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들이 울부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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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3월 08일 03:5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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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여성가족부 장관님께

아이와 부모의 미래, 가족의 씨앗, 그리고 여성의 사회정치적 권리신장과 아름다운 삶이 빛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시는 장관님의 노고에 우선 감사드립니다. 무척이나 바쁘실 것이라 생각하지만 조금의 짬을 내어 이 글을 읽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장하진 여성가족부 장관님

   
 ▲ 민주노총울산지역본부 정책국장 이동익
 

오늘은 99주년 세계여성의 날입니다. 전 세계 여성의 단결과 연대를 확인하고, 여성의 정치적 권리, 인권 그리고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여성노동자의 소중한 투쟁이 기억되어야 할 역사적인 날입니다.

하지만 전 세계 여성들의 생일인 오늘 제 마음은 기쁨보다는 슬픔과 분노가 앞섭니다. 여성 노동자, 특히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과 억압, 차별, 인권유린 행위가 100여 년 전과 조금도 다름없이 백주대낮에 자행되고 있다는 것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루 9시간 365일 노동, 월급 60만원 

제가 기쁨보다는 분노한 이유는 이렇습니다. 어제(7일) 아침 제가 살고 있는 울산의 한 대학에서 폭력과 차별, 인권유린에 알몸으로 저항하던 청소용역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 수십여 명의 남성 관리자들의 무수한 발길질과 뭇매에 콘크리트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습니다. 그것도 다른 곳이 아닌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 구내에서 말입니다.

이들 여성 노동자들이 수십 명의 남성들에게 무참하게 짓밟히며 길바닥으로 쫓겨난 사연은 이렇습니다. 이들 여성노동자들은 짧게는 5년 길게는 7년 동안 울산과학대에서 온갖 더럽고 궂은일을 마다않고 청소일을 해온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입니다.

하루 9시간, 일년 365일 단 하루도 쉬지 못하며 최저임금에도 턱없이 부족한 월 60여만의 저임금을 받으며 소처럼 일 해왔습니다. 그래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말 한마디 못하고 묵묵히 참고 일 해왔습니다. 심지어 이들 중 5명의 여성노동자들은 ‘나 홀로 노동’으로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울산과학대는 청소용역업체와 체결한 도급계약을 해지하면서 하루아침에 27명의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쫓았습니다. 원청인 울산과학대의 도급계약 해지, 이것이 집단해고의 이유입니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이렇습니다. 이들 여성노동자들은 일이 고되고 힘든 것은 참을 수 있었지만 여성으로서 말 못할 수치심과 인간적인 모멸감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습니다.

반말, 폭언, 성희롱적 행동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마흔이 넘고, 심지어 환갑이 다 되어가는 여성노동자들에게 폭언과 반말은 기본이었고, 옷을 갈아입는 탈의실에 아무런 기척도 없이 불쑥불쑥 들어오는 학교측 남성 관리자들의 성희롱적인 행동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들 여성노동자들은 지난해 7월 ‘점심식사 제공’ ‘연장근로수당 지급’ 이라는 최소한의 노동조건 개선과 인권을 보장받기 위해 노조에 가입하였습니다. 노동조합은 이들 여성노동자들에게 하늘이었고, 밥이었으며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그래서 노동조합과 청소용역업체는 여성노동자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단체협약을 체결하였습니다. 그러자 원청인 울산과학대는 지난 1월 23일 청소용역업체와 체결한 도급계약을 1년이 넘게 남았음에도 도급계약 해지를 통보하였고, 급기야 2월 23일 27명의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몰았습니다.

결국 노조를 혐오한 울산과학대는 합법을 가장하여 도급계약을 해지하여 노조원들을 쫓아내고, 노조를 파괴하기 위해 원청들이 상투적으로 사용하는 수법을 동원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원청의 지위에 있는 울산과학대는 법적으로 아무런 책임이 없기 때문에 여성노동자들 해고는 자기들과 무관하다며 평화롭게 농성하는 여성노동자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자행하였습니다. 이것이 알몸으로 저항하던 여성노동자들이 콘크리트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진 진짜 이유입니다.

연장근로수당과 최저임금 지급은 의무입니다

어제(7일) 울산과학대 지하 탈의실에서 벌어진 무자비한 폭력과 폭행, 성추행은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탄압이자 여성노동자에 대한 심각한 인권유린 행위입니다. 이날 쉰 살의 나이를 훌쩍 넘긴 여성노동자는 학교측 남성 교직원들의 숱한 발길질과 몰매에 알몸으로 저항하였지만 엘리베이터에 감금당한 채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졌습니다.

학교측 관리자들의 야수와도 같은 폭력에 인권은 없었고, 여성노동자들은 한낱 짐짝에 불과했습니다. 심지어 학교측은 총학생회 학생들까지 동원하는 비겁하고 비열한 행동을 자행하였습니다.

이렇듯 "점심밥을 달라"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라" "최저임금을 보장하라"는 너무도 소박하고 당연한 권리가 머리채가 뭉텅이로 뽑히고, 손가락이 비틀리며, 살갗이 찢어질 정도의 무리한 요구로 외면된다면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삶과 희망은 그 어느곳에서도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대한민국에는 법 이전에 상식도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고, 여성의 인권은 100여 년 전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고 할 것입니다.

장하진 장관님!

"만약 우리가 남성과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면, 노동조합을 만들고 가입할 수 있다면, 산전산후 휴가를 받고 아이를 탁아소에 맡길 수 있다면, 모든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면, 정당과 공공기관에 들어가기 위해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다면, 우리의 성과 수태를 조정할 권리가 있다면"이라고 어느 여성노동운동가가 말한 대목을 장관님은 너무도 잘 아실 거라고 믿습니다.

여성 스스로의 아름다운 삶을 개척하기 위해 노력해 오신 여성들의 지난한 투쟁이 폭력과 억압, 차별과 편견에 훼손되어서는 결코 안될 것입니다. 다시한번 장관님께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빵 대신 먼지를 마시며 하루 12~14시간씩 일했지만 선거권도, 노동조합을 결성할 자유도 주어지지 않았던 시절”로 역사가 되돌려지지 않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이들의 소박한 요구가 상식으로, 최소한의 인권으로 사회적으로 보살핌을 받는 사회가 되도록 낮은 곳에서 고되고 힘들게 일하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을 먼저 생각하는 세계여성의 날이었으면 합니다.

바쁘신 시간에도 짬을 내어 긴 글 읽어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부디 이들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 정정당당하게 학교로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2007년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는 남성노동자가
민주노총울산지역본부 정책국장 이동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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