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퓨전 음식과 유학파 그리고 패밀리 레스토랑
    By
        2007년 03월 03일 09:12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음식문화가 쉽게 보급되지 않는 이유?

    이번에 다룰 음식문화는 청담동이라는 지역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음식의 전파와 확산에 관한 내용이다. 앞서 이태원과 가리봉동의 음식문화를 다루면서 이주의 실질적인 내용에 따라 형성된 음식문화의 구체적인 형식, 즉 레스토랑의 위치, 메뉴, 밥먹는 예절 등과 같은 것이 가지는 함의가 무엇이었는지를 엿보았다.

    외국 음식이 우리사회에 소개된 대표적인 두 지역의 음식문화은 90년대 중반까지는 그리 한국사회 전반으로 보급되거나 확산되지는 못했다.

    그 이유는 앞에서 말했던것 처럼 이태원의 경우, 그 양식문화는 너무나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지배문화였던 탓에 일반대중이 그 음식문화를 ‘가깝게 하기에는 너무나 먼 당신’이었을지 모른다. 어린 시절 레스토랑에서 칼질을 할때 느껴야 했던 왠지 모를 어색함과 남모를 자괴감은 이러한 위압적 문화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이 아니었을까?

    반면에 가리봉동의 음식문화는 노동하는 사람들, 즉 외국인 노동자들의 이주와 함께 더불어 소개된 음식문화이다. 이태원 처럼 권위적이지도 않고, 폐쇄적이지도 않게 시장대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값싸고, 왁자지껄 떠들썩하게 먹고, 마시고, 즐길 수 있어서는 ‘서민적’이고 ‘대중적’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과연 왜 그럴까? 그 이유를 우리는 ‘청담동’을 엿봄으로써 조금은 ‘맛’볼 수 있다.

       
      ▲ 청담동 로데오거리의 고급매장
     

    한국 사회, 문화의 아이콘, 청담동

    청담동은 우리 사회, 문화영역에서의 한 아이콘이다. 다시말해 청담동의 문화를 이해한다면 최근 우리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회, 문화적 현상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사회를 이해하는데 어디 왕도가 있고, 키워드가 있겠는가마는 내 생각에는 또 굳이 알아서 나쁠 것도 없을 것 같다.

    물론 청담동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청담동이 가지는 경제적 자본과 문화적 자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먼저 경제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신흥 부르조아지와 엘리트 계급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곳이고, 이들의 소득수준과 소비는 여타의 다른 지역에 비해 크게 높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평당 3천에서 4천만원하는 아파트를 소유하고, 조금 품위 있는 체하며 살기 위해서는 아마도 최소 월평균 5백만원 이상은 벌어야 할 것이다.

    패션, 소비, 음식 등 청담동의 문화는 이러한 신흥계급 또는 지배계급의 문화를 반영한다. 고급 부띠끄, 의상실, 명품상점들이 줄지어 있고, 그것들을 소비하고 홍보하는 연예인과 기획사들이 넘쳐나는 곳. 쇼윈도에 내걸린 상품을 보면서 대중들은 그것을 ‘선망’하기는 하나 그것을 ‘가질’ 수는 없는 현실에 직면한다.

    이 지역의 상품은 상품 자체가 가지는 ‘기능’으로서의 의미는 잃어버린다. 대신 그것은 지배계급의 ‘상징’, 또는 ‘기호’로 인식되고 보급된다. 마치 옛날 영국 귀족의 문장이나 상징처럼 말이다.

    청담동의 퓨전레스토랑과 그 ‘맛’

    청담동의 음식문화 역시 위에서 말한 문화적 맥락과 그 궤를 함께 한다. 청담동 주택가 구석구석 위치한 고급 레스토랑은 자가용 없이 찾아가는 것 자체가 이상해 보일 정도이다. 게다가 커피 한잔 값이 설렁탕 두그릇 값이 넘는 가격대니 그 음식값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짐작이 갈 터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청담동의 레스토랑을 가기를 ‘선망’하고 그 음식 맛을 ‘칭송’한다. 그러나 그것은 아마도 ‘맛’을 떠나 한시대 엘리트들의 ‘삶’에 대한의 동경과 그것의 ‘구매욕’이 아닐까?

       
      ▲ 퓨전레스토랑의 원조격인 시안의 퓨전요리

    이 지역의 레스토랑이 대중적으로 노출되기 시작된 것은 90년대 중반이다. 그중 가장 잘 알려진 레스토랑인 시안(Xian)은 1998년초 사람들에게 생소한 이른바 ‘퓨전요리’를 선보이길 시작했다.

    퓨전요리란 말 그래도 여러 문화의 음식의 재료 또는 조리법을 혼용하여 만들어 낸 음식을 말한다. 그렇다고 단순히 음식문화가 섞여 있다고는 말할 수는 없다.

    즉 최근까지 퓨전음식의 트렌드는 서양음식을 기본으로 하여 동양이나 기타 문화의 소스나 향신료를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간장, 와사비, 된장, 생강, 마늘과 같은 동양의 향신료들의 적극적으로 사용되면서 재창조된다.

    음식문화 보급의 비밀?

    이러한 음식의 퓨전화는 경제 수준의 향상과 더불어 여러 문화의 맛을 접해볼 수 있는 기회가 증대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동양 음식이 건강에 유익하다는 믿음이 상업적인 마케팅과 맞물리면서 발전된 기원을 가진다. 문화적 저항이 큰 음식부문에서 음식의 퓨전화는 우리 나라 사람의 많은 관심을 유발시켰고, 이국적 음식에 대한 저항을 비교적 쉽게 허물어 버리는 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음식의 퓨전화는 한국에서 창조된 것이 아니라 사실은 미국을 중심으로한 서양 국가에서 유래한 수입한 것이다. 1970년대 미국 음식사업에서의 말레이시아 음식과 중국음식과의 퓨전화에 이어 베트남, 태국음식과의 퓨전화, 뉴프랜치(New French), 뉴아메리칸(New American)로 일컫는 퓨전화의 연속선상에 있던 것이다.

    즉 우리나라에 이때 도입된 음식의 퓨전화는 이러한 서양의 음식 트렌드에 한국적인 맛을 가미한 정도라고 할까? 물론 그것도 음식문화에 있어 하나의 진보이긴 하지만 어쩐지 창조적인 맛은 좀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당시 문을 연 대부분의 퓨전 레스토랑 주인들이 대부분 유학파라는 것에서 확인될 수 있다. 레스토랑 ‘시안’을 비롯하여, 유명한 ‘원스 인어 블루문’의 사장 역시 대표적인 유학생인 것이다.

    이 청담동 음식문화에 내장되어 있는 미국의 최신 트렌드와 이를 습득한 부유한 유학생의 결합이 어쩌면 새로운 음식문화가 빠르게 우리사회에 보급된 비밀일지 모른다. 즉 청담동의 음식문화는 프랑스의 사회학자 부르드외가 말하는 경제적 자본이 지식, 교양, 취미, 감성의 문화자본(capital culture)으로 연결되고, 문화자본의 한 형태인 학력자본(educational capital)이 상호 연대지급보증을 통해 다른 피지배계급과의 계급적으로 또는 문화적으로 ‘구별짓기’하는 형태일지 모른다.

    이런 의미에서 청담동은 음식에서도 패션이나 명품 유행과 마찬가지로 ‘상징’과 ‘기호’를 통한 지배가 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하나의 아이콘이다. 사실 이 아이콘의 의미를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성공한 것은 대기업들이다. 이 흐름을 간파하여 90년대 중반 이후로 우리나라 거의 모든 대기업들은 외국 음식을 파는 패밀리 레스토랑 외식사업에 뛰어 들었다. 즉 가장 유능한 음식문화의 전달자임을 표명한 것이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