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개의 테마로 본
    내년 한국 정치·경제 정세
    [기고] 2023년 어떻게 맞을 것인가
        2022년 11월 30일 01:2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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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이맘때 경제기관들이 발표한 2022년 전망에는 “회복!”, “포스트-코로나 시대” 같은 낙관적 표어가 가득했다. 하지만, 올해 2월 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시작으로 상황이 완전히 뒤집혔다. 회복은커녕 얼마나 침체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포스트-코로나가 아니라 냉전이란 20세기의 우울한 개념이 세계를 규정한다. 한편, 올해 5월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구설에 휘말려 지지율이 이전 대통령의 퇴임 직전보다 낮아졌다. 핵심 정책도 대통령실 이전을 빼고는 크게 어필한 것이 없다. 새 정부에 기대를 건 많은 사람이 지지를 철회했다. 이런 상태로 남은 임기를 온전히 마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 글은 한국의 2023년 정치, 경제 정세를 8개의 테마로 조망해 본다.

    1. 저금리 시대의 종언과 세계침체

    내년 정세의 핵심은 통화긴축 후유증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된다. 침체의 직접적 원인이었던 미국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은 속도가 하락할 것이다. 근원 물가 상승세가 꺾였고, 시장의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도 크지 않다. 물론 금리가 당장 하락하진 않는다. 우크라이나 전쟁도 여전히 그 끝을 알 수 없고, 팬데믹 기간에 풀린 엄청난 유동성도 잠재적 위험으로 남아있다. 미국이 고금리 정책을 고수하는 한 다른 나라들도 금리를 내릴 수 없다. 특히 한국처럼 통화 안정성이 낮은 나라는 더욱 그렇다. 금리를 낮췄다간 환율이 요동칠 수 있다.

    세계금융위기 이후 십여 년 이어진 제로 금리 시대가 끝났다. 저금리를 기반으로 형성된 자산시장 호황, 정부·기업·가계의 부채 성장이 지속 불가능해졌다. 이 부분의 문제점들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2. 우크라이나 전쟁 향방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방이 세계 정세를 좌우한다. 만약 우크라이나가 겨울을 넘기고, 러시아가 내년 봄까지 전장에서 계속 밀리면, 푸틴은 정치적으로 곤란한 상황에 부닥칠 것이다. 이판사판 전략으로 전술핵을 쏠 수도 있고, 약간의 명분만 얻으면 전쟁을 끝내고 국내 여론을 되잡기 위한 내부 정치투쟁에 돌입할 수도 있다. 전자의 경우 세계경제는 대혼란에 빠질 것이다. 러시아는 완전히 고립되기 때문에 푸틴도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결국 후자로 가야 하는데, 양국이 타협할 수 있는 ‘명분’을 찾는 게 쉽지 않다.

    결국 미국이 적당한 시점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자를 협상장으로 밀어붙일 것으로 보인다. 전쟁이 어떻게 끝나든 푸틴 정권하에서 러시아는 이전 같은 국제관계를 당분간 만들지 못할 것이다.

    3. 정세와 괴리된 민간주도경제론

    윤 정부가 내세우는 ‘민간주도경제’가 상황상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위기 시에는 모두가 정부를 찾는 게 일반적이다. 민간주도경제는 전 정부 비판과 장기 성장전략으로는 적절하나, 심각한 경기침체앞에서는 난센스다. 경기변동론 관점에서도 “정부 주도 위기대책”이 중요하다. 여론도 마찬가지다. 사실 대중은 경제정책 각론을 두고 정부를 평가하지는 않는다. 총론, 즉 슬로건으로 표현되는 이데올로기가 경제조건과 부합하는지가 중요하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 ‘소주성’을 고집하다 경제정책에서 점수를 많이 잃었다.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윤 정부가 경제침체라는 조건에 맞는 새 정책기조를 제시하지 못하면, 경제침체 책임론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외부적 요인이 핵심이라 정부 정책에 책임을 묻는 건 합리적이지 못하지만, 대중이 그런 걸 자세히 따지지는 않는다. 적당한 경제 이데올로기가 없으면, 그나마 낮은 지지율이 더 추락할 수 있다.

    4. 이중정부 상태에 대한 여론

    내년 여론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거대 야당의 입법 보이콧이 어떤 평가를 받을지다. 정부의 무능으로 평가될 수도, 야당의 횡포로 평가될 수도 있다. 민주당은 이재명 당 대표가 부패 수사를 받는 처지라 정치투쟁의 일환으로 입법 보이콧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입법 보이콧을 정부의 “부자 특혜” 정책을 막는 것으로 프레이밍할 것인데, 윤 정부가 자신의 정책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국민에게 제시할 수 있는지에 따라 성패가 갈릴 것이다. 민주당은 각계각층의 이해관계 충돌을 정부 재정지출로 해결하는 데 도가 텄다. 반면 윤 정부는 장기적 관점의 채무관리를 강조하며 재정지출에 대해 원칙적 태도를 유지한다. 경제침체 조건에서 윤 정부에게 쉽지 않은 싸움이다.

    어쨌든 행정부 대표와 입법부 다수당이 자신이 국민의 대표임을 주장하는 이중정부 상태를 국민이 더는 참기 어렵다. 총선 국면이 시작되는 내년 하반기 전에 어느 쪽으로든 이중정부를 해소하기 위한 여론의 선택이 있을 것이다.

    5. 이재명 수사 이후 민주당

    이재명 대표 수사가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정국이 요동칠 가능성이 크다. 대장동 일당이 입을 열고 있는 가운데, 민주당 내부에서 이재명과 당의 운명을 분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구속까지 가지는 못하더라도, 국민이 납득할만한 혐의가 밝혀진다면 민주당은 급속도로 내분에 휩싸일 것이다. 이 대표 ‘결사옹위’를 외치는 친명계와 비명계·친문계가 총선 공천권을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을 두고 경쟁할 것이다. 물론 문재인 전 대통령으로 향하는 수사도 많기 때문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당내 타협이 이뤄질 수도 있다.

    다만, 수사가 계속되면 민주당에 대한 중도층의 실망과 반감은 증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당층이 대거 증가하며 총선을 앞두고 이들의 지지를 얻으려는 경쟁이 격화할 것이다. 정의당은 재창당까지 결의했으나 이들을 흡수할만한 역량은 없다. 새로운 제3정당이 출현할 조짐 역시 딱히 보이지 않는다.

    6. 민생 위기 속 지대 추구

    ‘빚투’를 많이 한 가계, 사업 빚이 많은 자영업자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올해도 힘들었는데, 내년에는 더 힘들다. 한계기업도 증가한다. 벌써 자금시장 경색이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수출 대기업들마저 투자 계획을 유보하고 현금 확보에 주력하는 형편이다. 취약계층 노동자의 실질임금 감소도 심각하다. 노동조합을 통해 임금을 교섭할 수 있는 대기업·공공부문 노동자는 물가상승률 이상의 임금 인상률을 쟁취하지만, 나머지 대다수 노동자는 그렇지 못하다. 내년에는 소득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다. 예대마진이 증가한 은행은 역대급 이익을 낼 것으로 예상된다. 이자, 임대료 같은 불로소득이 주요 수입원인 가계도 손해를 보지는 않는다.

    지대(rent) 소득과 불평등에 관한 불만이 대중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다. 세금을 통한 소득 재분배 요구가 많아질 것이다. 민주당은 이런 요구에 민감하게 호응한다. 시민단체들과 노동계가 민주당과 함께 소득 재분배 관련 요구를 내걸고 정치적 전선을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윤 정부 정책은 전반적으로 감세, 규제완화 기조라서 이들의 요구와 충돌한다. 지대추구자들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면, 위기 시기 불평등에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하면, 이 전선에서 밀릴 가능성이 크다.

    7. 신냉전 속 한국의 선택

    3연임에 성공한 시진핑은 영구 독재의 궤도에 안착했다. 그는 지난 30여 년의 민간 자본주의 확장 전략을 폐기하고 스탈린식 국가 자본주의 모델로 회귀하려 한다. 미국의 금융 질서와 중국의 세계 공장이 세계화의 두 축이다. 이제 세계화는 끝났다고 봐야 한다. 내년에도 미중 갈등은 해결되기 어렵다. 최근 미국은 경제를 안보의 영역으로 규정한다. 시진핑은 무력을 써서라도 대만 통일을 이루겠다고 밝혔다. 북한은 이런 상황을 이용해 내년에 핵실험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2차 세계대전 직후 냉전이 개시된 계기는 러시아의 동진, 중국 공산당의 통일, 그리고 마지막으로 북한의 남침이었다. 2022~23년 정세가 비슷하다. 우크라이나 전쟁, 시진핑의 영구독재, 북한이 핵실험 등등. 한국이 전쟁을 막으려면 독자적으로 핵무장을 하거나, 한미일 동맹을 이전보다 더 강화해야 한다. 하지만 핵무장은 핵확산금지조약 위반이고, 한미일 동맹은 한일 과거사 갈등이 발목을 잡는다. 대중국 무역이 경제에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터라, 당장 중국과 척질 수도 없다.

    윤 정부의 기본전략은 한미일 동맹 강화인데, 문재인 정부의 친북/연중/반일 전략보다 얼마나 실질적 효과를 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북한 핵실험 전후로, 미중 충돌의 시간마다 윤 정부는 외교에서 실력을 입증해야 한다. 이마저도 무능하단 평가를 받게 되면, 정권의 유지가 쉽지 않을 것이다.

    8. 진보와 보수의 퇴행

    2024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진보, 보수 모두 어떤 식으로든 변화를 모색할 것이다. 진보는 전통적인 반보수 전선을 다시 꺼낼 것으로 보인다. 뭐가 됐든 보수가 최악이라는 이데올로기 말이다. 민주당의 열성 지지자들은 이미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섰다. 계기만 있으면 탄핵 촛불로 진화시키겠다는 각오다. 민주노총은 집행부가 반미반일 통일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정파다. 반보수 전선을 실리적 수준이 아니라 전략적 수준에서 추구한다. 진보의 전반적 분위기는 2016~17년 어게인일 것으로 예상된다.

    보수의 경우 이준석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 변화 흐름이 좌절된 이후 큰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우파 포퓰리즘의 변형인 이 전 대표 식의 변화가 긍정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내년 봄 국민의힘 대표 선거에서 친윤, 비윤 간 대결이 이뤄질 것으로 보이는데, 인물이 누구든 큰 줄기의 변화는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전후 취했던 보수적 자유주의 색채가 점차 옅어지는 가운데, 친윤계의 경우 시쳇말로 ‘고인물’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

    정의당을 비롯한 비민주당 진보는 구체적 각론보단 큰 틀에서의 시대 변화를 강조할 필요가 있다. 다음 두 가지 가능성에 주목하면 좋을 것이다.

    첫째, 민주당의 퇴행과 국힘의 고인물 정치에 국민이 극도로 환멸을 느끼고 있다. 한국 정치의 세팅을 아예 토대부터 바꾸자는 제안을 공격적으로 제시한다면 긍정적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의원내각제로 바꾸고, 선거법과 정당법도 이 기회에 다당제에 적합하게 손봐야 한다.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대통령제가 시효를 만료했다고 진단한다. 2024년 총선을 개헌 총선, 정치 리셋 선거로 만들자는 대국민 여론을 조성할 수 있다면, 여러모로 한국사회에 도움이 될 것이다.

    둘째, 저금리 시대, 세계화 시대가 끝나고 침체의 시대, 신냉전의 시대가 도래했다. 탈냉전 세계화 시대에는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외치는 지식인이 많았다. 이제 역으로 ‘이데올로기의 시작’을 선언할 때다. 다만 2023년의 세계는 20세기와 다르다. 사회주의는 소련의 붕괴, 중국의 타락으로 엉망이 되었고, 신자유주의는 경제침체와 포퓰리즘 앞에서 무력해졌다. 정의당은 정통적 입장인 반미반일, 반신자유주의 등의 태도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오히려 자유의 원칙에 충실한 진보적 한미일동맹, 지속가능한 재정과 공정한 경쟁을 가능케 하는 세계시장 등에 관해 이야기한다면, 대중적 설득력과 함께 주류 정당들에 대해서도 담론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정의당이 구래의 진보와 헤어질 결심을 할 타이밍이다.

    필자소개
    연구활동가, <대통령의 숙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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