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 경선준비위로 검증 될까
        2007년 02월 20일 04:3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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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당이 최근 이명박 전 시장으로부터 지난 96년 1억 2,500만원을 받았다고 주장한 김유찬씨에게 관련 자료를 당 경선준비위원회에 제출해줄 것을 공식 요청했다. 대선주자간 검증 공방과 관련 당의 분열 우려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당이 어쨌거나 중심을 잡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당 안팎에서는 한시적인 당내 기구에 불과한 경선준비위원회가 제대로 후보 검증을 할 수 있을지 의심하는 눈초리가 적지 않다.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는 이날 오전 최고위원 비공개 회의에서 “김유찬 건은 (경선준비위내) 검증위원회에 자료를 가져오도록 요구해서 검증위가 판단하는 것도 필요하다”며 “이러한 검증 문제가 미리 나온 것은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형오 원내대표도 “경선준비위원회는 당내에서 이미 공신력을 인정받고 있으며, 당내의 유일한 검증 공식기구”라며 “검증 관련 자료가 경준위에 제출되면 검증여부와 검증강도에 대해 경준위가 독자적으로 판단한다는 내용을 국민들에게 홍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당의 유력 대선주자간 검증 공방으로 당의 분열 가능성이 공공연히 거론되는데다가 각 후보진영으로부터도 당내 경선준비위에 대한 공정성 시비가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경준위에 힘을 실어주려는 모양새다.

    당 경선준비기구인 ‘국민승리위원회’는 이에 따라 이날 긴급회의를 통해 “김유찬에게 자료제출을 요구하기로 했다”며 또 “김씨가 내일 기자회견을 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지만 특정 후보 편을 들어 선전을 한다는 오해 받을 수 있어 자제해줄 것을 정식으로 요청할 것”이라고 이사철 경선준비위 대변인은 말했다.

    이사철 대변인은 “정인봉 변호사의 검증 자료는 이미 언론에 보도됐고 수사기관의 수사와 법원의 재판결과로 모두 확정된 사실이어서 더 이상 검증절차를 않고 종료했다”면서 하지만 “김유찬씨가 발표한 내용은 전혀 새로운 사실”이라며 정 변호사 때와는 달리 검증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검증 방법과 자료 공개와 관련 “검증 자료를 제출받으면 경준위내 검증 소위에서 검증여부를 검토하고, 이 전 시장측의 소명 자료를 받아 함께 공개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검증소위는 경선준비위에서 각 후보 진영 대리인을 제외한 위원들의 참여로 구성된다.

    하지만 한나라당 경선준비위가 검증 기구로 제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가 적지 않다. 3월 10일로 기한이 정해진 한시적인 기구인데다가 유력 대선주자들과 가까운 당내 의원들이 포진해 공정성 시비의 불씨가 남아 있다. 대선후보 경선방식, 경선 시기 등 경준위가 다뤄야할 민감한 주제들이 산적해 있는 것도 문제다.

    당장 강재섭 대표 역시 “경선준비위원회에서는 대선주자들에 대해 검증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경선 일정과 시기에 대해서 의논하는 것”이라며 “3월 10일까지 결론을 내줄 것”을 촉구했다.

    경준위도 여러 한계를 절감하고 있다. 맹형규 부위원장은 “정인봉 문제가 불거져서 당장 대처를 해야 했다”며 “(경준위 기한 이후 활동 등) 깊은 고민을 갖고 검증소위를 만든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한나라당은 10일 이후 경준위 활동은 그 때 가서 다시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수사능력이 없는 경준위가 당장 김유찬씨의 이 전 시장 관련 폭로부터도 과연 검증할 수 있겠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선이 적지 않다. 이사철 대변인은 이러한 문제제기에 “김씨가 이 전 시장으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주장만 하면 검증할 방법이 없다”며 “육하원칙에 따라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돈을 받았는지, 돈을 받고 어떤 위증을 했는지 증인심문교서 등을 입수해 제출해줬으면 한다”는 주장을 폈다.

    정인봉 변호사와 달리 한나라당 당원이 아닌 김씨가 자료를 제출할 지 여부도 문제지만, 김씨가 제출한 자료 역시 경준위의 요구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해 ‘검증 무가치’ 또는 ‘검증 불능’ 판정을 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이명박 전 시장측이 정인봉 변호사와 김유찬씨의 폭로전에 박근혜 전 대표측 ‘배후설’을 제기하며 당의 조사를 촉구한 것에 대해서도 이사철 대변인은 “진실 규명이 먼저다. 누구의 협조 요청을 받아서 (폭로)했다는 것은 나중에 해도 된다”고 말해 당장 조사할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결국 경준위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간에 박근혜 전 대표측으로부터는 이 전 시장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회피한다는 비난을, 이명박 전 시장측으로부터 박 전 대표측의 조직적인 음해 공작을 조사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당 일각에서는 별도의 검증기구 마련을 촉구하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한나라당 소속 김태호 경남도지사는 19일 저녁 당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국민참여형 검증기구’ 구성을 제안했다.

    김태호 지사는 “후보에 대한 철저한 검증은 필수적”이라며 “검증과정의 객관성과 후보의 경쟁력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검증기구의 공정성이 보장되는 당외 인사를 중심으로 한 제3의 검증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의 경선준비위원 중심으로 구성한 지금의 후보검증위에서 어떤 검증결과를 내놓아도 후보들이 모두 납득하는 결과를 내놓기 어려울 것”이라며 “국민이 신뢰하지 못하는 검증결과를 놓고 국민의 지지를 호소하기 어렵고 후보자가 납득할 수 없는 결과 역시 당의 분열만 가속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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