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둥피둥 돈번 사람 '빈둥빈둥' 얘기 짜증나"
        2007년 02월 27일 06:2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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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당 대선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말실수로 또다시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이명박 전 시장이 27일 자신의 대운하 정책을 비난하는 이들을 가리켜 “70~80년대 빈둥빈둥 놀던 사람들”이라고 비아냥댔다. 정치권에서는 “군부독재 시대 민주화 투쟁을 벌인 국민들에 대한 모독”이라며 비난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이 전 시장은 지난 달에도 “아이를 낳아봐야 보육을 말할 자격이 있다”는 주장으로 파문을 일으킨 바 있어 대선후보 자격론 문제까지 불거지고 있다.

    이명박 전 시장은 이날 오전 자신의 정책자문교수모임인 바른정책연구원 조찬 세미나에서 “최근 70, 80년대 산업시대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토목에 대해 매우 자부심을 갖고 있다”며 포문을 열었다. 그는 “요즘 비난하는 사람들을 보면 70, 80년대를 빈둥빈둥 놀던 사람들로 그 (시대) 혜택을 굉장히 입은 사람들인데 비난할 자격이 없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 전 시장의 이러한 발언에 한나라당의 다른 대선주자들은 물론 정치권에서는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당장 이 전 시장의 대운하 정책을 ‘개발시대 패러다임’으로 비난해온 손학규 전 시자측이 자신들을 겨냥한 발언이라며 발끈했다.

    손 전 지사측은 “만약 우리를 포함한 70~80년대 민주화세력을 지칭한 것이라면 독재정권에 대항해 목숨 걸고 민주화운동을 한 사람 전체에 대한 모독”이라며 “독재 권력과 붙어 정경유착해서 자기재산을 불려온 사람이 그런 말할 자격이 있냐”고 강력히 비난했다.

    당의 또다른 대선주자인 고진화 의원은 이 전 시장의 사과를 촉구하기도 했다. 고 의원은 “군사독재에 저항하기 위해 무수한 희생을 감내한 우리 국민을 모욕하고 당시의 시대정신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아직도 개발독재의 환상에 사로잡혀 현재의 민주화와 자유가 그저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생각하는 몰역사적인 발언에 대해 즉각 국민 앞에 사과하라”고 주장했다.

    반면 대통령의 딸로 유신시대를 보낸 박근혜 전 대표측은 이 전 시장의 발언을 우회적으로 지적했다. 박 전 대표측 한선교 대변인은 “그 시절 산업화 세력들은 산업화 세력대로, 민주화 세력들은 민주화 세력대로 역할을 다했다고 본다”고 조심스럽게 비판했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도 이 전 시장의 발언에 비난을 쏟아냈다.

    열린우리당은 이 전 시장의 발언을 ‘황제식 폄화발언’으로 규정하고 “진의와 대상을 밝힐 것”을 촉구했다. 이규의 부대변인은 “이 전 시장이 누그를 대상으로 ‘폄하 발언’을 한 것인지 구체적인 대상을 밝혀야 한다”며 “개발독재 시대 군부권력과 정경유착해서 재산을 불려 호가호식하던 기득권층, 특권층인지 아니면 사람답게 살고자 인권을 요구하고 독재정권에 대항해 목숨 걸고 민주화를 지켜낸 분들을 말하는지 명확히 밝히라”고 주장했다.

    민주노동당 대선주자인 심상정 의원도 이 전 시장을 강하게 성토했다. 심 의원은 “이 전 시장의 발언은 70,  80년대는 물론 현재에 이르기까지 저임금과 가혹한 노동환경 속에서 묵묵히 이 나라의 발전을 이끌어온 모든 노동자와 일하는 서민들에 대한 모독”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70, 80년대 국민은 빈둥거릴 자유조차도 빼앗겼던 사실을 이 전 시장만 망각한 모양”이라며 “가혹한 노동과 억압적 통제만이 횡횡했던 때를 기억하는 국민은 이명박 전 시장의 빈정거림에 짜증을 느낄 것”이라고 꼬집었다.

    심 의원은 또 “오히려 이명박 전 시장이야 말로 재벌의 정경유착과 노동통제 속에 피둥피둥 돈을 불린 전형적인 집사형 경영자가 아니었는가”라고 반문하고 “이명박 전 시장은 즉각 본인의 발언을 취소하고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전 시장은 자신의 발언에 비난이 잇따르자 이날 오후 강연에서 뒤늦게 수습에 나서기도 했다. 이 전 시장은 상공회의소 ‘통섭정경연구원’ 출범식 축사에서 “산업화시대가 있어서 민주화가 있다고 볼 수 있고 민주화 속에서 산업화가 이뤄져 우리 사회가 이만큼 성장했다”며 “요즘은 어쩌다 서로를 비난하게 됐지만 모두가 없어서는 안될 귀한 세대”라고 말했다.

    이어서 전국 지방자치단체장·지방의원 워크숍에서도 “민주화 세대와 산업화 세대가 서로 인정해야 하고 힘을 모아 선진사회를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전 시장측 한 관계자는 “특정인이나 특정 세력을 지칭한 것이 아닌데 오해가 있는 것 같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이 전 시장의 말실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 전 시장은 지난달 20일 대전의 한 강연에서 “나처럼 애를 낳아봐야 보육을 이야기할 자격이 있고 고3 4명을 키워봐야 교육을 말할 자격이 있다”고 주장해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미혼의 박근혜 전 대표를 겨냥했다는 비난에 밀려 사과까지 하고 “군대를 안 갔다 온 사람이 군 통수권자가 될 수 있냐”는 역공을 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불과 한 달여 만에 다시 터져 나온 실언에 정치권은 이 전 시장의 대선후보 자격론까지 거론하고 있다. 손 전 지사측 한 핵심관계자는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 전 시장이 지도자로서 철학의 빈곤을 드러낸 것”이라며 “70,80년대의 시대 인식과 향수에만 머무른다면 21세기의 지도자로서 한계가 있다는 점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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