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베스는 박정희와 너무 닮았다
        2007년 02월 27일 06:2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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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네수엘라 차베스의 노선은 반미-반자본-반세계화적인 21세기 사회주의인가? 아니면 포퓰리즘(populism)인가? 여러 인식의 모델과 의견이 있겠지만, 필자는 이것에 대한 답을 미 MIT공대의 폴 크루그먼 교수에서 찾고 싶다.

    폴 크루그먼 교수는 차베스 노선에 대해 “정통 시장주의와 대중 인기영합적 포퓰리즘 그리고 자원민족주의가 한 데 뒤엉켜 거대한 실험을 벌이고 있다”고 표현한 바 있고, 따라서 “그 실험이 어떤 결과를 낳게 될지 우리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헤럴드경제 2006.05.12).

    이 글은 필자가 차베스 노선의 방향을 살펴보기 위해 지난 2월 9일부터 18일까지 짧은 시간동안,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에 가서, 보고 느낀 주관적 경험과 의문을 근거로 작성된 하나의 의견이다.

    강조하고자 하는 점은 차베스가 주장하는 반미-반자본-반세계화를 기초로 한 ‘21세기 사회주의’는 실제보다 과장된 수사(rhetoric)일 가능성이 크며, 아울러 차베스식 ‘21세기 사회주의’의 전망과 성공 가능성이 낮을 수밖에 없다는 견해를 제시하고자 한다.

    1. 한국에서 친차베스적 여론과 견해들

    한국에서 차베스의 현재진행형 노선을 긍정적으로 보거나 낙관적으로 보는 견해로는 학자 중에서는 조희연 교수와 정대화 교수가 대표적이며, 연구소로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새사연) 그리고 운동단체로서는 ‘다함께’가 있다.

    조희연 교수는 2월 21일 민주노동당 주관의 ‘민주진보진영의 2007년 대선전략토론회’에서 차베스 민중주의 전략의 성과와 관련하여, “박정희가 대중과 결합해 우익 민중주의를 실현한 것처럼, 대중적 호소를 통한 진보적 민중주의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고 하였다.

    정대화 교수는 오마이뉴스와의 2월 22일 인터뷰에서, 조희연교수의 말을 받고, 한 발 더 나아가 “라틴아메리카에서 포퓰리즘은 좋은 것이다. …… 포퓰리즘을 대중영합주의가 아니라 대중참여주의로 번역하는 게 맞다”고 주장하였다.

    ‘새사연’은 「차베스 집권 2기, ‘21세기 사회주의’ 건설 전망」이란 보고서를 발간하고, “차베스가 독재체제와 권위주의로 회귀하려 한다거나 경제 불안이 증폭될 수 있다는 서방언론(한국언론)의 주장은 상당 부분 과장되었거나 일면적이다”라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새사연은 『베네수엘라, 혁명의 역사를 다시 쓰다』라는 책을 통해, “(한국사회의 사회변혁의 비전을) 사회 변화라는 관점에서는 오히려 유럽보다 남미가 시사점이 많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아울러 운동단체인 ‘다함께’는 자신의 기관지 <맞불>32호에서 “차베스가 비록 합법적 선거로 집권했지만 집권 후 독재자로 변질했다는 점에서 히틀러·무솔리니와 마찬가지로 ‘민주독재자’라는 비난도 있다(<경향신문> 2월 6일치)”는 것에 대해 “이런 비난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며, “차베스의 수권법은 독재의 수단이 아니다”라고 주장하였다.

       
      ▲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 대통령
     

    2. ‘21세기 사회주의’와 민주노동당 노선 그리고 북한의 ‘우리식 사회주의’

    2007년 2월 18일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 정상회담 참석을 위해 브라질에 도착한 차베스는 자신의 ‘21세기형 사회주의’가 과거 동유럽의 소비에트식 사회주의와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차베스는 “동유럽의 ‘소비에트 사회주의’는 민중에게 실질적인 권한을 주지 못해 실패한 것”이라면서 자신이 주장하는 ‘21세기형 사회주의’는 내용이나 역사성에 있어 이와 거리가 먼 개념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소련이 붕괴될 때 노동자들은 어느 누구도 체제 수호를 위해 나서지 않았으며, 이것은 소비에트식 사회주의가 결국 진정한 사회주의가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내가 말하는) 사회주의는 이와 다른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다른 국가를 모방하지 않고 진정한 사회주의 모델을 만들어야 하며, 미주 대륙 사회주의 흔적은 대륙 발견 이전의 원주민 공동체 사회에서 찾아질 수 있다”면서 “내가 제안하는 사회주의는 마르크스나 엥겔스가 활동하기 이전에 존재했던 19세기 중남미 지역 사상가들의 이상에 근거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가 말하는 중남미 지역의 대표적 사상가는 남미 독립의 영웅인 시몬 볼리바르 장군 등을 의미한다(민중의 소리, 2007.01.19).

    그렇다면, 이같은 차베스의 ‘21세기 사회주의’는 북한의 ‘우리식 사회주의’와 같은 것인가? 아니다. 다르다. 북한의 ‘우리식 사회주의’가 생산수단의 전면적인 국유화와 중앙집권적인 계획경제와 폐쇄적 경제를 기초로 한다면, 차베스의 경우는 이와 정반대다.

    오히려 차베스의 21세기 사회주의는 포퓰리즘에 기초한 자원민족주의와 친시장경제에 가깝다. 자원민족주의란 어떤 지역이나 국가에 편재돼 있는 석유 등의 천연자원에 대해 항구적 주권을 확립하고 이를 자주적으로 이용하겠다는 것을 말한다(김정일이 핵무기를 실험하고, 차베스가 천연자원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차베스의 친시장경제적 석유의 국유화는 전면적 국유화가 아니라 32개 유전개발사업의 지분 60%를 베네수엘라 석유공사(PDVSA)에 넘기도록 하는 내용이다. 자원민족주의로 인한 자원 통제는 지난 1, 2차 석유파동처럼 자원을 무기화하여 국제적인 원자재 가격 인상 등을 유발함으로써 세계 경제를 침체시킬 수도 있다.

    차베스의 21세기 사회주의는 “국가사회주의의 오류와 사회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한편,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을 계승 발전시켜, 새로운 해방 공동체를 구현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민주노동당의 것과 유사한 것인가?

    유사하면 다행이지만, 비전이 다른 것 같다. 민주노동당은 성장(자본주의/우파) 대 분배(사회주의/좌파)라는 이분법적인 논리가 아니라 ‘분배를 통한 성장’이 가능하도록 하는 ‘사회연대적 성장전략’ 등의 대안모델을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차베스의 경우는 천연자원의 국유화를 통한 분배 외에 석유를 대신하는 중장기적 대안적 성장동력 모델이 없다. 이에 대해 베네수엘라 중앙대학(UCA) 정치학 과장 엘리아도 무뇨스 교수는 “막대한 석유수입으로 국민에게 직접적인 경제적 지원을 하는 것은 좋지만 중장기적으론 유지될 수 없다”면서 “유가 인하시 당장 영향을 받을 것이고 그런 점에서 차베스 정권은 중장기적 비전을 갖고 일자리 창출 정책에 나서야 한다. 단순한 해결은 안 된다”라고 하였다(연합뉴스, 2006.12.06).

    아울러 베네수엘라 ‘베네코노미아’의 로베르코 보토미 편집장도 “수출의 80%, 재정수입의 50%가 석유에서 나온다”며 “고유가로 인한 수익이, 장기적인 성장과 고용을 낳는 생산적인 설비투자보다 서민의 인기에 영합하는 시혜성 정책에 들어가고 있다”고 비판했다(조선, 2006. 08.31).

    3. 차베스의 반미-반자본-반세계화는 과장된 레토릭이다

    차베스의 반미주의(anti-Americaism)는 반미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미국과의 평등한 교역을 요구하는 빈곤층의 바램을 반미감정에 호소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지지층을 선거 국면에 결집시켜내는 양극화 전략차원의 국내정치용 레토릭일 가능성이 크다.

    특히, 흥미로운 아이러니는 차베스의 반미-반자본-반세계화 주장이 미국과의 교역의존도 심화와 석유수출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차베스가 미국에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힘은 바로 석유에서 나온다. 세계 5위 산유국인 베네수엘라는 전체 생산량의 60%를 미국에 수출하고 있다 …… 1998년 취임 당시 120억 달러였던 석유 수출세입은 작년 그 3배에 달하는 360억 달러가 됐다. 차베스 대통령이 미국에 수출하는 석유량을 꾸준히 늘려온 결과다. 반미를 외치면서 속으로는 미국을 통해 돈을 버는 일이 반복, 강화돼온 셈이다.”(주간조선, 2006.05.02)

    “베네수엘라와 미국 간 관계는 카리브 해안을 접한 근접 국가로 순망치한(脣亡齒寒)적인 관계에 있다. 미국은 2005년 기준으로 베네수엘라 총수출액의 33.51%, 총수입액의 27.49%, 원유판매량의 79.93%를 점유하고 있는 제1의 교역 상대국이며 미국도 베네수엘라의 각종 공공 입찰에 참여해 수익을 얻고 있는 중요한 국가 중에 하나이다.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부가 사회주의 노선으로 선회함에 따라 미국의 패권 논리와 천민자본주의적인 속성을 배격하고 있어 미국과 마찰을 빚고 있지만,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계속 친밀성을 유지하면서 상호간 실리를 추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박찬길 카라카스 무역관, 2006. 02.14)

    “현재 베네수엘라는 반미 국가로 국제 언론에 수시 게재됨으로써 일부 기업이 상세한 정보 획득 없이 베네수엘라와 교역을 단절하거나 기업을 철수하는 사례가 있고, 미국이 이러한 공백을 거의 독식하고 있어 미국과의 경제관계가 심화되고 있는 모순된 현상이 현지 문제점으로 등장하고 있다.”(박찬길 카라카스 무역관, 2006. 02. 14). 

       
     

    미-베네수엘라 정상들 간의 험한 발언에도 불구하고, 양국의 교역량이 상향선을 긋고 있는 것과 관련하여, 박찬길 카라카스 무역관장은 “차베스 정부는 반미 구호를 외치고 있지만, 최근까지도 이곳에 진출한 미국 기업들이 성공적으로 정부나 공기업의 입찰을 따내면서 베네수엘라 원유 달러를 다시 가져가고 있다”고 말하였다. 이것은 차베스의 반미 구호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음을 보여준다(조선데스크, 2006.09.06).

    차베스의 반미주의에 대해서, 베네수엘라 디아스 공보부 국장은 “지도자의 발언은 정치적이고 외교적인 만큼, 단어 하나하나에 너무 신경 쓸 필요는 없다”면서 “우리가 반대하는 것은 미국이 아니라 제국주의”라면서, “대통령의 반미는 정치적 수사”라고 하였다.

    아울러 차베스의 21세기 사회주의에 대해서도 “자본주의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소유권을 인정하되 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해 국가가 개입해 해결하는 민중적 사회주의”라고 하였다(조선, 2006.09.01).

    그렇다면, 디아스 공보부 국장의 말처럼, ‘자본주의’를 부인하지 않는 ‘민중적 사회주의’라는 형용모순은 가능할 것인가? 이것에 대한 답은 차베스가 말하고 있는 반미-반자본-반세계화가 실제가 아닌 사실보다 과장된 ‘레토릭’일 가능성을 잘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차베스의 ‘21세기 사회주의’ 노선은 사실보다 과장된 레토릭이며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는 이유는 차베스의 노선이 상술하였듯이, 미국과의 교역의존도 심화와 충돌하고 있다는 점이며, 무엇보다도 소비에트가 망하고, 중국도 시장경제를 받아들이고 있는 입장에서,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와 이른바 워싱턴 컨센서스를 넘어설 또 다른 대안적 성장동력 체제가 차베스에게 부재하기 때문이다.

    즉, 차베스의 ‘21세기 사회주의’는 국제유가와 베네수엘라 산유량 위에 건설된 모래 위 누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과 관련하여 미 싱크탱크인 인터아메리칸다이얼로그의 마이클 시프터는 <포린어페어스> 5월호에서 “베네수엘라 경제는 석유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유가가 하락하면 차베스 정책은 지속가능할 수 없다”고 분석하였다.

    차베스의 사회주의 노선이 더욱 낙관적이지 않은 이유는 정치노선에 있어서도 이념적-정파적 양극화에 기초한 ‘다수독재’와 ‘1인 독재’ 경향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다수독재는 포퓰리즘의 대표적인 타입으로 소수독재만큼 위험하다. 민주주의는 단순히 양적인 ‘쪽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양성의 표출과 그 속에서 나오는 토론과 공론장을 통한 질적인 숙의(deliberative democracy)와 합의가 있어야 한다.

    차베스의 다수독재와 1인 독재 경향은 한국의 박정희와 비슷하다. 박정희는 조국 근대화와 경제성장을 위해, 양원제를 단원제로 바꿨으며, 국민투표를 통해 의회를 무력화시켰고, 개헌을 통해 연임제를 폐지하고 장기독재의 길로 들어섰으며, 언론과 자신의 정치적 반대자를 억압하였다.

    아울러 박정희는 차베스와의 색깔은 다르지만 자신의 권력유지를 위해 반공과 친미노선의 편향성을 동원하고 갈등을 사유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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