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7년의 덫, 정치적 상상력의 빈곤
        2007년 03월 08일 12:4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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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에서 촉발되어 노무현 대통령까지 뛰어든 최근의 정치 이념 논쟁에는 이른바 ‘1987년 체제’에 대한 인식 차이가 자리하고 있다. 여러 주장의 결론 격으로 도출되는 정치적 입장이 현재의 시대 상황에 대한 인식과 무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열린우리당 당원이나 그 지지자 입장에서는 시대 상황을 초월하여 정치적 입장을 피력할 수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아니면서 열린우리당 지지임도 천명하지 않는 사람들이 ‘민주개혁의 지속’ 등을 주장한다면, 그는 ‘1987년 체제’에 대한 특정한 사고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는 꾸준하게 민주화를 이루었다. 김영삼 정권의 탈군사화와 정치개혁, 김대중 정권의 재벌개혁과 대북포용정책, 노무현 정권의 지방분권과 탈권위주의화로 이어지는 일련의 민주화와 탈냉전 정책은 사회 전반의 민주화와 합리화를 가속화했다.

    ……그러나 이러한 희망도 잠시뿐 오늘의 한국사회는 길게는 지난 100여 년간의 지난한 건국의 역사뿐만 아니라 짧게는 20년간의 민주주의의 성과가 송두리째 부정되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진보개혁세력의 정치적 대안이 부재한 현 상황은 새로운 정치운동이 객관적으로 요구됨과 동시에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조건이다. 새로운 정치운동의 목표는 진보개혁세력의 연대와 연합을 통해 2007년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 정대화, 「2007 대통령선거, 무엇을 할 것인가?」, 『창조한국 미래구상 시국대토론회』, 2007. 1. 12

    1. 1987년은 지속되고 있는가

    ‘1987년’이란 무엇인가? 1987년으로 시작된 시대상은 다음의 세 가지 특징으로 정의할 수 있다. 첫째, 정치적 민주주의와 자유권적 시민권은 확대되나, 사회적 민주주의와 평등권적 시민권은 유보되는 특징. 둘째, 1987년에 평화협정을 맺은 두 보수세력의 경쟁과 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민중의 비판적 지지. 셋째, 정치적 민주주의가 확장된 공간 안에서 경제사회적 권리 확대를 위한 자구적 노력이 진행되는 특징.

    위에 든 세 특징 중 첫째는 87년 체제의 제도적 본질, 둘째는 그 제도를 지탱하는 정치 질서, 셋째는 그 제도 정치 아래에서의 사회적 양상이다. 그런데 이러한 시대상은 김영삼 정부 후기부터 붕괴되기 시작한다.

       
     

    위 표에 따르면, 취업 노동자의 꾸준한 증가에도 불가하고 1996년에 63.4%로 최고점에 다다랐던 노동소득분배율이 이후에는 계속 악화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민중이 자신들의 경제사회적 권리 확대를 위해 체제에 도전하고, 체제는 민중의 사회권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는 양상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87년 체제의 세 번째 특징인 민중의 자구적 노력이 87년 체제의 틀을 벗어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자유주의 세력과 민중의 갈등 격화는 1997년의 총파업과 그해 대통령선거에서 국민승리21 후보의 독자 출마, 이후 민주노동당이 창당됨으로써 본격화된다. 이로써 87년 체제를 지탱하는 정치 질서였던 자유주의 세력과 민중의 동거도 종료된다.

    2. 1997년 체제는 정치 지체

    1987년 체제의 본질은 정치적 민주주의 – 자유권적 시민권과 사회적 민주주의 – 평등권적 시민권의 불균등 발전이다. 그리고 1997년 외환 위기를 전후하여 시작된 새로운 체제의 본질은 1987년 체제를 벗어나 폭증하고 있는 경제사회적 욕구에 대비되는 정치의 지체이다. 따라서 1997년 체제의 시대적 과제는 정치 지체를 혁파함으로써 국민의 경제사회적 욕구가 제도적으로 충족되도록 하는 것이다.

    근래 나오는 모든 여론조사에서 ‘빈부격차 해소’, ‘사회복지 확충’, ‘고용 보장’ 등의 경제사회적 의제가 ‘부패 청산’, ‘민주주의 개혁’ 등의 정치 담론보다 언제나 높은 지지를 얻고 있는 것이 지금 시대의 과제를 가장 잘 보여준다.

    국민의 정치사회의식 역시 경제적 욕구에 조응하여 변화하고 있다. 스스로 ‘중산층’이라 생각하는 국민은 1987년 30% 전반에서 2002년 10% 이하로 1/3이나 격감한 반면 ‘민중’이라 생각하는 국민은 1987년 10% 후반에서 2002년 30%로 두 배 가량 늘어났다(한상진, 「한국사회의 변동과 제3의 길」, 『한국인이 생각하는 성장과 개혁』, 2004)

    이런 측면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4년 연임제 개헌 제안은 자유주의 수권 세력이 시대상을 전혀 읽지 못하는 청맹과니라는 사실을 보여줄 뿐이다. 이것은 권력구조와 절차만을 다루는 1987년으로의 후퇴다. 그들은 인민의 욕구가 아니라 왕조의 건승에 목숨 거는 반동적 고려 유신들과 같다.

    3. 추상에서 벗어나자

    “민주노동당과 같은 진보정치세력은 단순히 표를 많이 얻기 위하여 제도정치적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 즉 사회를 구성하는 대중들을 급진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 ‘사회운동에 의한 민주화와 진보화’의 과제,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의 과제가 필요한 대목이다. …… 예컨대 한국의 시민사회와 노동운동의 역량 수준은 세계적인데 그에 대립하는 자본진영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또한 시민사회와 노동의 요구를 수렴하는 제도정치적 역할을 무력화시키기 때문에, 정치는 지속적으로 불안정하게 되는 것이다.” – 조희연, 「제도정치 중심주의 vs 사회 중심주의」, <레디앙>, 2007. 1. 25

    위 조희연의 주장이 체제 이행을 위한 장기 전략 차원에서 거론되는 일반론이라면 옳다. 하지만, 조희연의 주장은 1987년 체제, 노무현 정부 평가, 2007년 대통령선거에 대응하여 제기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조희연의 주장은 지극히 추상적이고 모호하다.

    이데올로기 문제에서든 물리력에서든 이른바 ‘제도 정치’를 대체하거나 극복할만한 ‘비제도 사회운동’이 실재하거나 조만간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가? 그렇지 않다. ‘제도 정치’ 밖에서 대중을 급진화하는 구체적인 방식은 무엇인가? 여론전을 펴거나 가두시위를 하거나 조직화를 하는 것이라면, ‘비제도 사회운동’보다는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제도 정치’에 의해 이미 정력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한국의 시민사회와 노동운동의 역량 수준은 세계적인데 그에 대립하는 자본진영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그 운동이 정치적으로 축적되지 않고 사회적으로 유실됨으로써 제도적 권력에 접근하지 못하기 때문이지 않은가. 비제도 운동은 제도 정치로 소통하여 축적되어야 한다. 조희연 주장의 가장 큰 맹점은 제도와 비제도 사이에 실재하지 않는 장벽을 쌓아둠으로써 비제도 사회운동의 확장을 스스로 포기하는 정치적 기권에 있다.

    1997년 체제를 혁파하는 방안을 찾는 데 큰 어려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상하고 어려운 이론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시대적 욕구가 무엇이며, 그 시대적 욕구를 담아 안을 정치 방도는 무엇인가? 민주주의가 발달해 있다는 서구에는 있고, 한국에는 없는 것이 무엇인가? 사회복지와 힘 있는 진보정당이다. 사회경제적 민주화의 지표인 빈곤율은 그 나라 진보정당의 지지율․득표율․의석수와 정확하게 반비례한다(이재영, 「빈곤과 민주주의」, 『우리 안의 또 다른 분단 : 빈곤과 양극화』2005. 3)

       
     

    4. 보수 정치세력 간의 차이에 대한 의도적 오해

    미래구상의 정대화는 “민주노동당은 애정으로 지켜내야 할 소중한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민주노동당은 미래의 소중한 자원이되 현실적 대안세력은 아닌 것이다(정대화, 윗 글)”라고 말한다.

    이런 주장이 증명하는 것은 선거철이 다가왔다는 것 이외에는 다른 아무 것도 아니다. 평소에는 진보정당과 교류하다가 선거 때만 되면 온갖 그럴듯한 이유를 붙여 보수정당을 즐겨 찾는 계절병이 재발하고 있을 뿐이다. 지난 총선 직전에도 똑같은 주장이 있었다.

    “누가 더 군사정권에 뿌리를 둔 세력인가? 누가 더 6.15공동선언 이행에 적대적인 세력인가? 누가 더 근본적으로 반민중인가? 누가 망국적 지역주의와 색깔론에 의존하는 세력인가? 누가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마저 독점하여 도둑놈 소굴로, 시궁창 국회로 만든 장본인인가? 이것들을 보면 그 차별성이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이 차별성을 극대화시키는 데서부터 민중의 활로가 열립니다. 세상이 열립니다. –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상임의장 오종렬, 「존경하는 자주 민주 통일전사 여러분」, 2004. 3. 14

    “한나라당 민주당 열린우리당 자민련 사이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겠다. 그런데, 원래 누구를 짝사랑한다는 감정이 없다면, 그 차이를 구분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그 당들 사이의 차이란, 전문가의 숙련된 시각으로 현미경을 통해야 구분 가능한 정도의 극소정치학에 속한다.

    그 당의 이념과 정책을 드러내는 입법안과 예산안에서 네 당의 차이를 발견하려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가장 수구적이라는 자민련과 가장 개혁적이라는 열린우리당 사이의 예산안 차이는 0.01%에 지나지 않는다. 탄핵당한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에 상정한 정부입법안의 99%가 ‘쿠테타 주역’들의 지지로 입법되었다.

    차이는, 네 당 사이에 있는 게 아니라, …… 운동권의 세계관과 ‘그 놈이 그 놈이지’라고 단호히 판정하는 보통 국민들의 체험 사이에 있다.” – 이재영, 「탄핵, 한국 지배질서의 파열음」, 『이론과 실천』, 2004. 3

    5. 1987년에 사로잡힌 정치적 상상력

    진보적 사회운동이나 정치운동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 표방하는 바와는 달리 보수 정치세력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것은 1987년으로부터 비롯된 몇 가지 잔재 때문이다.

    첫째, 그들의 사회의식이 1997년 이후 한국 사회의 주된 모순이자 동력으로 자리 잡은 경제사회적 권리 투쟁에 무지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민주’라거나 ‘자주’라는 관점으로만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데, 이는 1987년 체제의 사상의식적 잔재이다.

    “‘민주정부’들의 기획자, 정책가로 수혈된 ‘386세대’들조차 빈부격차를 심화시키는 국가정책을 선호하는 것은 그들이 변절했기 때문이 아니라, 1987년 변혁의 주체가 사회경제적 이익을 사상한 몰계급적 학생과 인텔리들에 의해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도 ‘민중’이라는 언술로 대표되는 소박한 정의 관념을 가지고 있었지만, 기존의 성장이데올로기를 체화하는 데는 별다른 장애가 없었다.

    그것은 그들의 사회의식이 전후 고성장기 북한에서 동원이데올로기로서 형성되어, 남한의 사회경제적 현실로부터는 상당히 유리될 수밖에 없었던 ‘자주․민주․통일’이었다는 점에서 연유한다. 남북의 지배이데올로기는 공히 가상의 집단 이익을 위해 권리 유보를 강제하는 것을 주된 기능으로 가지고 있고, 이에 따라 국민의 사회경제적 권리 박탈과 빈곤은 불가피한 희생으로 치부되고 있다.” – 위 이재영 글, 「빈곤과 민주주의」

    최근 논쟁의 화두를 던진 최장집은 한국 민주주의의 대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본주의 하에서 사회경제적 갈등을 정치적으로 조직하고 대표하는 ‘강한 정당이 존재하지 않는 한 가난한 다수가 보호될 수 없다’는 현대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 …… 진보는 정치적 대안이자 실체를 갖는 집합적 힘으로 만들어질 수 있어야 하고, 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가난한 서민의 삶이 개선될 수 있도록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 최장집, 「한국 민주주의의 사회적 모습에 대한 르포르타주」, <경향신문> 2007. 3. 1

    그런데 최장집은 자신의 이론과는 다른 정치 행동을 한다. 그는 작년 7.26 보궐선거 당시 열린우리당 후보의 후원회장으로 선거에 간여했다. 보수정당들에 대한 지지는 그 이념이나 정책에 대한 지지로도 형성되지만, 선배 후배라거나 스승 제자라거나 친인척이라는 이유에 의해서도 유지되고 있다.

    이것은 1987년의 민주화가 정치적 상부구조에서의 제도와 절차에 국한되면서 시민사회의 문화적 민주화와는 다른 차원에서 전개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런 현상 역시 전근대적 연결고리들로부터 탈출하지 못하는 87년 체제의 문화적 잔재라 할 수 있다.

    1987년이 낳은 세 번째 잔재는 정치적 상상력의 빈곤이다. 정대화는 이렇게 말한다.

    “민주노동당은 지난 국회의원총선거에서 10% 이상의 득표율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안정당으로 자리매김하기보다는 문제제기 정당으로 축소되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가장 큰 문제는 정당이 당연히 가져야 할 국가경영적 관점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 정대화, 윗 글

    미래구상이 여권이나 민주노동당 중 어느 쪽과 연합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식의 주장이 여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에 의해 대대적으로 설파될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물어보자. 1980년대의 김대중 당이나 김영삼 당은 국민들로부터 ‘문제제기 정당이 아닌 대안정당’으로 얼마나 인정받았을까? 노무현은 언론이나 학계로부터 ‘국가경영적 관점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되었나?

    옛 자유주의 정치인들에 대한 지지와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 사이에는 시간의 누적이라는 단 하나의 차이만이 존재한다. 1971년 처음 대선에 출마한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는 데는 26년이 필요했다. 김대중은 1987년에는 3등을 했고, 1992년에는 2등을 했고, 1997년에는 1등을 했다.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지지자들은 ‘10%의 지지율’은커녕 정치활동 금지 상태에서도 일관됐고, 그 당이나 정치인들이 어떤 흠결을 가졌든 완고했다.

    1970년대 초 이후 실질적인 최초 선거였던 1987년 12월의 대통령선거는 알을 깬 병아리가 첫 사물에 각인되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의 정치의식을 사로잡고 있다. 87년 선거를 경험한 많은 이들은 보수 정치인 중 하나를 비판적으로 선택하는 결정, 그 보수 정치인들의 후계자 중 누가 가장 나은지를 선택하는 결정을 넘는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하거나 도전하지 못한다. 이것이 87년 체제의 정치적 잔재이다.

    결론, 투기가 아닌 투자

    “노무현 정부의 실패는 …… ‘신자유주의 개혁’이 실패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 노무현 정부의 실패는 …… 87년 대투쟁으로 형성된 87년 민주화 체제 자체가 붕괴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 이번 대선에서 이와 같은 ‘보수와 반동의 2007년 체제’가 구축된다면 87년 체제가 확보한 정치적 절차적 민주주의마저 후퇴할 가능성이 매우 높고, 향후 진보개혁세력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이다.” – 이상현 민주노동당 기관지위원장, 「2007년 대선과 민주노동당」, 『위기의 진보진영, 대반전 가능한가』, 2007. 2. 21

    민주노동당 집권전략위원회가 주최한 위 토론회에서 대한의사협회의 정채빈은 “진보진영의 위기가 아니고, 노무현 정권의 위기인데, 왜 이런 제목을 달았는가?”라고 물었다. 1997년에 의해 자유주의 세력과 민중의 정치동맹이 종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의 일부 간부들은 ‘진보개혁세력’이라는 입론을 여전히 애용한다. 이상현의 판단처럼 신자유주의 개혁이 실패했을까? 경제자유구역, 기업도시, 비정규악법 같은 것들이 신자유주의가 아니어야만 노무현 정부가 실패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1987년의 두 정치세력, 개발독재주의와 자유주의는 1997년 이후의 정치적 경제적 위기 상황에서 신자유주의로 완벽하게 통일되었다. 따라서 열린우리당에서 한나라당으로의 정권 교체는 이상현의 우려처럼 ‘보수와 반동의 2007년 체제 구축’이 아니라, 지배주주권이 그대로인 상태에서 자본독재의 사장만 바뀌는 것이다.

    패퇴하는 자유주의 세력에게 다시 한 번 힘을 모아주자고 이야기하는 것은 진보정치의 미래 성장을 파괴하는 정치적 투기다. 그리고, 신자유주의를 민주주의라 강변하는 것은 정치적 사기다.

    1987년 체제는 1997년에 이르러 총파업과 IMF를 낳았다. 그 산물인 신자유주의와 민주노동당이 2007년의 현재다. 투기가 아니라 투자가 필요하다.

    * 이 원고는 <텍스트>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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