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의미의 좌파 민중주의"
        2007년 02월 23일 02:2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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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 전부터 한국의 진보운동은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권의 실험을 주목하고 있다. 최근에는 민주노동당과 시민단체, 학계의 현지 방문도 줄을 잇고 있다.

    10개 싱크탱크 합동 연속 토론은 이에 발맞추어,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이 발간한 『베네수엘라 혁명의 역사를 다시 쓰다』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김병권 연구센터장은 베네수엘라 혁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새사연 김병권 연구센터장
     

    베네수엘라는 인구의 90%가 도시에 살 정도로 도시화된 나라다. 한편 극단적인 양극화로 도시민의 절반 이상이 빈민촌에 거주하며 비공식 부문에 종사한다. 최근 각종 산업이 발전하고 있기는 하지만, 경제와 재정의 절반을 석유 산업에 의존하고 있다.

    집권 여당인 MVR과 공산당 등의 차베스 지지세력이 의회 167석 전체를 장악하고 있다. 보수정당들은 선거를 보이콧했다. 1999년에 집권하고 재선에 성공한 차베스의 임기는 2013년 초까지이다.

    베네수엘라 혁명의 첫째 특징은 국민을 능동적 주체로 세우는 직접 정치에 있다. 완벽한 청사진이 있는 건 아니지만, ‘볼리바르적 대안’, ‘21세기 사회주의’ 등의 프로그램이 계속 나오고 있다.

    현재 595개 회사에서 국가와 노동자가 51:49로 지분을 가지는 공동경영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협동조합이 급증하여 전체 노동력의 5~7%가 이에 종사하고 있다. 브라질과 인도의 참여민주주의 모델을 도입하였으나 정착시키는 데는 실패했고, 대신 작년부터 12000여 개의 주민자치위원회(Communal Council)가 구성되어 활동하고 있다. 이것이 새로운 민중권력의 기초가 될 것으로 보인다. 새 헌법에 의해 선출직 공무원에 대한 주민소환과 국민투표도 활발히 시행되고 있다. (이상. 「베네수엘라 혁명 사례와 한국 대안사회 모색」의 요약)

    현 시점에서 베네수엘라 시도의 성패 여부나 그 옳고 그름을 논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집권 2기에 들어서며 베네수엘라 혁명이 지향하는 정치경제적 상이 더욱 분명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10개 싱크탱크의 연구자들은 조심스럽지만 나름의 의견을 제시했다.

    그 첫 주제는 과거의 시도들과 무엇이 다르고,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진보정치연구소’의 장석준은 이렇게 분석한다.

    “지금 시대에 차베스 실험의 의의는 신자유주의 물결 안에서 30년 만에 사회화를 추진하고 있는 점이다. 하지만, 칠레 아옌데 정권 등의 시도에서 완전히 떨어져 있다기보다는 계승이라 보아야 한다. 라틴아메리카 진보운동의 계보 속에서 베네수엘라를 파악 분석해야 한다.

    베네수엘라가 과거의 시도들과 무엇이 다른가? 제헌의회, 군대, 석유 등 세 가지가 다르다. 제헌의회는 아옌데도 추진했지만 실패했다. 보수세력의 역쿠데타를 공수부대가 제압한 것처럼 군대의 힘을 얻고 있는 것도 다른 점이다. 칠레에는 구리가 있었지만, 베네수엘라의 석유처럼 국제시장에서 판매자의 지위를 높이지는 못하는 상품이었다. 마르타 하르네케르는 ‘룰라에게는 석유가 없다’고 말할 정도다.

    룰라와 차베스는 조직 노동자 외부에서도 정치적 지지를 얻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한 정치행태를 보인다. 좋은 의미에서 좌파 민중주의라 할 수 있다.”

    새사연 김병권은 차베스 정권의 파퓰리즘적 성격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정통 노동운동의 관점에서 보자면 좀 다른 점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차베스 정권은 정치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비공식 부문을 끌어들이는 데 포커스를 둘 수밖에 없다. 유럽 사민주의식 대타협의 전제인 총노동과 총자본이 아예 형성돼 있지 않고, 빈곤율이 절반인 나라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차베스 정권이 집권 2기에 들어서기는 했지만, 사회경제적 개혁의 성과는 생각보다 크지 않은 듯 하다. 1998년 GDP의 8.2%이던 사회복지 지출은 11.2%로 늘었지만, 이런 정도의 증가세는 유럽 사민주의 나라에서 복지가 도입될 때나 김대중 노무현 정부기 한국에서의 확대에도 미치지 못한다.

    쇼는 화려하지만, 먹을 건 별로 없고, 배를 채워주기보다는 머리를 현혹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이 나올 수도 있는 대목이다. 발표자는 다음과 같이 답변한다.

    “공식 복지비에 포함되지 않는 재정이 민중의 삶을 개선하는 데 쓰이고 있다. 주거 개선이나 의료시설 교육시설 확충 같은 사업에 재정의 40%가 투자될 정도다. 삶의 질 개선을 위한 기초 토대가 구축되는 시기라 보아야 할 것 같다.”

    유럽 사회민주주의 같은 시도들과 근본적으로 다른가 하는 점도 논쟁의 한 지점이었다. “서구식 복지국가 모델은 …… ‘다수 대중을 위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곳에 ‘국민 주도성’은 없다. 국민은 단지 시혜의 대상일 뿐(『베네수엘라 혁명의 역사를 다시 쓰다』)”이라는 평가는 매우 주관적이다.

    유럽 사민주의 나라에서도 주민소환, 주민발의, 국민투표가 더 오래 전부터 더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 공공화의 정도에서도 베네수엘라는 북유럽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분명한 현실이다.

       
     
       
     

    새로운 시도인 듯 보이는 주민자치위원회가 결국 어디로 가게 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껏 나타난 현상을 긍정적으로만 보아주기도 어렵다. 작은 단위에서 주민들의 의사가 자발적으로 모여지는 것은 매우 훌륭한 일이지만, 그렇게 모여진 의사에 대한 취사선택권과 예산 지원 집행권이 중앙정부에 독점돼 있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하면 자치체 자체의 해소로 귀결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차기 지도그룹이 형성되지 않아 대통령 임기를 연장하기 위한 개헌 가능성이 있다거나, 대통령이 입법권까지 가지는 수권법이 제정된 등의 문제점이 있음에도 우리가 그들을 지켜보며 배울 게 많은 점은 분명하다. 그래서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연구소 조희연 소장은 이렇게 말한다.

    “대부분의 현실 진보정치세력이 신자유주의에 굴복하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도전은 반신자유주의 실험이라는 점만으로도 귀중한 사례다. 우리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런 식의 좌파 민중주의를 상상해볼 수는 있다. 문제는 대중 기반인데, 한국에는 그런 기반이 없다.

    차베스 모델의 모순과 딜레마도 함께 연구되어야 한다. 어떤 이유든 국회에 야당 의석이 단 한 석도 없는 것 같은 게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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