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파, 개헌국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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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2월 22일 11:4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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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월 9일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을 제안하는 특별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브리핑)
     

    얼마 안 있으면 노무현 대통령이 이미 예고했던 바대로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안을 발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람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머리가 좋아서 다시 한 번 정국의 반전을 꾀할 카드로 소위 원포인트 개헌을 선택하였다고 수군거리곤 한다.

    그러면서 그 배후에 숨겨진 의도가 무엇일까를 놓고 여러 가지 음모론을 전개하기도 한다. 그러나 필자는 그런 음모론에는 관심이 없으며 이 글은 그런 음모론이나 또는 향후 전개될 개헌국면에 대해 분석을 하고자 하는 글이 아님을 우선 밝혀둔다.

    민주노동당 입장은 무엇인가

    사실 민주국가에서 개헌은 그 자체로 매우 중대한 문제이다. 헌법은 최고법으로서 국민의 기본권의 내용을 규정하고 국가권력을 조직하는 기본을 정하는 법으로서 한 나라의 권력구조나 국민의 기본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연임제 개헌안의 경우 기본권의 문제가 아닌 권력구조, 그 중 대통령과 행정부의 권력구조에 관한 문제에 속한다. 모든 정치세력은 헌법이 규정하는 권력구조의 범위 내에서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권력구조에 관한 개헌은 정치세력간 경쟁의 룰을 바꾸는 중대한 문제이다.

    개헌은 한 번 개헌이 이루어지면 여간해서는 이를 다시 바꾸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도 중대한 문제이다. 일본의 경우 자민당은 그토록 오랜 세월 집권을 해오면서도 평화헌법 조항을 아직까지도 바꾸어내지 못하고 있다.

    헌법이 휴지조각처럼 취급되는 나라라면 예외겠지만 적어도 헌법이 정상적인 규범력을 발휘하고 있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라면 개헌된 상태를 기초로 장기간에 걸쳐 형성될 제도화된 권력구조를 그 후 다시 개헌을 통해 바꾸려고 시도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제안한 원포인트 개헌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입장은 무엇인가. 당대표가 ‘다포인트 개헌’을 언급한 적이 있는 것 같고, 정책위의장이 토론회에서 민주노동당이 원하는 개헌안을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방식으로 개헌국면을 활용하자는 취지로 발언했었던 것 같다.

    원포인트 개헌 재앙, 다포인트 개헌 무책임

    그런데 다포인트 개헌이건 개헌국면을 적극 활용하자는 주장이건 간에 원포인트 개헌 자체에 대한 입장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즉, 대통령은 원포인트 개헌을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원포인트 개헌 자체에 대한 입장이 없는 것으로 보여진다.

    겨우 의원 9명에, 그것도 그 중 8명은 지역구가 아닌 비례대표 의원으로 구성된 민주노동당이 대통령 조차 포기한 다포인트 개헌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매우 부적절하기까지 한 것이다. 도대체 무슨 힘이 있어 원포인트 개헌도 아닌 다포인트 개헌안을 들이밀겠단 것인가.

    또한 개헌문제를 정치적 선동을 위한 하나의 기회 정도로만 생각하면서 개헌국면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식의 태도도 무책임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개헌과 관련한 대안을 언제부터 준비해왔는가.

    연정이라는 방법을 활용해서라도 소수파지만 개헌안을 통과시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장기적인 준비를 거쳐 그런 이야기를 꺼낸 것이라면 모르겠으나 그 동안 개헌을 위한 아무런 준비나 비전도 없던 상태에서 연정은커녕 소수당의 목소리만으로 정치적 공세를 펴기 위해 개헌에 대한 논란을 벌이겠다는 것은 국민의 신뢰를 갉아먹는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대통령이 제안한 대통령 임기 4년 연임제 개헌안이 단순히 대통령의 임기를 현행 5년 단임에서 8년까지 연임이 가능하도록 하게 만드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형식만 놓고 보면 동일한 대통령의 임기가 현행 5년 단임에서 국민의 선택에 따라 4년으로 그 임기로 줄어들 수 있거나 또는 8년까지 대통령의 임기연장이 가능하게 되는 구조로 가는 것을 의미한다.

    연임제는 대통령제 강화 방안

       
      ▲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개헌의 의미와 필요성 등을 설명하고 있다.(사진=청와대 브리핑)  
     

    사실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의 입장에서 볼 때 위와 같이 형식적으로 이해하더라도 큰 무리가 없으며, 오히려 8년짜리 대통령에 대한 꿈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니 노무현 대통령이 한나라당도 수용이 가능하다고 하면서 원포인트 개헌안을 발의하겠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좌파 정치세력의 입장에선 그렇게 단순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기본적으로 위와 같은 연임제 개헌안은 대통령제를 강화하여 대통령제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대통령과 대통령이 이끄는 행정부의 국민에 대한 책임성을 높임과 동시에 대통령으로서는 자신이 추진하고자 하는 정책에 대해 선거라는 중간평가절차를 거쳐 국민의 신임을 물을 기회를 얻게 된다. 이를 통해 대통령은 보다 장기적인 정책의 추진이 가능하게 되고,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을 기회를 갖게 된다.

    국민들로서도 4년마다 한 번씩 대통령 선거를 치르면서 대통령에 대한 신임평가를 할 수 있게 되어 그 선택의 폭이 넓어지게 되고, 그런 선거를 몇 번 치러보게 되면 대통령의 재신임에 관해서도 일정한 기준이 마련되면서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질 수 있다. 이와 같은 상호작용과정의 반복을 통해 대통령제가 강화되는 과정을 밟게 된다.

    이와 같이 원포인트 개헌안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그것이 대통령제를 보다 합리적으로 강화하는 내용의 개헌안이라는 점이다. 대통령의 권한과 책임을 강화한다는 차원에서 대통령제를 발전시켜야 한다면 찬성을 할 수도 있겠으나 앞으로 현실정치에서 힘을 더 키워나가야만 하는 좌파정치세력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존망이 걸린 성격의 문제이다.

    좌파 존망 걸린 중차대한 문제

    대통령제는 미국에서처럼 양당제를 발전시키는 구조적 힘을 내포하고 있고, 그와 동시에 다양한 정치세력이 등장하고 성장하고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억압하는 구조를 가진 제도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생각해보자. 지금 한나라당은 이명박 전시장과 박근혜 전대표 사이에 사활을 건 검증전쟁을 벌이고 있다. 지금은 후보 개인의 도덕성에 관한 쟁점 위주로 전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앞으로는 노선이나 사상에 대한 검증전쟁으로까지 발전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명박 전 시장이 도저히 못 참는 수준으로 검증전쟁이 확대될 경우 상황에 따라서는 한나라당 분당으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위와 같은 일이 왜 가능한가. 바로 우리나라가 강력한 대통령제 국가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권한을 놓고 보면 미국보다도 더 강한 대통령제이다. 당선 가능성만 충분하다면 유력한 대선후보를 중심으로 당을 만들어 대선을 치르고 총선은 대통령 당선 이후에 다시 생각해도 된다. 정당 자체가 대통령의 종속변수가 된다.

    지자체선거의 경우 자체 재정이나 자체입법권이 매우 협소하기 때문에 그 정치적 의미가 매우 작다. 사법권은 관료제에 가깝기 때문에 정치적 의미를 두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력은 대통령과 국회 사이에 배분되는데 필자가 보기에 그 중 3분의 2 이상이 대통령의 몫이다. 따라서 대선후보를 중심으로 정치세력이 이합 집산하는 현실 자체도 어찌 보면 자연스런 현상이다.

    국민들 입장에서도 대통령 선거에 대한 관심과 대통령에 대한 관심이 국회의원이나 총선에 비해 2배 이상 높을 것이다. 또한 대통령이 잘 하느냐 여부에 따라 정당의 운명이 결정된다. 지금의 열린 우리당 탈당 사태는 그 명백한 증거가 아닌가.

    대통령제하에서 국민들은 어떤 정당을 밀어줄 것인가 보다는 어떤 대통령을 뽑을 것인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현실에서도 그렇다. 국민들로 하여금 이런 생각과 선택을 하게끔 만드는 대통령제의 본성상 좌파정당이 성장하기가 어렵다. 좌파정당이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가능성이 있는 유력한 후보를 낼 수 있는 상황(예를 들면 브라질의 경우)이라면 모르겠으나 그것은 우리에게 아직은 먼 미래의 일이다.

    대통령제 좌파 정당 성장에 제약 

    대통령 연임제를 통해 국민들이 4년마다 1번씩 대통령 선거를 통해 신임을 물을 수 있게 되면 대통령제가 좌파정당 성장에 대해 가하는 모든 제약이 더 강화되게 된다. 산술적으로만 보더라도 5년에 1번이 4년에 1번으로 되면서 20%의 관심이 대통령에게 더 쏠리게 되고, 정당을 키워 정치적 변화를 도모하겠다는 관심사는 그 만큼 줄어들게 되어 있다.

    민주노동당은 아직 총선에서도 지역구 의원 당선이 어려운 상황이다. 비례대표선거를 통해 생존을 도모해야 하는 상황에서 만약 비례대표 의원 정수가 20% 줄어들고 소선거제로 뽑는 지역구 의원수가 그 만큼 늘어난다면 이는 민주노동당의 발전에 엄청난 장애가 되지 않겠는가. 대통령 연임제 개헌은 비례대표를 보다 더 늘려야 할 판국에 비례대표가 오히려 줄어들게 만드는 것과 유사한 효과를 민주노동당에게 가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필자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원정부제 형태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대통령은 외교, 국방, 통일 등 대외적인 사안에 관하여 장관 임명권을 포함한 권한을 행사하고, 여기에 법률안 거부권 정도를 주는 정도로 권한을 줄이고, 나머지 일체의 국내적인 사안에 관한 결정권은 내각제 방식으로 구성되는 수상을 중심으로 한 행정부로 하여금 처리하게 하는 권력구조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행정부의 구조를 마련하고, 국회를 정당투표를 통한 비례대표의원 중심으로 구성하게 하면 다양한 정치세력이 사표 없이 나름의 정치적 지분권을 가질 수 있고, 연정도 가능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구조가 민주주의 원칙에 보다 부합한다고 생각하며, 그래야 좌파정당이 성장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길을 통해서만 미국식이 아닌 유럽식 정치구조로 전환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좌파정치세력에게 연임제 개헌은 독이다. 독을 독인줄 모르고 좋다고 마시려고 든다면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연임제 개헌은 어떻게든 막아야만 할 제도라고 생각한다. 권력구조에 대한 대안은 좌파정당이 한참 성장하고 난 후에 검토되어야 할 문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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