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세계전략 논쟁
    '자유주의 국제주의' 주도 여전한가
    [국방칼럼] 냉전, 봉쇄, 탈냉전 그리고 그 이후 세계
        2023년 01월 25일 11:5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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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통일을 이틀 앞둔 1990년 10월 1일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냉전 종식을 선언했다. 1991년 2월말 다국적군은 페르시아만 전쟁(걸프전) 승리를 선언했고, 8월에는 소련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갔으며, 9월 18일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가입했다. 1991년 12월에는 소련이 해체했다.

    1990년 가을 진 커크패트릭은 신보수주의 매체인 내셔널 인터레스트가 향후 미국 외교정책의 중심 목적을 묻자, 짧은 글에서 미국의 목표는 보편적 지배(universal dominance)가 아니라고 응답했다. 그녀는 미국이 특별한 짐을 져야 했던 비정상의 시기가 끝난 이상, 미국은 초강대국이 주는 혜택을 포기하고, 국내 문제 해결을 목표로 하는 정상 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답했다.

    이같은 주장에 동조하는 흐름이 있었다. 첫 번째는 영원한 단극 질서에 대한 거부감이었다. 이들은 다극 질서를 선호했고, 이들이 생각한 단극 질서는 다극 질서가 탄생하기 전에 잠시 거쳐가는 순간(unipolar moment)에 불과했다. 두 번째는 확장에 대한 경계감이었다. 1980년대에 들어 쌍둥이 적자로 인한 미국 경제의 부진을 비웃듯, 약진하는 일본과 독일은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1970년대부터 로버트 길핀을 시작으로 국가의 흥망성쇠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고, 1987년에 출판된 폴 케네디의 <강대국의 흥망>은 미국이 과거 제국과 마찬가지로 ‘지나친 팽창'(imperial overstretch)으로 고통받고 있음을 경고했다. 세 번째는 냉전 종식에 따른 평화 배당 요구였다. 브루킹스 연구소는 1989년 11월 소련과의 군비통제 협상의 영향을 받지 않고서도 미국의 국방예산을 향후 10년간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까지 감축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걸프전과 미국의 국익을 주제로 단극 질서를 지지하는 조셉 나이와 이에 비판적인 크리스토퍼 레인이 아틀랜틱 1991년 7월호에서 탈냉전 세계에서 미국의 역할을 두고 대립했다. 먼저 걸프전이 미국의 국익에 기여했다고 보는 조셉 나이는 상호의존성의 증가로 인해 ① 멀리 떨어진 국가의 위기상황도 이제 미국민들에게 영향을 줄 수밖에 없고, ② 미국 내에서 일어나는 일과 밖에서 일어나는 일을 분리하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기 때문에 대규모 참전이 불가피했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걸프전은 미국의 국익이 아니었다고 보는 크리스토퍼 레인은 소련의 위협이 사라짐으로써 세계의 위험요소가 대폭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외국에 대한 군사 및 외교적 관여를 정당화하기 위해, 탈냉전 이후 세계도 여전히 ① 불확실하고, ② 불안정하며, ③ 위험한 세상으로 확대 해석하는 이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조셉 나이는 냉전이 끝났다고 해서 국내 개혁에만 몰두하는 것은 신고립주의로 전락할 수 있다고 비판했으며, 크리스토퍼 레인은 탈냉전 이후 미국은 세계 경찰이 되기보다는 균형자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미국 주류는 중립, 비동맹, 불간섭, 비개입과 같은 개념에 고립주의라는 프레임을 씌워왔다.]

    [또 하나의 9.11] – 1990년 9월 11일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은 의회 합동회의 연설(브리타니카 사전)에서 새로운 세계질서를 주창했고, 다른 국가들은 단극에 대한 미국의 열망을 우려했다.

    안타깝게도 조지 H.W. 부시 행정부가 그린 신세계는 단호했다. 냉전 종식은 미국의 승리였다. 미국에게 현저하게 유리해진 국제질서가 지속되어야 한다는 원칙 아래 부시 정권은 단극 질서 형성에 초점을 맞췄다. 그 당시 언론에 유출됐던 미 국방부의 ‘국방계획지침'(DPG) 초안(1992년 2월 편집본)에 명시된 미국의 첫 번째 목표는 소련과 같은 경쟁자(new rival)의 재출현을 저지하는 것이었다.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와 2세대 신보수주의 이론가들도 단극체제를 영구화하는 것이 미국에게 최선이라는 점에 공감했다.

    빌 클린턴 행정부도 조지 H.W. 부시 행정부의 기조를 크게 바꾸지 않았다. 1993년 9월 앤서니 레이크 국가안보보좌관은 기존의 공산주의 ‘봉쇄'(containment) 전략에서 ‘민주주의를 세계로 확대’하는 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클린턴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은 적이 사라진 상황이지만 새로운 안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역할이 여전히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관여'(engagement)와 미국이 소중히 여기는 자유주의 가치인 민주주의, 자유시장, 인권, 국제 개방을 모토로 하는 민주주의 국가들의 공동체 ‘확대'(enlargement)가 핵심이었다.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은 세계전략과 같은 말이다.]

    관여는 무조건적인 개입을 지양하는 선별적 관여(selective engagement)를 의미했고, 미국의 이익에 가장 중요한 지역인 유럽, 동아시아, 페르시아만에 초점을 맞춰 그 지역에 전력을 집중하며, 냉전 종식 이후 세계가 직면한 초국가적 위협(기후온난화, 대량살상무기 확산 등)은 협력과 다자적인 방식으로 해결한다는 해법을 제시했다. 그러면서도 클린턴 행정부는 조지 H.W. 부시 행정부의 ‘베이스 포스'(base force) 국방 전략을 `보텀 업 리뷰'(bottom-up review)’로 개편하는 과정에서 냉전 이후에도 미국의 압도적인 힘과 영향력, 리더십은 계속해서 유지해 나간다는 전임 행정부의 원칙을 수용함으로써 세계전략에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클린턴 정권은 미래의 적에 대비해 거의 동시에 일어나는 두 개의 주요 지역분쟁에서 두 개의 적과 한꺼번에 싸워 승리할 수 있는 군사력을 갖춰야 한다는(two-war standard) 조지 H.W. 부시 행정부의 전략을 윈윈 전략으로 이어받았으며, 미국의 3대 핵심지역에 군사력의 전방 주둔(forward presence) 정책을 지속했다. 첫째, 페르시아만 지역에 대한 ‘이중 봉쇄’ 정책이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이 지역에 지상군과 공군을 배치하여, 불량국가로 규정한 이란과 이라크에 강한 압박을 펼침으로써, 페르시아만 석유통제권을 유지했다. 둘째, 중부유럽에 대한 ‘새로운 봉쇄’ 정책이다. 미국은 여전히 러시아를 강하고 위험한 국가로 보았으며, 힘의 공백지대인 옛 소련의 세력권을 ‘민주적인 평화지역’으로 개조하고자 나토 확대를 추구했다. 셋째, 동아시아에 대한 ‘깊은 관여'(deep engagement) 정책이다. 탈냉전 이후에도 동아시아에서는 현상 유지, 다시 말해서 지역질서의 변화는 없어야 했다. 미국은 미일군사동맹을 재편하는데 성공함으로써, 이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일본의 이탈을 막았다.

    1998년 1월 윌리엄 크리스톨과 로버트 케이건을 비롯한 18명의 신보수주의자(네오콘)가 클린턴 대통령에게 봉쇄정책으로는 중동 정세가 ‘위험할 정도로 불충분’하다며, 사담 후세인 정권의 제거를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현 공화당 상원의원인 조쉬 하울리는 전세계를 미국의 고객으로 만들려는 우파 세계화가 신보수주의라고 정의했다. 신보수주의의 세계전략은 1992년 ‘국방계획지침'(DPG) 초안을 계승한 우위(primacy) 전략으로 미국의 ‘자애로운 패권'(benevolent global hegemony)을 먼 미래까지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힘의 우위는 잠재적인 도전자보다 군사력이 압도적으로 우세하고, 그 격차가 벌어질수록 강화되며, 규범을 따르지 않는 불량국가에 대한 독자적인 무력 사용의 목적은 다른 국가들이 미국 질서에 편승(bandwagoning)하고 순응하는 연쇄효과를 거두는 데 있었다.

    이라크 전쟁은 미국의 세계전략 논쟁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상을 차지한다. 냉전 승리로 고양된 미국에서 설 자리를 잃었던 반개입주의 흐름이 이 전쟁을 계기로 수면 위로 올라왔다. 9.11 테러 1주기를 맞은 2002년 9월 토머스 셸링, 글렌 스나이더, 케네스 월츠, 로버트 저비스 등 당대의 석학들이 포함된 33명의 안보 학자가 뉴욕타임스에 ‘이라크와의 전쟁은 미국의 국익이 아니다’는 성명을 게재하고, 동료 학자들의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이들은 다시 2004년 10월에 ‘합리적인 외교정책을 위한 안보학자’ 명의로 미국 외교와 국가안보 정책의 방향 변화를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발표하고, 극단적인 이슬람 테러리스트와의 투쟁의 대의를 훼손하는 미국의 이라크 전쟁 중심 정책을 비판했다.

    미국 안보 학자들의 이라크전 반대 의견 광고이다(radioopensource). 이 성명은 1930년 미국 경제학자들이 허버트 후버 전 대통령에게 보호무역정책 법안인 ‘스무트-홀리 관세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요청하는 청원서를 보냈던 역사적인 사실에 버금가는 사건이다.

    전쟁 반대자들에게 이라크 정책은 억제와 봉쇄만으로도 충분했으며, 전쟁은 불필요했다. 한편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자 일부가 신보수주의와는 다른 논리로 이라크 전쟁을 지지했다. 2002년 10월 11일 이라크에 대한 군사력 사용의 허가 여부를 결정하는 상원투표에서 외교위원장인 조 바이든과 힐러리 클린턴, 존 케리(2004 대통령 후보), 조 리버먼(2000 부통령 후보) 등 민주당 상원의원 29명이 찬성표를 던져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뉴요커, 뉴 리퍼블릭 같은 자유주의 언론들도 이라크 전쟁을 지지했다.

    냉전시대, 미국의 진보적인 자유주의자들은 레닌의 제국주의론을 의식하여 헤게모니(패권)라는 용어를 꺼려했고, 반소-반공을 명분으로 자행되는 미국의 무분별한 대외 군사 개입에 좌절해야 했다. 이들에게 냉전 종식은 가치의 모순에서 해방될 수 있는 계기였다. 1990년대 좌파와 자유주의 일각에서 이제 미국의 힘을 진보적인 목적 달성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견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마이클 월저는 내정불간섭과 자결권이 규범이지만, 스스로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고, 외부의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에게 그것은 규범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보스니아 세르비아인들의 무슬림 인종청소가 크게 주목받으면서 자유주의 매파는 군사 개입을 지지했고, 전쟁을 인도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정당화했다.

    이들은 보스니아 사태와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르완다 대학살의 군사 개입에는 매우 소극적이었다. 마이클 이그나티예프는 미국만이 인도주의 개입을 단행할 수 있는 능력과 결의를 갖춘 국가이기 때문에, 인도주의 개입은 결과적으로 미국의 이익과 일치해야만 하는 모순이 있다고 고백했다. 마리아 라이언의 연구에 따르면 자유주의 매파는 테러와의 전쟁을 자유주의와 또다른 전체주의인 이슬람 파시즘과의 투쟁으로 간주했고, 이라크 전쟁 반대자들을 자유주의 가치의 반대자, 유화론자, 사담 후세인의 지지자라고 공격했다.

    전쟁에 대한 반발로 오바마 행정부에서는 축소 담론이 등장했다.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대폭 늘어난 국방비는 미국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왔고, 2008년 서브프라임 금융위기와 이에 대비되는 중국의 부상은 미국이 가진 힘의 우위가 상대적으로 침식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을 낳았다. 이 같은 배경에서 등장한 축소(retrenchment)는 탈냉전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는 미국의 군사 개입에 반기를 들었다. 그 요점은 안보 공약 축소, 국방비 지출 절감, 위험 감소, 동맹국에 부담 전가를 통해 대외정책 비용을 전반적으로 줄여나가면서, 핵심이익에 자원을 집중하는 구조를 갖추는 데 있었다. 특히 군사행동이야말로 선별적 관여에서처럼 빈번한 선택이 아니라 드물게 사용하는 것이 되어야 했다.

    주류는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으려 했다. 이른바 깊은 관여의 핵심은 미국 주도하에 ① 동맹을 강화하고, ② 미군의 전방주둔으로 지역 불안을 억제하며, ③ 지역 기구를 강화하여 미국의 리더십을 보완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선별적 관여가 이론으로나마 미국의 이익 확보나 군사 개입에 있어서 너무 심하지도, 너무 적지도 않은 중도의 길을 모색하려 했다면, 깊은 관여는 이라크 전쟁을 정책 실패의 예외적인 사례로 간주하며, 미국의 군사 개입 역량을 강조하고 국방비 삭감에 거부감을 보임에 따라 축소론자들은 우위 전략과 별 차이 없는 것으로 간주했다.

    축소는 역사적으로 볼 때 성장하는 강대국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쇠퇴하는 강대국이 고려했던 정책 수단인 데다가, 과거 로버트 길핀은 강대국 지위를 위협받지 않는 한도 내에서 추진해야 한다는 단서를 붙였다. 따라서 깊은 관여 관점에서 축소는 미국 패권의 지속을 불확실하게 하고, 세계를 지금보다 더 위험하게 만드는 전략이었다. 축소론자들은 미국의 경제 체력에 알맞게 대외정책 비용을 조정하여 경쟁력 회복의 기틀을 마련하려고 했다. 그들에게 관여는 단극체제라는 현상황에 대한 위협을 억제하는 데 중점을 두기 때문에 위험을 사전에 제거하는 예방전쟁을 추구할 위험성이 높은 전략이었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 출범으로 자유주의자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 이틀을 앞둔 2017년 1월 세계경제포럼에서 조 바이든 당시 부통령이 자유주의 세계질서 수호를 위해 긴급히 행동할 것을 촉구한 것은 이들의 불안한 정서를 대변한 것이다. 자유주의자들이 무엇보다 심각하게 생각했던 것은 자유주의 질서의 위협자가 러시아와 중국, 이란이 아니라 이 질서의 설계자인 미국과 핵심 동조국인 영국이라는 사실이었다. 이것은 그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시나리오였다. 트럼프 집권 이후 진행된 자유주의 세계질서에 대한 격렬한 논쟁 속에서 전문가들은 위기의 수준이 ① 미국 패권, ② 자유주의적 국제주의, ③ 서구 자유주의 근대성 위기 가운데 어느 단계에 해당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근본적인 무엇인가가 진행되고 있다는 데 공감했다(존 아이켄베리는 자유주의 세계질서의 위기로 보지 않고, 질서를 이끌어온 미국의 권위에 위기가 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2018년 7월 초 몬타나에서 열린 한 집회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나토에 비용 청구서 지불을 요구하겠다고 하자, 뉴욕타임스가 편집위원회 명의로 즉각 비판 칼럼을 게재했다. 곧이어 자유주의 세계질서의 가장 열렬한 지지자들인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자들을 중심으로 로버트 코헤인, 조셉 나이 등 42명의 학자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국제질서의 핵심 기반인 국제기구(나토를 의미)를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공격했다고 비판했다.

    이 성명은 자유주의 세계질서를 반드시 수호해야 한다는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자들의 결의문이나 다름없다. 이들은 다음과 같은 사유로 이 질서의 지속을 주장했다. 첫째, 자유주의 세계질서의 구축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류가 평화와 번영을 지속했다. 자유주의 질서 아래 제도적 협력 체제를 구축함으로써 국가 사이의 이해관계를 파악하여, 갈등을 조정했고, 분쟁을 최소화했다. 둘째, 이 과정에서 미국의 리더십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미국은 억압적인 리더십을 구사하지 않았다. 초강대국인 미국이 질서 안에 위치하여 중심을 잡아줌으로써 자유주의 세계질서는 참여국들에게 힘의 논리가 아니라 규칙과 제도를 중심으로 운영될 수 있다는 신뢰감을 주었고, 참여국들은 국제기구가 가진 구속력이 힘의 비대칭을 해소해 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미국의 리더십을 수용했다. 셋째, 자유주의 질서는 미국에게 유리한 일종의 구글 검색엔진이다. 자유주의 질서는 설계자인 미국과 이용자인 참여국을 연결하고 서로 의존케 하는 거대한 집합체이다. 예컨대 구글이 유튜브, 안드로이드, 구글플레이, 구글맵스 등으로 생태계를 확장하면서 영향력을 확보한 것처럼 미국은 G7을 G10으로, G10을 G20으로 확장하면서 그 영향력도 외부로 같이 확산시켜왔다.

    2002년 이라크전 반대와 2015년 이란 핵협상 촉구 성명을 주도했던 많은 학자들은 반트럼프 자유주의 질서 수호 성명에 참여하지 않았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저술한 그레이엄 엘리슨은 자유주의 세계질서는 신화에 불과하다고 딱 잘라 말했고, 패트릭 포터는 상상의 세계라고 말했다. 자유주의 세계질서의 비판자들은 그 옹호자들을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첫째, 자유주의 세계질서 위기의 책임이 트럼프 행정부에게 있다는 것은 과도한 비판이다. 위기의 원인에는 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쇠퇴와 중국의 부상, ② 국내외적인 불평등 심화의 압력, ③ 서구 중심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속성 ④ 과학 기술 발전에 대응 능력 저하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들은 위기의 결과물인 트럼프 정권에 대한 비난에만 집중함으로써, 정작 자유주의 세계질서의 개혁이나 대안 논의 등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는 관심이 없다. 둘째, 자유주의 세계질서에 절대적인 권위와, 도덕적인 가치를 부여하려는 과잉 해석에 문제가 있다. 예컨대 이들은 자유주의 가치를 훼손한 사례인 냉전 시기 미국의 우익독재정권 지원, 자유주의 질서의 규칙을 위반한 사례인 미국의 1971년 브레튼 우즈 체제 해체, 2003년 이라크 침공 같은 역사적인 사실들을 간과한다. 현실 속의 자유주의 질서는 미국과 같은 강대국의 예외적인 선택을 가능케 하는 비자유주의적인 요소가 혼합되어 있으며, 자유주의 가치만으로 질서가 유지될 수 없다는 한계도 분명히 존재한다.

    축소는 자제 전략으로 확대발전했다. 스스로 행동을 통제한다는 사전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자제(또는 절제, Restraint)는 미국의 대외 군사 행동을 억제하고 축소하는 데 목적을 둔 반개입주의이다.

    (그림 1) 제프리 프리드먼, 진보적인 대전략, Journal of Global Security Studies

    위 그림은 전략이 군사력 축소를 지지하는지 여부를 유형별로 구분한 것이다. 자제(restraint)는 현재 미국의 주요 전략 중에서 군사력 축소를 주장하는 유일한 전략이다. 반면에 깊은 관여(deep engagement)/자유주의적 국제주의(liberal internationalism)와 우위(primacy)는 군사력 축소에 동의하지 않는다. 바로 이 부분이 자제와 나머지 전략의 가장 핵심적인 차이점이다. 앞에서도 소개한 깊은 관여는 ① 지역패권에 도전하는 국가들을 억제하기 위한 충분한 군사력 확보, ② 동맹국 안전보장, ③ 세계 무역 네트워크와 규범 기반 제도 유지를 강조한다. 반면에 자제는 미국에 대한 위협이 과장됐다고 인식하며, 그동안 미국의 세계 전략 추진 과정에서 부작용이 심했던 해외 지역의 군사력 투입을 지지하는 적극적인 행동주의와 지나친 개입주의, 과도한 군사주의를 배격한다.

    자제론자(restrainer)들은 국제문제의 갈등 해결 수단으로 전쟁보다는 외교를 우선하며, 강대국들과의 관계에서도 협력적인 방식을 선호한다. 동맹국의 안보는 동맹국이 주도하게끔 변화되어야 하기에 미군은 해외 전방주둔에서 철수해야 한다. 자제 전략의 불씨를 피운 베리 포이젠은 지상군보다는 해군의 역할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에서 가장 적극적인 자제론자이다. 스티븐 월트와 존 미어샤이머는 미국이 다극 또는 다중심세계에서 균형자 역할을 하는 역외균형(Offshore balancing)으로 복귀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잠재적 패권에 맞선 미국의 군사개입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림 2) 폴 C. 애비 외, 대전략 구분, Texas National Security Review

    다음 그림은 국제기구가 미국 이익 확보에 중요하다고 여기는지 여부를 유형별로 구분한 것이다. 깊은 관여(deep engagement)/자유주의적 국제주의(liberal internationalism)는 일반적으로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주의 세계질서의 유지·보존을 목표로 하는 동일한 개념의 전략으로 인식된다. 따라서 해당 전략은 국제기구와의 협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반면에 냉전 종식 후 나토 확대를 추진한 것은 전략적인 실수였다고 생각하는 자제(restraint)는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역할 축소를 지지하며, 우위(primacy)는 경우에 따라서는 패권국인 미국의 자율성을 극대화하는 단독(unilateral) 행동의 의지가 강하다.

    (그림 3) 폴 C. 애비 외, 대전략 구분, Texas National Security Review

    세 번째 그림은 전략을 국제관계이론의 유형별로 구분한 것이다. 자제를 제외한 나머지 전략들은 단극체제(패권)의 유지와 안정에 중점을 두는 패권 안정 이론과 관련이 깊다. 미국의 힘은 선한 것이며, 그 힘은 주도(lead/leadership), 우위(primacy), 자유주의 패권(liberal hegemony), 패권(hegemony)과 같은 여러 용어로 표현된다. 자제의 한 축인 현실주의 세력균형은 단극체제와 패권을 불안정과 위협으로 보고, 국제 질서는 패권국에 힘이 편중되면서 나타나는 불균형으로 인해 힘의 균형을 찾게 되고, 새로운 강대국이 출현함으로써 힘이 재분배되는 과정이 반복된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진보주의자들은 독자적인 세계전략이 없고, 대신 자제 전략을 연구하는 싱크탱크와 반전운동조직에서 활동하고 있다. 자제에는 베트남전쟁과 이라크전쟁을 반대했던 반군사주의 철학이 담겨있다. 그렇다고 해서 자제의 지지자들이 모두 진보적이지만은 않다. 찰스 코크라는 자유지상주의를 신봉하는 억만장자가 전략의 확산을 위해 학계와 연구기관에 3,730여만 달러나 기부한 것은 큰 정부에 대한 거부감의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정치권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강력하게 비판하는 정파는 공화당의 포퓰리스트 우파로서, 그것은 자제와 ‘미국 내셔널리즘’ 사이에 국제주의 비판이라는 공통분모가 있기 때문이다(진보주의는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자제 담론의 이 같은 폭넓은 확장성이 엠마 애쉬포드의 지적처럼 단순 호기심에 머문다면 대안 전략으로의 성장에는 한계가 있다.

    현재 미국의 세계전략은 평상시에는 미국의 힘을 절약하고, 비축해 놓았다가, 결정적인 순간이 왔을 때 그 힘을 활용하자는 입장과, 사후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너무 위험 부담이 크기 때문에 언제나 힘을 유지(또는 계속 확장)하고 있다가, 조기에 그 싹을 제거하자는 입장으로 나눌 수도 있다. 후자 입장에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면, 깊은 관여는 미국 주도 질서의 유지가 당면한 과제인 반면,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와 우위는 미국 주도 질서의 확산까지 염두에 둔다.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는 물리적 폭력을 최후의 수단으로 생각하지만, 우위는 자유십자군의 역할을 언제든지 마다하지 않는다.

    정리해 보면,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과의 냉전에서 봉쇄 전략을 수립했다. 소련이 해체하고, 1990년대 탈냉전 시대가 도래하면서 미국은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를 앞세운 단일 패권 전략을 추진해왔다. 그런데 2008년 서브프라임 금융 위기를 기점으로, 자유주의 세계질서에 대한 회의가 싹트면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에 비판적인 트럼프 행정부의 탄생으로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다. 자유주의의 귀환으로 평가받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의 짙은 당파성은 미국이 더 이상 합의에 기반한 세계전략이 탄생할 수 없는 시대에 와있음을 증명한다. 깊은 관여의 주요 이론가들이 트럼프 행정부의 세계전략과 깊은 관여의 동질성을 강조하는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와 거리를 두려고 하는 것도 바이든 행정부에 비판적인 공화당 지지층을 포섭하여 초당파적인 정치적 기반을 가진 전략이라는 입지를 구축하기 위해서이다.

    미국은 지난 80여 년 동안 제2차 세계대전, 냉전, 탈냉전을 거치면서 미국의 주도권을 강화하고,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 기간에 형성된 블롭(외교정책 엘리트 집단)과 군산복합체 같은 기득권층은 단극체제 유지라는 슬로건 아래 집단적인 사고를 하는 일체감을 보여 왔다. 다른 한편으로 현 상황은 미국의 객관적인 위치가 빠르게 추락하거나, 미국이 급속도로 쇠퇴하거나, 전쟁에서 참패함으로써, 미국의 변화에 압박이 가해지거나, 미국민들의 변화 욕구가 폭발하는 시기가 아니다. 결국 미국의 주류는 그동안 추구해왔던 세계전략의 기조를 바꾸는 모험에 나서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미국의 힘은 강하다는 자신감과, 미국 내에 변화를 모색할 주체가 부족하다는 점도 근거가 된다. 이들의 시각에서 축소는 미국의 약점이며, 미국을 더 위협하는 요소는 중국이 아니라 자제라고 생각할 수 있다. 자유주의적 국제주의 진영을 대표하는 다니엘 듀드니와 존 아이켄베리가 2021년에 자제론자들과의 논쟁을 매우 공격적으로 전개했던 것은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 <국방칼럼> 연재 링크

    필자소개
    국방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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