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대통령의 인식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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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2월 28일 04:1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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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 FTA로 추가적인 양극화는 없다."

    이것이 인터넷 신문협회의 합동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제시한 자신의 한미 FTA 인식인 것 같다. 명제로 전환하면, 이미 양극화는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힘이고, 이걸 BAU(Business-As-Usual. 당연한 현상)로 놓았을 때, 추가적인 것(additionality)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주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인식에서 ‘양극화’라는 요소는 대통령에게 일종의 기준선(baseline)이 되는 셈이다.

    이데올로기에 대한 얘기들을 전부 빼고 대통령이 표현한 ‘메카니즘’이라는 용어만 놓고 볼 때 이렇게 재구성할 수 있다.

       
      ▲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4주년, 노무현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한국인터넷신문협회 소속16개사와 합동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청와대 브리핑)
     

    질문자가 ‘양극화’라는 단어로 질문을 했는지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질문자는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반대 입장도 만만치 않다고 물어보았는데, 대통령이 양극화라는 단어로 말머리를 풀었던 셈이다.

    정리해보면, 양극화라는 현상은 존재하지만 어차피 한미 FTA로 인하여 추가성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고, 미국의 개방폭이 줄어든만큼 우리나라의 개방폭이 줄어들었고, 게다가 일본과 중국이 미국과의 FTA 협상에 주도적으로 나오지 않는 만큼 우리에게는 더 좋은 상황이다… 이 정도가 아닐까 한다.

    1. 양극화만이 부작용은 아니다

    이건 아주 나의 개인적인 편향 때문이지만, 나는 양극화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내가 양극화라는 용어를 썼던 것은 15년 전의 일인데, 수출산업과 내수시장에서의 재벌과 중소기업의 양극화라는 의미로 썼다. 그리고 중남미 경제와 아프리카 경제에 대해서 글을 쓸 때 수출을 하기 위한 커피나 플랜테이션 농장과 쌀과 같은 내수용 곡물 생산의 농업 분야에서 양극화라는 용어를 쓴 적이 있다.

    그러나 나는 개인적으로 양극화라는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이건 내가 신자유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과는 조금 다른 의미이다. 우리나라 경제가 양극화가 문제인가? 나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양극화는 통계적 현상일 뿐 본질 아니다

    국민경제의 기본 시스템이 붕괴되는 것의 결과로 양극화 같은 것들이 등장하게 되지만, 이것은 통계적인 ‘현상’이지 본질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혹시 나의 졸저를 읽으신 분이 있다면 그곳에서 내가 양극화라는 용어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을 아실 수 있을 것이다.

    한미 FTA가 양극화를 가중시킬 것인가? 만약 ‘양극화’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면 분명히 그런데, 문제는 양극화냐 아니냐가 아니라 시스템이 버틸 수 있을 것인가 아닌가의 문제이다.

    한미 FTA를 경제모델로 얘기한다면, 미국 경제와 한국 경제 사이의 관계가 워낙 포괄적이고 중층적이라서 현재의 정부 모델은 ‘충격과 적응(shock and adaptation)’ 모델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일단 충격을 주고, 그 충격을 버텨나가다보면 어떤 식으로든 혁신(innovation)이라고 부르는 현상이 벌어지게 된다. 아주 상식적인 눈으로 정부가 추진하는 한미 FTA를 보면, 이 적응 과정에서 무엇인가 벌어질 수 있다라는 것이 긍정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예전처럼 관세율이 20~30% 되던 시기에는 관세율 저하가 개방이 주요 변수가 된다. 그런데 미국 시장의 관세율은 2% 정도이기 때문에 한미 FTA는 관세율 협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8% 정도라서 실제로 이 정도 관세율은 농업의 아주 예민한 일부를 제외하면 개방해도 대체적으로 버틸 수 있을 정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농업 부문의 충격이 큰 것은 평균 관세율이 8%라도 농산물에는 보호관세가 더 높게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2% 관세율, 특히 우리나라가 미국에 수출하는 주력 품목들인 전자제품과 IT 관련 상품의 경우는 이보다 더 낮기 때문에 관세율 하락이 실물경제에서 그렇게 중요한 목표가 되기는 어렵다.

    "그거라도 더욱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이건 해보는 말이다. 원화와 달러화 사이의 교환비율인 원화환율의 분기별 등락폭도 이 관세율 폭보다는 크다. 정말로 한국 상품의 2% 경쟁력이 문제가 된다면, 1차적으로 경제당국이 해야할 일은 한미 FTA가 아니라 환율방어를 위한 거시경제의 종합적 운용이다. 물론 환율에 개입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세계 10위권인 현재 한국경제 규모에서 2% 환율변동은 충분히 거시경제 운용목표 정도로 할 수 있는 범위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국민경제 운영 방안의 변화

    쉽게 표현한다면, 전통적인 개방에 대한 한미 FTA에 대한 경제적 효과는 관세 효과는 아니다. 만약 정말로 그게 목표였다면 한미 FTA 보다 훨씬 쉽게 그런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정책수단을 우리는 이미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래도 2%가 중요하다… 정말 이렇게 믿는 사람이 있다면, 모든 경제주체가 하루에 5분씩 일을 더 하자면 된다. 이해영 교수가 계산한 것에 의하면 그 정도라고 한다(나는 이 계산은 안 해봤다). 5분씩 일을 더 하면 이 정도의 효과가 국민경제에서 발생한다.

    개방해야 산다… 대통령도 주장하듯이 이미 거의 다 개방되어 있고, 또 우리나라를 특수부문들을 개방하는 것은 한미 FTA가 아니더라도 개별적으로 개방하면 된다. 농업의 일부가 남아있지만, WTO 개방에서 예외로 남은 아주 일부를 제외하면 국민들이 경제라고 알고 있는 것은 이미 다 개방되어 있는 셈이다.

    그래서 한미 FTA의 실제 효과는 국민경제에 일시에 불어닥치는 ‘충격’의 효과를 갖는 것이다. 관세효과, 개방효과… 이런 것들은 개별적으로 따지면 미미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바뀌는가? 거시경제를 포함해서 개별 산업에 대한 운용방안과 복지에 대한 시각 그리고 노동과 자본의 관계와 같은 국민경제의 운용방안이 바뀌는 것이 가장 크다. 개별 시장에서의 소소한 – 그러나 농업에는 결정적인 – 변화와 함께 경제에 대한 사회적 관계의 변화를 ‘충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충격이 없다면? 그렇다면 뭐하러 한미 FTA를 하느냐는 문제가 정말 심각하게 남는다.

    이런 적응과정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국민경제의 구조조정’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 충격을 우리나라 경제가 지금 견뎌낼 수 있느냐 아니면 견뎌낼 수 없느냐가 사실이 한미 FTA의 관건이다. 양극화 같은 통계상의 지표는 이런 것에 의한 종속변수이다.

    2. 국민들이 버텨낼 수 있는가?

    "정부가 주도하는 ‘충격’을 국민들이 버틸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 ‘국민경제’가 버틸 수 있는가라는 두 가지 질문이 사실상 한미 FTA 논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두 가지는 조금 다르다. ‘버퍼(buffer)’라고 하는 개념은 국민경제를 설명할 때 자주 쓰는 개념은 아니지만, 제3지대라고 표현하면 될 것 같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농업이 이 역할을 해왔고, 70년대에는 구로동으로 상징되는 수출기업들이, 그리고 80년대에는 중소기업이 그리고 IMF 경제위기 이후에는 자영업이 이러한 역할을 했다.

    한미 FTA 논쟁의 두 가지 핵심

    정 안되면 "뭐라도" 한다고 할 때 이 "뭐"가 바로 버퍼라고 할 수 있다. 충격이 닥치면 한 부문에서 대량의 실업자들이 발생하게 된다. 혹은 여러 분야에서 조금씩 나올 수도 있다. 이 사람들이 갈 데가 없다면 거시경제 지표가 괜찮아도 국민경제는 붕괴하게 된다. 예전의 ‘버퍼’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농사라도 지으면 된다"고 하지만, 노무현 정부가 들어올 때에만 해도 평당 2만원 정도 하던 농지가 지금은 전국적 개발붐을 타고 어지간하면 10만원은 다 넘어갔고, 아산이나 원주 같이 비교적 서울에서 가까운 곳은 비교적 초기에 20만원을 다 넘어섰다. 접경지대인 철원 같은 곳은 말할 것도 없고, 땅끝에 가까운 구례 같은 곳도 다 이 정도이다. "농사라도"가 아니다.

    98년 환란 때에는 자영업이 ‘버퍼’ 역할을 해줬다. 그렇지 않았으면 아마 대한민국 경제라는 특별한 국민경제 시스템이 10년 전에 이미 중남미형으로 전환되었을 것이지만, 당시에 대량 발생한 정리해고 감원자들을 동네 구멍가게에서 빵가게 그리고 프랜치이징 업소까지 상당수를 흡수해줬다. 물론 개인들의 소득수준은 줄어들었고, 대기업에 종사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한심하겠지만, 길바닥에 나앉는 것보다 낫다.

    이렇게 질문해보자. 한미 FTA로 인해서 매우 작거나 혹은 매우 큰 구조조정이 거의 전부문에서 조금씩 발생할텐데, 이걸 ‘대기실업자’라는 전체의 눈으로 보면 1차 충격기에 적지않게 발생할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국민경제에 버퍼가 있는가?

    대통령은 이걸 "우리 국민은 강하다"라고 표현한다. 물론 대기업 부장 정도 하다가 명퇴금 받고 식당할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이 강하기는 하다. 그런데 지금은 이 문이 닫힌 상태이다.

    외부 충격에 대한 완충 지역이 없다

    예를 들면, ‘가정형 창업 기금’이나 혹은 소형 자영업에 대한 종합적 지원방안 같은 것들이 한미 FTA 추진과 함께 동시에 진행되었어야 할 일이다. 가난해도 뭔가 소득이 있다는 것과 국민경제 체계에서 아예 쫓겨난다는 것은 다른 일이다.

    농업은 심각한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기는 한데, 이 충격을 조금 분산시켜서 10년만에 망하는가 혹은 5년만에 망하는가 아니면 지금 망하는가가 해당 부문에서는 별 얘기가 아닐지 모르지만, 국민경제 전체에서는 그 시기가 중요하다.

    스크린 쿼터를 축소하고 나면 영화에서도 규모가 되는 한국형 블록버스터 일부와 ‘왕의 남자 시리즈’ 일부가 버티겠지만, 전체 고용의 규모가 줄어들 것은 뻔하다. 여기에서도 대기실업자 일부가 발생하게 된다.

    자동차 산업에서도 국내 시장에 결국 미국 승용차의 진출이 늘어나면 국내 조립라인에서 대기실업자가 발생하게 된다.

    방송개방을 하고 나면, 가장 약한 고리, 즉 지금도 비정규직인 방송작가를 비롯해서 외주업체들 중심으로 대기실업자가 발생한다.

    이런 식으로 각 부문을 따져보면 한미 FTA 이후에 버틸 수 있는 산업과 농업을 중심으로 충격을 그대로 흡수할 산업들이 발생할 터인데, 원사 원산지 조항으로 인하여 섬유산업의 미국수출이 획기적으로 늘지 않을 것이므로, 거의 대부분의 산업에서 약간씩 고용이 줄게 된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갈 수 있는 버퍼는 지금 우리에게 아주 협소하고, 좁다.

    "언젠가 올 충격이 아닌가?"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과정을 10년에 걸쳐서 종합적인 안목으로 시기를 조정하는 것과 한꺼번에 하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분명히 있다. 국민경제는 버텨낼지 몰라도 국민들은 지금 이 충격을 버티기가 어렵다. 이유는 ‘버퍼’에 해당하는 제3부문이 국민경제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현실적 대안은 이민밖에 없다? 

       
      ▲ (사진=청와대 브리핑)
     

    현실적으로 이러한 버퍼는 ‘이민’ 밖에 남아있는 것이 없다. 또 있는가? 그래서 대통령이 강하다고 자부심을 느끼는 그 국민들 중 상당수가 지금 이민을 검토하고 있고, 진짜로 문이 열린다면 나가겠다고 마음을 먹는 중이다.

    국민들은 충성심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개인들은 대통령 말대로 ‘현명’하다. 국민경제라는 눈을 버리고 나면, 대통령이 흐믓하게 바라보는 바로 그 "국민들" 중 상당수는 "이민 밖에는 답이 없다"고 고민하는 중이다. 아닌가? 20대의 절반 이상이 이민을 고민한 적이 있다고 한다. 국민들은 한미 FTA 충격을 못 버텨낸다.

    다만 이민이 무서운 것은 "양질의 중산층"이 주로 이 방법을 선택할 것이라는 점이다. 멕시코의 경우는 저소득층이 미국 국경을 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바다로 둘러쌓여 있기 때문에 중산층이 비행기 티켓을 들고 자식들의 손을 잡고 인천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부문별로 구조조정과 산업간 조정 시기를 조절하면서 하지 않고, 외부 충격에 의하여 일시에 한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다.

    "기왕 할 것이라면 한 번에 하면 좋지 않겠는가?"

    기왕 할 것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이런 어설픈 방식으로 임기 내에 기반을 만든다고 하면, 비록 그 방향이 좋더라도 그 충격파를 일시에 지금의 ‘버퍼없는 국민경제’라고 하는 한국 경제가 버텨내기가 어렵다.

    3. 국민경제는 버텨낼 수 있는가?

    투자자 직접 소송제는 아직도 신비에 쌓여있는 모호한 제도이다. 이것은 미국 정부와 한국 정부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다국적 기업을 중심으로 한 기업의 권력과 국민경제라는 모호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하나의 실체를 둘러싸고 있는 또 다른 힘의 관계이다.

    나는 "모든 집합을 포함하는 부분 집합"이라는 버트렌드 러셀의 역설로 이 제도를 설명하고 싶다.

    한미 FTA를 지금 형태로 그리고 대통령 집권 내에 한다고 하더라도, 제발이지 이것 하나만큼은 뺀다면 국민경제에 대한 논의를 비로소 할 수 있게 된다. 멕시코와 캐나다가 진짜로 당하게 된 제도가 이 제도이다. 호주는 이 문제를 호주와 미국 정부가 추천하는 패널위원회에서 결정하는 것으로 유일하게 이 문제의 해법을 제시한 경우이다.

    부동산, 환경, 노동을 포함한 우리나라의 모든 공공정책과 정부의 정책 전부가 이 제도 하나 앞에서 무기력하게 무너지게 된다. 세계 10위의 경제규모를 가지고 있는 한국이기 때문에 이 제도가 더 무서운 것이다. 어려운 국민경제이지만, 아직 우리나라에는 정부와 노동자가 그야말로 피땀으로 지난 50년간 만든 ‘알토란’ 같은 실체들이 존재한다.

    이 실체가 없다면 한미 FTA는 무서울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투자자 직접소송제 받아들이면 임기 후 청문회 설 것

    한미 FTA의 최후 마지노선은 개성공단도, 쌀시장 방어도, 미국 시장에 대한 접근권과 덤핑관세로부터 수출시장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투자자직접소송제이다.

    대통령이 변호사 출신이라서 충분히 알 수 있는 내용인데, 이걸 다음 정부에게 ‘업적’으로 넘겨준다면 다음 정부는 누가 되더라도 임기 내내 미국의 다국적기업으로부터 소송 아닌 소송에 시달리게 된다.

    국민경제의 효과분석 시나리오를 구성할 때, 이 제도가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의 두 가지의 결과가 너무 다를 것이다. 이 제도라도 뺀다면 비로소 우리나라 경제가 어떤 충격을 받을 것인가에 대한 기술적 분석이 가능하지만, 현재로서는 그 충격파의 범위가 가늠하기 어려워서 어떤 경제학자라도 신빙성 있는 기술적 분석을 할 수가 없다.

    예를 들면 캐나다 경우의 연장선에서 우리나라 우체국 택배에서 정부가 철수해야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충격을 가늠하기 어렵다. 하나로 마트는 정부의 보조금이 들어가므로 철수해야 한다. 농협과 농업에 미치는 영향만 큰 것이 아니라 먹고 사는 식생활의 패턴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방과 후 옥상’이라고 가끔 사람들이 농담하는 대통령이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학교를 중심으로 사교육을 흡수하고자 하는 일련의 프로그램들 역시 미국 사설업체가 영어학원에 진출하기로 생각하는 순간 국가 프로그램 전체가 소송 대상이 된다.

    참여정부의 부동산 프로그램도 전체적으로 소송 대상에 놓이게 되고, 심지어 양도소득세도 미국 건설업체가 국내에 진출하는 순간에 "부당하게 거래를 제약"하는 소송 대상일뿐인 정책으로 몰락하게 된다.

    그뿐인가? 마포의 당인리 화력발전부터 분당의 지역난방공사와 화력발전소에 이르기까지 부당하게 "청정연료"를 강요해서 경제성 있는 벙커 C유를 미국 발전업체가 사용할 수 없게 한다고 하면? 한국 정부가 부당하게 울산 지역에 부과한 대기보전특별대책지역 정책으로 인해서 미국 업체가 연료사용과 ‘정상적인 생산활동’에 받게 된 손실에 대해서 정부가 보상을 해야하는 경우가 발생하지 않을 것 같은가?

    장담하건데, 5년 내에 이런 일들이 발생하게 된다. 정부가 물어주는 배상금은 어디에서 오는가? 다 국민세금인데, 미국발 다국적기업들에게 이런 돈들 물어주라고 지금 죽어라고 국민들이 세금 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투자자직접소송제를 그대로 두고 "가능한 시나리오를 전부 검토했다"고 말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청문회로 스타가 된 대통령이지만, 이 제도를 그대로 두면 장담컨데 임기 후에 반드시 청문회장에 서게 된다.

    공무원들도 청문회 자료 준비하고 있다?

    공무원들? 외교부를 제외하면 법무부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정부 부처가 이 제도에 대해서 이의 혹은 반대의견을 제출했다는 증거를 확보하는 중이다. 왜냐고? 그들도 나중에 청문회에 서게 될 경우를 대비해서 근거자료를 만드는 중이다. 지금 이 근거자료를 만들지 않는 유일한 정부 부처는 외교부와 청와대 밖에 없다.

    3년 후를 상상해보자. "대통령은 왜 그때 그 건의를 무시했는가요?" 이 질문이 나오게 될 것이다.

    전두환은 청문회에서 눈을 지긋이 감고 쏟아지는 욕설을 참아냈다. 장세동을 비롯한 측근들이 전부 자신의 잘못으로 돌렸고, 광주의 발포는 결국 최종명령자가 누구인지 확인되지 않았다.

    "투자자직접소송제는 누가 받아들이도록 했는가요?" 외교부는 대통령의 지시였다고 할 것이고, 다른 모든 부처들은 "우리는 반대했다"고 할 것이다.

    현재 상태로는 임기 후에 한미 FTA는 분명히 청문회에 올라가게 될 것인데, 만약 투자자직접소송제를 현 정부에서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대해서 분과가 열리게 된다면, 이건 온전히 "대통령 지시사항"이 될 것이다. 물론 다른 공개되지 않는 것들의 일부도 청문회에서 공개될 것이지만, 1차로 대통령이 코너에 몰리게 될 것이 바로 이 제도이다.

    국민경제도 못 버티지만, 대통령도 못 버틴다. 대통령이 못 버틸 것에 대해서 내가 걱정할 바는 아니지만, 국민경제가 못 버틸 것에 대해서는 걱정이 앞선다.

       
     
     

    4. 어떤 메카니즘으로 양극화가 발생하는가?

    "충격과 적응" 모델은 원래 기업에서 사용하는 방식이다. 국민경제에는 이런 모델 안 쓴다. 한미 FTA를 통해서 협상 테이블에 올라와 있는 몇 업종만이 충격을 받는 것이 아니라, 투자자직접소송제는 전 부문에 충격을 주고, 예기치 않는 소송 대상이 될 전 정책과 전 부문에 충격을 준다.

    지금 정부기관과 정부출연기관에서 하는 모든 경제활동과 기금 그리고 허가사항 전 부문이 그 대상이 된다. 첫 소송 사례가 2년 후에 나올지 3년 후에 나올지를 현실적으로 가늠하기는 어렵다. 하나마나한 기금들에는 소송이 없겠지만, 지금 국민경제를 뒷받침하고 있는 다양한 제도들이 만약 실효성이 있다면, 거꾸로 미국 기업들에게는 불리한 것이 된다.

    한미 FTA 투자 부문 조항 한 페이지 혹은 어렵다면 ‘투자자’와 소송범위에 대해서 몇 조항만 바꾸더라도 지금보다 상황은 훨씬 나아질 것이지만, "우린 할만큼 했다"고 지금처럼 그냥 내버려두면 우리나라처럼 정부가 시장과 국민 사이에서 중재를 섰던 독특한 국민경제 모델의 밑바닥이 그냥 붕괴하게 된다.

    농업은 어차피 망하는 것 아니냐… 농업의 문제가 아니다.

    개방은 어차피 해야하는 것 아니냐…

    누가 반대한 적 있나? 다만 투자자직접소송제를 포함한 몇 개의 제도들은 시급히 손질해야 하고, 그러한 충격을 국민과 국민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보완제도들을 지금 만들어야 한다는 것 아닌가?

    내가 생각하는 한미 FTA로 인한 양극화 메카니즘은 이렇다.

    내가 생각하는 한미 FTA와 양극화 메카니즘

    ‘정부 주도’ 시장으로 출발한 유신경제가 IMF 경제구조조정 과정을 거치면서 ‘정부 매개’ 시장으로 바뀌었다가, 노무현 경제 시절에 완벽하게 ‘정부 토목경제’ 시장으로 전환되어 무정부 상태를 거치다가, 결국 한미 FTA로 붕괴하게 된다…

    한미 FTA로 인한 긍정적 효과는 없는가?

    이렇게 생각해보자. 대통령이 지금부터 삼성, 현대, LG를 포함한 재벌사를 포함해 노동계 각 부문, 농업계 각 부문 그리고 사립학교와 국립학교 등 우리나라 경제의 전 부문과 대화를 한다고 생각해보자. 이 중에서 자신이 한미 FTA로 이익을 볼 것이라고 전망하는 부문이 있을까?

    삼성도 삼성경제연구소를 통해서 양극화를 걱정하고, 현대자동차도 이미 공장은 미국으로 이전했고, 국내 시장만 내어주게 생겼다고 하는 이 마당에 도대체 누가 이익을 본다는 얘기인지 모르겠다.

    손해는 직접적이고, 이익은 간접적이라고? 그런 협상을 뭐하러 하나? 이익은 직접적이고, 손해가 간접적인 것들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2% 관세철폐를 위해서 8% 국내 관세를 내어주는 것이 직접 효과인데, 간접효과는 투자자직접소송제를 포함해서 대체적으로 무한대의 피해가 예상되는 것이 내 눈에 비친 한미 FTA이다.

    국정홍보처의 그녀는 오늘도 "무한대의 시장"이 열린다고 한다. 무한대가 아니라 1,700조짜리 시장이다. 우리나라 국민경제는 대충 900조짜리 시장이다. 저 쪽에 무한대의 시장이 열린다면, 이쪽에 무한대의 피해가 열린다. 투자자직접소송제 때문에 그렇다.

    국민경제 양극화는 발생하지 않는다. 국민경제 붕괴가 발생하기 때문에, 붕괴로 향하는 단일한 흐름이 발생하게 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5. 누가 제일 큰 피해를 보는가?

    정부에서 전혀 검토하지 않은 것들은 투자자직접소송제 외에도 많지만, 정말로 해보지 않은 중요한 일들이 존재한다.

    세대간 형평성이라는 말을 하기도 하고, 세대간 분배라고 말을 하기도 하는데, 한미 FTA가 50대, 40대, 30대 그리고 20대에 미칠 영향들에 대해서는 전혀 검토하지 않은 것 같다. 균일하게 영향을 미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한미 FTA와 세대별 영향

    이미 정규직 체계에 편입된 40대와 30대 그리고 은퇴를 앞두고 있는 50대에 비해서, 아직 정규직 체계는 물론이고 정상적인 경제활동에 편입되지 않은 20대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대통령은 한미 FTA를 해야 청년실업이 구제된다고 말했다. 이건 희망사항이겠지만, 그 구체적 메카니즘이 나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한미 FTA는 지금의 노동시장 악화를 통해서 20대를 강타할 것 같은데, 거꾸로 이게 청년실업의 해결책이라고 하는데, 알다가도 모르겠다.

    의학계와 법률은 개방에서 제외될 것 같은데, 그럼 전부 의사와 변호사를 하면 된다는 말인가? 버퍼 없는 국민경제에서 대부분의 전통 부문이 몰락하는데, 대통령이 생각하는 서비스업은 도대체 무엇을 얘기하는 것인가?

    졸저의 결론 한 부분을 인용하고 싶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방식과 일정 그대로 한미 FTA 협상이 종료하고 나면, 길거리에서 인사하는 일을 생계수단으로 가지게 될 젊은이들이 더욱 많아질 것이다. 머리 숙여 인사하는 것은 물론 미풍양속이지만, 인사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사회는 ‘서비스’는 약간 개선될지 몰라도 잘 사는 사회가 되기는 만무하다." (졸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26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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