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집권해도 중도우파 못 벗어나"
    2007년 02월 22일 09:58 오후

Print Friendly

– 노무현 대통령이 최근 청와대 브리핑에서 글을 올리고 진보진영의 학자들의 논쟁에 가담했다.

= 대통령이 자신의 철학을 제시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학자와 논쟁하는 모양을 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통령은 자기 개인 생각을 중심으로 일하는 자리라기보다 국정 지표나 국정 비전을 중심으로 해 담론을 전개해야 하기 때문에 사인간의 논쟁처럼 되는 구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진보세력 한국 정치지형의 특수성 이해 부족

   
  ▲ 한나라당 박형준 의원 (사진=박형준 의원 홈페이지)
 

– 노 대통령은 스스로를 ‘유연한 진보’라고 규정했는데 현 정부를 어떻게 규정하나.

= 흔히 우측 깜빡이를 켜고 좌회전 한다, 좌측 깜빡이 켜고 우회전 한다 말을 많이 하는데 한반도 정치 환경 속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중도 우파 범위를 넘어서기가 대단히 힘들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의 사상, 신념, 정책이 어떤 것이든 간에 실제 실행되는 정부 정책에서는 중도 우파의 범위를 벗어나기 힘들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은 몇몇 부분에서 과감하게 넘어서려고 했던 부분이 있고, 우파에게 좌파 정권이라 비판을 받은 것이다. 진보세력의 경우 대한민국 정치지형 자체가 갖는 특수한 조건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아무리 진보적인 사람이 정권을 잡아도 정책의 지형이 중도우파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를 우파적이라고 공격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제 환경, 남북관계의 특수한 현실, 또 전세계적인 정보화의 물결, 세계화 흐름 등 이 모든 것들을 볼 때, 한국 정부는 기본적으로 시장을 중시하고 개방적 태도를 갖고 또 개인의 자유와 권리, 인권을 중시하는 보편적 가치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를 충실히 추구하는 정권은 좌파적 정권이기가 상당히 어렵다는 게 저의 기본적인 인식이다.

노무현 정부는 좋게 보면 이 갈등 속에, 딜레마 속에 고민을 많이 했던 정부인 것 같다. 청와대를 구성하는 기본 세력은 자기 정체성을 상당히 진보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반면, 국정은 그렇게 자기 의지대로 되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그 충돌이 국민들 입장에서는 좌충우돌로 비치는 것이고 우파는 우파대로 불만이고 좌파는 좌파대로 불만이다. 하지만 이를 ‘유연한 진보’로 포장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유연한 진보’ 포장 적절치 않아

– 우리나라 정부 정책이 중도우파 이상 발현되기 어렵다고 했는데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 국가나 사회의 역사라는 것은 자신의 과거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대한민국의 역사 속에서 구축된 시스템은 경제발전을 이루지 않고는 유지될 수 없는 시스템이다. 그것도 상당히 외부 지향적 경제발전이다. 더구나 지금 같은 글로벌 시대에서는 더욱 외부지향적일 수밖에 없다.

이 체제 하에서 경제발전을 못하면 모든 것들이 무너질 수 있다. 10년 동안 발전의 지체가 갖고 오는 충격과 여파를 보면서 그 속에서 한 번 더 도약하는 발전을 하지 않으면 60년 동안 가꿔온 대한민국 시스템이 무너질 수 있다는 인식을 우파들은 다 갖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현실이다.

이걸 임의적으로 뜯어고칠 수 있다는 게 좌파적 사고다. 반면 이를 현실로 인정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것을 얹어가고 거기서 발생하는 문제를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부분적으로라도 개선하겠다는 것이 우파적 사고다.
물론 좌우파간 생산적 논쟁은 가능하다. 좌파 세력들이 단순한 안티가 아니라 현재 존재하는 시스템을 어떻게 고쳐갈 것인가 하는 대안을 내놓는다면 가능하다고 본다.

지금 시대정신은 ‘발전과 통합’이다. 10년 동안 주춤했던 경제를 한 단계 도약시켜 선진화를 이뤄내고 경제 선진화를 토대로 21세기 자유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21세기 보편적 이념은, 신자유주의를 좌파적으로 해석한 시장제일주의라는 협소한 논리가 아니다.

개인의 자유와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느냐, 더불어 개인의 삶의 질과 권리의 목록을 다양한 분야에서 확충해나갈 것인가 하는 관점에서 본다면 지금이야 말로 자유의 시대다. 자유의 시대에서 발전을 매개로 하지 않는 자유는 의미가 없다.

‘발전과 통합’이 시대정신이다

두 번째는 결국 이를 위해서도 국가라는 영역 속에 포함된 한 사회는 어떤 지향점에 대한 광범한 동의, 헤게모니가 필요하다. 자신을 투사하고 때로는 던지고 자기 자신을 위해, 가족을 위해,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는 정신을 북돋아 줘야 한다.

떠나려고 하거나 욕하거나 좌절하는 게 아니라 국민의 에너지를 모아내는 걸 통합이라고 생각한다. 지역주의 문제가 많이 제기됐지만 국민의 에너지를 모아내기보다는 모든 문제를 상대의 책임으로 돌리는 구조였다. ‘발전과 통합’ 이 두 가지 시대정신을 누가 어떤 세력이 담보하고 관철할 수 있느냐에 좌우 논쟁의 지형이 있다.

– 노무현 정권이 몇몇 부분에서 중도 우파적 기준으로 많이 나간 게 있다고 했다. 어떤 것이 그렇다고 보나.

= 예를 들면 한미 관계, 남북관계 입장에 있어서다. 사실 정확히 보면 말은 전투적이고 진보적인 것처럼 비쳤지만 실제 한미관계 5년 내용을 보면 노 대통령의 ‘자주’를 관철한 게 무엇이 있나 하는 냉정한 평가가 사후에 필요하다. 결국 실익을 취하지 못했다. 우파적 실익도, 좌파적 실익도 못 취했다는 게 현 정권의 무능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념적 성향이 어땠다 이런 것은 덜 중요하다. 사실 조금 더 진보적 이념을 갖고도 현실 정치에서는, 지금의 중국처럼, 실사구시적 외교를 할 수 있고, 정치를 잘 풀어서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도 있다. ‘유연한 진보’라면 정말 실용주의에 충실해야 되는데 그렇지 않아서 나타난 문제다.

정치학, 발전사회학에서 최근에 ‘국가능력이론’이란 게 있다. 먼저 비전과 목표가 뚜렷해야 하고, 또 누구와 함께 목표 추진할 것인가 하는 세력 기반이 있어야 한다. 그 다음에는 개혁이든, 정책이든 민주화된 조건 하에서는 국민들의 동의를 얻어가면서 관철시켜야 한다.

여기에는 통합능력도 필요하고 설득능력도 대단히 중요하다. 특히 우리 같은 개방적 언론 환경에서는 결국 언론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언론과 관계 설정, 언론 통한 국민 설득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이게 ‘과정 관리 능력’이다. 이 정부는 목표, 비전도 구호로 남발되는 문제가 있지만, 이걸 실현하는 방법론이 참 서툴고 국정운영에서 뛰어난 능력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국민들이 염증을 내는 것은 국정운영 능력에 대한 갈증이다. 비전, 가치나 기본적인 철학에 대한 차이는 잘 인식 안하거나 중요한 프레임에 들어와 있지 않다. 실생활과 사회 전체가 탄력적으로 고도 발전해온 사회인데 순간적으로 정체된 느낌이 있을 때 가장 불안한 것이고 이에 대한 책임을 국정운영 능력의 미숙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거꾸로 앞으로는 그에 대한 기대가 굉장히 큰 것이다.

선의를 가진 마키아벨리스트가 필요하다

– 노무현 정권도 중도우파적 담론으로 순치되는 과정에 있지 않나. 입각점에 따라 상반된 평가가 있다. 한나라당은 친북좌파 정부라고 한다.

= 우선 색깔론은 적절치 않다. 우파 입장에서 노 정권을 친북좌파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라는 게 어느 정도 부정적 규정을 확대재생산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우파의 인식 프레임 속에 노무현 정권이 친북좌파 성향을 갖고 있다는 것은 현실로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친북좌파가 아니다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행동으로 그런 딱지 붙이기가 통용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 진보진영의 학자들은 조중동 신문, 한나라당 등 보수세력의 저항을 ‘상수’로 놓고 다수 대중의 힘으로 진보적 대안을 관철해야 한다고 말한다.

= 마키아벨리에게 그런 질문을 던지면 ‘당신은 정말 통치라는 것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순진한 지사나 관념적 명분론자가 필요한 게 아니다. 복잡한 현실 타개하는 데는 선의를 가진 마키아벨리스트가 필요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복잡한 문제해결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지도자로 여우와 사자의 모습을 다 갖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당한 권위를 부여받을 수 없고 좌파적 용어로 이야기하면 도덕적 헤게모니를 잃는 것이다. 즉, 통치·국정운영의 기반이 형성될 수 없다. 이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렇게 주장하는 것이다.

예컨대 조중동이 문제라면 어떻게 기술적으로 다룰 것인가 하는 것을 고민해야지 ‘조중동은 악이고 가해자다, 자기는 선이고 피해자다’ 그러면 결국 국민들과 대결하는 정치가 된다.

최장집 교수는 훌륭한 민주주의자

– 최장집 교수의 여당이 잘못했다면 한나라당이 집권해도 어쩔 수 없다는 말이 진보진영의 논쟁을 촉발한 측면이 있다. 최 교수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 저는 김영상 정부에서 정책기획위원을 했고, 청와대 프로젝트를 정책기획위원 중에에도 많이 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김영삼 정부의 정체성과 함께 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97년 김영상 정권 말 정책위원 토론에서 ‘IMF 위기를 낳고도 정권 재창출 바라는 것은 무리다. 이건 국민들이 심판할 것이다’ 하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권을 죽어도 내놓아서는 안된다, 그런 관점에 입각해 움직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여당할 생각, 야당할 생각도 해야 한다. 그래서 정말 훌륭한 민주주의자이신 최장집 교수가 그렇게 이야기하신 게 아닌가 싶다. 정권이 국정운영에 실패했으면 당연히 정권 내놓을 생각을 해야 한다.

– 한나라당으로 정권교체가 진보진영에서 논란이 되는 상황은 한나라당에 대한 의구심이 깔려 있기 때문인 것 같다.

=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민주주의가 후퇴할 것이라는 주장은 기우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 성장은 ‘불가역적’이라는데 그 특성이 있다. 시민 생활에서 분리할 수 없는 관습이자 관행, 기본적인 행동의 원리-아비투스-가 되기 때문에 민주주의 정신을 심어놓고 민주주의 의식을 확산해놓으면 제도적으로, 문화적으로 되돌리기 어렵다.

민주주의의 역진은 불가능하다

YS 정부가 한 중요한 성과 중 하나가 군의 정치적 개입을 막은 것이다.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군부 쿠테타를 어느 누구도 거론하지 않는다. 한나라당 정권이 탄생한다 해서, 물론 어떤 한나라당 정권이 탄생하느냐에 따라 성격이 달라질 것인데 민주주의가 후퇴되진 않는다.

시대 흐름과 기본적인 추세는 한나라당내에서 보다 합리적이고 실용적이고 개혁적인 마인드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집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고 그런 쪽으로 움직여 갈 것이다.

– 한나라당 민주주의 신념과 관련된 의구심 중 최근 인혁당 사건과 관련된 책임있는 사람의 분명하지 않은 태도 등이 정치적 공격거리로 활용되고 있기도 하다.

= 직접적으로 어쨌든 간에, 그 분이 그렇게 대응한 것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평가가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한나라당 대다수 국회의원들과 대다수 사람들은 인혁당 사건에 대해 깨끗하게 사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 진보의 위기 담론이 많이 제기되고 있다.

= 진보도 워낙 폭이 크기 때문에 몇 가지로 나눠볼 필요가 있다. 80년대 민주화 투쟁, 반독재 투쟁에서는 교조적 마르크스 레닌주의, 교조적 주체사상파 이런 그룹들이 운동권을 주도했다. 하지만 80년대 중반 이후 모두 틀렸다는 게 밝혀졌다.

두 흐름이야 말로 경직된 이데올로기에 매몰되고 시대착오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진보라고 이름 붙이기가 어렵다. 오히려 수구 좌파다. 그런 경향이 아직도 우리 사회 진보세력내에서는 일부분 자리 잡고 있다. 이것이 자기 극복을 거치는 과정에 있다.

진보세력 위기를 생산적 분기점으로 만들 수 있어

90년대 이후 주체사상파들이 대학가에서 사그라지고 한 줌이 됐다. 국가보안법 유무 때문이 아니고 우리 사회 전반적인 민주주의의 성숙이 이 집단을 시대착오적 집단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우리 사회 정치이데올로기 시장에서 시장논리에 의해 그렇게 가고 있는 것이다. 진보세력 중에는 자기를 탈바꿈한 세력도 많이 나왔다. 80년대 주류가 90년대, 2000년대 바뀌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뉴레프트가 가능하다고 본다. 시대의 고민뿐만 아니라 현실 시스템에 대한 깊이 있는 천착을 통해 좋은 정책들을 나름대로 고민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 정체성으로 세력화된다면 진보 세력의 위기가 항구적인 게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생산적인 터닝 포인트 될 수가 있다.

– 노무현 대통령은 현 정부를 ‘유연한 진보’라고 했는데,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이 무엇이라고 보나.

= 이념과 이데올로기, 기본적인 주체세력과 지지기반, 행동양식, 그리고 문화의 차이를 이야기할 수 있다. 이념과 가치 차원에서 우파는 아무래도 성장, 발전, 시장 개인의 자유, 자발성 경쟁 강조할 수밖에 없고, 좌파는 평등, 분배 복지, 연대의 가치를 강조할 수밖에 없다.

중도우파와 중도좌파로 나뉜다면 두 세력 다 자유의 가치와 연대의 가치를 이해한다는 데서 동일하다. 중도 우파는 ‘공동체 자유주의’로 자유주위에 기초해 자발적 공동체를 구축해나간다는 생각이라면, 중도좌파는 오히려 연대의 가치, 집단적 결속력을 통해 개인의 자유 실현하는 것이다. 둘 다 가능한 이념이다.

주체세력은 두 정당 모두 국민정당이지만 중도 좌파정당은 노동자층, 서민들 중심으로 포지셔닝 할 수밖에 없고, 중도 우파는 중산층에 포지셔닝되는 차이가 있다. 행동약식은 중도좌파가 노조나 재야운동과 연계관계를 갖고 밑으로부터의 행동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중도우파는 개인의 창발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네트워크, 자발적 집단에 시민사회의 가능성을 둔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문화적으로는 집단주의 문화와 개인주의 문화다.

잘 배열된다면 서로 상호 경쟁하면서 보완하기도 하고, 발전하는 것이다. 아직은 그런 환경까지 조성이 안돼 있고 한국의 선진화는 이 구도를 빼놓을 수 없다.

중도 지향성 강화될 수밖에 없다

요즘 중도 담론이 유행이다. 대권주자들도 다 중도를 이야기한다. 중도담론이 부각되는 이유를 어떻게 보나. 스스로를 중도에 놓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편향으로 역규정하는 측면도 있다.

= 결국 대선국면에서 중도층을 누가 잡느냐 하는 경쟁이다. 1대1 싸움 구도에서, 51대 49 경쟁에서 중요한 중원을 누가 잡느냐 하는 정략적 차원에서 중도를 표방하고 있다. 두 번째는 시대적 흐름에서 중도 지향성 강화될 수밖에 없다. 성장, 분배를 이념적으로 구분해서 보지 않는다. 개발과 환경보전도 마찬가지다. 누가 더 잘 조화시키느냐의 문제다.

중도우파, 중도좌파로 가면 결국 수렴 현상이 일어나고 상대의 정책을 내가 가져오는 경쟁을 하게 돼 있다. ‘트라이앵글라이트’라고 삼각형의 꼭지점 중간을 누가 먼저 가져오느냐 하는 경쟁이다. 이슈를 선점하고 상대 정책의 지지층 나에게로 돌리는 정책을 쓸 수밖에 없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