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인 향한 증오와 투쟁의 시대에 희망 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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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3월 09일 01:1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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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진보진영 내 사회연대전략 논쟁을 보노라면 매우 흥미롭다. 필자가 보기에 진보진영 내 당연한 가치 또는 목표로 자리잡아야 할 ‘사회연대’라는 개념이 왜 ‘전략’으로 괜히 포장(?)되어 일부에서 호된 질책을 받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지만, 논의의 전개과정에서 사회적 맥락과 맞물려 약간의 오해가 발생될 수도 있다는 판단을 한다.

    먼저 이야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사회연대전략’ 논쟁이 ‘사회연대’라는 가치를 희화화거나 냉소적으로 바꾸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현재 한국 사회는 파상적인 신자유주의의 공세 속에서 철저한 개인주의적 경쟁사회를 향해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고 있다.

    부유해지건 가난해지건, 정규직이 되건 비정규직이 되건, 살건 죽건 모든 것이 개인의 책임으로 이해되고 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더 나아가 만인의 만인에 대한 증오가 2007년 한국사회의 현주소다. 사람이 살기에 참 팍팍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연대’라는 가치는 자신도 모르게 개인의 가치에만 점점 물들어 가는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희망을 내어줄 수 있는 빛이다.

       
      ▲ (사진=민주노총 서울본부)
     

    사회임금은 단순히 복지비용만 의미하지 않는다

    필자가 보기에 국민연금 저소득층 보험료 지원사업을 매개로 전개되는 ‘사회연대전략’은 기본적으로 사회임금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출발한다고 판단한다. 사회임금의 개괄적 이해에 대해서는 오건호가 <레디앙>에 기고한 글(사회연대전략 비판의 문제점들, 2007년 1월 8일)이 있으므로, 새삼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여기서는 사회임금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이 조금 허약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사회임금은 단순히 복지비용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게 무슨 차이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사회임금이라는 표현 속에는 근본적으로 국가-자본-노동의 계급적 역학관계를 내포하고 있다. 우리 노동자들이 임금 투쟁을 하면 당연히 계급투쟁이 된다. 이윤을 둘러싼 자본과 노동의 대립이다.

    사회임금 투쟁 역시 마찬가지다. 사회적 이윤을 둘러싼 계급투쟁이다. 다만 기업별 차원을 넘어선 까닭에 다양한 위치의 노동자들을 묶어내는 데 훨씬 위력적일 수 있다. 그래서 전세계적으로 공적연금 급여율을 깍는다고 하면 총파업의 홍역을 겪는다. 실업자들이 실업수당을 넘어 보너스를 달라고 시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한국사회에서 한다면? 국민연금은 차라리 없애자라고 할 것이고, 실업자들한테는 놀다 지쳐 이젠 미쳐간다고 냉소할 것이다.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 대부분이 관심을 갖는 것은 지금 당장 받게 되는 현찰, 즉 시장임금이다. 최근의 여론조사를 보면 노동자의 60% 이상이 세금내는 것을 아까워한다. 물론 과세의 투명성이나 공정성에 대한 불만이 적지않은 요인으로 작용했겠지만, 세금에 대한 기피는 가진 자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보험료 지원사업 노동계급 분열이라고?

    그러나 사회임금에 대한 투쟁은 우리가 그 재원에 당당히 참여했을 때 훨씬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 우리가 자본에만 사회임금 재원의 책임을 전가하려 하자, 자본은 교묘하게 그 관심을 시장임금의 축소로 돌렸고, 그 과정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했다. 한국사회에서 감세론만큼 인기있는 정책이 없고, 세금폭탄론을 들고 나온 한나라당은 지지율이 상한가를 치고 있다.

    국민연금 저소득층 보험료 지원사업에 가입자(대부분이 사업장 가입자이므로 노동자)들이 왜 재원마련에 참여해야 하는지 일부에서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국가와 자본의 책임이므로 그들이 당연히 부담해야 하는 것인데, 그들의 이데올로기에 넘어가 노동자 계급을 분열시키고 노동자들의 임금양보를 획책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건호의 동어반복을 비판한다" <레디앙> 3월 6일, 김문성)

    그러나 필자는 이같은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다. 그것은 현재 한국사회의 대표적 공적연금인 국민연금이 처한 문제를 지나치게 협소하게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국민연금 제도에 대한 이해도 상당수 결여되어 있다.

    부과방식이든 적립방식이든 국민연금 같은 공적연금 제도의 본질은 소득재분배 장치에 있으며, 세대내 연대가 아니라 세대간 연대에 있다. 어찌됐든 다음 세대가 현 세대를 부양한다는 사회적 약속이 있는 것이다. 그 신뢰가 없으면 공적연금은 유지되기 어렵다.

    한번 반문해보자. 한국사회에서 이러한 신뢰가 형성되어 있는가? 필자가 보기에 진보진영에서조차 이같은 신뢰가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다. 과거와 현재의 가입 세대가 후세대로부터 막대한 혜택을 받으면서도 그 사실을 모르거나 심지어 부인하고 있다.

    사용자와 가난한 노동자들의 잘못된 동거 균열내기

    국민연금 보험료 지원사업의 본질은 후세대로부터 받는 그 혜택을 현재의 가입자가 미가입자와 함께 공유하자는 것이지, 이연된 임금을 양보하자는 것이 아니다. 현재 국민연금의 사각지대에 위치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나 영세 자영업자들이다.

    역설적이게도 이들은 기여금에 대한 부담 때문에 사용자들과 함께 국민연금제도에 대해 저항하고 있다. 사용자들에게 국민연금 가입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들이 가입 회피하는 것에 동의하고 있다. 그런데 국민연금 가입회피로 절약된 사용자 부담금이 노동자들의 임금으로 지급되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일차적으로 국민연금 저소득층 보험료 지원사업은 그러한 사용자와 저소득층 노동자간의 잘못된 동거를 균열내는 작업이다.

    기초연금이 도입되면 현재의 사각지대 문제는 일정 정도 보완되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적정한 노후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국민연금은 필요하다. 통상적으로 기초연금은 그 막대한 부담 때문에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정도에 머문다.

    국민연금 보험료 지원사업은 현재의 가입세대가 후세대로부터 혜택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각성시킴으로써 세대간 연대를, 미가입자에 그 혜택을 덜어준다는 점에서 세대내 연대를 실현시키는 사업이다. 가입자인 노동자가 주체가 되어 참여하는 사업이며, 국가와 자본이 우리의 요구에 부응하도록 촉구하는 사업이다. 국가와 자본에 밀려 양보하는 사업이 아니다.

    필자가 보기에 저소득층 보험료 지원사업에 국가와 자본은 강력하게 반발할 것이다. 어차피 사회임금 투쟁은 계급투쟁이다.

    사회연대전략은 사회임금 강화 위한 계급투쟁

    결론적으로 사회연대전략은 사회임금 강화를 위한 계급투쟁 전략이다. 다른 한편으로 사회임금 강화라는 공통의 목표를 추구함으로써 다양한 위치의 노동자들을 효과적으로 묶어낸다. 사회임금 투쟁은 사회연대 의식을 강화하고, 강화된 사회연대 의식은 다시 사회임금 투쟁을 촉진한다.

    변증법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필자는 오건호의 “사회연대전략은 계급형성전략이다”(<레디앙> 2007. 3. 2)라는 주장에도 공감한다. 한때는 우리가 머릿속에서 바로 떠올려지는 그런 투쟁만으로도 계급이 형성되는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게 달라져 있다. 싸움에는 꼭 단번에 결판을 내야하는 기동전만이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지난한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진지전도 있다.

    사방에서 패배의 북소리가 울려퍼지고 있다. ‘적’은 물밀듯이 밀려드는데, 모두가 전의를 상실했고, 앞을 모르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지난 수십년간 지켜 온 깃발은 세찬 바람속에 흔들리고, 깃발을 부여잡고 있는 사람은 어서 오라고 손짓하지만 다들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때 한줄기 진군의 나팔소리가 미명을 뚫고 들려온다. 지쳐 고개숙인 자들이 그 소리에 하나 둘 고개를 들고 전열을 재정비한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흔들리는 깃발에 모여 서로 위안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 내부의 힘을 깨워줄 수 있는 한줄기 나팔소리다. 사회연대전략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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