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해서 성공? 서민은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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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2월 24일 10:5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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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국회 한미FTA특위가 참여하는 청와대 만찬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특유의 자신감을 보이며 다음 두가지를 강조했다. "무역의존도가 70%인 나라에서 개방 안하고 어떻게 먹고 살 수 있느냐’, ‘과거 개방할 때마다 나라 망한다고 반대하던 세력이 또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그 개방 때문에 우리나라는 성공했다. 까르프, 월마트 다 이겼다. 한미FTA도 성공 할 것이다’"

개방의 최대 수혜자, 외국자본

   
 ▲ 지난달 25일 강북구 지역 주택정책 거리설명회를 갖고 있는 심상정 의원 (사진=심상정 의원실)
 

대통령은 아예 진보진영을 겨냥해 말한다. “진보진영은 개방을 할 때마다 ‘개방으로 나라가 무너질 것’이라고 걱정했으나 우리 경제는 모든 개방을 성공으로 기록하면서 발전을 계속했습니다. 이제는 2만불 시대에 들어섰습니다.” (노무현, “대한민국 진보, 달라져야 합니다” 2007. 2. 17).

세월이 지나 어느 권력자가 역사를 왜곡 서술하는 것도 아니고 동시대 서민들이 이렇게 눈을 시퍼렇게 뜨고 숨쉬고 있는데도 “모든 개방을 성공으로 기록하면서 발전을 계속”하고 있다니! 도대체 대통령은 누구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가?

IMF 금융위기 이후 본격화된 개방은 우리나라 기업들이 외국자본에 헐값으로 팔려나가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 말 많은 외환은행을 비롯한 대형은행들과 공기업들이 외국자본 손으로 넘어갔다. 금융기관들이 보유한 채권들도 ‘떨이 값’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오죽하면 IMF 수석부총재였던 스탠리 피셔마저 "국보급 기업들을 그렇게 서둘러 헐값에 팔아대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했을까.

외국자본 ‘쓰나미’는 단숨에 우리나라를 멕시코와 더불어 OECD 국가 가운데서 외국인 지분율이 가장 높은 나라로 만들었다. 경제위기 직전 16%에서 2005년에는 40%로 올라갔다. 경제의 혈맥이라 할 주요 은행들도 외국자본의 손에 넘어갔다. 은행지분을 사들인 외국자본은 지난해에 배당금으로만 2조2천억 원을 챙겼다. 말 그대로 ‘돈잔치’다.

노동자는 실패를 맛보고 있다

준비 없는 개방은 서민에게 무엇을 주었는가? 우선 노동자를 살펴보자. 개방의 세례를 받으며 기업들은 단기수익을 절대시하는 주주자본주의 경영을 정착시키는 데 성공했고, 노동자들은 퇴출과 비정규직화의 길을 갔다. 작년 비정규직 노동자가 845만명으로 전체 55%에 이른다. 개방으로 다수 노동자들은 실패를 맞보고 있다.

외국자본이 들어와야 고용을 창출할 것이라고 주장할지 모르겠다. 외국인투자 중 포트폴리오투자는 주식차익을 목표로 하는 것이기에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 직접투자가 이 대목의 논점일 것이다.

지난해 외국인 직접투자 통계를 보면 총 투자액 112억 달러 가운데 인수합병투자(M&A형)가 38.3%, 신규설비투자(Greenfield형)가 61.7%였다. M&A형을 제외해도 Greenfield형이 60%를 넘으니 상당히 좋은 듯 보인다. 여기서 또 참여정부의 수치 마술이 작동한다.

Greenfield 형 투자 61.7%는 공장설립 19.4%, 사업장 설립 42.3%로 이루어져 있다. 사업장 설립은 상당수가 매장, 야적장 등 부동산 매입과 관련이 있어 실질적인 고용창출형 투자로 보기 어렵다. 결국 직접투자 가운데 순수 공장설립은 12.1%에 지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자영자는 더 이상 몰릴 곳도 없다

자영자 부문을 보자. 기업에서 내쫓긴 노동자들이 먹고살기 위해 다시 자영자 시장으로 내몰렸다. 조그만 지역시장에서 가난한 서민들간 무한경쟁이 전개된 것이다. 하지만 이 경쟁도 오래 가지 않았다. 대형마트가 태풍처럼 몰아쳤다.

1998년 91개던 대형마트는 2005년 307개로 330%나 늘어났다. 반면, 같은 기간 영세소매점은 70만6,000개에서 62만6,000개로 11.3%가 줄었다. 국내 재벌 유통회사든 초국적 유통회사든, 그들은 모두 지역시장을 삼키는 괴물이다. 대형유통회사는 성공했지만, 그들의 성공을 위해서 다수 지역서민들은 가게 문을 당아야 했다.

난 얼마전 정부의 국정브리핑(2007.2.3)을 보고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한미FTA를 홍보하는 “한미FTA 동영상③ ‘2마트 vs 月마트’. 유통시장 개방 10년, 역시 토종은 강했다”라는 자료이다.

작년에 한국 까르푸가 국내 이랜드, 월마트가 국내 신세계로 인수된 ‘경사’에 관한 홍보물이다. 유통시장 개방에 따른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라는 것이다. 난 기우를 넘어 좌절한다. 한강변에 나온 시민들을 잡아먹는 데 서울의 ‘파랑괴물’이 외지에서 온 ‘노랑괴물’을 앞섰다고 주장하는 격이다. 이것이 괴물사회에선 중요한 일일지 모르지만 시민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은 괴물에 먹혀 죽는 시민들이다.

나는 지난해 6월 대형마트의 진출을 규제하고 중소영세상인들을 지원하기 위한 ‘지역유통산업균형발전을 위한 특별법’을 발의하였고, 최근에는 재벌유통사가 중소형 유통시장(SSM)까지 진출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지역상인들과 대형유통점, SSM 확산저지 운동을 펴고 있다.

그리고 지난 23일 산업자원부로부터 “현행 WTO규범에 의하면 대형마트를 규제할 수 없다”라는 유권해석을 담은 이례적인 보도해명자료를 받았다. 괴물사회의 법도를 침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다수 서민은 자꾸만 궁핍해진다

서민의 실패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확대되는 농업개방으로 농촌은 이미 파괴되고 있다. 젋은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고, 혹 있어도 장가가기도 어려운 처지가 되어버렸다. 340만 농민의 가구당 농가부채만 2,700만원에 달한다.

외국자본이 장악한 금융기관은 부자 마켓팅에 몰입하여 서민의 문턱을 높이고, 금융약자를 재착취하는 살인적인 고금리체제가 버젓이 활개치고 있다. 고금리 전단지, 금융약자들이 거리를 헤매고 있는데 정부는 신용불량 용어를 없애면서 신용불량자 통계수치 발표도 중단했다.

720만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금융기관 문턱에도 못 가고 있는데 말이다.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사채시장을 기웃거릴 수밖에 없다. 대부업이 번성하는 이유이다.

우리사회 곳곳에서 서민들의 실패가 확인된다. 70%가 실업상태에 처해 있는 480만 장애인, 대형마트 진출로 벼랑위로 내몰린 350만 영세상인, 월소득 119만원에 일자리마저 불안한 845만 비정규직 노동자, 실질적인 빈곤상태에 빠져 있는 700만명의 빈곤계층. 우리사회의 주인인 서민들은 정말 먹고살기 힘들다. 재벌과 외국자본, 여기에 빌붙은 관벌들이 성공의 축배를 들 때, 서민들은 고통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제 한국은 소득 10분위계층 내부 불평등도가 9.4로서 OECD 평균 4.3의 두배가 넘는, OECD 회원국 중 1위가 되었다. 그래도 대통령은 성공의 축배를 계속 들고 있겠는가?

   
  ▲ 설 귀향, 한미FTA반대를 이야기하는 심상정 의원(사진=심상정 의원실)
 

대통령의 신앙, 한미FTA

개방에 대한 대통령의 신앙은 과거 개방에 대한 찬양에서 그치지 않는다. 대통령의 개방론이 심각한 까닭은 그가 우리사회 미래를 그의 신앙대로 결정지려 한다는 점에 있다. 발 등의 불로 다가온 한미FTA 문제이다.

대통령의 국민경제비서관을 지낸 정태인씨는 왜 노무현 대통령이 갑자기 한미 FTA를 추진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기껏 제시한 것이 FTA 대세론(다른 나라가 하니까 우리도 한다), 미국시장 선점론(중국, 일본이 하기 전에 우리가 해야 한다), 중국 위협론(몇 년 내에 중국이 우리 제조업을 따라 잡을 것이다), 외부쇼크에 의한 내부개혁론(스스로 서비스업을 개혁할 능력이 없으니 외부쇼크가 필요하다)이지만 하나 같이 근거가 취약한 것들 뿐이다.

정부는 한미 FTA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우리의 선택"이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한국과 경쟁하는 어느 나라도 미국과 FTA를 맺지 않았으며 가까운 미래에 FTA를 맺으려는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

미 의회조사국이 CRS보고서에서 강조했듯이 한미 FTA는 미국 초국적기업의 최대 이익을 위해 한국의 비관세장벽, 바로 한국의 법과 제도를 바꾸는 것이다. 현재 알려진 협상 내용만 봐도 지적재산권을 50년에서 70년으로 연장해야 하고, 제네릭 약품(카피약-편집자)의 생산이 까다로와지며, 자동차 세제도 바꿔야 한다.

투자자-국가 제소권의 존재로 인해 이제 함부로 환경규제를 강화하거나 국민의 사회권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을 펴기도 어려워질 것이다.

진보진영, 이제 대안을 이야기하자

대통령은 진보진영을 ‘개방 때마다 나라 망한다’고 주장하는 쇄국론자로 매도하고 있다. 하지만 진보진영은 기본적으로 국제주의자이다. 다만 금융자본의 국제화가 아니라 풀뿌리 연대를 통한 국제화를 주장한다는 점에서는 대통령의 세계화와 완전히 다르다.

진보는 서민이 성공하는 개방을 원한다. 그래서 개방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기준이 민중의 삶이 개선됐는가, 민주적 가치가 제고되었는가, 평등과 연대의 가치가 제고됐는가에 둔다.

모두들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경제가 핵심이라고 한다. 나는 이번 선거과정에서 진보진영의 대안경제 논의가 활성화되기를 바란다. 진보진영이 지녀왔던 분배중심 경제모델, 일국적 대안경제모델의 한계를 넘는 논의가 필요하다.

나는 얼마 전 ‘국내 서민경제론, 한반도 평화경제론, 동아시아 호혜경제론’으로 구성되는 ‘세박자 경제론’을 제안한 바 있다. 굳이 영어로 하자면 트리플노믹스(triple-nomics)다. 세박자 경제론은 앞으로 5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50년, 100년 한국사회를 지탱할 경제패러다임의 전환을 지향한다. 이를 통해 대안경제 논의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다. 이제 대통령의 개방 신앙을 무너뜨릴 수 있는 진보진영의 길을 찾아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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