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내리는 모란공원 그리고 심상정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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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3월 08일 02:3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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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동작동으로 가고 다른 사람들은 마석으로 간다. 아직도 살아있는, 그리고 산 자들이 살려내는 ‘죽음의 의미’를 둘러싼 해석의 투쟁, 그 해석을 밑자락으로 한 전망의 경쟁은 그 자체가 현실 정치의 주요 부분을 이룬다.

진보정당이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을 찾는 것은 동작동 국립묘지를 부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곳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다. 지난 2004년 세상을 놀라게 하고, 스스로 놀라워 했던 10인의 신생 진보정당 국회의원들이 당선 직후 18인승 작은 버스에 함께 타고 찾은 곳도 마석 모란공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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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선출마를 결의하고 첫 걸음을 모란공원으로 향한 심상정 의원.
 

2007년 3월 7일, 심상정 의원이 이곳을 찾았다. 문래동 당사에서 대선 후보 경선출마 선언을 하고 곧장 달려온 곳이다. 눈발이 휘날리기 시작했다. 먼저 보낸 숱한 ‘동지’들이 묻힌 곳. 심상정의 맘을 굳이 헤아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냥 지켜보기만 해도 괜찮을 것 같다.

그의 발걸음이 가장 먼저 이른 곳은 장애인 권리투쟁을 하다 먼저 간 김세환 열사가 누운 자리였다. “며칠 전이 추모제였는데 지방출장이 있어 가지 못했다.” 그게 맘에 걸렸던 모양이다. 무덤 앞에 하얀 꽃 한 송이 올려놓았다.

그 어렵던 전노협 시절을 함께 했지만 지금은 함께 못하는 김종배, 최명아의 무덤 앞에 섰다. 심 의원이 전노협 쟁의국장 출신이다. “종배는 조직부장으로, 명아는 선전부장으로 같이 일했는데 두 사람 다 과로와 헌신으로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도대체 얼마나 힘든 일이었기에 그 펄펄 뛰던 젊음을 잡아간단 말인가.

박영진은 86년 신흥정밀에서 임금투쟁 중 공권력 투입에 맞서 분신을 했던 젊은 노동자다. 심상정이 말했다. “처음 겪은 분신이었다. 그 일로 많은 동지들이 구속됐다. 구로동 파업 시절 진 빚 중의 하나다.” 60년 생 박영진은 심상정보다 한 살 어렸다.

심 의원이 말없이 쪼그리고 앉아 사진을 바라본다. 사진 속 두 딸의 엄마, 이옥순 서노련 의장의 무덤 앞이었다. 그렇게 사진을 바라보다, 심 의원은 함께 온 남편을 향해 “여보, 같이 하자”며 무덤 앞에 나란히 서서 묵념을 했다. 돌아서 걸어가는 그의 유독 빨개진 눈과 코끝, 콧물 훌쩍임이 매서운 날씨 탓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문익환 목사 앞에서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문익환 목사님의 열망이 급속도로 실현되는 시대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그 통일의 열망을, 7천만 민중이 어우러지는 평화 통일의 시대를 여는데 역할을 해내겠다는 말씀을 드렸다.”

   
  ▲ 전태일 열사 동상앞에서…
 

그리고 이날의 그가 있기까지 가슴으로 끊임없이 대화했다는 전태일 열사의 무덤 앞에서 심 의원은 한참을 묵념했다. 전태일의 흉상은 붉은 머리끈을 동여매고 있었다. 심 의원은 바람과 비에 흩날렸을 붉은 끈의 매무새를 말없이 정돈한다. “술이 한 잔 없어 절도 못하고.” 뒤에서 “저 분은 담배는 태우셨을라나”하는 소리가 들린다.

“(전태일은) 자기도 배고프면서 폐병 걸린 어린 시다를 위해 눈을 팔아 그들을 구원하려 했었다. 결국 어린 시다를 구원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태우는 것이었다. 노동운동을 처음 시작하며 그 연민의 정을 담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거리를 느끼며 저 자신에 대해 절망한 적도 있었다. 전태일 동지와 많이 대화하면서 오늘까지 올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도 염천교 다리 밑에는 37년 전 전태일이 있고, 수많은 전태일이 곳곳에 있다.”

심 의원은 “양극화 사회 수많은 전태일로 붐비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진보운동의 맨 한가운데 전태일의 좌석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대선후보로 출마하며 민주노동당이 더 낮은 곳으로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그의 주장은 결국 전태일 선배의 가르침인 셈이다.

심 의원 부부의 ‘주례 선생님’도 여기 계시다. 김진균 서울대 교수의 무덤 앞. “김진균 교수님은 항상 ‘메모를 하세요, 일기를 쓰세요, 꼭 기록을 남기세요’라고 하셨다. ‘이 다음에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될지 모른다’시며. ‘기록을 남기는 것이 역사를 마주하는 사람들이 꼭 할 일’이라고.”

간간히 흩날리던 눈발이 어느새 함박눈이 돼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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