지 샅샅이 뒤진다. 종이 모서리가 티끌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용지를 넣는 칸에는 카피되지 못한 백지만 가득했다. 복사기란 복사된 똑같은 종이가 나오는 기계가 아니었었나, 하고 은애는 제 자신에게 이상한 질문을 해본다. 하마터면 은애는 바깥으로 뛰쳐나가 누군가를 붙잡고 복사기란 무엇을 하는 기계였냐고 소리지를 뻔했다. 수십 번 종이를 올려도 아무 신호음 없이 빛을 통과한 카피 본이 인쇄되지 않았다. 카피 된 종이는 어디로 간 것일까. 은애는 뜨거운 복사기에 자기 오른팔을 올려두고 복사를 눌렀다. 복사기 뚜껑이 쾅 닫히더니 은애의 팔을 꽉 잡아 물었다. 복사기 뚜껑이 끝내 열리지 않았다. 은애는 제 손을 빼려고 팔을 필사적으로 잡아당겼다. 그럴수록 복사기가 은애의 팔을 내리눌렀다. 그저 복사기는 일정한 빛의 띠를 이루며 작동하고 있다. 피가 통하지 않았다. 내 오른팔마저 어디로 가버리는 게 아닌가. 은애는 비명을 질렀다.

    눈을 떴을 때, 은애의 방 천장이었다. 형광등 한쪽 불빛이 나갔다. 형광등은 파르르 떨며 희붐한 불빛을 뿌려댔다. 은애는 한쪽 팔이 말할 수 없이 저렸다. 어깨부터 차츰 주무르며 팔이 아직 멀쩡한지 주물러 보아도 피가 빨리 돌지 않았다. 손가락 끝까지 저릿저릿했다. 새벽 3시. 은애는 이곳이 사무실이 아니라 자신의 방 안이란 사실에 안도했다. 출근 시간까지 몇 시간이 더 남았다. 은애는 다시 눕지 않았다. 눈을 감는 순간, 제 몸이 벌써 회사에 가 있을까봐 두려웠다. 은애는 어둠 속에 그냥 망연히 앉아 있었다. 그 무수한 카피 본들은 정말 어디로 간 것일까. 할 수만 있다면 은애의 몸도 카피 본이 돼 회사로 전송되었으면 좋겠다. 그냥 진짜 은애는 여기 있고, 사라진 카피 본처럼 그곳에 출근했다가 알 수 없는 것으로 사라져도 좋으니, 한 발짝도 문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서너 차례. 팔의 감각이 차츰 돌아왔다.

    은애는 7년째 S은행 하청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대출 심사에 표시했던 서류들이 전달되면 그 내용들을 전산에 입력하는 일이었다. 최저시급이었고 그 일에 나름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익숙한 일들을 그만두고 한 명 두 명 퇴사하기 시작했다. 은애의 부서에 AI가 도입되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AI는 전산입력을 스스로 하기 위해 시범 가동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AI에 아직 오류가 있으므로 AI 프로그램이 전산을 완벽히 입력하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는 말도 들었다. 하루라도 빨리 이직 준비를 하자는 사람들과 조금만 더 지켜보잔 사람들로 나뉘었다. AI하고 나하고 경쟁해야 된다는 거잖아? 누군가 그렇게 말했고, AI가 완전히 내 일을 익히면 어차피 끝이야 라고 옆에 있던 사람이 말했다. 은애는 AI가 아직은 오류가 있다는 말만 마음에 담은 채, 탕비실의 어두운 시멘트벽을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며칠 뒤, 전산입력 하청팀 팀장은 AI 적응 속도가 빨라지는 것 같다고도 했다. 그날 이후, 자진 퇴사자 수가 급격히 늘었다. 은애는 이곳에서만 7년간 일했는데, 은애가 경험을 쌓고 오류를 줄이는 동안 AI 프로그램에게 필요한 시간은 단 6개월뿐이었다. AI는 6개월 시범운영 끝에 전산입력 시스템을 완벽히 해냈다. 게다가 AI는 연차를 쓸 일도, 지각할 일도 팔이 끊어질 듯 아플 일도 없었다. 은애가 잠든 순간에도 AI는 전산을 처리하고 있을 터였다.

    팀장은 은애에게 남겠느냐 물었다. 은애는 그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남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은애는 남는 게 아니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팀장은 은애의 말을 가만 듣고 있다가 알았다고 답하고 자기 자리로 갔다. 팀장은 다시 할 말이 있다는 듯 은애 쪽으로 걸어왔다가 또 한 번 알았습니다 하고 갔다. 팀장님은 무엇을 알았다는 것일까. 팀장님이 알게 된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지금부터 제가 알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은애는 그렇게 찾아가 묻고 싶었으나 침묵했다. 업무가 바뀐다 해도 최저시급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 아무래도 무얼 알 필요도 묻고 답을 들을 필요도 없으리라.

    주말이 지난 후, 출근한 월요일, 은애는 7층에서 4층으로 이동하라는 말을 들었다. 업무는 고객들이 제출한 서류에 사인이 틀린 것은 없는지, 누락된 빈칸은 없는지 확인하는 작업이라고 했다. 임금은 같다. 단 야근은 없다 라고 했다. 은애는 그 짧은 순간에도 야근이 없다는 말에 왜 “단” 하고 그토록 단호하게 “단”이란 말을 붙였는지 의아했다. 하지만 4층 새로운 은애의 책상에 앉자마자 몸소 알 수 있었다. 사무실엔 전국에서 보내온 서류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새로운 서류검수팀 팀장은 짧은 소개도 없이, 쌓인 서류를 정밀하고 정확하게 나눠 각 사람에게 배분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전에 있던 부서 사람들은 정말 어디론가 일제히 사라진 듯했다. 잠시라도 눈이 마주치면 사람들은 칸막이 안으로 제 얼굴을 가렸다. 우리는 어차피 모두 최저시급을 받는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서로가 누군지도 알 필요 없다는 듯, 은애는 제 책상에 제법 높이가 있는 검수할 서류가 배당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다

    “서류에 제대로 표시되었는지, 검수하시고 도장 사인 여부 다시 확인하세요. 빠진 것이 있다면 따로 추려 서고에 보관하면 끝입니다”

    팀장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사람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아무도 은애에게 그 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지 않았다. 은애는 서툰 동작으로 서류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사인과 빈칸이 없는지 확인했다. 여기저기서 종잇장이 빠르게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고, 이따금씩 뭔가를 마시는 소리, 타자 소리 외에 침묵만 흘렀다. 모두 7년쯤은 이 일을 해왔던 사람 같았다.

    점심시간이 돼서야 서류검수팀 팀장은 짧게 자신을 소개하고, 은애씨가 알아 둘 것은 단 하나, 라고 했다. 야근은 없어야 한다. 만약 한 사람이라도 퇴근 시간까지 제 할당량을 끝내지 못하면 전산 시스템을 닫을 수 없고, 다른 사람들도 퇴근할 수 없다. 만약 은애 씨가 해내지 못하면 모두가 기다릴 것이다. 무엇을요? 은애 씨가 일을 끝내기를.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의 저녁 시간을 은애씨가 뺏는 것이다. 뺏는 짓, 그런 짓을 해선 안 된다.

    그런 짓이 무슨 짓인가요, 은애는 먼저 끝낸 사람이 덜 끝난 사람의 일을 도우면 되는 거 아닌가요 라고 말하려다 그만뒀다. 생각해보면 지난 부서에서도 그런 질문을 했다가 모두가 최저시급을 받으니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다. 모든 질문은 모두가 최저시급을 받는다는 말로 갈무리되었다. 은애는 처음에 그 말이 어려웠다. 최저시급을 받으니까 다른 사람의 일을 해줄 이유가 없다. 시간에 맞춰 자기 일을 끝내면 된다. 그 말들은 그렇게 간명하게 끝나고야 마는 말이었다. 그나마 은애가 7년간 있던 부서에선 각자 끝나는 시간이 달랐고 전산을 동일하게 닫을 필요가 없어 퇴근 시간도 달랐을 뿐이다. 야근은 불규칙적이었고, 그런대로 그런 야근은 견딜만한 것이었다. 서류검수팀 팀장은 한 번 더 상황을 설명했다. AI 프로그램이 들어온 뒤로, 정시에 일을 마쳐야 한다고 했다. 전산도 동시에 닫혀야 한다는 것이다. 안 그러면 피해를 준다. 피해. 남의 저녁 시간을 뺏는 그런 피해. 은애는 삼각김밥을 억지로 삼키며 점심시간에도 일을 멈추지 않았다. 찬 밥알이 목구멍에 계속 역류했다. 은애는 묻고 싶었다. 피해는 누가 입는 것입니까, AI입니까, 나입니까, 팀장님입니까. 회사입니까, 아니 인류입니까.

    6시 20분 결국 은애는 다른 사람의 저녁 시간 같은 것을 뺏고야 만 사람이 되었다. 칸막이에 가려진 이들이 이미 옷을 다 챙겨입고 가방을 무릎 위에 올려둔 채 은애를 기다리고 있었다. 은애는 모두의 시선이 늑골까지 닿는 것을 느꼈다. 갈수록 저려오는 팔을 주무르며 떨리는 손으로 서류를 달달거리며 넘겼다. 팀장은 은애 씨가 오늘 처음 해본 일이란 말은 하지 않았다. 대신 오늘 김은애 씨 때문에 야근합니다, 라고 짤막하게 알렸다.

    김은애 씨 때문에, 은애는 팀장의 그 말이 왜 모욕감과 닮았는지 생각해보려 했다. 하지만 소변을 참아야 했으므로 생각을 쫓아냈다. 팔이 감전된 듯 저릿해 종이 한 장을 넘기기가 어려웠다. 6시 30분경 은애가 서류 몇 부를 바닥에 떨어뜨리자, 뒷자리에서 한숨 소리와 의자에 고단한 몸을 기대며 삐걱이는 소리, 둔탁한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약속 시간에 늦을 것 같다고 작게 통화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은애는 식은땀을 흘렸다. 목덜미에 달라붙는 머리카락이 제 목을 죄어오는 것 같았다. 야트막하게 내뱉는 숨소리도 내면 안될 것 같았다.

    끝났어요.

    은애는 울음이 터져나올 듯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말했다. 곧이어 팀장은 몇 번 마우스를 딸깍거리더니 “마감입니다. 퇴근하세요”라고 했다. 은애는 사람들이 다 나갈 때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온몸이 굳어 사무실 바닥에 뿌리 박힌 것 같았다. 은애의 팔이 이제 감각조차 없었다. 은애는 세상 모든 불안을 경험한 사람처럼 몸을 떨었다.

    은애는 어떻게 집에 왔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한꺼번에 풀린 긴장이 쏟아져 곧바로 방바닥에 쓰러졌다. AI, 예상했으나 아무것도 대비하지 않았던 건 은애 자신이었다고 생각했다. 은애는 쏟아지는 졸음에 옷을 한 겹도 벗지 못한 채 잠이 들었다가 팔이 저려 깼다. 새벽 3시. 은애는 참을 수 없는 허기를 느꼈다. 냉장고를 몇 번 여닫다가 배달앱을 켜고 야식을 시켰다. 새벽 3시에 누군가도 은애처럼 일어나 텅 빈 몸에 무언가를 마구 욱여넣으며 죽어가는 몸에 음식을 밀어넣고 있을지도 모른다. 은애는 비닐을 벗기지도 않은 채 치킨을 베어 물었다. 배는 채워졌지만 먹을수록 사지가 아팠다. 주방에 쌓인 뼈들이 마치 제 왼쪽 팔 마디마디에서 뜯겨 나온 것 같았다. 결국 은애는 그날 먹은 것을 손가락을 입에 넣어 게워냈다. 그런 숱한 아침과 하루 새벽이 몇 달째 이어졌다.

    그렇게 작동되도록 만들어졌으니까요.

    누가요,

    인간이겠죠,

    은애는 정신과 선생에게 AI에 대해 물었다. 공허한 대답만 돌아왔다. 정신과 선생은, 팀장 혹은 도와주지 않는 사람들이 원망스럽지 않은지, 은애에게 물었다. 은애는 다 같이 최저시급을 받는 처지라 그들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없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자기 입에서 나온 그 처지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어울리는 표현인가요 묻고 싶어졌다. 의사 선생은 그럼 차라리 패널티라도 받으면 편할까요? 라고 되물었고, 은애는 최저시급이라 패널티조차 받을 수 없다고 답했다. 의사는 한동안 말없이 컴퓨터에 무엇을 기록했다. 은애는 의사의 하얀 가운과 거기 새겨진 전문의라는 글자를 한참 무연히 바라보았다.

    수면과 섭식에 문제가 생겨서 약을 더 늘려야겠어요. 팔 아픈 건 원인이 없다셨죠? 스트레스성이지요. 일하기 싫어서 팔이 가짜로 아픈 겁니다. 가짜로 이렇게 아프다고요? 네 환지통이라고도 해요. 의사는 그렇게 말하곤 갑자기 맑은 표정으로 은애에게 말했다. 김은애 씨, 자 그럼 이렇게 해봅시다. 이번 달 명절이 있으니 명절까지만 다닌다고 생각해보세요. 명절은 쉬는 거고, 일하지 않아도 월급은 나오니 손해 볼 게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명절까지만 이렇게 버텨봅시다.

    은애는 제법 괜찮은 생각 같다고 느꼈다. 다음 예약날짜를 잡고 여전히 아픈 팔을 부여잡고 진료실을 나왔다. 수면제가 자동 포장지에 담겨 착착착 몇 줄씩 포장되는 동안 은애는 자신이 먹게 될 약의 개수를 헤아렸다. 저렇게 많은 양의 수면제를 먹고도 일어날 수 있을까요. 은애는 간호사에게 불현듯 물었다. 처방 약이니 안전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래, 안전하다, 안전하게 눈을 뜨고 출근할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것이다. 팔은 가짜로 아픈 것이다. 엄살. 그러니까 뇌가 일하기 싫다고 팔에게 충격을 준다. 환상? 환지통? 지금도 팔 마디 마디가 끊어질 듯한데, 이것은 가짜다. 아니 어쩌면 뇌가 더 이상 일해선 안 된다고 은애의 몸에 신호를 보낸 건 아닐까. 위험하다고 뇌가 은애에게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은애는 진료실로 다시 뛰어 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은애는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가 진료를 다시 하라고 안전한 처방을 내놓은 의사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선생님 20년째 그렇게 살았어요, 이번 달 월급날까지만, 이번 달 명절까지만, 3개월만 실업수당을 받아야 하니까, 연말까지만, 최저시급이 580원이 오른다니 700원으로 오를 때까지만,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하며 살고 계신 건가요? 그렇다면 이것이 사는 것일까요. 한 번도 뒤가 없었는데, 영원히 뒤가 있는 것처럼 그렇게 착각하면, 그냥 살아지는 것일까요? 내가 뭐가 될 수 있는지,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아도 나는 살아있는 것일까요.

    5시 40분. 급기야 누군가 오늘은 정시에 퇴근해야 한다고 은애 책상을 향해 내뱉듯 말했다. 석 달째 일하며 누군가 처음 건 말이었다. 은애는 현기증이 오고 팔 마디 마디가 쑤셔 탕비실로 갔다. 탕비실 벽 한쪽에 작은 창이 보였다. 오래되어 탁한 유리 두 장이 녹슨 창틀에 끼워져 키가 닿지 않는 곳에 있었다. 은애는 의자를 받치고 올라가 창문을 열었다. 어스름이 지고 있는 바깥 같은 건 생각하기 싫었다. 누군가의 저녁 시간이 오는 것이 싫다. 은애는 피가 통하지 않는 팔을 창밖으로 뻗어보았다. 이대로 녹슨 창문에 팔이 완전히 끼여 팔이 잘려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내 팔도 사라진 카피 본들처럼 어디론가 아주 없어져버렸으면 좋겠다.

    약은 안전하다. 은애는 그 약을 다 털어 넣은 뒤에도 새벽 3시의 야식을 먹고 다 게워낸 후 출근 시간이 오길 기다렸다. 은애는 가만히 식탁에 앉아 있다가 제가 먹다 버린 뼈들을 모두 비닐봉지에 담았다. 은애는 평소보다 일찍 출근했다. 최저시급이므로 아무도 단 10분도 일찍 출근할 필요 없는 사무실에, 혼자 불도 켜지 않은 채 앉아 있었다. 은애는 자기가 새벽마다 먹었던 닭뼈들이며 돼지 발뼈들을 가방에 넣어 왔다. 은애는 그 뼈들을 한 움큼 꺼내 자기 책상 위에 올려두고 다시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은애는 팀장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팔뼈 마디마디 잘려나가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최저시급을 받으므로 사직서는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그렇습니다. 남의 저녁 시간을 뺏는 피해는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피해 그것은 누가 입는 것입니까, AI입니까, 나입니까, 팀장님입니까, 회사입니까, 아니 인류입니까.

    은애는 출근길 지하철에서 가장 먼저 퇴근하는 사람이 되어 몸을 싣는다. 남의 저녁 시간 같은 건 뺏지 않는 삶이 오고 있다. 거짓말처럼 팔이 멀쩡하다. 피가 돈다. 팔을 쭉 뻗어 지하철 기둥을 꽉 붙들고 제 지친 몸을 기댔다.

    필자소개
    추계예술대학교에서 소설 창작기법을 연구했으며 성균관대 박사과정에서 현대 문학평론을 공부하고 있다. 독서코칭 리더로 청소년들과 붉은 고전읽기를 15년간 진행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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