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당이 차린 하우스에서
    윤 정부와 화물연대가 얻은 것은?
    [기고] 사태의 원인·결과·과제에 대한 단상
        2022년 12월 13일 02:3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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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물연대의 16일간 파업 사태가 끝났다. 사태의 원인, 결과, 과제를 간략하게 정리해 둔다.

    근본적 원인은 다단계 하청 관행과 영세 자영업자(지입차주)가 화물차 90% 이상을 소유하는 육상화물운송 시장의 낙후한 제도겠지만, 파업 사태를 촉발한 직접적 원인은 민주당이 3년 전 만들어 놓은 안전운임제였다. 안전운임제는 2019년 4월 민주당이 화물연대 요구를 받아 법제화되었다. 2020년부터 3년만 유효한 법이었다. 특정 상황에서만 필요한 제도가 아님에도 일몰 규정을 둔 것은 이 제도가 실제로 어떤 효과를 낼지 정부 당국과 민주당도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효과를 검증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화물연대의 2022년 6월 파업에서도 드러난바, 2년 반 동안 민주당 정부는 제도를 방치했다. 단적인 예로 안전운임이 적용되는 화물차(컨테이너, BCT)의 사고 통계조차 없었다. 국토교통부가 언론사에 뿌린 자료는 단순한 화물차 사고 통계다. 사실 비교 근거로 사용하기 어렵다. 고물가 고금리 상황에서의 안전운임제 개선책 같은 대안이 있을 리도 없었다. 2021년 말부터 물가 상승이 심상치 않았음에도 5월 새 정부 출범 때까지도 수수방관이었다.

    이렇게 윤석열 정부에서 안전운임은 ‘폭탄’이 되어버렸다. 유가를 비롯한 물가 상승분을 곧바로 운임에 반영하는 안전운임은 고물가가 이어질 때 물가 가속장치가 되어버린다. 물류비는 모든 품목의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다들 어렵기 때문에 다른 자영업자와 형평성 문제도 불거질 수 있다. 그런데 화물연대 입장에서 안전운임은 이전보다 더 절박한 제도가 됐다. 고물가로 실질 운임이 하방 압력을 받는 가운데 경기침체로 덤핑 경쟁마저 커지는 상황이었다. 안전운임이 실질 임금을 방어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제도가 됐다. ‘메이드 바이’ 민주당표 안전운임을 두고 윤 정부와 화물연대는 충돌할 수밖에 없는 숙명이었다. 양쪽이 능력이 탁월했다면 피할 수도 있긴 했겠지만 말이다.

    6월 파업은 숙명이었다면, 12월 파업은 선택이었다. 윤 정부는 6개월간 급하더라도 어떻게든 수습책을 만들 수 있었고,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의 품목확대와 영구화는 당장은 무리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확인했듯 둘 다 충돌을 피하기 위한 선택을 하지는 않았다. 윤 정부는 딱히 열심히 일하지 않았던 것 같고, 화물연대는 강하게 들이대면 밀어 볼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민주당은 자신들이 마치 화물연대 요구를 국회에서 관철할 것처럼 허풍을 떨었다. 12월 파업 사태는 정부의 무능, 화물연대의 과욕, 민주당의 허풍이 조합된 결과라 하겠다. 참으로 ‘웃픈’ 사태다.

    그렇다면 이 파업 사태의 최종 결과는 무엇일까?

    정부와 아무것도 합의하지 못하고 파업을 종료한 화물연대는 손해가 막심하다. 파업 기간의 경제적 손실도 큰데, 무엇보다 신뢰를 잃은 점이 치명적이다.

    안전운임제는 화주-차주(화물연대) 교섭에 정부(공익위원)와 운송사가 중재를 서는 구조로 되어있다.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한국의 노사 교섭구조 중에 가장 중앙집중적이고, 경제적 파급효과도 가장 크다. 이렇게 파급효과가 큰 교섭은 상호 신뢰가 생명이다. 자칫 엄청난 비용을 떠안을 수도 있어서다. 믿지 못한다면, 즉 상호갈등을 피할 수 있다는 잠재적 효용을 확신하지 못하면 판은 바로 깨진다. 노사 중앙교섭이 활성화되어 있는 독일이나 북유럽에서 파업이 극도의 자제되는 까닭도 이런 것이다. 노조는 중앙교섭 안정화를 위해 단위 사업장의 파업까지 통제한다.

    이번 화물연대 파업은 교섭 참여자의 신뢰성이란 측면에서 보면, 상당한 위험 요인을 내포하고 있었다. 특히 파업 직전 정부가 안전운임제 3년 연장을 제시했음에도 품목 확대와 영구화를 내걸고 파업을 강행한 것은 치명적 실수였다. 안전운임 같은 중앙교섭에 필요한 자제심과 신뢰를 스스로 저버린 행위다. 화물연대가 안전운임의 운영에 필요한 주체가 되기 어렵다고 자인한 꼴이 되었다.

    윤 정부는 파업 사태에 강경 대처하면서 보수층의 지지를 다졌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다. 혹자는 정부가 승리했다고 평가하기도 하는데, 한심한 소리다. 정부는 ‘법과 원칙’이라는 노동개혁의 금기어를 꺼냈다. 어차피 법대로 할 것이라면 굳이 개혁 어쩌구저쩌고를 말할 필요도 없다. 법을 바꾼 뒤 위법자를 처벌하면 끝 아닌가.

    물론 노동개혁은 절대 이런 식으로 이뤄지지 못한다. 법의 영역이 아니라 협력과 관행의 영역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노동법 개정은 노동자 여론을 얻지 못하면 야당 문턱을 넘지 못한다.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내놓은 노동개혁 권고안은 곳곳이 이해갈등이 충돌하는 지뢰밭이다. 개혁에 참여할 유인(incentive)을 충분히 만들지 못하면 노동자가 참여할 이유가 없다. 법과 원칙을 꺼내든 순간, 개혁은 시작도 못 한다.

    민주당이 차린 하우스에서 윤 정부와 화물연대가 몽땅 타짜에게 털린 형국이다. 화물연대는 조직 복구에 오랜 시간을 써야 하는데, 안전운임은 더 불안해졌다. 윤 정부는 2024년 총선 전에는 프로세스가 없는 노동개혁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개혁 과제 1호의 운명이 참으로 기구하다. 정부는 무능하단 평가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다들 한발 물러서, 모두 무엇이 문제였는지 성찰할 시간이다. 세계경제 침체와 지정학적 위기가 심상치 않다. 지금이야말로 집단적 지혜를 발휘할 때다.

    필자소개
    연구활동가, <대통령의 숙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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