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방비 급등···새로운 문제에
    익숙한 방식의 반복으로는 안된다
    [정의 경제] 생태복지국가의 진정한 의미 생각해야
        2023년 02월 01일 09:3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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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방비 급등이라는 예고된 이슈, 갑작스런 대응

    유난히 추웠던 지난 12월 난방비 고지서가 날아들자 온 사회가 ‘난방비 폭탄’을 가지고 백가쟁명이다. 놀라운 것은, 완전히 예고된 이슈였는데도 불구하고 갑작스럽게 터진 폭탄인 것처럼 반응한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지난해 유럽을 필두로 천연가스 가격이 무려 10배 이상 오르는 등 에너지 가격 폭등은 전혀 새롭지 않다. 한국도 지난해 3분기에 이미 등유 48.9%, 도시가스 36.2%, 지역난방비 34.0%, 전기료 18.6% 상승률을 보였고 이는 연말까지 이어졌다. 이 조차도 사실은 한국전력이 약 30조원, 한국가스공사가 약 9조원의 적자를 안으면서 그나마 가격상승을 줄인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무모하게도 올해 에너지 바우처 예산을 지난해보다 400억 정도 줄인 1800억, 대상자도 30만 명도 줄인 85여만 명으로 정했다. 등유바우처, 연탄쿠폰, 저소득층에너지효율개선, LED보급지원사업도 줄였다.

    이 상황에서 올 겨울 유례없는 혹한이 12월부터 닥치자 난방용으로 사용되는 가스 사용량이 크게 늘었다. 이 역시 기후위기로 인해 극단적인 날씨가 언제든 닥칠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것이었다. 이 모든 상황들은 충분히 예상 가능했고 대비할 시간도 있었던 것이므로 ‘폭탄’을 들먹이며 난리가 날 생황이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성찰 부족한 익숙한 해법들, 다시 반복하는 것이 맞는가?

    어쨌든 예고는 되었지만 전혀 준비를 안한 탓으로 예상을 넘는 난방비용 상승 결과에 국민들이 근심스러워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갑자기 여야는 물론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정치권에서 현금지원 규모 경쟁이 불붙었다. 마치 3년 전 코로나19로 인한 재난지원금 경쟁을 보는 듯 하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고 대비하지도 못했던 코로나19와 완전히 다른 국면인데도 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단한 결단인 것처럼 1천억 예비비를 난방비 지원에 쓰라고 지시했고 지원폭도 더 넓힐 모양이다.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6.4조원 추경을 편성해서 난방비 전국민 3개월간 10만원씩 지원하자고 주장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7.5조 정도의 에너지 고물가 지원금을 주자고 제안했다. 정의당도 일반가정에 에너지가격 보조금을 지원하고 취약계층 에너지바우처를 확대하자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처럼 현금지원으로 위기를 모면하는 것 말고는 에너지 위기와 기후위기를 완화하기 위한 다른 대책들을 공론장에서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실제 위기 강도 만큼 난방비나 전기료에 반영된 것이 전혀 아니라서 위기의 상당 부분은 한국전력 적자와 가스공사 미수금안에 숨어 있다는 사실, 이 역시 알고도 미뤄둔 사실이라는 점은 제대로 얘기되지 않는다. 심지어 필수재인 에너지를 공조직이 끌어안는 것이 당연하다는 반응도 상당하다.

    그런데 다른 복지의 사례처럼 에너지도 복지를 위해 보조금을 대폭 늘리자거나, 공공이 부담을 안자고 하는 익숙한 해법들을 이번에도 이렇게 반복하는 것이 정말 정당한 것인가?

    기후위기 + 에너지위기 + 감당가능한 에너지 공급

    냉정하게 진단해 보자. 알다시피 최근 가속화되는 기후위기로 인해 ‘극단적 기후’ 현상 발생이 빈발하고 있다. 지난 여름 유럽의 폭염과 올해 아시아의 혹한 모두 그런 현상의 연장이다. 올 여름에는 다시 라니냐 영향으로 그 어느 때보다 더위가 기승을 부릴 것으로 예상되는 등 극단적 기후는 계속 더 자주, 더 심각해질 것이다. 이것이 에너지 비용 상승의 첫 번째 배경화면인 ‘기후위기’다.

    둘째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에서 가스가격이 10배 이상 오르게 하는 등 심각한 에너지공급 교란을 발생시켰고 곧 전세계로 퍼져나가면서 글로벌 에너지 위기를 초래했다. 지금은 그 영향이 약해졌지만 언제든 에너지위기는 다른 지정학적 요건 등으로 재연될 소지가 점점 커지고 있다. 특히 가스를 포함해 화석연료를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에너지 자립(안보)’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무역수지 적자까지 포함해서 계속 이 문제에 노출될 수 밖에 없다. 에너지위기와 에너지 자립 문제가 이번 비용상승의 두 번째 배경화면이다.

    기후위기와 에너지위기는 곧 일상을 사는 시민들에게 생존의 위험으로 다가오지만, 이를 대응할 수 있는 시민들의 소득과 자원은 오히려 과거보다 약해지고 있다. 더욱이 지난해부터 심각해진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실질소득 감소, 고금리로 인한 원리금 상환부담 가중에 에너지비용부담 상승이 얹어졌으니 특별히 생활비 부담이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에너지는 가격이 올랐다고 곧바로 소비를 줄일 수 있는 탄력적 상품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감당 가능한 에너지 공급’이라는 이슈가 공적 의제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이렇게 난방비 문제는 기후위기 + 에너지 위기(와 에너지 자립) + 감당 가능한 에너지 공급이라는 3중의 문제를 풀어야 한다. 당장 예고된 악재를 대비 못한 책임을 물으면서 급한대로 현금보조를 할 수는 있다고 양보하더라도, 다른 병행대책이나 후속조치없이 단순 지원금 풀고 끝날일이 절대 아닌 것이다.

    더 많은 공급으로 해결하려는 기존 복지 패러다임이 위험한 이유

    여기에 더해 기존의 익숙한 해법으로 풀면 안되는 핵심적으로 중요한 이유가 더 있다. 과거 복지국가는 시민들을 위한 필수적인 재화를 더 풍부하게 직접 공급함으로써, 또는 사적 시장에서의 공급이 불평등하게 진행되면 공공이 직접 개입하거나, 보조금을 지급함으로써 해결해왔다. 의료, 교육, 돌봄 등 사회서비스는 물론이고 주거, 에너지, 수도 등도 마찬가지다. 더 많이 재정을 투입하여 더 많이 건설하고, 더 많이 공급함으로써 더 많은 수요와 더 많은 소비를 하도록 복지정책이 진화해온 것이다.

    그런데 현재 에너지비용 상승은 그렇게 대처할 성격이 전혀 아니다. 만일 단순히 보조금을 푸는 식으로 에너지 부담만 경감시켜주는 정책으로 끝난다면, 화석연료기반의 기존 화석연료기반 에너지 생산체계는 더 굳어질 것이다. 또한 싼 에너지를 더 많이 사용하는 것을 복지로 간주하는 에너지 소비체계 역시 더욱 강화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기후위기와 에너지 위기를 증폭시키는 기저요인으로 작용하여 다시 에너지비용상승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지금은 화석연료는 파격적으로 줄여야 하며 재생에너지로 대대적인 교체를 해야 할 전환기다. 더욱이 설사 교체하더라도 에너지 총공급을 무한히 늘릴 수 없으며 거꾸로 줄여야 한다. 그래야 난방비 인상의 근본 원인인 기후위기와 에너지 위기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날 수 있다. 이것이 기후위기 + 에너지위기 + 감당가능한 에너지 공급이라는 다차원 방정식이 안고 있는 딜레마다.

    공급을 늘리지 않거나 줄이면서, 또는 기존의 공급방식에서 다른 방식으로 전환하면서 동시에 ‘감당 가능한 에너지 복지 혜택’을 제공해야 하는 이 어려운 방정식은 더 많은 공급으로 필수재 혜택을 넓히려 했던 기존 복지국가 포맷과 충돌한다. 예전처럼 선별이나 보편이냐로 해결될 차원이 아니다. 가정용과 산업용 에너지를 필수재냐 아니냐로 쪼개서 될 일은 더 아니다.

    아무리 필수재라고 해도 기존방식으로 그대로 둔 채, 더 많은 공급으로 더 저렴한 소비를 하도록 방조하는 방식은 더 큰 어려움을 축적하게 할 것이다. 따라서 국가는 급한 대로 더 많은 직접 공급이나 더 많은 보조금을 서둘러 풀기 이전에, 무엇보다 국민들과 기후위기와 에너지 위기에 대한 ‘위기인식 공유’를 먼저 해야만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지금까지 한국전력과 가스공사라는 공기업이 내부에서 부채로 안고 ‘보이지 않는 위기’로 만들었다. 국민들의 ‘위기에 둔감하게’ 만든 것이다. 마치 위기를 잠시 덮어버리는 것이 공공의 책임인 것처럼 말이다.

    위기를 시민들이 제대로 느끼고 인식할 때 진정한 위기의 해법은 찾을 수 있다. 그런데 그걸 감추고 있다가, 더이상 감출 수 없게 되자 대책없이 찔끔찔끔 터뜨리고, 여기에 시민들이 놀라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생태복지국가 고민을 다시 시작해야

    전국민이 위기인식을 공유하면 단순한 공급팽창, 소비비용 완화와 같은 해법들 말고, 총소비를 늘리지 않으면서, 또는 줄이면서 ‘감당 가능한 에너지 공급’ 방안들이 여럿 나올 수 있고, 그리 큰 비용, 긴 시간을 들이지 않고 당장 실행할 수 있는 방안들도 적지 않다. 기존 주택들의 단열개선을 포함한 이런 방안들은 “난방비 문제 어떻게 풀어야 할까?”(이유진, 민중의 소리)나 “난방비 문제와 에너지 대수선”(우석훈, 경향신문) 등에서 일부가 소개되었으므로 반복하지 않겠다.

    말하고 싶은 것은, “더 많은 공적 책임, 더 많은 공급과 더 많은 소비”를 기반으로 한 기존 복지국가 정책들을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것이 더 이상 진보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화석연료는 소비를 중단해야 하고, 재생에너지도 무한공급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는 사실 무한경제성장과 물질적 소비의 무한 확대를 전제로 한 기존 복지국가 패러다임을 크게 바꾸는 일이다.

    그동안 생태복지국가를 설계하자는 주장들은 이미 개혁적 성향의 학계나 정당에서 제시되어 낯설지 않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런 사고발상의 전환도 없이 기존의 복지도 강화하면서 생태위기도 함께 대처하자는 식으로 병렬시키는 방식이었다.

    예를 들어, “인간만이 아니라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에게도 있다는 생각에서 인간과 뭇 생명의 호혜적 공존을 지향”하는 녹색복지국가를 위해 새로운 생태사회정책을 세우자고 하고 이는 새로운 성장전략이 될 것이라는 식이다(참여연대 월간복지동향 2021년 12월). 하지만 전통적 복지에 더해 생태적 이슈를 끌어안아야 한다는 것 말고, 생태적 이슈를 끌어안을 때 기존의 복지체제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기존의 성장부진에 대한 해법이 생태복지국가인 것처럼 묘사될 정도다.

    또는, 복지국가가 얼마나 생태위기에도 잘 대응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면서 기존 복지국가의 우월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물론 북유럽 국가들처럼 기존에 복지체제가 상대적으로 잘 갖춰진 나라가 생태위기로 인한 재난에 대한 대응력이 높을 수 있다. 하지만 그들도 현재 생태위기 대응에 실패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며, “복지와 환경의 두 가치가 엄연히 다른 만큼 복지정책과 환경정책 간에 얼마든지 경쟁, 충돌, 갈등이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이 대목을 실제로 파고 들어간 경우는 거의 없다(이병천, 공공사회연구 2021년).

    이제 본격적으로 복지국가에 생태위기가 결부되면 복지국가 패러다임과 정책틀 자체가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 진지하게 검토할 때다. 전기요금과 가스요금 인상에 대한 대책의 고민이 그 출발이 될 수 있다.

    * <정의로운 경제> 연재 칼럼 링크

    필자소개
    전 정의정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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