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향을 바꾸고 돌려야
    피크 코리아의 분기점에 선 2023년
    [정의로운 경제] 인구 감소, 산업 공동화, 기후 위기
        2023년 01월 04일 09:4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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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악의 해를 예고한 2023년

    “기대가 없다” 많은 이들이 2023년 새해를 맞으면서 들었던 느낌이리라 생각한다. 지난해부터 예고되었던 상황이라 특별히 놀랍다거나 불안할 것도 없다. 콜린스 영어사전은 2022년의 단어로 ‘영구적 위기(permacrisis)’라는 신조어를 지정했다. 영국 경제잡지 이코노미스트는 이 단어가 “2023년 밝아오는 오늘날의 세계를 가장 정확하게 요약하는 추한 합성어”어라면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열거했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1945년 이래 유럽에서 가장 큰 지상전,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가장 심각한 핵 위기 고조, 1930년대 이후 가장 광범위한 제재 체제로 이어졌다. 급등하는 식량과 에너지 비용은 많은 국가에서 1980년대 이후 가장 높은 인플레이션을 부채질했고, 현재 중앙은행 시대의 가장 큰 거시경제적 도전 과제를 제시”했다. 이로 인해 “국경은 불가침이어야 하고, 핵무기는 사용되지 않아야 하며, 인플레이션은 낮고, 부유한 국가들의 불은 언제나 켜져 있어야 한다는, 수십 년 동안 유지되었던 가정들이 모두 동시에 흔들렸다”고 평가했다.

    한마디로 최근에 볼 수 없었던 지정학적 위기, 에너지 위기, 그리고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 위기가 2023년 우리가 사는 세상을 동시에 지배할 것이라는 말이다. 우울한 생각이 안 들면 이상하지 않은가? 글로벌 추이를 반영하듯 새해 벽두부터 남북한 사이에 호전적인 언사들이 넘쳐나고 있고, 기업들은 위기관리 경영과 고용감축을 공언하고 있으며,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한 급격한 금리인상으로 부동산을 포함한 자산가격 하락은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당장의 비관적 숫자 이면의 궤도 이탈 신호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비관적인 전망들과 나쁜 숫자들에 집착하고만 있을 때는 아니다. 그보다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저변에 흐르는 사회경제적인 방향의 전환이다. 특히 세 가지의 장기 흐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는 인구감소다. 한국의 인구는 2019년을 정점으로 2020년에 처음으로 약 3만 명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2021년 다시 19만 명이 줄어들었다. 0.8 미만으로 떨어지기 시작한 2022년 출생률이 전무후무하게 낮은 수치라는 것을 감안할 때 인구감소는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될지 모른다. 극단적인 인구감소는 그 사회가 미래가 없다는 증상의 최종적 결과물이다. 그런데 기록적으로 낮은 출생률조차도 어느새 면역이 된 듯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두 번째는 글로벌 경제환경의 변화에 따라 예상되는 한국의 산업공동화 가능성이다. 북미와 유럽이 스스로 제조업 기반을 아시아에 의존했던 세계화의 혜택을 톡톡히 누렸던 나라가 중국, 대만, 일본, 그리고 한국이었다. 하지만 최근 지각변동이 생기고 있다. 그 상징이 미국이 지난해 통과시키고 올해부터 시행하는 반도체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일명 IRA법)이다. 핵심 산업을 자국으로 되돌리면서 일자리 창출까지 하겠다는 것이다. 유럽도 이에 대응하여 원자재법(raw material act)과 ‘유럽산 우선 구매법(Buy European Act)’을 준비한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는 자국 산업과 제조업 기반을 어떻게 새롭게 구축할지에 대한 고민은 없는 채, 첨단 반도체, 배터리, 자동차 기업들이 짐싸서 미국과 유럽으로 속속 떠나는 것을 방관하거나 뜬금없이 ‘수출 부흥’을 강조하고 있는 실정이다.

    셋째로, 미래 세대의 운명은 물론 경제와 국가지형까지 바꿀 기후대응에 뒤처지고 있는 것도 중대 사안이다. 지난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의 상황을 보면 에너지 위기를 전환의 분기점으로 삼은 사례가 적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나라가 당시 풍력발전에 전격적으로 뛰어들어 현재 최고의 풍력발전 기술을 보유한 덴마크다.

    기후위기 시대인 지금의 에너지 위기는 한층 차원이 달라졌다. 미국 IRA법이 재생에너지 투자에 대안 전폭적인 지원을 담고 있는 것이나, 유럽의 리파워 유럽 계획(REPower EU Plan)이 2025년까지 태양광 발전용량을 현재의 두 배인 320GW까지 올리고, 2030년까지는 다시 두 배에 가까운 600GW까지 올린다는 계획을 담고 있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그런데 화석연료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선진국들 가운데 기후대응이 가장 부실한 국가 중 하나가 한국이다. 심지어 한국은 오히려 재생에너지 비중을 축소시키는 역진적인 정책으로 돌아서면서 스스로 미래를 향한 방향전환을 차단하고 기후후진국으로 남으려 하고 있다.

    피크 코리아, 한국은 정점을 지나고 있나?

    하와이 전략국제문제연구소 고문 브래드 글로서먼(Brand Glosserman)은 2019년에 출간한 <피크 재팬>이라는 책에서, 지난 2010년대 아베 정부 시기가 일본 국력이 최정점에 달한 시기이며, 일본은 더 이상 미래의 도전에 적응할 능력이 한계에 도달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일본 시민들이 “국가에 불만을 느끼면서도 전면적인 변화를 감수하는 것을 기피하는 모습” 즉 무기력함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

    하지만 정작 정점에 오르기도 전에 미끄러질 위험에 처한 것은 한국이 아닐까? 한국은 2021년에 겨우 유엔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선진국의 지위를 인정받고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자 문화적으로도 영향력 있는 국가로 올라섰다. 하지만 미래는 절대로 밝지가 않다. 앞서 확인했던 초유의 급격한 인구감소, 산업기반의 붕괴 위험, 그리고 기후위기 대응의 역진은 한국을 정점에서 끌어내리기에 충분한 중력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조국 전 장관 사태가 불거지고 부동산 가격 폭등이 본격화되었던 2019년, 정점이 이미 지나갔는지 모른다. 그때부터 온갖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기 시작했고 그 연장선에서 2022년 대선으로 윤석열 정부가 들어섰으며, 직면한 거대한 도전과제를 외면한 채 온갖 쟁투와 이권 다툼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다.

    일각에서는 윤석열 정부의 퇴행을 지난 박근혜 정부의 퇴행과 비교한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명목적으로라도 ‘경제민주화, 복지, 일자리 창출’이라는 거시개혁 방향을 수용했다. 현재 윤석열 정부는 완전히 다르다. 윤 정부는 미래에 대한 뚜렷한 좌표를 전혀 가지고 있지 못한 채, 호전적 성향과 억압적 성향, 극단적인 시장주의 경향 등 종잡을 수 없는 불안정성을 드러내고 있다. 뿌리 없는 우익 포퓰리즘의 전형처럼 보인다. 특히 신년사에서 노동개혁, 교육개혁, 연금개혁을 말하면서 우리 사회의 기득권이 대기업이나 정치, 행정, 언론, 학계의 엘리트 집단이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로 규정한 것도 예사롭지 않다. 거대 기득권에 눈감은 채 기성세대나 정규직 기득권을 희생양으로 몰아 국민들의 불만을 해소하려는 징후가 보이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글로벌 추세와 달리 윤 정부는 ‘통화긴축과 재정긴축’을 동시에 하면서 여기에 ‘무차별 감세’까지 얹고 있어 상황을 파국적으로 몰고 갈 개연성조차 있다. 그러면서 뜬금없이 “복지야말로 재원 역시 결국은 저희가 해외에 가서 벌어 와야 되는 것”이라면서 수출에 목을 매고 있다.

    문제는 민주당이나 정의당 등 야당의 대응이 윤석열 정부와 여당의 역진에 대한 수동적 대응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윤 정부의 노동개악이나 감세 등 역진적 정책이 나오면 상황 대응적으로 비평을 할 뿐, 국민들에게 거대한 도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어떤 방향으로 반전을 시켜야 할지에 대해 의미 있는 화두를 던져주지 못하고 있다. 당장의 상황 대응도 필요하고, 해결해야 할 구체적인 현안들도 소홀히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방향이 없이 현안에 매달리게 되면 결국 길을 잃게 될 수도 있다.

    * <정의로운 경제> 연재 칼럼 링크

    필자소개
    전 정의정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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