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와 노대통령의 신성동맹
        2007년 03월 06일 04:4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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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목소리의 조선일보와 노무현 대통령 (사진 오른쪽 = 청와대 브리핑)
     

    사사건건 아옹다옹이던 노무현 대통령과 조선일보가 일치단결했다. ‘진보 논쟁’을 통해서다. 조선일보는 노 대통령의 글이 “일리 있는 것(류근일, 2. 19)”이라는 둥 “지당한 말(전상인, 2. 23)”이라는 둥 지원 사격을 아끼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스스로를 ‘진보’라 규정하는데, 이런 인식은 조선일보도 마찬가지다. 조선일보는 “어느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노무현 정권은 진보 좌파 정권(김종석, 2. 22)”이라 못박는다.

    노 대통령은, “원래 같은 편인데, 왜 도와주지 않느냐”는 식으로 진보학자들에게 투덜대는데, 조선일보 역시 “지금까지 노무현 정권의 좌파적 실험을 음으로 양으로 등 떠밀어 준 것이 누구인데 뒤늦게 와서 딴 소리인가(류근일, 1. 22)”라고 준엄히 꾸짖는다.

    하지만 진보 논쟁에 끼어들었던 학자들 중에 노무현 정권의 녹을 받아 먹은 이는 없다. 노대통령은 짝사랑이 지나쳐 상상임신에 이른 것이고, 조선일보는 남의 집 멀쩡한 처자 앞 길 막는 망발이다.

    조선일보와 노대통령은, 한미FTA 반대하면 시대착오적 역적이라는 비난을 퍼붓는 데에서도 단결한다. FTA 한다고 신자유주의는 아니라는 주장, FTA 개방은 실용이며 현실이라는 주장, 그런 것을 거부하는 진보는 구시대적이라는 주장에서 조선일보와 노무현은 완벽하게 일치한다.

    “저는 신자유주의자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한나라당이나 일부 정치언론이 말하는 그런 좌파도 아닙니다. 저는 진보의 가치를 지향하는 사람이지만, 무슨 사상과 교리의 틀을 가지고 현실을 재단하는 태도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오늘날은 개방도, 노동의 유연성도 더 이상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적 효용성의 문제입니다. 세계시장이 하나로 통하는 방향으로 가는 시대의 대세는, 중국의 지도자들도 거역하지 못한 일입니다. 이런 마당에 개방을 거부하자는 주장이나 법으로 직장을 보장하자는 주장은 현실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난 시대에나 가능했던 일입니다(노무현, 「대한민국 진보, 달라져야 합니다」, 2. 17) .”

    “지금 진행되고 있는 세계 경제질서의 흐름과 역사의 교훈에 진보세력은 너무 어둡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자율과 창의가 존중받고, 기강과 효율이 살아 있고, 공짜와 떼쓰기가 용납되지 않는 실용주의적 개방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이렇게 변화하거나 아니면 글로벌 추세에서 또다시 낙오되는 길밖에 없다. 이것을 신자유주의라고 하든 시장주의라고 하든 명칭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김종석, 「번지수 잘못 짚은 노정권 실패 논쟁」, 2. 22).”

    노무현의 ‘교조적 진보 비판’에는 조선일보가 더 적극적으로 거들고 나선다. 한미FTA에 반대하고 고용 보장 따위를 주장하는 민주노동당 등의 ‘교조적 진보’를 공격하기 위해 신성동맹을 맺은 꼴이랄까. 러시아와 독일이 프랑스혁명의 전파를 막기 위해 동맹했던 것처럼 조선일보와 노무현 정권은 민중들에게 진보의 목소리가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힘을 합치는 데는 아무 거리낌이 없다.

    “이쯤 되면 그의 말이 ‘좌파 근본주의’의 지나침을 비판하는 ‘민주적 진보’, 자유주의자, 보수주의자들의 논리와 과연 어떻게 다른지조차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라서 이게 정말 노무현 대통령의 말인지가 헷갈릴 지경이다(류근일, 「진보에 대한 노무현식 착각」, 2. 19).”

    “‘유연한’ 진보를 자처하는 노 대통령의 입장에서 이른바 ‘교조적’ 진보가 정권의 실패와 민주주의의 위기를 거론하는 행태는 참으로 안타깝고 억울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진보는 작금의 현실을 놓고 자책(自責)의 용기는 미루더라도 일단 침묵의 미덕은 보여줘야 했다.

    …… 역시 노 대통령의 정확한 지적처럼 그것은 국민의 선택에 달린 문제일 뿐 결코 진보진영이 왈가왈부할 사항은 아닌 것이다. …… 이런 점에서 그들은 노 대통령에게 혼나 싸다(전상인, 「돌아설 땐 깨끗이, 떠날 때는 말없이」, 2. 23).”

    조기숙은, 노 대통령을 비판하는 진보적 지식인들이 조선일보와 닮았다고 항변한다. 그럴 수 있다. 그런데 노무현과 조선일보는 외양은 조금 다르지만, 한 배에서 난 쌍둥이가 아닐까?

    대부분의 언론은 노무현 대통령이 ‘교조적 진보’를 비난한 이유가 최장집 교수에게 뭔가 섭섭한 게 있기 때문이라 보도했다. 글쎄? 노무현 대통령이 글을 발표하기 며칠 전에 조선일보에는 아래와 같은 류근일의 글이 실렸다. 아무리 봐도 노무현 대통령의 글은 류근일의 질책에 대한 화답이다.

    “일부 진보적임을 자임하는 지식인들의 언동에는 한 마디로 염치가 없다. …… 현 정권을 떠받들던 일부 좌파 지식인들은 “노 정권의 신자유주의 때문에” 운운하며 자기들은 오늘의 결과와는 상관이 없다는 시늉이다(류근일, 「적반하장」, 1. 22).”

    “열린우리당 사람들이 …… ‘급진좌파’에 대해서는 과연 지금까지 ‘배척’을 해왔는 것인지 분명하게 자문하고 그 답을 국민 앞에 제시해야 한다(류근일, 「중도와 평화의 위장」,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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