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 위해 20년 인생 바쳤는데"
        2007년 02월 21일 12:5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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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 명절을 하루 앞둔 지난 15일자로 계약해지 통지서를 받아 삼성SDI에서 쫓겨난 해고자 함선주(45) 씨. 그는 온 가족이 즐거워야 할 설 명절을 술로 보냈다. 삼성SDI에서 20년 인생을 바쳤는데 아무 잘못 없이 공장 밖으로 쫓겨나야 한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았다.

       
     
     

    삼성에서 해고됐다는 말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지만 어차피 알게 될 얘기였다. 형님집에서도, 처갓집에서도 술 기운을 빌어 얘기를 꺼냈다. 한 때는 삼성에 다닌다는 이유로 그를 부러워했던 사람들의 위로를 받으며 그는 명절 내내 시린 가슴 속에 술을 들이부었다.

    1986년 삼성에 입사하다

    울산 울주군에 있는 삼성SDI(당시 삼성전관) 부산공장. 함선주 씨는 21년 전인 1986년 12월 삼성SDI에 입사했다. 그의 나이 24살이었다. 한 주는 주간, 한 주는 야간에 일을 했고, 교대하는 일요일엔 낮에 일하고 나서 잠깐 자고, 밤에 다시 일하러 나가야 했다. 시급 611원. 월 30만원을 받았다.

    공장은 군대였다. 회사는 수시로 근무 시간에 기숙사를 털었다. 삼성 제품이 아닌 물건을 뒤지기 위해서였다. 어느 날 일 끝내고 방에 들어왔더니 옷장이 엉망이었다. 그가 아끼던 금성 녹음기가 그날 말도 없이 사라졌다. 머리가 길다고 총무부장이 회사 정문에서 머리를 밀어버리기도 했다. 인류기업 삼성이 그랬다.

    87년 민주화와 노동자 대투쟁은 삼성에도 ‘변화’의 물결을 불러왔다. “87년 여름 노사분규가 한번 일어나 타결됐는데 급여가 많이 오르고 모든 게 좋아졌어요. 간부들이 사원들 대하는 것도 많이 달라졌구요.”

    그는 1991년 결혼했고 당시 600만원 융자를 얻어 1,100만원에 24평짜리 아파트도 장만했다. 그는 그 아파트에 지금도 살고 있다. 삼성에 다녔기 때문에 큰 걱정이 없었다. 정년까지 다닐 수 있다는 생각에 고용에 대한 불안도 없었고, 삼성에 대한 자부심도 있었다. 1998년까지는 그랬다.

    1998년 삼성의 사기가 시작되다

    1998년 7월 회사는 그와 동료들에게 ‘사내기업’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제안을 했다. 사내기업에 들어가면 고용보장은 당연하고, 주주가 되기 때문에 더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거였다. 회사는 7월 21일 경영지원팀에서 만든 ‘사내기업 Q&A’라는 13장 짜리 자료를 내밀었다.

    삼성SDI는 그 자료에서 “사내기업은 사원 및 유경험자들이 별도의 법인을 설립하여 이윤 발생시 이윤을 배분받을 수 있도록 사원주주제 형태로 운영되는 회사”라고 했고, “지분참여를 통한 경영참여로 자기성취감과 동기의식이 부여되고 고용안정도 보장된다”고 꼬셨다.

    회사는 “본인 귀책사유가 없는 한 고용을 보장토록 한다”고 썼고, “주주로서 출자도 할 수 있기 때문에 고용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알렸다. 회사는 고용보장에 대한 불안을 씻기 위해 13쪽 문서에서 상당부분을 고용보장에 할애했고, 11쪽 ‘사내기업으로 전환 후 고용보장’이라는 내용을 따로 정리하기까지 했다.

    회사는 “근로조건은 똑같고, 노동강도도 높아지지 않고, 급여는 더 좋아진다”며 ‘사내기업 전환시 근로조건 표’까지 동원해 사람들을 유혹했고, “100% 전환을 원칙으로 하나 본인 사정으로 전환이 불가할 시에는 타 공정을 전환배치를 검토”하겠다고 협박했다.

    회사의 사탕발림에 넘어가다

    그는 “이렇게 좋은 조건인데 안 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노동법도 몰랐고, 순진했죠. 당시 과장(지금 사장)이 사람들 꼬셨고, 대기업에서 설마 거짓말 하겠나 싶었어요. 정말 좋다. 정규직에게 더 좋다. 노력해서 이익이 발생하면 개인이 가져간다. 이렇게 얘기했는데 의심하지 않았죠.”

       
     
     

    그와 동표들은 7월 말 삼성SDI에 사직서를 쓰고, 영성전자라는 회사에 들어갔다. 삼성SDI 사내기업 1호였다. 당시 권 모 이사는 그와 동료들을 불러 차까지 대접하며 축하를 해줬다. “이렇게 높으신 분이 우리 불러서 설명하니까 모두 철썩같이 믿었죠.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그와 동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내기업’이 삼성의 거대한 ‘사기극’이었다는 사실을 하나씩 알게됐다. 브라운관 색상 조정하는 ITC 공정에서 그와 정규직이 똑같이 일했지만 차별은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졌다. 그는 주주라는 이유로 열받아 일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 여사원들을 달래는 관리자 몫까지 해야 했다.

    그가 정규직으로 일할 때는 한 라인에 4천 개도 못했는데 사내기업으로 넘어와서 특별상여금이 많다는 얘기에 8천개까지 해내면서 뼈가 부서지도록 일했다. 그러나 회사는 1년 단위로 했던 단가계약을 6개월 단위로 하고, 7천개를 3개월 이상 하면 그걸 기본으로 계산해서 돈을 주지 않았다.

    “우리가 속았던 거죠. 인원은 인원대로 줄이고 생산량은 높이고. 우리는 뼈빠지게 일하면서 돈 한 번 떨어질까 쳐다보고 있었는데…” 사내기업 9년. 그의 지난 달 월급은 230만원이었고, 그와 같이 입사했던 사람들은 400만원을 훨씬 넘게 받았다.

    그렇게 삼성SDI는 사내기업을 늘렸고, 많을 때는 50여개가 됐다. ‘사내기업’이라는 이름으로 삼성은 ‘오래된’ 관리자는 ‘사장’으로 보내고, 정규직은 하청노동자로 만들고, 구조조정이 필요하면 계약해지하는 1석 3조의 효과를 얻었던 것이다.

    ‘사내기업’으로 1석 3조를 얻은 삼성

    브라운관이 사양산업이 됐다는 이유로 그는 20년간 인생을 바쳤던 ‘삼성’에서 15일자로 해고통지서를 받았다. 그는 삼성 SDI의 설 연휴가 끝난 22일부터 다시 1인 시위를 시작한다.

    그가 사내기업으로 가려고 했을 때 강력히 반대하던 사람이 있었다. 삼성SDI 해고자 송수근 씨였다. 그는 노사협의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삼성의 ‘음모’를 알아챘고, 이와 맞서 싸우다 해고됐다.

    송수근 씨는 지금 삼성SDI에서 해고되고 있는 사람들을 돕고 있다. “송수근씨한테 너무 챙피하고 부끄럽고 그랬죠. 근데 그는 자기가 노사위원으로 있을 때 막지 못해서 오히려 자기가 미안하다고 그래요.”

    회사는 브라운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해고시키면서 8천억원을 들여 PDP 공장을 짓고 있는데 5월부터는 라인이 돌아갈 예정이다. 브라운관에서 일하던 노동자에게 일을 가르쳐 PDP공장에서 일을 하도록 하면 될텐데 회사는 신입사원을 뽑으려 하고 있다.

    "삼성이 잘못했다는 걸 깨닫게 하겠다"

    “옛날 흑백브라운관 만들던 사람들이 칼라 만들었는데 지금도 그렇게 하면 되잖아요. 우리는 임금이 적어도 일을 하겠다고 했는데 회사는 월급이 적은 사람들을 쓰겠다는 거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쫓겨나는데도 회사는 조용하다. 이미 1~2공장이 중단됐고, 곧 3공장도 멈추면 수천명이 직장을 잃는데도 신문에 한 줄 나지 않는다. 삼성은 법적으로 문제가 될만한 일들은 다 ‘손’을 봤고, 해고자들은 돈으로 조용히 정리시키고 있다. 공장 앞에는 매일 밤 12시 집회신고를 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돈 받고 많이 퇴사했는데 얼마 받았는지 물어보면 금액은 얘기 못해주겠다고 그래요. 얼마 전에 5천만원 얘기하더니 우리가 싸우고 나서 8천5백 얘기가 나오고 있어요. 삼성이 법적으로 못 이기도록 해놓았기 때문에 싸워봐야 소용없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어요.”

    “우리 회사에서 짤린 사람만 70명인데 전화하면 통화도 안돼요. 우리 쪽에 붙으면 명예퇴직금 안준다고 그랬다고 해요. 그러니까 우리가 어떻게 하는 지 지켜보고 있는 거죠. 집에 가서 놀아도 준다고 하니까.”

    만약 노동조합이 있었다면 이렇게 비참하게 당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그는 말한다. 그렇지만 그도, 그의 동료들도 그런 용기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 싸움을 시작했다. 그런데 삼성과 맞서 싸우던 많은 사람들이 ‘큰 돈’을 받고 정리했다.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럴지 모른다. 그리고 또 사람들은 수십년 일하던 공장에서 아무 잘못없이 쫓겨난다.

    20년 인생을 바친 그에게 삼성은 사기를 쳤고, 이제 쓰다버린 기계처럼 그를 내던졌다. 그는 “앞으로 이 공장에서 해고될 노동자들을 위해서라도 끝까지 싸워서 삼성이 잘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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