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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시대 성장문학의 고전
    [그림책]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J.M. 바스콘셀로스 원작/ 동녘)
        2022년 12월 22일 10:4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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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구가 뭐라고

    사람들은 참 축구를 좋아합니다. 지금 전 세계는 축구 열기가 뜨겁습니다. 게다가 참 편리하게도 안방에 앉아, 한국의 케이리그뿐만 아니라, 영국의 프리미어리그, 독일의 분데스리가, 스페인의 라 리가 등 온 세상 프로리그를 다 볼 수 있습니다.

    축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저조차도 <뭉쳐야 찬다>와 <골 때리는 그녀들> 같은 축구 예능 프로그램을 즐겨보고, 손흥민이 나오는 경기는 넋이 빠져서 지켜봅니다. 이 정도면 축구를 좋아한다고 해야 할까요? 여하튼 축구에 큰 관심이 없는 제가 이 정도라면, 다른 사람들의 축구 열기는 말하자면 입이 아픕니다.

    축구의 나라 브라질 그리고 포르투갈

    그래픽 노블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는 과거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브라질이 배경입니다. 월드컵이 한창인 지금, 우리에겐 포르투갈과 브라질은 축구 선진국입니다. 물론 사람들은 밉상 호나우두를 더 많이 떠올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근현대사 속의 포르투갈과 브라질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주인공 제제는 육 남매 가운데 다섯째로 태어났습니다. 겨우 다섯 살이지만 글을 읽을 줄 알고 장난기가 많습니다. 제제는 자동차 뒤에 매달려 가고, 버려진 스타킹에 모래를 넣어 뱀을 만들어서 동네 아줌마를 놀라게 하고, 유리 조각으로 이웃집 빨랫줄을 끊어버리기도 합니다.

    문제는 말썽이 아니라 그다음입니다. 사람들이 집에 찾아와 항의하자 잔디라 누나는 다섯 살짜리 제제를 때립니다. 이후에도 제제는 누나와 아빠로부터 심한 폭행을 당하게 됩니다.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는 가정폭력으로 상처받는 제제의 이야기가 아주 중요한 축을 이룹니다. 도대체 이렇게 참혹한 가정폭력 이야기가 왜 이리 오래도록 사랑받고 있는 걸까요?

    웃기는 사람이 되자

    ‘웃기는 사람이 되자!’는 제가 늘 마음에 새기려고 노력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처음에도, 지금에도 남을 웃기는 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머릿속엔 늘 걱정이 가득하고 마음속엔 평생 입은 상처와 죄책감이 가득하니까요. 그러니 어떻게 웃기는 생각을 쉽게 할 수 있을까요?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를 보는 동안 제 마음은 편하지 않았습니다. 제제가 누나에게 맞을 땐, 어릴 때 형에게 얻어맞던 기억이 났습니다. 제제가 아빠에게 맞을 땐, 중학교 때 체육 선생님에게 얻어맞던 기억이 났습니다. 브라질과 한국은 서로 지구 반대편에 있지만, 브라질의 제제와 한국의 이루리가 겪은 폭력적인 환경은 너무나 비슷했습니다. 식민 지배와 군사독재라는 가슴 아픈 역사의 공통점 때문일까요?

    누구에게나 희망이

    다행히 제제에게는 마누엘 발라다리스라는 희망이 있습니다. 마누엘 아저씨는 제제를 언제나 다정하게 감싸주고 제제와 놀아주는 분입니다. 불행하게도 제제에게는 폭력적이고 생물학적인 아빠가 있습니다. 하지만 제제 마음속 진짜 아빠는 마누엘 아저씨입니다. 더불어 제제에게는 친절한 에드문두 아저씨와 사랑하는 쎄실리아 선생님이 있습니다.

    때로는 가족으로 만났어도 모두 다 친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가족이 아니어도 좋은 인연은 많으니까요. 나를 믿어주고 아껴주고 응원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비록 제제는 가족으로부터 사랑받진 못했지만 좋은 이웃이 많았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나를 믿어주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하나의 희망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나의 쎄실리아, 나의 포르뚜까

    저 역시 학교에서 폭력적인 선생님도 만났지만, 다정하고 따뜻한 선생님을 훨씬 더 많이 만났습니다. 제제의 쎄실리아 선생님처럼 소중한 선생님을 저는 열 분도 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제제의 포르뚜까 아저씨, 마누엘 발라다리스처럼 소중한 인연도 많이 만났습니다. 세어보진 않았지만, 저에게 포르뚜까 아저씨는 백 명도 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식민지 시대가 가고, 군부독재 시대가 가고, 21세기 AI의 시대가 왔어도 폭력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전 세계 국가 가운데 사 분의 삼은 전쟁 중이고 가정과 사회에서도 갈등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폭력적인 환경에서는 어른이든 어린이든, 제제처럼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또 다른 내상을 입을지도 모릅니다.

    세상을 구하는 새로운 방법

    여전히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는 많은 사람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상처받은 제제가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술 작품이 주는 위로와 희망 말고, 진짜 안전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방법은 무엇일까요? 이 세상에서 폭력과 전쟁을 끝낼 방법은 없을까요?

    오늘 저는 다섯 살 어린이 제제처럼 조금 엉뚱한 상상을 하고 싶습니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으니, 전쟁 대신 축구를 하면 어떨까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북한과 한국, 중국과 미국, 아랍과 이스라엘이 전쟁 대신 축구를 하면 좋겠습니다. 부디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축구로 세상을 구원하면 좋겠습니다. 저의 엉뚱하고 순진한 상상이 실현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그리고 그날이 오면, 모든 축구 선수가 진짜 영웅이 될 것입니다.

    필자소개
    세종사이버대학교 교수. 동화작가. 도서출판 북극곰 편집장. 이루리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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