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틴아메리카 사회운동,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들
    [기고] 1980년대 이후의 흐름 비교
        2023년 02월 09일 10:5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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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대~~ 우리는 한편으로 운동권으로 상징되는 민주화를 위한 강력한 저항, 운동의 시기였다. 다른 한편으로 1987년 헌법으로 상징되는 현재의 체제를 만든 시기였고 올림픽으로 상징되는 단군 이래 최대 경제 발전과 부동산 투자의 열풍으로 이런 흐름에 잽싸게 올라탄 사람들은 많은 이가 부자가 되었다. 그리하여 경제우선주의의 흐름은 1960년대 이래 우리 사회에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라틴아메리카는 이와 매우 다르다. 우선 라틴아메리카에서 현실의 급진적 변화를 바라는 좌파는 1960~70년대에 마르크스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저항을 펼쳤지만 대부분 실패했다.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적 분기점은 1980년대 초였다. 멕시코의 외채위기. 경제위기가 1982년에 찾아왔고 베네수엘라에는 1983년에 찾아왔다.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신자유주의가 도입되었다. 우리의 경우 IMF 위기로 상징되는 1997년이 분기점이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응이 양쪽이 달랐다. 라틴아메리카는 가난하고 무식한 도시 변두리 여성이 중심이 되어 자신들보다 더 약자를 돕는 공동체 부엌 운동이 일어났다. 구체적인 예로 페루, 칠레를 들 수 있지만 라틴아메리카 전역에 걸쳐 오랫동안 사회적 위계서열에서 아래에 있던 여성, 동성애자, 도시빈민, 락 음악가 등 그동안 별 볼 일 없던 사람들이 연대하는 새로운 사회운동이 활발해진 것이다.

    1990년대에도 이런 흐름이 지속되어 소위 2000년대의 새로운 좌파정부들- 핑크타이드로 불리는— 출현의 밑거름이 된 것이다. 그러면서 지식인이 선도하는 이념을 중시하는 좌파정당, 노조운동 등이 약화되었다. 왜냐하면 우리의 경우 약자들은 비정규 하청노동자들이라면 라틴아메리카의 경우 약자들은 비정규직이 아니라 아예 취업도 못하는 거리의 행상 등 비공식 노동자들이 1980년대 이후 늘어났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와 맥락이 다르다. 우리의 경우는 어떻게 해서든 좌파정당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그곳의 가난한 대중의 사회운동이 활력을 가지게 된 것으로 두 가지 요소를 강조할 수 있다. 하나는 우리의 경우, 타자에 대한 관심이 가족을 넘어서지 못하는 데 비해 이들은 동네를 중심으로 쉽게 사회적 발언, 행동의 집단적 주체로 발전할 수 있었다. 우리는 1997년 이후 더욱 경쟁이 치열해졌고 각자도생이 심해졌고 경쟁에서 탈락한 약자들은 자살 아니면 우울하게 살고 있다. 다들 알다시피 거대 양당 중 하나는 노골적으로 전임 정부의 위선을 비판하면서 사회경제적 강자(중산층 포함)를 위한 정치를 하고 있고, 다른 하나는 계속해서 어정쩡하면서 약자를 위한 입법에는 여전히 나서지 않고 있다. 라틴아메리카의 새로운 변화는 이들이 일상생활의 문화적 정체성을 중시했기 때문이고 그 배경은 가치관이 물질주의, 경제주의에 매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이 특별히 인문학적 가치관이 출중해서가 아니라 정치체제 자체가 경제주의에 매몰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의 경우, 1960년대부터 경제주의가 강조되면서 지식인, 종교인도 각자도생의 개인주의 문화를 제 몸에 깊이 간직하고 있으면서 강의 또는 교육을 통해 일반시민 특히 중산층의 의식과 무의식에 경제주의를 깊이 각인시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통로가 교육과 부동산임은 물론이다. 다만 보수정당에 비해 자유주의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척 쇼를 할 뿐이다. 예를 들면, 흔히 지식인과 종교인들이 우리 사회의 문제점의 근원이 화려한 물질문명에서 온다고 지적한다. 거의 약 40년 동안 그렇게 들어왔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급속한 경제성장에 성공하면서 우리는 화려한 물질문명의 덕을 세계에서 제일 크게 보고 있지 않은가?

    우리 사회의 문제점의 근원은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거기에 대처하는 국가의 여러 제도 등 체제 자체가 약자를 배제하는 데 있다. 더 나아가 이제 사회 자체가 약자를 지독하게 억압, 혐오, 조롱하고 중간계급 이하 사람들도 약자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이러니 좌파정당은 질식사 직전이고 사회운동도 힘이 없다.

    1980년대 이후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새로운 사회운동이 출현했다고 했다. 그런데 유럽에서도 1990년대 이후 새로운 사회운동이 출현했다. 그렇지만 양자 사이에 차이가 크다. 전자의 집단적 주체는 사회경제적으로 오랫동안 약자였다. 대표적인 예로 원주민이다. 후자는 지식인 등 중간계급이다. 그리하여 유럽에서는 위에서 언급된 라틴아메리카의 경우보다 더 생태 운동, 페미니즘 운동, 평화 반전운동, 사회적 경제-커먼스 운동 등이 강하다. 같은 페미니즘 운동이라도 라틴아메리카는 더 급진적이고 약자와의 연대성이 강하다.

    한마디로 말해 라틴아메리카는 독특하다. 중요한 것은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사회운동이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하고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그로 인해 신자유주의 대안을 비전으로 제시하는 흐름은 라틴아메리카 전체가 강하다. 다만 거기에 어떻게 도달할 것인가 하는 전략은 두 개로 갈린다. 하나는 베네수엘라로 대표되는 근대성과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하려는 급진적 선택이 있고 다른 하나는 브라질, 볼리비아로 대표되는 점진적 선택이 있다. 후자의 경우 극우세력으로부터 반동의 공격이 있어 힘들었지만 이제는 회복하고 있다.

    사회학자인 보아벤투라 드 소우자 산투스가 그의 저서 [사회해방과 국가의 재발명]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비전은 담대하고 급진적이라도 전략은 신중하고 점진적이어야 한다. 우리 사회도 여러 가지 이유로 좌파정당과 사회운동은 지혜롭고 점진적, 개혁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사회운동의 활동가들과 후원자들을 늘릴 수 있는 전략을 여성, 젊은층 위주로 짜야 한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과거의 전통적, 주류적 이론 패러다임으로는 1980년대 이후의 라틴아메리카 사회운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따라서 라틴아메리카의 변화를 잘 모르면서도 그냥 손쉽게 재단하는 진보지식인들이 성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필자소개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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