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독교 세계가 만들고,
    시오니즘이 완성한 차별·배제의 역사
    [책소개]『유대인, 발명된 신화』(정의길/ 한겨레출판)
        2022년 12월 31일 09:0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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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대인 신화’에 숨은 폭력과 차별에 관한 가장 통렬한 고발

    ‘역사상 가장 오래된 증오’, 유대인 문제를 통해 차별과 혐오, 타자화의 논리와 문제점을 고발하는 책. 이 책은 추방, 유배, 이산, 귀환 등으로 요약되는 ‘유대인 신화’는 기독교 세계가 유대인이란 ‘타자’를 만드는 과정에서 탄생했음을 밝힌다. 또한 기독교 세계의 소수자로 살아가던 유대인들이 박해를 피해 ‘유대 국가’를 세웠지만, 이는 팔레스타인 주민에 대한 또 다른 차별과 폭력을 낳았음을 지적한다.

    〈한겨레〉 국제부 선임기자로 오랫동안 국제 분야를 취재하고, 특히 중동분쟁에 천착해 《이슬람 전사의 탄생》을 쓴 정의길 작가가 시간상으로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공간적으로는 유럽과 미국, 러시아, 팔레스타인을 넘나들며 유대인 문제를 치밀하게 분석해냈다. 유대인 문제의 중심에 놓인 소수자 차별과 혐오, 타자화의 문제를 살핌으로써 오늘날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우리’와 ‘저들’의 이분법을 돌아보고, 타자와의 공존을 모색한다는 점이 이 책이 현시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 이유다.

    기독교 문명 세계가 만든 ‘유대인 신화’

    유대인에게는 하나의 신화가 따라다닌다. 고대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 통일왕국을 세워 영광을 누렸지만, 로마에 의해 추방된 뒤 낯선 땅에 흩어져 살면서 많은 차별과 박해를 당하고, 2000년 만에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와 ‘유대 국가’를 건설한 민족이라는 신화다.

    이 책은 유대인에 대한 이런 신화들을 낱낱이 해체한다. 성서에 기록된 다윗과 솔로몬의 이스라엘 통일왕국은 궁벽한 산악 부족 국가에 불과했고, 로마가 생산자이자 납세자인 유대인들을 대거 추방할 이유가 없을뿐더러 이를 뒷받침할 증거도 없으며, 유대인들이 흩어져 사는 것은 애초에 다양한 지역에 살던 토착 주민들이 유대교로 개종한 결과다.

    이처럼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신화는, 기독교 문명 세계가 유대인을 박해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만약 유대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반유대주의자가 유대인을 고안해낼 것이다. 유대인은 반유대주의가 만든다”라는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의 말처럼, 기독교 문명 세계는 ‘우리’ 기독교도를 더욱 단단히 결속할 목적으로 유대인이라는 타자를 발명했다. 기독교 문명 세계는 유대인을 ‘예수를 거부한 죄로 저주받고, 천한 신분으로 떨어진 자들’로 규정했고, 그들에게 예수의 재림과 세상의 구원이라는 기독교 교리의 승리를 목격하는 증인의 역할을 부여했다.

    유대인들도 자신들이 고향에서 ‘유배’됐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기독교 세계 내의 소수자로 겪는 고난에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유배를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는 자들을 징계”(잠언 3:12)하는 것이자 자신들의 ‘선택된’ 지위에 대한 확인이라고 믿었다. “예루살렘에서 추방된 사람들의 후손임을 주장하는 것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자손에 속하는 것이고, 이는 ‘선택된 백성’의 일원이 되는 데에 필수적이었다.”(94쪽)

    차별이 가져온 유대인 해방, 해방이 불 지핀 반유대주의

    주로 종교적 차원에서 이뤄지던 분리와 배제는 기독교 세계의 사회경제적 변화에 따라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됐다. ‘유대인=고리대금업자’라는 이미지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유대인들이 고리대금업에 종사한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중세 기독교는 이자 수익을 부정한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기독교 세계 내의 타자’인 유대인들이 이 역할을 맡았다. 둘째, 유대인 공동체가 소수자의 생존 전략으로 채택한 율법 교육 때문에 문해력을 갖추게 되면서 유대인들은 자연스럽게 금융, 교육 등의 분야에 진출했다.

    ‘유럽의 기독교 봉건 세계는 유대인을 배제하는 차별을 했으나, 이는 사실 유대인을 그 속박에서 해방시켰다’는 역사학자 맥스 디몬트의 지적은 의미심장하다. 유대인은 게토에 유폐되어 군중 속에 모습을 드러낼 수 없고, 기독교도가 혐오하는 직업만 가질 수 있는 등 봉건 체제에서 차별받고 배제되는 존재였으나, 역설적으로 그랬기에 기독교도 농민들이 겪던 봉건 체제의 억압에서 벗어나 도약할 수 있었다. 차별과 멸시 속에서도 일부 유대인은 유럽의 궁전에서 재정과 군수조달을 책임지는 ‘궁정 유대인’으로 성장했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 유럽 각국의 채권 발행과 인수 업무를 맡았던 로스차일드 가문은 막대한 부를 쌓은 것은 물론이고, 유럽의 ‘6왕조’ 중 하나로 불릴 만큼 정치적으로도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소수 유대인의 성공이 뿌리 깊은 유대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비천한 존재여야 할 자들이 현실에서는 부와 권력을 쥐고 있다는 기독교도들의 반감을 불렀다. 경제공황, 혁명, 전쟁 등이 세계 지배를 위한 유대인들의 음모라고 주장하는 《시온의정서》가 널리 유포됐다.

    민족주의와 인종주의도 반유대주의에 불을 지폈다. 통일 전후로 민족주의가 고양된 독일은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한 비교 대상으로 유대인을 선택했다. 1차 대전에서 진 이유가 유대인이 ‘등에 칼을 꽂아서’라는 주장이 퍼졌고, ‘열등한 인종’ 유대인을 말살하려는 홀로코스트까지 벌어졌다. 러시아에서도 유대인 40명이 사망하고, 3000여 명이 다친 오데사 포그롬을 시작으로 민스크, 바르샤바, 엘리자베트그라드 등에서 유대인 박해 사태인 포그롬이 연달아 발생했다.

    피해자였던 유대인, 가해자가 되다

    반유대주의의 기승은 유대인들에게 ‘현지 동화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심어줬다. 테오도어 헤르츨 등의 유대인은 팔레스타인으로 귀환해 ‘유대 국가’를 세워야 한다는 시오니즘 운동을 전개했다. 팔레스타인을 식민화해 자신들의 세력권으로 만들려던 영국은 유대인이 자신들의 중동 지배에 유용할 것으로 판단해 시오니즘 운동과 손을 잡았다. 특히 영국은 밸푸어 선언을 통해 팔레스타인에서의 유대 국가 건설을 지지했는데, 이는 서구 기독교 세계가 만든 유대인 문제를 중동으로 수출하는 일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유대 국가’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인종주의의 피해자였던 자신들이 인종주의를 내세워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차별하는 모순에 봉착했다. 이스라엘 시민권을 가진 아랍계 주민들의 축출을 공식적으로 요구하고, 인종주의 범죄로 유죄 선고를 받았던 이타마르 벤그비르가 치안장관으로 임명되는 곳이 오늘날의 이스라엘이다. 유대 민족주의와 함께 사회주의적 이상을 내세웠던 건국의 주류들은 1970년대부터 팔레스타인과의 평화협상을 추진했지만, 이에 대한 내부 반발로 실각했다.

    그 후로 진행된 팔레스타인과의 평화협상 시도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이스라엘은 유대인의 국가’라고 선포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재집권으로 이스라엘의 우경화가 완성됐다. 벤그비르와 네타냐후가 손을 잡은 지금의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의 평화협상을 추구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

    “인종주의 광기 때문에 집단수용소에서 죽어간 이들의 피와 뼈로 세운 이스라엘은 인종주의 범죄 경력이 있는 인물이 치안장관이 되는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유대인과 이스라엘을 둘러싼 역사는 잔인한 역설이다.”(444쪽)

    ‘인종차별의 원형’으로 한국 사회의 차별을 읽다

    ‘역사상 가장 오래된 증오’이자 ‘인종차별의 원형’(철학자 크리스티앙 들라캉파뉴)인 유대인 문제를 들여다보는 일은 인류사에서 항상 존재해온 차별이 왜 탄생하고 어떤 논리로 작동하는지, 차별을 해소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이해하는 일이다.

    이 책이 시의적절한 것은 한국에도 다양한 소수자 차별과 혐오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유대인’을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등의 단어로 바꾸면 유대인 문제를 낳은 타자화의 논리, ‘우리’와 ‘저들’을 구분 짓고 차별하는 행태는 그대로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특히 외국인, 타 문화에 대한 차별은 반유대주의처럼 인종주의로 나타나기 쉽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에도 의미하는 바가 크다. 당장 대구에서는 이슬람사원 건립을 둘러싼 갈등이 2년 동안 이어지고 있으며, 일부 주민들은 이슬람에서 금기시하는 돼지머리를 골목에 두거나 바비큐 행사를 벌이기도 했다. “한국 사회에는 지금 ‘우리’와 ‘저들’의 구분이 없는가?”(18쪽)라는 저자의 질문이 아프게 다가오는 대목이다.

    ‘혐오’가 가장 뜨거운 화두인 시대에 발간된 《유대인, 발명된 신화》는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우리’와 ‘저들’의 이분법을 넘어서려는 이들에게 좋은 지침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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