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의차 막고 눈물로 일궈낸 소중한 결실"
        2007년 02월 23일 05:5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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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월 21일 과로로 숨진 한 이주노동자가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업재해’라는 판정을 받았다.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회사는 ‘산업재해’가 아니라고 우겨댔지만 결국 그의 죽음은 ‘산업재해’로 판정이 난 것이다.

    그의 죽음은 작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건강했던 25살의 베트남 노동자는 지난 해 11월 3일 아침 깨어나지 못했다. 그의 이름은 반랍이다. 옆 동료가 흔들어 깨웠지만 이미 이 세상의 사람은 아니었다.

    그의 죽음에 한국에 와 있던 동료들은 모두 슬퍼했고, 한국인 동료들도 슬퍼했다. 하지만 회사는 귀찮아 하는 반응을 보였다. 금속노조 한국주강 지회와 경남 지역 노동안전 담당자들이 그의 죽음의 원인을 밝히려고 하자 이것이 회사에게는 귀찮았던 것이다.

    지회와 경남 지역 노동안전 담당자들은 그가 살던 기숙사로 먼저 찾아갔다.

       
     
    ▲ 베트남 이주노동자가 머물고 있던 숙소
     

    그곳은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었다. 창고로 사용하든지 아니면 돼지우리로 사용하면 적당한 곳이었다. 공기도 통하지 않은 사무실 땅바닥에 매트리스 한 장이 깔려있었다. 창고에 인간을 방치해 두었던 것이다,

    이는 우리들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노동부 근로감독관도 그가 살고 있던 기숙사에 대한 문제를 지적했다. 한국인이었으면 과연 이런 곳에서 자게 내버려두었을까?

    노동조합은 요구했다. 회사가 책임지고 원만히 해결해서 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라고. 하지만 회사는 책임지기를 거부했다. 개인 질병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인심 쓰듯이 장례 비용은 지불하겠다고 했다.

    반랍의 삼촌 황만(42세) 씨는 서툰 한국말로 "병 없어"라며 평소 조카가 "일이 힘들어서 어깨, 무릎, 팔 다리가 많이 아프다"고 했다고 말했다. 반랍은 한 달에 1백 시간을 넘는 잔업과 철야노동을 밥 먹듯 하면서 건강을 크게 헤쳤다.

    장례식장의 분위기는 너무나 썰렁했다. 베트남 동료들이 지키기는 했지만 그들이 먹는 것은 일반 장례식장과는 다른 것이었다. 먹을 것이라곤 형편 없었다. 

    "우린 아무 것도 몰라요. 도와주세요"

    슬픔에 찬 얼굴을 한 이주노동자는 우리들에게 서툰 한국말로 "우리는 아무것도 몰라요. 도와주세요"라고 했다.

    그들이 그렇게 살고 있었는지 모르고 있다가 한 노동자의 죽음으로 그들이 얼마나 열악한 조건에서 살고 있는지를 이제야 겨우 알았던 우리들은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 채, 그저 “최선을 다할께요”라는 말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다들 그들에게 미안해했다. 

    회사와 지루한 신경전이 계속되었다. 회사는 빈소를 지키고 있던 이주노동자들도 일부만을 남기고 회사로 출근을 시켰다. 우리는 하루에 한번씩 빈소를 찾아서 그들을 지켰다.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했지만 빈소를 지키고 있던 이주노동자들은 우리를 따뜻이 맞아주었다.

    반랍이 떠난 지 5일째였다. 우리들은 회의를 마치고 빈소를 찾았다. 빈소를 지키고 있던 동료들이 없었다. 다들 잠시 밖에 나갔겠지 생각하고 그들을 기다렸지만 그들은 오지 않았다. 그들을 찾으러 나갔던 한 사람이 헐레벌떡 뛰어오더니 "다들 내려오라"고 소리쳤다. 그들은 망자를 다음 날 화장터로 보내기 위해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누가 시킨 것인지 확인했다. 회사였다. 노동조합도 모르게 회사가 장례식장 관리자에게 시켜서 화장 준비를 한 것이다. 회사는 반랍 유족의 대리인인 베트남 대사관 노무관이 시켜서 그랬다고 했다.

    우리들은 장례를 막기로 했다. 회사가 책임을 지지 않는 상태에서 화장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회의를 열어서 이후 대책을 논의했고. 다음 날 장례식을 무조건 막고 회사와의 투쟁에 돌입하기로 했다.

    그리고 베트남 대사관 노무관이 내려오면 그를 설득시켜 회사의 무책임한 자세와 반랍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상세히 설명하고 노동조합에 장례 절차와 보상 문제에 대해서 위임을 받기로 했다. 위임을 받고 난 후에 회사와 끝까지 투쟁할 것을 결의했다.

    노조 간부들을 속인 베트남 대사관

    11월 8일. 대사관 노무관이 내려왔다. 그러나 노무관은 우리를 속였다. 우리와 통화를 하면서 11시 정도에 마산역에 도착한다고 했지만 그는 이미 11시에 장례식장에 와 있었다. 회사와 짜고 우리를 따돌리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두 명의 ‘동지’가 장례식장을 지키고 있어서 화장터로 향하려는 것을 저지하고 있었다.

    뒤늦게 장례식장에 도착한 우리들은 대사관 노무관을 만났다. 하지만 그는 회사의 말만 믿었다. 그리고 "반랍이 죽은 것은 슬프지만 어쩔 수 없다"고 했다. 화장을 시켜서 고향으로 보내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결국 언성이 높아졌다.

    노무관은 일방적으로 화장터로 갈 것을 지시했다. 장의차가 출발하려고 했다. 우리들은 이대로 보낼 수 없었다. 온몸으로 장의차를 막아섰다. 차는 출발하지 못했다.

    우리는 회사에게 반랍의 죽음에 책임을 질 것을 요구했다. 몇 시간 동안 회사와 협상을 했다. 하지만 회사는 책임없다는 말만 되풀이 할 뿐이었다. 경찰이 도착했고, 경찰은 회사와 노무관 편이었다. 우리에게 즉각 차에서 물러날 것을 요구했다. 우리는 절대로 물러 날 수 없었다.

    노무관은 반랍의 동료들에게 무언의 압력을 가했다. 동료들은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일부 동료들은 우리에게 반랍을 화장할 수 있게 보내달라고 했다.

    장의차를 막고 합의를 끌어내다

    그러자 노동자 한 명이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잘못해서 이런 것"이라고. "우리가 제대로 투쟁했다면 반랍이 그런 기숙사에서 살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렇게 죽지 않았을 것이고. 그래서 그 잘못을 반성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 반랍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이러고 있는 것"이라고. 그는 눈물로 호소를 했다.

    그의 말이 맞았다. 우리가 제대로 싸우지 못하고 이주노동자와 함께 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말로는 국제 연대, 노동자는 하나라고 외쳤지만 진정 옆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던 것이다. 다들 침묵 속에서 그의 눈물 어린 호소를 경청했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러갔고 결국 회사는 우리와 합의를 했다. 우리는 "대사관에서는 산재 신청을 하고 회사는 최대한 산재 처리에 협조하며, 서류를 넣을 때 회사는 노조에 확인 후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하기로 했다.

    이렇게 합의하고 ‘반랍’을 화장터로 보냈다. 먼 타국에서 죽음같은 고역 속에서 결국 죽음으로 꺾여진 젊은 노동자의 짧은 삶을 보내는 이들의 눈물은 화장터 주위를 강물처럼, 회한처럼 흘러남쳤다.

    아파트로 이사한 이주노동자들 집들이

    얼마 뒤 한국주강지회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주노동자들이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이주노동자들과 집들이를 하기로 했다. 노조의 노동안전 담당자들은 새 집으로 먹을 것을 사들고 갔다.

    집은 깨끗했다. 방세는 한 달에 30만원 정도였다. 한 달에 30만원만 들이면 이렇게 좋은 집에서 여러 명이 생활할 수 있는데 회사는 그것이 아까워서 이들을 그런 곳에 방치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또 얼마 후 노동안전 담당자 회의를 하고 있는데 지회로부터 연락이 왔다. 회사에서 일방적으로 서류를 만들어 넣기 위해 관리자가 공단으로 갔다는 소식이었다. 우리들은 회의를 중단하고 공단으로 즉각 뛰어갔다. 다행히 회사 관리자는 도착하지 않았다.

    조금 있으니 지회장이 도착했다. 대책을 논의하고 있는데 회사 관리자가 공단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우리들은 회사 관리자에게 "왜 합의를 지키지 않느냐"고 따졌고 회사 관리자는 "자료만 제출하고 가겠다"고 말했다.

    우리가 강력히 항의하자 회사 관리자는 자료를 지회장에게 넘겨주었고, 우리는 자료를 검토했다. 우리가 문제점에 대해서 따지니까 회사 관리자는 자료를 챙기고는 차를 타고 도망치듯 가버렸다. 어이가 없었다. 지회장은 즉시 회사에 연락해서 도망간 관리자를 다시 공단으로 오도록 촉구했다. 

    결국 관리자는 머쓱한 듯 다시 왔고, 일단 그가 가지고 있던 서류를 모두 복사를 했다.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우리 쪽 자료를 만들어 넣기로 했다.

    마침내 산업재해 승인을 받아내다

    회사 자료를 보면 산재로 인정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입국 시 제출한 검진 자료에 분명히 ‘검진 결과 특이 소견 없음’이라고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임의적으로 저혈압이 심근경색의 원인이라고 주장했으며, 출퇴근 기록부를 보면 과로에 대한 사실이 버젓이 나타나 있음에도 숫자를 이상하게 나열하는 방식으로 과로에 대한 사실을 은폐하고 과로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를 확인한 지회와 노동안전 담당자들은 회사 쪽 주장에 대한 반박자료를 넣기로 하고 추가 자료를 제출했다. 그 후에도 근로복지공단에 진행경과에 대해서 확인을 했고, 마침내 2월 21일 산재승인을 받아내게 됐다.

    이번 투쟁을 진행하면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우리 노동운동 진영의 인식들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선언적인 구호를 넘어서 구체적인 실천으로 그들과 함께 하지 않는 한 이주노동자들은 이방인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이 글은 금속노조 경남지부 노동안전 담당자들의 얘기를 모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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