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사회변혁 꿈의 본질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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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2월 24일 11:1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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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결코 은신처로 삼지 못한다. 작품과 함께 작가 역시 세상에 발가벗고 선다. 그는 대답을 가진 존재로서가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존재로서 유의미하다. 시절이 바뀌는 것과 더불어 작품 또한 다른 방식으로 숨 쉬려 든다.

1990년대 민중소설이 서 있는 자리의 가장 가운데에 있었던 김영현은 전작 『폭설』로 1980년대를 떠나보내고 『낯선 사람들』의 작가로 돌아왔다. 소설은 주제는 구원론을 향하고 있으며, 소설의 형식은 추리소설을 닮았다.

김영현을 향한 질문들

   
  ▲ 김영현 작가
 

누군가는 “1980년대 문학으로 세상의 한복판에서 싸웠던 작가 김영현의 문학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고 회의적으로 묻기도 하고, 누군가는 그의 새로운 시도가 과연 지금-이곳의 부박한 문학적 현실과 사회적 현실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귀를 세운다. 이러한 질문들은 한 사람의 작가가 당대의 현실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한 물음표로 귀결한다.

텍스트(이하 ‘텍’) 『낯선 사람들』은 아버지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을 쫓는 소설이다. 추리소설적인 형식으로 씌어진 한편, 내용적으로는 인간의 선과 악, 종교적 구원과 삶의 태도 등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물음들로 가득 차 있다. 그간 ‘김영현 문학’이라고 부를 만한 것에 거리를 두고 있는 덕에 여러 가지 반응을 접했으리라 본다.

김영현(이하 ‘김’) 이른바 386세대, 혹은 올드한 독자들은 심리적 거부감이 있는 것 같다. 내 소설의 성실한 독자들 중에서도 현실과 치열하게 싸웠던 작가의 외도에 대해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걸 알고 있다. 반면 젊은 친구들 중에서는 추리소설의 작법에 재미를 느끼는 경우도 있다. 아무래도 요즘 사람들은 긴박감을 좋아하지 않나. 두 가지 반응 모두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의 우리 소설이 독자대중을 끌어들이는 흡인력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소설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사실 추리소설의 형식을 도입한 했다고는 하지만 굳이 장르 문학적이라고 말하는 건 무의미한 것 같다.

이를 테면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나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등도 모두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지 않나. 우리같이 나이든 작가들은 추리소설 쓰기 어렵다. 퍼즐처럼 들어맞는 구성을 만들기가 간단치 않은 일이다.

읽는 사람들은 쉽게, 대수롭지 않게 읽지만, 쓰는 사람은 그 고리를 놓치면 안 되니까 공력이 많이 들더라. 쓰면서는 그런 생각을 했다. 형식의 문제를 열어 놓고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래야 우리 문학도 딱딱한 틀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형식 문제 열어놓고 받아들여야

내 이전 작품 중에 종교적인 물음을 담고 있는 것으로는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가 있다. 거기엔 1980년대의 걸개그림을 그리는 화가, 사고로 아이를 잃은 아내가 등장한다. 변화를 그리면서 자기 삶을 성찰하는 과정을 다루었던 작품이다.

이번 소설 『낯선 사람들』은 가족 단위 안에서 일이긴 하지만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보다 훨씬 더 탐욕스러운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다. 인간의 그림자 혹은 악의 형태가 무엇인지를 소설적으로 탐색하려 했던 것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범죄가 바로 살인이다. 특히, 존속살해. 인간의 어두운 측면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존속간의 살인이나 근친상간이다. 융의 표현대로 하자면, 인간의 가장 오래된 그림자인 것이다. 소설 속에서는 아버지를 죽인 것이 동생일 수도 있고, 자기 형의 아들일 수도 있다.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고, 인간의 가장 약한 부분, 인간의 가장 깊은 죄의식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아버지 살해’라는 이야기를 구상하게 된 것이다.

다른 인터뷰를 통해서 “김영현 문학의 2기” 혹은 “패배의 터널을 빠져나온 듯한 느낌”이라는 얘기를 했다. 하지만 정작 ‘김영현의 독자들’은 ‘패배의 터널을 빠져나왔다’는 사실보다는 그 터널을 ‘어떻게’ 빠져나왔는가 하는 것을 더 문제 삼을 수도 있다. 그것은 곧 문학적 성패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감옥에서, 길위에서, 병영에서 보낸 10년 

나는 원래 니체 철학을 전공하려 했다. 막상 학교에서 공부를 해 보니 강단철학에 잘 안 맞는다는 걸 알았다. 유신시대의 격동적인 시간에 대학시절을 보내다보니 졸업도 못한 채 감옥생활을 해야 했다. 10여 년의 시간을 감옥과 군대와 길거리에서 보냈다. 이른바 민주화운동에 휩쓸리면서 살아오게 된 거다.

하지만 내게는 기본적으로 투사적 성격도 정치적 성격도 별로 없다. 그보다는 작가인 한편 철학도로서의 일관성을 잃지 않고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내 작품 속에도 등장하지만, 과연 무엇이 행복이며, 행복한 사회란 또 무엇인가, 그것은 내가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고민이다.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부터 내게는 두 가지 태도가 있었다. 하나는 자기시대의 모순과 싸우는 투사적 문학을 지향하는 태도였다. 민중문학을 필두로 1980년대의 문학은 현실과의 지독한 투쟁 속에서 자라났다.

이게 내 소설의 첫 번째 특징이라면, 다른 하나는 구도적인 태도를 들 수 있겠다. 문학을 통해서 당면 현실 뿐 아니라 인간이 근본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가치와 지향을 찾아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것이 두 마리의 말이다. 그걸 동시에 추구해야한다고 줄곧 여겨왔다.

초기에는 「벌레」에서처럼 지독하게 고통스러운 현실을 많이 다루었다. 그러는 한편 나의 작품들에는 늘 고민하는 인간의 모습이 있었다. 인간 삶의 본질에 대한 고민, 사회를 변혁시키고자 하는 꿈의 내용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고민, 이러한 것들에 대해서 썼던 것이다. 내 안에서는 그러한 고민들이 멈춘 적이 없다. 아마 그런 요소들 때문에 ‘김영현 논쟁’ 같은 게 생기지 않았나 한다.

투사적 문학과 구도적 문학

그런데 어느 순간 현실이 급격하게 바뀌어 버렸다. 그러면서 우리가 그렇게 열심히 싸우고 살아왔는데 그 끝이 대체 무엇이냐 하는 것을 묻게 되었다. 눈 내리는 공장 담벼락 아래를 걸어가며 가슴에 품었던 꿈이 있었다. 더불어 행복해지는 좋은 세상에 대한 꿈을 끈질기게 놓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지금의 현실을 보니 세상에 희망이라는 게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 민주화가 되었다고는 하는데, 과연 이런 식의 세상을 위해서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렸던가 싶은 거다. 어떻게 보면 황당하지만 참혹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런 현실과 부딪혀 나가려는 어떤 의지 같은 게 메말라 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어떤 측면에서는 둘러가고 싶어지는 거다.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을 검토하지 않으면 어쩌면 사회변혁이라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 묻게 되고,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으로 환원하고 싶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소설이 현실에 대해서 무엇일 수 있으며, 무엇이어야 하는가 등의 질문에 대해서 문학적으로 예민하게 고민해 왔음에도, 어느 시기 이후부터는 피로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게 관조의 태도로 변모하게 된 것 같은데….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후에 작품 활동을 하면서 평단의 조롱 섞인 언사를 많이 들었다. 이른바 후일담 문학에 관한 것이다. 사실 모든 문학은 후일담이지 않나? 하지만 우리 문학에서 후일담 문학이라고 할 때 과거완료형이라는 뜻으로 쓰는 것 같다.

모든 문학은 후일담이다

그런데 이런 규정이 우리 문학을 도리어 죽인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후일담 문학이 더 많았어야 했다는 뜻이다. 1980년대를 거칠게 살아온 그들이 지금-이곳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 작가들이 어떤 식으로 변모하는지를 집요하게 정리하려는 문학적 경향이 더 풍부했어야 하는데 너무 일찍 청산해버리고 말았다.

시대가 급변하면서 그에 발맞추어 신세대 작가들이 포스트 모던한 작품들을 들고 나왔는데, 그러면서 그 사이에 문학적 단절, 문학적 공백이 생겨버렸다.

내 작품을 둘러싸고 ‘김영현 논쟁’이 나오면서 고민이 상당히 많아졌다. 1990년대 초반, 우리 사회가 질적으로 변화하고 해체를 겪게 되는 시기가 있었다. 그러면서 내가 폐기처분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고, 나 자신을 어두운 과거로부터 거둬들이고 싶은 욕구 또한 강해졌다.

지난 시절을 돌이켜보면 죽은 사람도 너무 많았고 피 흘린 사람도 너무 많았다. 정말 고통스러운 기억이다. 되돌아보기가 싫었다. 김영현의 성실한 독자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다. 내가 피로하게 보이고 뒤로 물러서려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개다리 영감의 죽음」, 「김문갑전」 등과 같은 작품을 통해서는 역사적 흐름과 무관하게 건강한 정서를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 그리고 싶었다면, 다른 한편으로는 지식인들의 변해가는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다.

이 세상은 정말 살만한 가치가 있나

그 변화를 그저 어떤 현상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전체적인 틀 속에서 바라보고 문학적으로 표현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공동체의 성격이 무엇인지,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물신주의적 사회, 이 미쳐 돌아가는 사회, 이런 세상을 정말 살 가치가 있는지 회의감에 빠질 때가 많다.

휩쓸려서 살고는 있지만 아무 의미가 없는 듯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걸 버텨내는 게 정신적으로 상당히 고단하다. 간혹 나의 생애가 나의 정신병력과 다름없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 자기분열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자기동일성을 유지하기 위해 무진장 노력을 한다. 명상도 해보고, 단전호흡도 해보고, 여행을 떠나보기도 하고….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세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발버둥 치며 살아가는 것 같다.

나는 나의 문학에 대해서 그 모든 비판을 감당하면서 발전하는 과정에 있다고 여긴다. 이 단계를 거쳐 가면 다음에는 더 나아지겠지 싶다. 그래서 사실상 문학의 2기, 3기를 논할 수 없다고도 할 수 있다. 한평생을 구도하는 승려의 모습과 작가의 생애는 거의 동일한 것 같다. 아마 다음 창작집은 훨씬 더 현실적이 될 것 같다. 세상을 완전히 다르게 바라보는 그런 작품을 준비 중에 있다.

후일담 문학이 너무 빨리 청산되었다고 했는데, 어떤 점에서는 후일담 문학의 작가들이 문학적으로 덜 치열했던 게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런 혐의가 우리 작가들에게 많이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좋은 작품이 안 나왔던 것도 독자들이 후일담 문학을 잘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유일 것이다. 나도 지금에 와서는 옹호를 하지만, 그 당시에는 듣기도 싫고 보기도 싫었다. 독자들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다. 1980년대를 낮은 폭으로 지내왔으니 그걸 되돌아보기 싫었을 것이다.

386세대 사회적으로 존재하는가

우리사회는 정치적으로는 민주화를 이루었고, 경제적으로는 양극화가 분명해졌다. 자본주의가 확실히 자리를 잡았는데, 그런 상황에서 사회변혁에 대한 건강한 열정과 순수한 의지를 갖고 있던 사람들의 열망이 거의 휘발되면서 패배감을 가지고 사회에 편입하게 되었다.

그 사람들이 사회에서 자기 열정을 다 펴지 못하고 한꺼번에 청산되면서 일괄적으로 조롱당하는 경험을 겪었다. 몇몇은 출세도 하고 그랬지만…. 정치적으로는 386세대라는 것이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과연 386세대가 존재하는가 싶다.

‘로스트 제너레이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소설 쓰는 후배들은 새로운 사회적 패러다임을 가지고 새 소설 쓰는데 결국 그 중간, 허리가 되는 세대가 없는 셈이다. 몇몇만 살아남았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후일담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일찍 청산된 것이 안타깝다는 것이다.

『낯선 사람들』의 마지막 장면에서 예비 사제인 성연은 수도원으로 돌아가지 않기로 결정을 한다.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라네’ 라는 요한 신부의 이야기와 안나의 미소 띤 얼굴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근본적인 죄의식이나 선악의 문제로 고뇌했던 성연이 ‘사랑’을 언급하는 순간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갈등이 통합하는 것처럼 보인다. 해결이 너무 손쉽다는 것이다. 이런 점은 분명 소설적 재미를 반감시키기도 한다. 전작 『폭설』에서도 운동권이었던 형섭의 고뇌는 핍진하게 그리면서도 결국에는 사랑으로 마무리 지었다.

80년대 지긋지긋한 시절에 대한 사랑을 끝내기 위해 

결국 싱겁다 혹은 진부하다는 평인데…. 『폭설』은 1980년대를 떠나보내는 내 나름의 연가 혹은 송가였다. 1980년대를, 그 지긋지긋한 시절에 대한 사랑을 이제는 끝내고 싶었다. 하지만 이번 소설에서는 사랑을 주제로 삼으려던 것은 아니었다.

지금 와서는 조금 후회하기도 한다. 맥 빠지는 듯 느꼈을 수 있으리라 본다. 성연이 수도원 돌아가지 않고 이 진흙바닥 같은 세상에 남겠다는 선택을 한 것, 사실 나는 그것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물론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사랑이었다.

성연의 외삼촌과 요한 신부의 유신론-무신론 논쟁을 격렬하게 이끌고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요한 신부와 외삼촌은 내가 정성스럽게 그려보고 싶었던 인물이었다. 무신론자인 외삼촌은 자기 신념과 이념에 충실한 사람으로, 요한 신부는 그야말로 순결하고 거룩한 영혼을 가진 존재로 그리고 싶었다.

그랬으면 그 둘의 대립을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소설 속의 장 반장은 50대 초입으로 그 바닥에서 범인 잡는 걸로 인간의 선과 악을 평생 지켜본 인물이다. 성연과 그 형제들의 운명을 모두 다 바라봐 온 인물이기도 하다.

그 사람이 마지막에 가서 “내 삶이 의미 있는 것인가?”라고 묻는 건, 참 가슴 아픈 아픈 일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모두에게 던질 수 있는 질문이기도 하고. 사실상 장 반장의 이런 질문으로 끝을 냈어야 했던 건 아닐까 싶다. 사실 성연이 그에 대해 굳이 답할 필요는 없었다.

이 보잘것 없는 세상에 사랑의 존재에 감탄하다

   

『낯선 사람들』에서 모든 이야기를 다 걸러내고 나면 결국 누가 남을까 생각을 해봤는데, 안나일 것 같았다. 제목도 ‘안나’로 하고 싶었다. 편집부에서 반대하는 바람에 누구나 다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라는 뜻에서 실존주의적인 의미로 ‘낯선 사람들’로 하게 됐는데….

아무튼 안나는 성연이 머무르기로 한 이 삭막한 세상에서 계속 리바이벌되고 성연의 마지막 가능성을 확인하게 하는 존재다. 궁핍하고 괴로운 세상이지만 그래도 안나가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성연에게는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희망이 된다.

이런 식의 생각은 아마도 우리 세대가 갖고 있는 낭만성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소설을 쓰면서 줄곧 그런 안나의 존재와 의미에 골몰하다보니까, 안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나름대로 합리화하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 사랑이라는 걸 어떻게든 걸치고 가고 싶어서 결국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런 얘기를 쓰게 됐다. 결과적으로는 그게 맥 빠지게 만든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이야기가 진부하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소설을 쓰면서 사랑에 대해서 새롭게 느끼게 됐던 부분이기도 하다. 이런 보잘것없는 세계에 사랑이 있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공룡의 시대와 우리의 시대가 정말 뭔가가 다르다면, 인간 속에는 뭔가 표현할 수 없는 기적 같은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게 바로 사랑이 아니겠느냐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런데 그게 소설 속에서는 다소 진부하게 마무리되는 바람에 아쉬움이 남는 거다. 몇 줄 묘사되지 않지만 안나를 쓰는 장면이 가장 어려웠다.

그렇다면 차라리 사랑 이야기를 정면으로 써 보는 것은 어떤가.

그리워 할 것이 사라져가는 세상

지금 나에게 가장 큰 결핍이 있다면 그리움이 아닐까 싶다. 나는 이제 사랑 이야기는 쓸 수 없을 것 같다. 모든 사랑의 밑바닥에는 그리움의 정서가 있다. 사랑이 뇌파적으로 베타파라면 그리움은 알파파라고 할까. 밑바닥을 선회하는 감정 말이다.

우리는 누구도 “그리웠습니다”라고 인사하지 못한다. 너무 깊은 감정이라 그렇다. 그런데 그 그리움이라는 것이 나의 감정에서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걸 느낀다. 단지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걸까? 세상이 그렇게 가는 것 같지 않나? 그리워 할 것이 세상에서 점점 더 사라지는 것 같다.

그리움에 대한 열망이 인간에게 마지막까지 품격을 지키면서 살도록 하는 것일 텐데 말이다. 우리 사회는 정말 품격이 바닥까지 떨어지고 말았다. 아, 정말 사랑 이야기는 못 쓸 것 같다.

품격 없는 시대에 대해서 얘기했는데, 그 방향을 좀 바꾸어서 그걸 문학작품과 출판의 관계라는 맥락에서도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를 테면 이제는 ‘창비’의 고유함, ‘문지’의 고유함 같은 것들이 거의 사라졌다고도 할 수 있다. 시장과 타협하는 모습들을 너무 쉽게 포착할 수 있다.

문학의 다양화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일본 문학과 비교해 봤을 때, 나는 우리 문학이 더 치열하다고 본다. 문학적 전통도 탄탄하다. 그런데 지금 대중들이 열광하는 문학은 거의 일본 문학이다. 다양한 재미, 넓은 작가군 같은 것들이 부러울 지경이다. 우리가 그런 것들에 대해서 얼마만큼 경쟁력을 확보하고 버틸 수 있을지 고민해 봐야 할 문제다.

문학의 기본은 리얼리티

젊은 작가들이 힘겹게 분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문학의 기본은 리얼리티다. 자기의 리얼리즘을 보여주는 것이 관건이다. 물론 그걸 표현하는 작가들의 목소리는 저마다 달라야 하겠지. 하지만 현실의 문제와 동떨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문학이 오락으로 넘어가고 독자들을 잃어버리는 것은 그 때문인 것 같다.

물론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안다. 출판 시장 자체가 급격하게 상업주의의 길로 돌아선 것은 출판 문학계의 현실이다. 짜르와 싸운다, 혹은 일본과 싸운다, 혹은 전두환과 싸운다, 이런 식의 구체적인 당면 목표가 없는 상황이고, 따라서 자기의 아이덴티티를 확보할 만한 그 무엇인가가 없다.

생활양식이 변화하고 삶이 다양해졌지만 어떤 선택도 쉽지가 않다. 예를 들어, 시골로 내려가 자급자족하면서 농사짓고 산다고 해도 그것은 개인적인 선택일 뿐이다. 그것이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아니다. 옛날식으로 말하자면 ‘전선’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

그러니까 문예지나 출판사가 뭘 표방하려야 할 수가 없다. 내가 있는 ‘실천문학’에 대해서도 똑같이 얘기할 수 있다. “‘실천문학’의 칼라가 뭐냐?” 이렇게 물었을 때, 반미자주 혹은 민주화 이런 것들이 충분한 대답이 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 난감한 상황에서 모든 것을 통합한 것이 바로 상업주의다. 살아남아야 하는 게 최대의 목표가 됐다. 어떻게 살아남을까 이것만 생각하게 된 것이다. 왜 살아남아야 하는지를 아무도 묻지 않고 그걸 물을 수도 없는 상황이 온 거다. 그러다보니 전반적으로 질적인 하락을 면할 수가 없게 되고….

누구 스타 작가 하나가 뜨면 서로 끌어가려고 혈안이 된다. 예전에는 어떤 작가가 괜찮다고 하면 그에 대해서 비판적인 목소리들이 함께 나와서 견제를 해 줬지만 지금은 그런 게 전혀 없다. 사회가 에너지를 상실하면 문학도 애매모호해 진다는 게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사회가 에너지를 상실하면 문학은 모호해진다

자본주의적 가치, 돈이 없으면 곧 죽은 목숨이라는 것, 이런 단일한 가치가 이렇게 전세계적으로 통합을 이룬 적이 있던가. 이런 상황들이 나에게도 끊임없는 배신감을 안겨준다.

이런 상황에서도 어찌됐든 ‘작가들의 몫’을 이야기해 봐야 할 것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 거치면서 좋은 작품들이 많았고, 좋은 작가들도 많았다. 지금 젊은 후배 작가들 중에서도 눈여겨 볼만한 작가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전반적으로는 오늘날의 작가들은 뭘 써야 하는지, 자신의 고민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손가락을 앓고 있는 것인지 심장을 앓고 있는 것인지 구별을 못한다. 그러다보니 독자들도 읽을 게 없다는 볼 멘 소리를 하고. 작가로서 실험적인 것을 계속 시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요즘 실험적인 시를 쓰는 시인들을 ‘미래파’라고 부르고 있는 것 같더라.

작가들은 이렇게 계속 돌파구를 찾으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 소득을 거두는지는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작가들의 몫이라는 점에서 그걸 계속 과제로 안고 가야 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김영현의 이후 소설’에 대해서 듣고 싶다.

나는 정통적인 문학수업을 받은 사람이 아니다. 어려서부터 외국소설을 읽으면서 문학적 자양분을 섭취했다. 도스토예프스키, 카프카도 물론 좋지만 체호프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사실 나는 체호프처럼 쓰고 싶다. 도스토예프스키적인 주제는 이번으로 끝이지 않을까 싶다.

도스토예프스키적 주제는 이번으로 끝 

사실 이번 소설 『낯선 사람들』은 딱히 구도소설이라고 할 만하지는 않다. 나는 성연이 ‘성인聖人’이 되는 과정에 대해서 쓰지 않았다. 여기에 뭔가를 더 할 수 있었다면, 사회성이나 역사성에 대한 이야기를 썼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얘기를 쓰면 또다시 후일담이라고 할까 싶어서 그런 부분들은 다 걷어냈다.

최문술의 과거 삶에서 살짝 언급은 하지만 그걸 주도적으로 밀고 가지는 않았다. 이런 종류의 소설 배경에도 사회적인 이야기가 풍요로워야 한다. 그걸 못한 건, 내가 타협했기 때문이다. 다음에는 그러지 않으려고 다짐했다.

작가는 혼자서 춤을 추는 존재다. 마치 무당이 혼자서 제를 드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점에서 부족한 점들을 느낀다. 한 작품을 쓰고 나면 언제나 아쉬움이 많기 때문에 다시 돌아보기가 겁난다. 독자들이 좋다고 해도 불안하고, 나쁘다고 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그런다.

그게 또 작가의 운명이기도 하고. 자기 자신의 일관성을 평생 유지하면서 글을 쓴다는 게 만만치가 않다는 걸 새삼 느낀다.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살면서 글을 쓰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작가는 자신을 대상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인 것 같다. 자신을 모르모트로 삼는다. 자기 온 몸을 작품에다 바친다. 나이가 들수록 그걸 더 절실하게 깨닫는다. 삶의 전체적인 모습이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것 같다. 가령, 김성동이 어떻게 사느냐, 이문구가 어떻게 사느냐, 이건 작품과 직결되는 이야기인 것이다. 현실과 어떻게 싸우고 타협하며 버티고 살아가는지 독자들은 그런 걸 기대한다. 작가의 초기 작품부터 시작해서 작가의 작품에 의탁하며 한 시절을 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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