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똑똑한 척 하지 말고 문을 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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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2월 23일 04:2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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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파바로티 신드롬이라는 말이 있다. 테너 창법으로서 파바로티의 특징을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말이다.

    요즘 우리나라의 현상은 가히 노무현 신드롬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집단적으로 ‘노무현과 나’라는 질문을 하는 중인 것 같다. 하여간 대통령은 자신은 잘못한 거 하나도 없다고 말을 했으니, 그 말이 사실이라면 국민이든, 학자든, 전문가든, 아니면 정치인이든 하여간 누군가 잘못을 하기는 했을 것이다.

    열린우리당도, 민주노동당도 아닌 많은 사람들

    형식논리적으로 대통령이 뭔가 잘못했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또 다른 누가 잘못했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세 경우 중에 하나일 것이다.

    "난 잘못한 것이 없고 모든 것은 잘 되어간다"는 대통령의 이 명제는 모든 국민들을 철학자로 만든다. 이 명제 앞에 답하는 방법은 몇 가지 없다. 그 이름을 좌파라고 부르든 진보라고 부르든 혹은 그 어떤 수식어를 붙이든 분명히 존재하는 하나의 세력이 있는데, 이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대통령의 명제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투표했고, 한참 선거 중에 후보 교체 얘기가 나올 때 여의도 예전 민주당사에서 1인 시위에도 참여했고, 탄핵 때에 시위에도 나갔다. 그리고 새만금 때부터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 계속 비판을 했다.

    민주노동당에는 2002년 대선 때부터 당원이지만, 실제로 활동한 것은 선거 공약 만드는 일 정도 밖에 없기 때문에, 당원으로서 내가 가지고 있는 자기정체성은 0%에 가깝다고 보면 된다. 만약 누군가 이걸 문제 삼는다면, 난 언제든지 탈당할 만반의 자세가 되어 있는, 그렇게 별로 조직적인 활동을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대체적으로 조희연 교수로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시민단체의 상근활동가들의 생각이 이 정도 어딘가에 있을 것 같다. 현실적으로는 대선이 중요하기는 한데, "열린우리당은 아니고"라는 것이 대체적인 공감대이고, 여기에 보조명제 하나를 붙인다면 "그렇다고 민주노동당도 아닌 것 같고"라는 사람들이 있다.

       
      ▲ 노무현 대통령 탄핵당시 촛불집회에 참석한 그 많던 지지자들…
     

    2.

    노무현 신드롬은 이 사람들에게 중요한 질문이다. 어차피 죽어라고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간다고 하는 사람은 그렇게 가면 된다. 또 민주노동당이 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도 노무현 신드롬은 아무 것도 아니다. 정반대에 서 있는 극우파들에게도 노무현 신드롬은 명제로서의 가치가 없다.

    골수 반한나라당 사람들의 표심이 주요 변수

    다만, 지난 대선에 노무현에게 투표했으나, 한미 FTA와 부동산 폭등 등 현 정부가 하는 정책과 방향이 "영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올해 대선에서 어떻게 투표할지 혹은 적극적으로 어떤 활동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대통령이 던진 명제는 노무현 신드롬으로 다가온다.

    이 사람들은 작게 보면 10% 정도 크게 보면 20% 정도가 된다. 만약에 아직도 대선에서 바람을 생각한다면, 아직 마음을 정하지 않고 갈등하는, 그러나 절대로 한나라당에 투표하지는 않을 이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느냐가 올해 대선의 마지막 변수일 것이다.

    대체적으로 나나 나와 같이 생태농업운동이나 환경운동을 했던 사람들의 마음이 이럴 것 같다.

    그리고 이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국방부의 시계가 째각째각 흘러가는 것처럼 "너희들이 뭐라고 하든 한미 FTA 시계는 간다"라고 말하고 있는 노대통령이 중요하다. 사실 나도 내심 초조하다.

    대통령에게 미안하지만, 아무 일도 없고 모든 것이 잘 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과 나와 같이 지난 대선에 대통령에게 기꺼이 투표하고, 세상 좋아질 것이라고 믿었던 순진한 바보들이 지금 대통령과 할 수 있는 얘기는 없다.

    아니, 모든 것이 다 잘 되고, 눈 감고 ‘비전 2030’이 전개되는 것만 기다리고 있으면 다 좋아진다는데, 같이 할 수 있는 말이 뭐가 있겠는가.

    이 선택이 대체적으로 금년 5월이나 아니면 10월까지 더 뒤로 갈 줄 알았는데, 노무현 명제는 지금 이 선택을 강요한다. 이게 진짜 노무현 신드롬인 셈이다.

    3. 손호철 vs 조희연 논쟁을 감상하는 법

    다른 사람들은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내 눈에 비친 조희연과 손호철 논쟁은 크게 보면 두 가지 쟁점을 가지고 있다.

    "민주노동당을 지지해라."
    "아니, 쟤들은 반 신자유주의 얘기 말고는 하는 얘기가 없는데, 어떻게 민주노동당 중심으로 뭉칠 수 있단 말이냐?"

    "그래도 대안이 없지 않느냐."
    "대안이 없어도 반 신자유주의라는 하나의 문제의식만으로 어떻게 지난 20년 동안 같이 운동했던 수많은 부문운동과 각자의 장이 조화롭게 모일 수 있단 말이냐?"

    "그래도 노무현과 같이 할 수는 없지 않느냐?"
    "그건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반한나라당, 이건 아닌 것 같다."

    대체적으로 나한테는 까마득한 할아버지뻘 되는 이 분들의 논쟁을 내가 읽은 방식이다. 그렇다면 최장집 교수가 결국 "너희들 민주노동당하고 같이 하면 어떻겠니?"라는 말을 했단 말인가? 그 학문적 내공이 높으신 분의 깊은 속을 내가 알 길은 없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내 상식으로 조희연 선생과 손호철 선생의 논쟁을 해석하자면 이런 얘기다.

    여기에 노대통령과는 애초에 논쟁할 거리가 없는데 대통령이 끼어든 것이다. 민주노동당을 우리가 집단적으로 지지할 수 있느냐, 그리고 그 경우의 조건은 무엇인가, 뭐 이런 얘기들을 하고 있었는데, 생뚱맞게 "나도 좀 얘기하자"고 했던 대통령의 명제가 그야말로 노무현 신드롬이 된 셈이다.

    물론 신드롬의 사회적 효과는 분명히 있다. 언젠가 마음을 결정하겠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지금" 결정을 해야 하는 효과를 만든 것은 분명하다.

       
      ▲ 2002년 9월 8일 대선후보 선출대회에 참석한 민주노동당 당원들
     

    4. 지금종의 발언을 감상하는 법

    노무현 신드롬이 진짜 사회적 효과를 확실하게 발생시키기는 했다. 어차피 이 신드롬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각을 바꾸거나 행위를 바꾸지 않을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일도 아니지만,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는 했다. 지금종 문화연대 전사무총장은 시민단체 내에서 가장 민중단체와 가까운 사람이다. 문화연대라는 단체의 성격이 원래 그렇고 게다가 지금종 개인의 정치적 소신도 그렇다.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대화 선생이 주축이 된 시민단체의 모임에서 지금종씨가 사무총장을 맡게 된 것은 시민단체도 대선이라는 공간을 뭉치지 않고는 통과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민단체 내에는 아직도 노무현 대통령에게 기대를 하는 사람이 많을 뿐더러, 어떻게든지 자유주의 세력과 손을 잡고라도 정권을 재창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충분히 이해할 수는 있는 일이다.

    게다가 민주노동당과 같이 대선을 하고자 마음을 먹었더라도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만약 동료들이 마음씨 좋다면 그나마 "큰 맘 먹었다"는 얘기를 듣게 되고, 만약 놀부 형님 같은 동료들이 있다면 "배신자" 소리 듣기 딱 좋은 상황이다. 2002년 총선에 원내에 진출했던 민주노동당이 그 이후 2년 동안 보여주었던 ‘치사 빤쓰’와 대책없는 분열상이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이 상황에서 노무현 신드롬이 지금종 총장의 마음을 움직인 셈이다. ‘미래구상’에서 혹시 대선 후보를 준비할 수 있다면 민주노동당의 경선에 참여할 수도 있다는 어제 토론회에서의 지금종 총장의 발언이 노무현 신드롬이 만들어낸 가장 큰 직접적인 변화인 셈이다.

    시민단체의 독자세력화 논의의 연장선 위에 있는 미래구상에서 민주노동당 경선에 참여할 수도 있다는 발언은 내가 기억하는 한으로는 술자리나 사석에서도 나온 적이 없었던 첫 번째 발언이다.

    노무현 신드롬이 쎄기는 쎄다.

    5. 두 가지 질문들

    시민단체를 비롯해 지금 노무현은 아니고, 그렇다고 열린우리당은 더더구나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종이신문은 ‘중도’라고 표현하기는 하는데, 그건 또 이상하다. 내 경우가 그런데, 그렇다고 내가 손학규를 지지하겠는가 아니면 이명박을 지지하겠는가 혹은 "나도 중도"라고 하는 박근혜를 지지하겠는가.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그리고 극우파들은 이 사람들이 중도이기를 희망하겠지만, 그건 희망사항이다. 나 같은 극렬 생태주의자들은 해당 부문에서 민주노동당보다 더 좌파이고, 여성운동의 일부도 그렇고, 각 부문운동으로 들어갈수록 민주노동당 보다 훨씬 급진적인 사람들이 많다. 민주노동당 아니면 결국 중도 아니겠는가? 그거야말로 종이신문들의 희망사항이다.

    이 상황에서 노무현 신드롬이 민주노동당에게 던진 질문은 두 가지이다.

    시민단체와 생협을 포함한 소위 시민운동 진영이 얼마나 대선 후보를 만드는 경선과정에 참여하게 할 수 있는가? 기술적인 방법은 여러 대안들이 제시될 수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이 질문에 대해서 "할께"와 "하지 않을께"라는 답이 나와야 한다. 한다고 하면 그 다음의 진화가 기다리고 있고, "하지 않아"라고 말하면 20% 정도의 국민들이 멀뚱멀뚱 상황을 보면서, "알았어"라고 대답하고 다른 대안을 찾게 될 것은 사뭇 당연하다.

    이게 기술적 질문이라고 한다면 조희연 교수가 던진 질문은 훨씬 근본적이다. "반 신자유주의로는 안된다"라는 것의 의미가 이 두 번째 질문이 되는 셈인데, 노무현 대통령이 "일단 집권하면 다 들어줄께"라고 했다가 오리발을 내미는 걸 4년 동안 경험한 사람들이 민주노동당이라고 덥석 믿는다거나 밀어준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당한 경험이 있어서…

       
      ▲ 지난 21일 민주노동당 집권전략위원회 주최로 프레스 센터에서 ‘민주진보진영 2007년 대선전략 토론회’가 열렸다 ⓒ 진보정치 이치열 기자
     

    노무현과 민주노동당 열성 지지자들 말 안 통하기는 마찬가지

    수없이 많은 부문운동의 명제들을 제시하거나 수용하거나 혹은 논쟁에 들어가야 하는데, 진짜 민주노동당의 위기는 바로 이 두 번째 질문에 있다.

    솔직히 내 심경을 말하면 열성 노무현 지지자들이나 열성 민주노동당 지지자들이나 대화 안 통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사실 조희연 교수가 얘기한 "반 신자유주의 말고 뭐 없어?"라는 질문은, 내 식으로 해석하면 꼭 멋진 철학적 명제를 만들라는 말이 아니라 대화가 통하고 같이 자리에 앉아 의논할 대상인 상대가 되라는 말이다.

    멀쩡한 제 정신 가진 시민들이 뒷자리에만 가면 무슨 정파가 어떻고 무슨 파가 어떻고라는 얘기가 대화의 90%가 된 사람들하고 얘기할 수 있겠는가?

    내가 생각한 두 가지 질문을 하나의 단어로 요약하라면 ‘상식적인 대안’의 모습을 보여달라는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변하는 절차와 그 절차를 채워 넣는 내용이 사실 노무현 신드롬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대답인 셈이다.

    그런 면에서 노회찬 의원이나 심상정 의원이나 노무현 신드롬의 내용을 잘못 짚었다.

    정치지도자로서 두 사람은 지금 노무현 대통령에게 답을 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노무현 명제를 접하고, 답답한 마음으로 노무현 신드롬을 앓고 있는 시민단체의 활동가나 아니면 그야말로 건전한 상식으로 무장된 시민들에게 답을 해야 한다.

    노회찬-심상정 노무현 신드롬 잘못 짚어

    어떻게? 그건 나도 모르지만, 민주노동당이 정치 지도자들도 대통령이 그러는 것처럼 "아냐, 내가 더 잘 알아"라고 답하면, 상식을 가진 사람들은 "다 같은 반열에 계시는 분들"이라는 평가를 내릴 것이다. 지금 대략 40만에서 50만 정도 되는 국민들이 눈을 쫑긋 뜨고 민주노동당이 뭐라고 답을 할까를 지켜보는 중이다.

    그럴 듯한 답과 논쟁이 나온다면 지금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면, 나도"라고 생각을 바꾸게 된다. 지금 이 답이 필요한데, 안타깝게도 노회찬, 심상정 의원 모두 "아냐, 내가 더 잘 알아, 그러니까 대통령은 빠져"라는 말을 했다. 그런 말은 이재영 <레디앙> 기획의원 같은 사람들이 하면 되는 거지, 민주노동당과 국민 사이의 창구 역할을 하는 대중 정치인은 "내가 더 잘 알아"라고 말하면 안 된다.

    지금 논쟁 중인 손호철 선생이나 조희연 선생의 입에서 "봐라, 이러니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라고 내가 말하는 것이지"라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되어야 희망이 생긴다. 그러면 2007년 대선은 해볼만하고, 최소한 역사 속의 하나의 의미를 남기게 된다.

    노무현 신드롬 덕분에 민주노동당 대선은 비로소 해볼만한 최소한의 물리적 희망이 생겼다. 제발이지, 대통령을 반면교사 삼아 배우기 바란다.

    "내가 더 잘 알아"라는 정치지도자를 지지하는 것은 극우파들에게서나 벌어지는 일이다. 대통령의 불행은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극우파가 아니라는 점에 있다. 제 정신을 가진, 극우파가 아닌 사람이 "내가 제일 잘 하고, 다 잘 될거야"라고 하는 사람을 어떻게 지지할 수가 있겠나.

    정치 지도자들은 ‘똑똑함’을 내세우면 안돼

    이건 민주노동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후보 경선 과정에 시민단체의 지지자들을 포함한 세력을 얼마나 더 ‘초대’할 것인가 그리고 지금의 좁게 정의되어 있는 ‘반신자유주의 노선’을 어떻게 더 유연하고 개방적으로 변화된 21세기 한국 사회에 맞게 재정비할 것인가와 같은 사항에 대한 답변을 듣고 싶은 것이지, 노회찬이 더 똑똑한지 심상정이 더 똑똑한지 그런 도토리 키재기를 보고 싶은 것이 결코 아니다.

    파바로티 신드롬의 진짜 의미는 "소리만 크게 지르면 가수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파바로티, 그래 너 목청 좋다…"

    노무현 신드롬의 진짜 의미는 "내가 제일 똑똑해"라고 외치면 정치가 되는가라는 질문이다. 노회찬과 심상정도 노무현 신드롬에 빠지면 구경하던 나 같은 사람들이 "쟤네들 겁나게 똑똑하대"라고 말하고 문 걸어 잠그게 된다.

    "올해 대선은 김샜다."

    민주노동당에게 진짜 대중정치의 기회는 노무현 신드롬으로 인해서 열린 셈이다. 이 공간에서 삽질하면 정말이지 우리에게 다시는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문 걸어 잠그려다가 지금 잠깐 문을 살짝 열고 빠꼼히 밖을 쳐다보는 50만개 정도의 눈이 정말 무서운 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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