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서진 1.5℃ 가드레일,
    기후붕괴로?···기후체제가 바뀌고 있다
    [정의로운 경제] ‘1.5도 이후 체제’를 모색하며
        2022년 12월 12일 09:5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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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한계선은 이미 깨졌는가?

    최근 기후위기 대응에 대한 근본적인 방향전환을 모색하려는 조짐이 수면 아래서 일어나고 있다. 글로벌 차원에서 기후대응체제를 대표하는 가장 기본적인 가이드라인이 붕괴되려 하기 때문이다. 바로 1.5℃ 한계선이다. 현재 기후위기 대응체제는 기본적으로 2015년 파리협약 체제다. 그리고 파리협약체제는, “지구온도 추가상승을 2℃ 보다 훨씬 낮은 1.5℃ 이내에서 제한하며, 이를 위해 2030년까지 탄소배출 절반 감축, 2050년까지 순배출 제로”라는 공동목표를 베이스라인으로 하는 공감대가 있었다.

    그런데 파리협약체제의 기본인 ‘레드라인 1.5℃’에 대한 사망선고 목소리가 조금씩 나오고 있는 것이다. 가장 선도적으로 포문을 연 사람은 런던유니버시티 칼리지의 기후과학자 빌 맥과이어(Bill Mcguire)다. 그는 2022년 출간한 저서 <찜통지구(Hothouse Earth)>에서 더 이상 지구 온난화가 아니라 지구 가열(Global Heating)이라고 표현해야 하며, 기후 위기를 넘어 기후 붕괴(Climate Breakdown) 상황에 왔다고 강조했다. 이미 2021년 글래스고에서 열렸던 COP26회의 때부터 1.5℃ 한계선은 겨우 생명연명장치에 의존하는 수준이었는데, 이후에도 아무런 반전의 계기를 만들지 못하면서 1.5℃ 가드레일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 탄소배출 순제로가 가는 신뢰할만한 경로를 찾을 수 없다고 지적한 유엔환경계획의 보고서 표지

    한편 2022년 11월 6일 이집트에서 열린 COP27을 앞두고, 유엔환경계획도 보고서를 내면서 1.5℃ 한계선 유지에 심각한 의문을 드러냈는데, “현재의 정책이나 감축 약속안을 가지고서는 2030년부터 넷제로 목표를 향한 신뢰할만한 경로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영국의 경제지 이코노미스트지도 2022년 11월 13일자 기사에서 “이미 배출된 온실가스의 지속적인 영향과 하룻밤 사이에 배출을 중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제 지구가 1.5°C 이상의 온도 상승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1.5℃ 추월이 너무 크지 않고 일시적일 수 있다는 희망은 여전히 있지만 이러한 위로의 가능성조차 점점 줄어들고 있다”면서 냉정하게 1.5℃ 사망선고를 내렸다.

    1.5℃ 기준 유효성 논쟁, 버릴 것인가 지킬 것인가?

    도대체 왜 이런 문제제기나 판단들이 나오고 있을까? 생각해보면 너무 당연한 문제제기다. 2015년 파리협약을 체결할 때에는 15년 뒤인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절반 수준으로 줄임으로써 1.5℃ 한계선 안에 들어올 확률이 높아질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리고 그 후 절반 정도인 7년이 지났다. 그런데 중간결과는 뭔가? 7년 동안 온실가스 배출이 줄어드는 것은 고사하고 반대로 10퍼센트 정도 더 늘지 않았는가.

    지금부터는 15년 안에 절반을 줄이는 과제가 아니라 남은 8년 안에 절반을 줄여야 하는, 사실상 미션 임파서블에 가까운 궁지에까지 몰린 실정이다. 유엔환경계획 표현대로 ‘광범위하고, 대규모적이며, 빠르고, 체계적인 전환 대책’이 아니라면 이루지 못할 과제다.

    빌 맥과이어는 2022년 9월 12일자 가디언지에 기고한 글을 통해서, 현재 파리협약에서 2030년까지 절반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2010년 대비 45퍼센트를 줄여야 할 도정에 있는 우리는 그 사이에 오히려 10퍼센트가 늘었다”고 비판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1.5℃를 말하는 것은 잘못된 길로 인도할 수 있고 헛된 희망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물론 2030년까지 8년 안에 탄소배출을 45퍼센트 줄이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겠지만, ‘실질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더욱 비관적인 것은 11월 6~20일 사이에 열렸던 COP27 회담에서는 전혀 지금의 상황을 반전시킬 요소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COP27은 화석연료의 ‘단계적 폐지(phase-out)’에도 합의하지 못한 채, 고작 ‘단계적 감축(phase-down)’에 머무르는 등 부서지는 1.5℃ 한계선을 지키려는 그 어떤 절박성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또한 주요 국가들이 현재 감축 약속안을 지킨다고 하더라도 2.4~2.6℃ 가량 온도가 상승할 것으로 전망됨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약속을 더욱 상향시키려는 움직임 역시 찾기 어려웠다.

    사실을 외면하면 어떤 제대로 된 정책도 불가능하다.

    빌 맥과이어는 앞으로 5년 안에 1.5℃를 한 번 이상 넘어갈 가능성이 적어도 40퍼센트가 되는 상황이고, 2023~2024년 사이에 엘리뇨(남미 페루 부근 태평양 적도 해역의 해수 온도가 크리스마스 무렵부터 이듬해 봄철까지 주변보다 2~10℃ 이상 높아지는 이상 고온 현상)가 발생하면 1.5℃는 쉽게 넘어서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따라서 앞으로 (2030년 1.5℃ 한계선처럼) 다년간 목표를 세우는 것은 그 해가 될 때까지는 늘 목표가 달성 가능한 것처럼 보일 수 있는 약점이 있으므로, 이런 방식은 너무 늦어버릴 때까지 자신들의 관성을 정당화시키는 방식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비판한다.

    1.5℃ 목표가 자칫 “관행적 방식을 가려주는 무화과잎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1.5℃ 목표를 치워버려야 기업과 정부가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할 안전망도 없게 될 것이므로, 이제부터는 매 0.1℃를 가지고 싸우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빌 맥과이어의 주장이다. 상당히 설득력 있는 주장이며 진지하게 숙고해봐야 할 가치가 있다.

    물론 이에 대한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쟁점화시키려는 의도를 가진 가디언은, 2022년 11월 30일자로 국제에너지기구(IEA) 상임이사이자 경제학자인 파티흐 비롤(Fatih Birol)의 인터뷰를 게재했다. 비롤은 1.5℃ 한계를 넘었다는 것이 사실적으로 틀렸고 정치적으로도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면서, “팩트는 1.5℃로 가는 길이 좁아졌지만 여전히 달성가능하다”고 적극적으로 반박했다.

    비롤은 1.5℃ 사망선언이 기후과학자, 활동가와 화석연료 기득권의 통상적이지 않은 동맹을 형성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는데, “1.5℃ 부고기사를 쓰는 건 기존 에너지시스템 옹호자들에게 이득이 될 것”이기 때문이란다. 그는 “현재 국가들의 목표를 모아보면 1.7℃에 도달한다고 스스로 계산”하고 있는데, 이는 사실 유엔이나 대다수 과학자들의 계산과는 동떨어진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명확히 해둘 것이 있다. 정치적인 고려는 어디까지나 과학적인 사실에 바탕을 두고 사실을 숨김없이 공론장에 올려놓은 다음의 문제라는 것이다. 역사적 선례를 보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지식인들이 임의로 숨기거나 회피해서 상황이 나아진 경우는 없다. 특히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기준 목표는 자연과학적으로 정해져야만 하는 것이지 정치적으로 정하면 안된다. 따라서 비롤이 정치적으로 역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면서 1.5℃ 사망선고를 반박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한 것이다.

    티핑 포인트가 넘어가는 국면의 기후대응체제는?

    아직 문제는 남아있다. 지금까지 글로벌 기후행동의 공통 기준점이었던 1.5℃ 기준선에 사망선고를 내리고 나면 이후 무얼 기반으로 정책을 세우고 행동을 하자는 것인가? 2℃ 한계로 후퇴? 이런 식의 후퇴는 끝없는 퇴보로 이어지지 않을까?

    이 대목에서 주의할 것이 있다. 1.5℃는 지구에 새겨진 한계가 아니라 인류가 정한 한계이지만, 한번 무너지면 되돌아오기 어려운 티핑 포인트들을 넘을 위험이 숨어 있다. 그런 위험이 실제로 어떻게 나타날 수 있는지 인류는 지난 8월 파키스탄 대홍수 참사 사례를 통해서 생생하게 목격했다. 그래서 이번 COP27 회의에서 “파키스탄에서 일어난 일은 파키스탄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면서, 오늘의 파키스탄이 내일의 우리 모습이 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공감을 얻었던 것이다. 이제 추가적 온도상승뿐 아니라 재난과 붕괴의 위험에 대한 대비가 동시에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것이 1.5℃ 이후 체제에서 주목해야 할 첫째 이슈다.

    또한 앞으로 2030년 또는 2050년 같은 다년 목표에 의존하는 기후대응방식을 심각히 재고해 봐야 한다. 기후과학자 마이클 만은 기후대응을 위한 조치를 취할 시간이 얼마 남았는지에 대한 질문에 “한 해도 남지 않았다(we have zero years left to take action)”고 대답했다. 당장 올해 어떤 실제적인 조치와 성과가 없으면 내년도, 2030년도, 2050년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정확한 지적이다. 이제 2030년이나 2050년이 아니라 2023년 목표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해야 한다. 세계는, 한국은 2023년에 어떤 실제적인 행동을 준비하고 있는가?

    한 가지 덧붙인다면, 각 국가의 자발적 약속에 기초한 2015년 파리협약체제를 그대로 이어가는 것이 맞느냐 하는 질문이다. 일부 과학자들은 이제부터는 IPCC 기후평가 보고서 작성에 참여하지 말자면서, “앞으로 IPCC 7차 보고서 작성에 과학자들이 참여하는 것은 완전히 무책임한 짓이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더 이상의 IPCC 평가보고서 작성을 중단하자고 요청한다. 우리는 정부가 기꺼이 자신의 책임을 성실하게 이행하고, 지역과 글로벌 수준에서 모두 조율된 행동을 긴급하게 만들어낼 때까지 기후변화 연구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는 주장을 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저명한 기후저널리스트 나오미 클라인은 COP27회의가 끝난 직후 트위터를 통해서 COP 회의 자체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는 내년에 아랍에미리트에서 치러질 COP28에 대해서, 시민사회가 탄소, 돈, 시간을 들여 찾아가 다시 한번 실패를 선언해야 할 것인지 반문하며, 이제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자(Let’s try something new)고 화두를 던졌다. 그의 아이디어는 COP28 보이콧을 선언하고 ‘진정한 시민회의(a true people’s summit)’ 열자는 것이다.

    이처럼 기후위기의 심각성이 정도를 더해가는 동안에도 IPCC체제와 COP체제가 지극히 무력하게 대응하는 양상이 누적되면서, 이제 새로운 변화를 주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여기저기 나오기 시작했다. 어쩌면 2023년은 완전히 다른 전망과 대책들을 모색해야 할지 모른다. 엄중한 진실을 회피하거나 눈감지 말고 정면으로 응시해야 할 시점이 오고 있다. 2023년 새해가 오기 전에 숙고해야 할 과제다.

    * <정의로운 경제> 연재 칼럼 링크

    필자소개
    전 정의정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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