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안적 사회국가'로 위기를 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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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2월 27일 10:0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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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대학교 사회학 교수이자 ‘남반구에 관심을(Focus on the Global South, www.focusweb.org)’ 사무국장인 월든 벨로가 지난 23일 한국을 찾았다.

    월든 벨로 교수는 성공회대와 아시아지역대안교류(ARENA)가 ‘아시아 시민사회 지도자과정’ 개설 기념으로 주최한 ‘아시아 시민사회 석학 초청 연속강연’의 첫 번째 강연자로 초청받아 내한했다.

    최근 한국 민주정부와 진보진영의 위기를 둘러싼 논쟁의 중심에 있는 성공회대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연구소 소장인 조희연 사회학과 교수가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월든 벨로 교수는 진보적 정당이자 시민행동당(Citizen’s Action Party)인 ‘악 바얀당’의 부름을 받아 오는 4월 필리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 예정이다. 그는 지난 1995년 발족한 ‘남반구에 관심을’이란 시민사회조직의 목적, 의제, 비전과 자신이 앞으로 정치권에서 일구어보고 싶은 일은 결국 동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정부 위기’ 논란에 빠져있는 한국, ‘대테러전’을 명분으로 날로 더 공고화되어가는 미 종속적 군사주의 아래 신음하는 필리핀, 다시 군부독재로 퇴행해버린 태국, 광범위한 대중의 지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당성과 지도력의 총체적 상실에 직면해 있는 대만 첸수이벤 정권 등.

    아시아 민주정부들의 전반적인 위기의 연원과 대안을 찾는 두 사람의 대담 전문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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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희연(이하 조) 노무현 민주정부는 많은 장애를 안고 출발했다. 미디어, 자본 등 전 차원에서 보수주의의 공격이 끊이지 않았고 결국 정책 미비, 양극화 등 신자유적인 구조화가 가져온 결과들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무능한 정부라는 평가를 낳았다.

    대만의 천수이벤 정권은 부패문제로, 태국의 탁신 정부는 부패와 권력남용 등의 특별한 요인들이 있기는 하였지만, 역설적으로 독재를 대체한 민주정부가 위기에 직면하는 것은 많은 아시아 나라에 공통적인 현상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시아의 민주화와 미국의 의도

    월든 벨로(이하 월든) 현재 우리가 당면해있는 상황은 70~80년대에 독재를 뚫고 생겨난 아시아 여러 민주정부들의 전반적인 위기다. 이 위기는 그러한 민주정부들 내부에 있던 한계들을 잘 보여준다.

    우선 이 민주정권들은 군부독재에 저항하는 민주화 운동과정에서 생겨났다. 그 과정이 성공을 거둔 이유는 엄청난 민중의 압박이 있었기 때문이고, 또 미국, IMF, 세계은행 등이 군부독재 정권들에 대한 지원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독재가 미국의 지역 안정화와 효과적인 자본축적을 오히려 방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과 이 국제 조직들이 그들의 지원을 민주정부로 돌렸을 때 첫번째로 관철시킨 것이 소위 구조조정이었다. 처음부터 이들 민주 정권은 엄청난 경제적 구속 아래 있었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민주정부로서의 정당성을 상실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가령 아키노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미국은 필리핀이 개발원조를 계속 받고자 한다면 외채부터 갚으라고 했다. 이런 상황은 페루를 비롯해 상당히 많은 민주정부도 마찬가지였다. 현재 민주정부의 위기는 민주적 거버넌스(governance)의 위기라 본다.

    태국의 경우 탁신의 보수주의적, 민중주의적 정권이 국가 자본주의적 정책을 구사했고 어떻게 보면 독재적이기까지 한 보수적 정책들을 결합시키면서 위기가 창출됐고, 쿠데타 이후에는 군부가 다시 정치행위자로 떠오르고 있다. 필리핀 경우에는 허약한 대통령과 강력한 군부가 있고, 경제 정책은 신자유주의적인 것이 지속되고 있다.

    또 다른 예로 라틴 아메리카가 있는데, 이것은 민주주의 심화, 80년대 시작된 엘리트 민주주의 체제(에콰도르, 베네주엘라)에서 더 나아가 보다 더 참여적인 체제를 만들어내고 있다. 물론 겉으로 보기에 차베스같이 민주적이지 않아 보이는 부분도 있지만(그때의 ‘민주주의’가 대체 어떤 뜻이냐도 중요하다, 가령 미국이 선거 정당성을 들고나섰기 때문에 그는 무려 10번이나 국민투표를 통해 권좌에 ‘되돌아와야’했다).

    그는 철저히 민중 분배적 정책과 동시에 철저히 반미국적, 민족주의적인 정책을 결합했다. 현재 이런 식의 어떤 가능성이 70~80년대 떠오른 민주정부의 위기를 타개할 방법으로 생각되고 있다.

    민주정부 위기와 진보진영의 대응 방향

    한국은 어떤 의미에서 아시아의 많은 나라에서 보이고 있는 구 독재적 권력집단이 국가권력을 독점하는 엘리트 민주주의 문제는 어느 정도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구 개발독재적 엘리트 집단은 다양한 정치적, 사회적 행위집단의 요구에 문을 열어야만 했다.

    그러나 사회적, 경제적 민주주의 관점에서 볼 때는, 민주정부 하에서 민중 생계가 피폐화되고 경제 양극화가 심화되는 신자유주의 정책들이 오히려 더 강화되는 과정이 있었다. 민중 불만을 밑에 깐 이러한 구조적 불능성에 문제가 있다고 보이는데, 진보진영이 어떻게 헤쳐나가면 좋을까.

    월든 한국은 흥미로운 사례이다. 정치적인 관점에서 보면 한국은 권력이 더 다양한 행위자에게 분산되었다. 필리핀은 권력이 엘리트 집단 안에서만 분산되었다. 민중 생활의 피폐화는 개발주의 국가의 소멸과 관련되어 있는 듯하다. 개발주의 국가는 여러 차원의 사회적 타협을 그 기반으로 한다.

    90년대에 미국은 한국을 개방하고 정책을 자유주의화하고 노동시장을 탈규제화하려고 노력했다. 내 느낌으로는 정치권력이 다양한 사회행위자 집단에게 나눠지는 과정과 동시에 개발주의적 자본주의 모델이 어느 정도 와해되지 않았나 싶다.

    경제위기와 함께 미국에 의해 직접적으로 엄청난 구조조정이 가해졌다는 점은 한국이 아시아 다른 국가들과 공유하는 부분이다. 97년 경제위기 이후에 한국경제가 대대적인 미국식의 개방경제로 전환된 데에, 경제위기를 매개로 한 미국의 압박이 있었다.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의 개방화 압력도 동일하다.

    또 다른 부분은 민주정부에 의한 이러한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과로 대중들의 삶이 나빠졌다는 것이다. 태국도 민주정부라고 하는 탁신정부가 그것이 그다지 분배적인 시스템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민중이 들고 일어난 경우이다. 여기에 신자유주의에 대한 사회적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는 데 진보진영의 문제도 있다.

    태국 탁신과 베네주엘라 차베스를 비교해보면 

    대중이 지속적으로 불만을 갖게 되고 민주정부나 진보진영이 이에 대한 적실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자, 한국의 경우 가령 대통령 후보인 이명박이 보여주듯 보수적이고 민중주의적이고 신개발주의적인 정책과 비전을 대중이 오히려 환영하고 나서는 경우가 생겨났다.

    월든 그가 경제적으로 약속하고 있는 건 뭔가, 가령 탁신은 매우 싼 보건의료, 마을 당 백만 바트 정도 부채의 탕감 등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일관된 정책공약을 내놓았다, 그게 다 지켜지지는 않았지만.

    이명박은 전국가적인 운하를 서울에서 부산까지 개발한다든지 하는 토건국가로의 회귀 경향을 보이고 있다. 박정희의 개발주의적 국가경영을 그대로 본딴 경우이다. 정치권력 기반이 보수적인 데서 진보적인 데로 넘어오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실질적인 사회 정책들 밑에 깔린 비전이 신자유주의적인 것과 달라야한다는 점도 중요하다고 본다.

    월든 바로 그 점에서 탁신과 차베스가 비교된다. 탁신 정책에는 민중주의적 요소가 있었지만 또한 국가 자본주의적 요소, 또 미국과 FTA를 채결하는데서 보이듯 신자유주의적인 요소가 혼용되어 있었다. 이에 반해 차베스는 그의 정책 논리는 자본주의 논리를 벗어난다. 그리고 뚜렷이 반신자유주의적이다. 소위 볼리바리안 대안(ALBA)은 상당한 부분 물물교환 경제(barter)에 기반해서 남미 대륙 안에서 새로운 무역 경제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또 분명하게 분배주의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토지개혁, 가장 가난한 계층에게 혜택이 가장 많이 부분을 돌아가게 하는 사회개혁 등등이 수반되었다. 민주정부가 바로 이처럼 신자유주의에 대해서 어떻게 응전하느냐가 중요한 부분이다.

    베네주엘라는 석유를 비롯해서 자원이 풍부한 나라이다. 한국은 이에 반해 한정된 자원을 갖고 있으면서 개방 경제이다. 진보진영이 어떻게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에 반하는 경제정책을 구축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을 구축할 때에도 나라마도 조건이 다를 것 같은데.

    그리고 당신이나 당신이 속한 ‘남반부에 관심을’ 조직이 대안으로 이야기하는 탈지구화(de-globalisation)가 현재의 신자유주의를 역류하는 지향을 보이지만, 국내적으로는 수출지향적 경제에서 내수시장을 향한 생산으로의 전환을 중시하는 등 폐쇄경제적인 지향으로 보이는 것으로 한계가 있다고 보여지는데.

    탈지구화, 국제경제 벗어나자는 뜻 아니다

    월든 탈지구화를 말할 때 그것이 반드시 국제 경제에서 벗어나야한다는 뜻은 아니다. 자유무역협정 같은 국제 경제질서가 강요하는 신자유주의적인 관계에서 벗어나야한다는 뜻이다. 무역은 중요하다. 허나 국내 경제 무게중심이 외부(수출)로부터 내부(내수시장)로 되돌아오도록 해야 한다.

    지역적 협력관계도 매우 중요하다. 자유무역협정만이 아니라 기술이전 등을 포함하는 실제적인 경제협력관계 말이다. 차베스 실험이 제안하는 지역통합은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

    세번째로는 역동적이지만 ‘관리된’ 무역체제를 향해 가야한다는 것이다. 대기업 위주의 무역에서 벗어나 국가 개입을 가로막는 WTO 형식의 무역체제 아닌 양국적・ 협력적 대안체제를 지향하는 무역조항 마련 같은 것들을 의미한다. 

    그 안에서 지역(local) 경제가 왜곡되거나 국제 경제체제에 무제한 통합되지 않고 지금보다 더 대등한, 보다 더 실질적인 경제협력을 산출하는 관계가 필요하다. 한국의 경우, 압도적인 북반구(특히 미국)와의 무역관계, 일방적인 무역자유화 등에서 벗어나 남반구 국가들과 다양한 방식의 경제협력관계를 창출해내고, 동시에 한국의 원래 강점이었던 강한 내수시장, 보호주의 정책 등으로 다시 눈돌려야할 필요가 있다.

    당신의 탈지구화 패러다임을 들으면서, 현재 신자유주의적 전지구적 맥락 안에서는 여러 가지 다양한 종류의 ‘하위범주’ 경제가 가능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자원이 풍부한 나라냐 아니냐, 농업 위주냐 고도로 산업화된 나라냐, 독자적인 경제냐 아니면 한국처럼 개방적인 경제냐 등등에 따라.

    현단계 전지구적인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기조를 가지면서도 조건에 맞는 다양한 대안적인 사회모델을 구축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지구화 시대의 대안적 사회국가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나는 이를 ‘지구화시대의 대안적 사회국가’ 프로젝트로 본다. 자본주의에 대한 공적 규제를 핵심으로 하는 사회국가에는 차베스적인 진보적 민중주의적 사회국가에서부터 구사회민주주의적 사회국가, 낮은 수준의 사회국가까지 다양할 것 같다.

    이 새로운 사회적 국가의 기본 요소는 사회적 경제, 확장되고 혁신된 공공부문, 자조적이고 협력적 경제부문, 비자본주의적 혹은 반자본주의적 경제부문, 풀뿌리 경제부문 등을 지속가능한 경제모델의 일부로 끌어들이는 것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싶다. 진보적 정책은 바로 이러한 요소들을 패키지화해 제시해야 할 것 같은데.

    월든 동감이다. 지구화시대의 대안적인 사회국가를 추구하고 강제하는 것은 현시기의 진보의 과제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새 ‘사회적 국가’는 물론 예전 케인즈적 국가로의 회귀가 아닐 것이다. 정부만이 기업, 무역 등의 관리자였던 것에서 떠나 이제 시민사회가 국가, 기업부문 양자의 관리(감시)자가 되는 그런 국가일 테니 말이다. 시민사회 및 민중부문이 중요한 사회적 힘을 가지고 있는 모델이 되어야 한다.

    두번째로는 케인즈적 국가가 수행하지 못한 어젠다인 경제 민주주의를 수행해야한다는 것이다. 생산자가 관리자이기도 한 그런 경제관계, 노동자가 경제 생산과 관련해서 의사결정자가 되기도 하는 그런 사회관계를 산출하는 것 말이다.

    세번째로는 적극적인 보호, 그리고 신자유주의에 의해 소외된 특정 경제부문(농업, 환경 등)을 활성화시키고 그러한 과정에서 광범위한 사회참여를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나는 여러 민주정부들이 신자유주의 지구화와 동시에 민주화 시대인 지금 대안적 사회국가를 적극적으로 사고하고 이를 통해 위기를 돌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민주정부 중에서도 계급적인 성격에 따라 다양하겠고, 민중의 힘와 요구에 얼마나 결합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말이다.

    한국모델이 가진 긍정성과 부정성

    한국 발전 모델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월든 나는 <고민에 빠진 용(Dragons in Distress)>이란 책을 냈는데, 그걸 쓸 때 한국에 대한 연구도 했다. 한국은 강력한 국가 이니셔티브 하에서 급속한 산업화를 이룬 나라이다. 사실 외부에 대해서는 수출지향경제라고 하는 측면이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국내시장을 폐쇄하고 보호, 방어한 양면성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의 국가개입주의의 긍정적 측면은 이처럼 국제자본으로부터 내부시장을 보호하면서 시장을 시장 그자체로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끌고 간 긍정적인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의 국가개입주의는 3가지 부정적 측면도 있었다.

    그 첫째는 민주화의 결여이다. 그리고 두번째는 노동억압과 배제, 갈등의 표출 억제이다. 셋째는 농업을 해체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 모델은 제3세계 여러나라들이 배우는데 있어서 긍정적인 모델이자 부정적인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제3세계 나라들은 한국을 무조건 배우려고 하는데 이런 두가지 점을 동시에 보아야 한다.

    그런 시각에서 보면 97년 이후 한국 국가의 역할변화는 어떻게 평가하는가. 시장주의적 방향, 개방주의적 방향으로 전면 변화했는데. 어떤 의미에서 민주정부가 경제의 개방을 촉진하고 시장자율주의와 개방주의의 담지자가 되는 점이 있는데…

    월든 이렇게 보면 97년 경제위기는 한국모델의 긍정적 측면을 스스로 해체한 점이 있다. 민주정부가 신자유주의를 촉진하는 것이 역설적인 점이다. 어떤 의미에서 산업화 초기단계의 선택이 민주정부의 선택을 제약했고, 민주정부의 최근 선택은 이후 정부 및 한국경제의 경로를 규정하고 있다.

    독재가 개방근대화를 촉진하는 것과 달리 민주정부가 신자유주의를 담지함으로써, 독재라면 광범위한 저항이 촉발되었을 수 있는데 저항이 억제되고 주변화되는 점이 있다. 대중이 급진적인 방향으로 저항화하지 않는 점이 있다.

    97년 위기 한국모델의 긍정성 해체

    필리핀과 한국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비교해본다면 어떤가.

    월든 양자 간에는 결정적인 차이들이 있다. 그 첫째는 토지개혁의 시행여부이다. 산업화의 초기 조건이 결정적으로 달랐다. 한국은 성공적인 토지개혁과 그로 인한 소득재분배로 산업화의 출발단계에서 병목지점이 없었다.

    둘째, 필리핀은 지주계급이 미국의 지원을 받으면서 적극적인 산업정책을 취하지 못하도록 작용했다. 오랜 동안 1차산업 생산물 중심의 수출체제가 고착되어 있었다. 셋째, 산업구조의 재구조화가 단계별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필리핀은 정체상태에 들어갔던 것이다.

    아시아의 공생을 위해서 한국시민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자본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적 아시아’에 맞서서, 나는 요즘 ‘사회적 아시아(Social Asia)’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월든 나는 미군기지 반대운동을 한국 사회운동진영과 같이 하면서 좋은 경험을 했다.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의 전투적인 투쟁은 아시아 운동에 대단한 영감을 주었다. 나도 그 영감을 받았다. 특히 최근 신자유주의지구화 시대에 한국 농민운동은 그 자체로도 대단한 국제적 기여를 하고 있다.

    2003년 칸쿤 투쟁에서 한국 농민운동은 이경해 자살사건이 시사하듯 엄청난 운동의 결의를 보여줌으로써 투쟁에서 귀감이 되었다. 한국의 농민운동은 그 자체로 이미 반세계화운동을 선도하면서 국제사회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나는 한국 시민사회가 아시아 시민사회와의 다층적인 연대운동에 적극 나서면 좋겠다. 한국의 반FTA투쟁의 향방은 바로 아시아 시민사회운동에 영향을 미친다. 한국이 타결되면 여러 아시아 정부들이 한국도 했다고 우리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사회적 아시아’라고 하는 장기적인 비젼은 대단히 좋다. 단지 구체적인 연계를 강화하고 축적해가는 것이 현단계에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급선무라 할 것이다. 지금 성공회대 NGO대학원에서 추진하는 아시아 사회운동대학원 과정 같은 것도 대단히 좋은 시도로 보인다.

    한국은 국내 이슈의 포로 

    국가나 정부 차원에서 할 일은 없는가.

    월든 시민사회 차원을 넘어서서 한국의 정부가 해주어야 할 일도 있다. 아시아 지역포럼에서도 이미 한국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정부 간 관계에 있어서 아시아 정부들은 대체로 대단히 보수적이다. 한국의 민주정부가 그래도 일정한 진보적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대체로 보수적 스탠스를 취하고 접근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한 한국정부의 보수적 스탠스는 사실 한국 시민사회운동이 외교통상을 충분히 쟁점화하고 쟁투의 영역으로 끌어들이지 못해서 발생한 결과라고 생각된다. 진보적인 아시아 학자의 입장에서 한국, 중국, 일본의 이미지는 어떤가.

    월든 먼저 중국은 이미 거대한 경제대국으로서 아시아, 특히 동남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을 부속 경제처럼 만들어가고 있다.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중국의 협력협정만 해도 수백개이다. 그래서 동남아시아의 많은 경제들이 중국의 요구대로 구조화될 까봐 우려가 크다.

    아시아 대블럭을 만들어가려고 노력하면서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중국과 개별 협력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다자간, 집단적 틀 속에서 중국과 대면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개별적 협력이 아니라 집단적 협력 틀 속에서 중국에 대한 왜곡된 의존관계가 고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중국이 더욱 경제적으로 강화되는 반면, 일본은 2위경제로 재위치되고 있다. 사실 최근 일본 성장이 두드러지는데 그것은 중국경제의 성장에 의존하고 있다. 일본 인구는 고령화되고 역동성이 적어서, 앞으로 중국이 일본 보다 아시아 경제를 주도하게 될 것이다.

    한국은 여러 측면이 복합적으로 공존하는 것처럼 보인다. 먼저 아직 경제위기로부터 충분히 회복하지 못한 것 같다. 구래의 역동성에 많이 의존하는 것처럼 보인다. 동시에 97년 경제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인 방향으로 과잉개방되어 버린 것처럼 보인다. 또한 너무 국내 이슈에 묶여 있는 것 같다, 국내이슈의 포로라고나 할까.

    아시아의 중국화 경계해야

    세계사회포럼이나 기타 국제적 운동모임에서 간간히 중국과 아프리카의 관계가 문제가 되는데, 중국이 일종의 새로운 준(準)제국주의가 된다는 이야기도 듣는데.

    월든 아프리카에는 중국의 사기업과 국영기업이 대규모로 진출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구형태의 제국이 될 가능성도 있지만 현재로서 단정적으로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석유자원을 얻기 위해 미국과 동일한 관계를 형성하려는 경우도 있고, 다푸르 사태에서도 중국 정부가 수단 정부를 지원해서 다푸르사태를 해결하려는 중국의 노력 및 국제사회의 노력을 난처하게 한 적도 있었다.

    아프리카 시민사회가 중국에 대해서 비판적 시각을 갖는 경우도 있고 문제 제기하는 경우도 있다. 중국정부가 이에 대해서 경각심을 강력하게 가져야 한다고 본다.

    필리핀 미군기지, 즉 클라크 공군기지와 수빅 해군기지가 철수했는데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나. 저항은 없었는가.

    월든 필리핀 미군기지의 철수는 상당히 광범한 국민적 합의로 이루어졌다. 철수 이전이나 이후 저항이 많지는 않았다. 부정적 결과는 적었다. 나는 역설적으로 미군이 오히려 최대의 수혜자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미군기지가 있으므로 생기는 민족주의적 저항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사실 합동 군사훈련도 재개되었다. 어떤 의미에서 반테러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필리핀과 미군의 새로운 연합도 나타나고 있다. 새로운 명분으로 민족주의적 저항 없이 미국의 새로운 영향력과 개입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군 기지 반대운동을 열심히 하자. 미국을 돕기 위해서도" 라는 구호도 가능하겠다(웃음).

    월든 한국도 미군기지 폐쇄운동이 강하게 진행되어 폐쇄시켜야 할 것이다. 그것이 이루어진 이후에도 새로운 군사협정을 막아야 할 것이다.

    미 제국주의의 세 가지 추동력과 세 가지 위기

    어제 강연에서 ‘미 제국은 과잉 확장해서’ 새로운 모순과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했는데, 이른바 미 제국의 위기의 성격은 무엇인가.

    월든 미 제국이 스스로의 권력을 추구하게 하는 추동력은 3가지이다. 하나는 경제적 팽창이고 다음이 전략적 팽창이며 마지막 하나는 ‘선교사적 민주주의(missionary democracy)’ 이데올로기이다.

    경제적 팽창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갖는 본래적인 팽창적 속성과 관련되어 있다. 전략적 팽창은 미국이 일개 국가로서 자신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전략적 범위를 확장하려는 추동력이다. 선교사적 민주주의는 민주주의 확산의 사명감 같은 것이다.

    문제는 경제적 팽창은 과잉생산이라는 위기에, 전략적 팽창은 과잉확장이라는 모순과 위기에, 선교사적 민주주의는 새로운 정당성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제국의 위기이다.

    미국의 전략적 팽창에서 60,70년대 냉전시기와 80년대의 시기에 차이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월든 미국의 2차대전 이후 기본적인 대전략은 (팽창정책의 일환인) ‘봉쇄’였다. 주로 소련의 영향력을 차단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에도 선택적 봉쇄와 전면적 봉쇄가 있다. 이러한 기본전략은 80년대 레이건 정부 하에서 일종의 원상회복전략, 롤백(rollback)전략으로 변화되었다.

    공산주의가 이미 득세하고 있는 지역에서 이를 격퇴하여 무력화시키고 반대체제로 이행하고자 하는 공세적인 전략이다. 봉쇄전략의 대표적인 예는 베트남이었다. 그러나 이는 실패했다. 사실 이러한 실패 때문에도 예컨대 키신저와 같이 권력의 다극화를 인정하고 외교를 수행하는 다극화 외교 패러다임도 나타났다.

    80년대 이후 롤백전략에 기초하여 미국은 공산주의 블록의 체제변동을 위한 지원전략을 공세적으로 수행하였다. 소련체제가 붕괴한 이후에 클린턴 정부 하에서는 세계화 전략, 경제적인 지구적 패권을 강화하고 민주주의를 확산하는 대전략을 이행했다고 할 수 있다.

    조시 부시 행정부의 대전략은 탈냉전시대의 롤백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사실 공세적이고 상당한 체제 자신감에 기초한 것이다. 어떤 국가도 미국과 경쟁하지 못하도록 하는 ‘항구적인 전략적 우월성’을 지향하는 것이다. 더구나 우월한 제공력과 압도적인 현대적 군사기술이 이를 보강하였다.

    미 민주당, 부시와 같은 전략을 멋있는 모양새로

    그러나 이라크전에서 그 전략적 우월성과 반대로 역설적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월든 사실이다.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 이후, 미국은 더욱더 제약 없는 과잉확장으로 나갔고 새로운 모순과 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코소보사태 때 사용했던 새로운 패권전략, 즉 지상군을 투입하지 않고 고위 상공에서 정밀폭격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전략이 성공을 거두면서, 똑같은 것이 아프카니스탄에도 적용되었다.

    나아가 미국은 이를 이라크에도 적용했다. 여러 동기 중에서도 아마 석유가 가장 큰 요인일 것이다. 미국은 또한 문제의 지역에서 정치군사적 패권을 얻고자 했으며, 이라크를 중동의 새로운 모델로 만들어 확산 효과를 얻고자 했다.

    사실 지상군 투입은 별로 없이 쉽게 이라크를 제압할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최소의 지상군을 활용하면서 대규모 고공공격에 의해서 상대방의 전략을 무력화하는 이러한 전략은 역설적으로 현재 이라크에서 진흙탕에 빠져 있다. 이는 과잉확장의 모순과 위기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민주당이 집권했으므로 철군이 앞당겨지리라는 견해와 반대의 견해가 있는데.

    월든 클린턴 정부는 세계적인 전략적 우월성을 확보하려는 지향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 시장주의적 방식, 민주주의 확산의 방법으로 보다 멋있게 해보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중간선거 이후에도 민주당은 즉각 철군을 부시 정부에 강제하고 있지는 않다.

    더구나 ‘패배’하도록 유도했다는 비난을 덮어쓰고 싶지 않다는 기회주의적 고려도 존재한다. 철군의 방향으로 가겠지만 미래가 명확한 것은 아니다. 더구나 이라크가 내전상태에 돌입하고 있기 때문에 미래는 대단히 불확실하다.

    한국에서 최근 보수와 진보의 대립, 신보수 대 신진보의 대립이 격렬하다. 혹시 이에 대해 조언을 해 줄 수 있는가.

    월든 진보적 운동과 좌파적 운동은 새로운 도전에 대응하면서 부단히 자신을 혁신해나가야 한다. 새로운 세대가 부단히 내부에 참여하도록 하는 개방적 혁신, 신자자유주의 시대에 스스로를 혁신해가면서 신자유주의에도 반대하는 투쟁을 확장해야 한다.

    전통적인 모델에 집착해서는 안된다. 필리핀에서도 공산당은 여전히 모택동주의적 입장에서 언술을 사용하고 있다. 조직은 대단히 위계적이며 레닌주의적 왜곡의 성격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좌파와 진보는 변화에 대응하는 새로운 비전을 창출해가야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엘리트주의 아닌 대중의 동력에 기초한 참여적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일종의 문화적 헤게모니가 필요하다. 물론 이 헤게모니라는 것도 대중에게 위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사용한다면 안되겠지만.

    대중이 참여하고 대중이 주체가 되고, 그 과정에서 대중이 변화하는 대중교육과정이 생겨나는 과정이 필요하다. 진보는 대중의 상상력을 촉발하고 획득하는 설득력과 미래지향성을 가져야 한다.

                                                            * * *

    국내뿐만 아니라 아시아 최초의 시도인 ‘아시아 시민사회 지도자과정’은 성공회대가 국내 시민사회 지도자 교육을 위한 기존의 NGO대학원을 확장하여 올 3월부터 개설하는 2년제 석사과정으로,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선발한 시민사회 지도자 학생들의 학비와 생활비 전액을 5・18 재단 등 한국시민사회 재단, 현대자동차 그룹 및 여러 중소기업, 뜻있는 개인들의 후원을 통해 조달하는 새로운 협력모델 하에서 운영된다.

    과정 개설을 기념하는 ‘아시아 시민사회 석학 초청 연속강연’의 두번째 강사는 전 유엔대학 부총장이자 ARENA 공동대표인 무샤코지 킨히데(Kinhide Mushakoji)로, 오는 3월 2일과 3일 이틀에 걸쳐 프레스센터와 성공회대에서 아시아 시민사회와 사회운동 관점에서 본 새 유엔의 역할, 아시아 민주정부의 위기와 사회운동의 전망을 주제로 강연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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