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탄소중립 정의로운 에너지전환
    백래시 그리고 전환 지도 그리기
    [에정칼럼] 슬픈 예감의 현실화...그럼에도 전진해야
        2023년 01월 31일 09:5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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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1월 시행된 「지방자치법」(전부개정) 제4조(지방자치단체의 기관구성 형태의 특례)에 따라 주민투표를 거쳐 지방자치단체(지방의회·집행기관)의 기관구성 형태를 달리 구성할 수 있게 됐다. 후속 법제화가 미진하지만, 최소한의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자치단체의 구성과 운영에 대한 주민들의 선택권이 확대되고, 현재 일률적으로 규정된 단체장-의회 기관대립형 구조의 지방정부 형태에 변화를 줄 수 있게 됐다. 시대적 요구와 지역의 필요를 반영해 다양한 정치 실험을 시도할 여지가 생긴 것이다.

    각종 사건·사고를 접하면서 현행 지방자치단체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 정부, 국회, 검찰, 법원, 경찰과 함께 ‘저신뢰도 경쟁’을 하고 있다. 간혹 지방자치단체 무용론도 거론된다. 지방의 정부형태를 재검토해 권력구조를 일부라도 개편할 가능성이 있다면, 지방자치단체 기관구성 형태의 다양화에 대해 여러 측면에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단체장·지방의원 선거와 의회·집행부 구성 등에 따라 지방정부 형태가 통합형, 대립형, 절충형 등으로 나뉘기도 하지만, 주민자치 측면에서 직접·참여민주주의 공간도 확대될 수 있다. 이런 논의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탈탄소 에너지전환이라는 핵심 이슈가 빠질 수 없다.

    주민청구 탄소중립 정의로운전환 기본조례를 배신한 안성시의회

    2023년 1월 13일, <제209회 안성시의회 제1차 운영위원회>가 열렸다. 안성 주민들이 청구한 「안성시 탄소중립 정의로운 전환 기본 조례」의 청구요건을 심의해 수리 또는 각하를 결정하는 회의였다. 안성시의 주민청구 탄소중립기본조례는 청구인명부를 공식 제출한 첫 사례로 기록된다. 2022년부터 시작된 탄소중립기본조례 주민청구운동은 서울시 송파구에서 처음으로 나타났지만, 청구인 서명수를 채우지 못했다. 그다음으로 안성시, 경기도(개정안)와 남양주시가 서명운동을 전개했고, 안성시에서는 기후위기안성비상행동이 주도하여 두 달여 동안 3천 명이 훌쩍 넘는 주민들이 참여했다.

    사진=기후위기 경기비상행동 페이스북

    주민청구 기본조례에 대해 안성시의회에서 부정적인 기류가 감지되자 기후위기경기비상행동과 기후위기안성비상행동은 공동으로 <탄소중립 정의로운 전환 주민조례안,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토론회(2022.12.12)를 개최했다. 안성시의회는 법제처로부터 주민조례안에 대한 검토의견을 받았는데, 이를 참고한 ‘법률적 문제’로 인해 운영위원회에서 각하되어 본회의에 상정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것이다. 이에 대해 비상행동 측은 「주민조례발안법」과 주민조례청구 운동의 취지에 반하는 것으로 탄소중립과 정의로운 전환에 관한 사회적 합의 및 공론화의 의미와 성과를 부정하는 것으로 비판했다.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우려가 현실이 됐다. 안성시의회 운영위원회는 84분 만에 청구요건 적합 여부를 심의하고서 최종 각하를 결정한 것이다. 제안설명, 검토의견, 청구인 의견 청취, 의원 질의를 합쳐 47분, 그리고 36분 동안의 정회가 끝난 후 속개된 마지막 1분 만에 신속히 정리됐다. “주민조례발안법 시행 이후 회부된 첫 번째 안건으로 주민이 작성하여 제출한 매우 의미 있는 안건”은 아무런 이의 없이 폐기되었다. “향후 환경과에서는 이번 논의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안성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정책을 고민하고 시민의 의견을 담아 조례 제정 추진을 당부”하는 안성맞춤형 허무 발언만 남겼다. 의원 여러분, 좀 더 분발하세요. 지방자치단체의 기관구성 형태를 달리 구성할 수 있게요!

    결과적으로, 법적 구속력이 없을뿐더러 내용상 논란이 되는 법제처 검토의견을 그대로 인용했고, 이 과정에서 안성시청 환경과는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행정기구 설치, 주민권한 제한, 지자체 사무범위 등을 둘러싼 세부 쟁점도 중요한 사안이지만, 이것들은 주민청구 기본조례의 본질이 아니다. 첫째, 주민발안 조례에 주요 정책 목표와 수단을 포함할 수 없다면, 의미 없는 조문밖에 담을 수 없다. 「탄소중립 정의로운 전환 기본조례」 주민발안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주민조례발안제도는 활용할 이유가 전혀 없는 무용지물인 셈이다. 둘째, 다양한 법적 해석과 적용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탄소중립 정의로운 전환을 실현하기 위한 실효적인 자치법규를 제정하자는 것이 주민들의 핵심 요구이다. 청구인 대표자들이 청구 취지 반론에서 제안했던 것처럼, 주민조례안을 바탕으로 의회에서 추가 검토와 보완 절차를 충분히 거치면 될 일이다.

    「주민조례발안법」에 따라 주민조례청구를 수리하게 되면 지방의회 의장 명의로 조례안을 발의하게 되어 있다. 이 과정에서 “조례안의 형식을 갖추어 청구된 경우 청구내용의 본질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법조문 형식 및 체계 정리 차원의 경미한 자구 수정은 가능”하다(행정안전부 「2022년 주민조례청구 업무 매뉴얼」 26쪽). ‘운영위원회 수리 후 수정의결’이라는 합리적인 시민사회의 제안을 무시한 채, 정치적 의지와 입법적 역량이 부족한 몇몇 지방의원들은 주민들과 다른 세상과 제도를 공유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으로 사건이 허무하게 끝이 났다. 그러나 이미 토론회에서 제기된 것처럼, 이런 식의 주민조례청구 각하는 행정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나아가 주민소환을 추진할 사유로 검토할 수 있다(이상 자세한 내용은 “「탄소중립기본조례」와 정의로운 전환의 자치입법과 주민자치: 현황과 쟁점” 참고).

    에너지 공공성의 실험대에 오른 제주특별자치도

    2023년 1월 11일, 제주도에서 <풍력개발정책 공개 토론회>가 열렸다. 작년 말, 도청이 발표한 「제주특별자치도 공공주도 2.0 풍력개발 계획」과 「풍력발전사업 허가 및 지구 지정에 관한 세부 적용기준 고시」(개정안)에 대해 여러 비판과 쟁점이 발생하자 뒤늦게 의견 수렴 절차가 진행됐다. 여러 논점이 있지만, ‘좌측 깜빡이 켜고 우회전 한다’고 요약할 수 있겠다. 김동주의 저서 『전환사회의 새로운 힘, 재생에너지를 공유하라』(한그루, 2022)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근본적인 한계도 존재하고 적잖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지만, 제주는 ‘카본프리 에너지전환’의 테스트베드이자 선도모델로 평가받는다. 풍력자원을 중심으로 에너지 공공성을 확보하는 노력이 돋보인다.

    현시점에서는 그동안의 성과와 문제점을 체계적으로 평가해 말 그대로 ‘공공주도 2.0 에너지전환’ 계획을 종합적으로 수립해야 한다. 그런데 도청의 관련 계획과 고시 개정안은 스스로 밝힌 핵심 가치와 추진 전략과는 정반대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공공성 강화-제주에너지공사 역할 강화’가 아니라 ‘공공성 약화-제주에너지공사 역할 약화’로 보인다. 풍력발전 지구지정의 방식과 절차 역시 공공주도에서 민간주도로 바뀌어 ‘재생에너지 계획입지’의 입지가 흔들릴 우려가 있다. 결과적으로 “공공의 바람자원을 정의롭게 나누고 주민과 상생하는 풍력개발”이라는 계획의 비전은 무색해진다. 그래도 도청이 이런 문제 제기를 반영할 의향을 갖고서 나름의 준비를 하고 있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최근 난방비 폭등 사태로 때마침 에너지 공공성, 더 적절한 표현으로는 전환적 공공성을 주장하는 제안과 몇몇 해외 사례가 주목받고 있다. 인간다운 생활에 필수적인 필요 에너지는 기본권 차원에서 무상으로 또는 적당한 수준의 요금으로 공급받아야 하고,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사업은 공적, 사회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기후위기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는 화석연료 기업들로 하여금 사회적, 생태적 손실과 피해에 대해 배상 또는 보상을 강제하고, 특정 국면에서 부당이익을 얻는 에너지 업체들에게는 횡재세(초과이윤세)를 부과해야 한다. 복합위기 시대에 직조할 수 있는 제법 괜찮은 자본주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솔루션 중 하나이다. 이런 국가적 전환 프로젝트가 뒷받침되어야 비로소 제주의 전환실험도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자유와 연대는 엉뚱한 곳으로 향한다. 올해 초, 정부가 발표한 “주민참여사업 제도 개선방안”과 “이격거리 규제 개선방안”은 문재인 정부의 재생에너지 수용성 정책 방향을 유지하는 것에 불과하다. 반면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2~2036년)”은 유의미한 경로 변화를 추구한다. 그러나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 김정재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저탄소 청정에너지 이용 촉진 지원법안」(2021.3.3) 정도면 빈틈을 채울 수 있어 괜찮겠다 싶다. 국회 한쪽 구석에서 잠자고 있는 이 법안의 본질을 해치지 않고 경미한 수준에서 수정하면 충분할 것 같다. 신·재생에너지와 원자력이라는 신묘한 연대인 ‘저탄소 청정에너지’로 에너지 자립도를 향상시키고, 온실가스를 감축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제안된 저탄소 청정에너지 이용 촉진 국가전략, 저탄소 청정에너지 이용 촉진 위원회, 저탄소 청정에너지 공급의무화제도, 저탄소 청정에너지 이용 촉진 지원 기금이면, 윤석열 정부의 기후·에너지 비전을 자유롭게 할 것이다!

    대한민국 전환지도를 펼쳐보면

    「경기도 및 도내 기초 자치단체 탄소중립 이행기반 구축 현황 조사 결과보고서」(주최: 경기도지속가능발전협회의·기후위기경기비상행동, 주관: 경기환경운동연합·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를 보면, 「탄소중립기본법」이 본격 시행되고 지방자치 민선 8기가 출범했음에도 불구하고, “경기도 및 시·군은 탄소중립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이행기반을 구축하는 데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고, 제도적 측면은 물론 시민사회와의 거버넌스 구조도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황 조사 과정에서 기후정의와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질적 조사를 충분히 진행할 수 없었다는 한계가 있지만, 타 지방자치단체에도 접목할 수 있는 시범적인 모니터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조사 항목은 다음과 같다.

    ① 지방자치단체 탄소중립 정책 수립, ② 「탄소중립기본조례」 제·개정, ③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 설정, ④ 탄소중립기본계획(기후변화대응계획) 수립, ⑤ 탄소중립 전담부서 설치, ⑥ 탄소중립이행책임관 지정, ⑦ 탄소중립위원회 구성 및 운영, ⑧ 탄소중립 지원센터 지정 및 운영, ⑨ 기후대응기금 설치 및 운용, ⑩ 탄소중립 추진백서, 교육기관 및 시민실천 인센티브 등.

    대부분 광역·기초 지방자치단체도 경기와 비슷한 상황이라 짐작해도 크게 문제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성공적인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전환지도를 펼치고 충청남도와 전라남도로 시선을 옮겨보자. 2022년 12월 말에 제정된 「충청남도 정의로운 전환 기본 조례」는 「충청남도 정의로운 전환 기금 설치 및 운용에 관한 조례」에 이은 후속 단계로 볼 수 있다. 상위법인 「탄소중립기본법」의 정의로운 전환 부분을 지역 버전으로 도입한 것이다. 분명히 지역 정의로운 전환을 검토하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선행 사례로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충남은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사회·정치세력화는 법제화의 성과에 비해 낮고 느린 편이다. 관성의 힘만으로는 전환의 터닝포인트를 만들기 어렵다.

    이보다 앞서 전남에서는 「전라남도 재생에너지 사업 공영화 및 지역사회·생태계와의 공존을 위한 지원 등 조례」 제정을 위한 주민청구운동이 전개됐지만, 서명인 모집에 실패했다. 그러나 박형대 도의원이 대표 발의해 제정된 「전라남도 재생에너지 사업 공영화 지원 등에 관한 조례」로 시민사회의 조례운동의 성과가 유실되지 않았다. 그리고 곧바로 ‘전라남도 재생에너지 공영화 포럼’이 발족해서 전남을 새로운 전환실험의 공간으로 탈바꿈할 입지를 다지고 있다. 대표적인 재생에너지인 풍력과 태양광의 합계 발전량이 최대인 전남이 제주와 충남과 차별화된 실천으로 대한민국 전환지도에서 새로운 색깔로 자신의 모델을 드러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참고자료

    제209회 안성시의회 제1차 운영위원회 영상

    「탄소중립기본조례」와 정의로운 전환의 자치입법과 주민자치: 현황과 쟁점

    경기도 및 도내 기초 자치단체 탄소중립 이행기반 구축 현황 조사 결과보고서

    * <에정칼럼> 연재 링크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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