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굿바이 1.5°C!' 말하기 전에
    경제패러다임 바꿔라···기후붕괴와 경제
    [정의 경제] 생태경제학 창시자 허먼 데일리를 추모
        2022년 11월 14일 11: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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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1.5°C 가드레일을 부쉈는가?

    2018년 한국 송도에서 유엔 IPCC가 ‘1.5°C 특별보고서’를 발표한 이래 지구의 추가온도상승을 1.5°C 이내로 제한해야 한다는 것은 인류 전체의 공통목표가 되었다. 이를 위한 방법도 나와 있었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 연간 배출량을 절반 수준으로 떨어뜨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났지만 온실가스 배출은 떨어지는 것은 고사하고 계속 늘어나기만 했다. 올해에도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전망이다.

    그 결과 어떤 일이 생겼을까? 우리는 매년 신기록을 갈아치우는 홍수와 태풍, 가뭄, 폭염과 열돔 현상, 거대한 산불들을 목격하고 있다. 2015년부터 2022년까지 8년 동안이 관측 기록상 지구 평균기온이 가장 높았던 기간이라고 세계기상기구(WMO)는 보고했다.

    2022년만 해도 유럽과 미국에서 신기록을 갈아치운 폭염으로 스페인에서 500여명, 포르투갈에서 1000여명이 사망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커다란 파키스탄 국토를 1/3이나 물에 잠기게 했던 홍수는 1,500여명의 사망자와 3,300만여 명의 이재민을 발생시키면서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하는 지경까지 갔다. 한국 역시 집중호우로 서울 일부 지역이 완전 침수되는 대재난을 초래했는가 하면, 이례적으로 강력한 태풍이 포항제철소 전체를 덮쳐 용광로를 꺼트리고 2조원 이상의 매출 손실을 발생시켰다. 제철소 용광로가 가동된 이래 처음있는 일이다.

    급기야 기후위기를 둘러싼 지형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시작되었다. 지구생태계 한계 안에서 우리의 삶을 지키는 것이 어렵게 되었다는 경고가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유엔환경계획은 최근 ‘1.5°C로 가는 신뢰할 만한 경로를 찾기 어렵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일부 기후과학자들은 달라진 기후위기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새로운 개념을 쓰기 시작했다. 기후과학자 빌 맥과이어(Bill McGuire)는 그린랜드와 남극 서부 빙하가 녹은 속도 등을 감안할 때 1.5°C 가드레일은 이미 무너졌다고 경고하면서, 이제 지구온난화라는 어정쩡한 용어를 버리고 ‘지구가열(global heating)’이라고 써야 하며 ‘기후위기’가 아니라 ‘기후 붕괴(climate break down)’로 써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아예 이코노미스트지는 최근 11월 호에서 ‘굿바이 굿바이 1.5°C’라는 기사를 싣고 이제 우리가 한계를 벗어났음을 인정하자고 제안한다. 심지어 그 동안 기후운동에서 배척했던 탄소포집기술이나 지구공학같은 기법들도 모두 검토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슬쩍 떠보기도 한다. 도대체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을까? 왜 기후위기를 막을 목표와 방법까지 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손을 놓고 재앙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기후위기에 대처는 결국 경제의 문제다

    물론 가장 큰 책임은 기존의 화석연료에 의지해서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이고 있는 거대 기득권 기업들과 이들을 지원하는 정치권력 탓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화석연료와 자원의 무한 공급에 기반한 무한경제성장 논리를 뒷받침해온 기존의 경제학과 경제정책의 책임도 따져봐야 한다. 오죽하면 뉴욕타임스까지 나서서 기후위기 대처에 기존 경제학이 매우 무력했으며 탄소가격 설정으로 세월을 보내는 동안 기후위기가 더 악화되기만 했다고 비판했을까?(뉴욕타임즈 2022년 8월 25일자)

    하지만 기존 주류경제학이 철저히 외면해서 그렇지 그들과 다른 관점에서 기후위기와 생태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해법을 모색해온 경제학도 있었다. 1960년대 말부터 태동해서 꾸준히 영향력을 넓혀온 ‘생태경제학(ecological economics)’이 그 주인공이다. 생태경제학은 보수주의 주류경제학은 물론이고 기존의 진보경제학에서도 전혀 제기되지 않았던 질문을 던진다. “현재 인간의 경제시스템이 지구의 생태적 수용능력에 비추어 얼마나 적정한 규모인가?” 이 질문이 바로 언제까지 경제성장이 가능한가 하는 경제 ‘규모(scale)’에 대한 질문이며 생태경제학의 최상위 과제다.

    즉 생태경제학은 생물리학적으로 인간의 경제규모가 지구생태계의 수용능력을 넘어서고 있는지를 묻고, 넘어설 위험이 있거나 넘어섰다면 여기에 대한 대처가 경제정책의 제 1순위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지속가능한 경제규모가 정해져야 그 다음에 정의로운 분배, 그리고 효율적인 자원배분을 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정말 현재 인간의 경제규모가 지구생태계를 위협할만큼 팽창했는가? 지금 직면하고 있는 기후위기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다’고 대답한다. 기존 경제학이 끊임없이 기후위기를 저평가하거나 기술변화로 위기를 피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하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

    생태경제학 역사 그 자체라고 할 인물, 허먼 데일리

    1960년대 당시 명망 있는 경제학자 케네스 볼딩이나 게오르게스쿠-뢰겐 같은 이들이 유한한 지구 위에서 무한한 경제성장은 불가능하다면서 생태계경제학을 탄생시킬 기초적인 질문들을 던졌을 때, 이들과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 ‘생명과정으로서의 경제학’을 연구하기 시작한 젊은 경제학자가 바로 허먼 데일리(Herman Daly)다.

    그는 기후위기가 아직 본격적으로 대중의 시야에 들어오기도 전인 1970년대부터, 고정된 규모의 지구에 비해 경제규모가 너무 커지면 큰 경제를 위해 요구되는 물질-에너지 처리량이 자연 생태계가 재생시키는 역량을 초과해버리게 되는 ‘꽉찬 세상(full-world)’이 도래할 것이라고 예견하고 여기에 대비하는 경제이론을 발전시킨다.

    그 후 1988년 생태경제학회 창립과 학회지 발간을 주도해왔고, 기존 주류경제학의 결함을 끊임없이 문제제기하면서 지금까지 생태경제학의 성장론, 분배론, 금융론, 국제무역론에 이르까지 전 영역에 이르기까지 자신만의 독특한 이론체계를 구축해온 인물이 바로 생태경제학자 허먼 데일리다. 그가 지난 10월 28일 84세의 나이로 세상과 작별했다.

    그가 일찌기 1970년대에 골격을 잡은 생태경제학적 대안이 바로 ‘정상상태 경제(steady-state economy)’다. 생태경제학 교과서로 그가 쓴 책 『생태경제학』 2011년 두 번째 판에는 정상상태 경제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정상상태 경제의 주요 아이디어는, 오랫동안 좋은 삶을 누리기에 충분한 정도로 부(wealth)와 인구의 규모(stocks)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이 규모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물질적 처리량(throughput)은 높기보다는 낮아야 하고, 항상 생태시스템의 재생과 흡수용량 범위 안에 있어야 한다. 이 시스템은 따라서 지속가능하고 오랜기간 이어질 수 있다. 정상상태에서 진보의 경로는 더 커지는 것(to get bigger)이 아니라 좋아지는 것(to get better)이다. 이 개념은 고전경제학에 들어있었지만 신고전파경제학에 와서 대체로 폐기되었다”

    그가 19세기 경제학자 존 스튜어트 밀에게서 영감을 받아 정립한 정상상태 경제는 오른쪽으로는 지속가능발전론에서부터 왼쪽으로 탈성장론에 이르기까지, 성장의존형 경제를 비판한 거의 모든 비판담론과 대안담론에 영향을 미친 거대한 뿌리 역할을 했다.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도넛경제’를 포함해서 지금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생태경제 대안과 이론의 꽤 많은 부분도 그의 정상상태 경제가 기여한 것이다.

    허먼 데일리는 경제규모가 지구생태계의 한계를 초과해서 팽창하면 경제성장의 이익보다 생태적 손실 비용이 훨씬 더 커지는, 그의 고유한 표현에 따르면 ‘비경제적 성장(uneconomic growth)’ 국면에 들어가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손실 비용이 이익을 넘어가기 전에 성장은 멈춰야 했다. 그렇지 않은 무한성장은 허먼 데일리에게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기후위기가 한계를 넘어가는 지금이 바로 멈춰야 하는 시점인 것이다.

    기후위기 대처에 필요한 허먼 데일리의 아이디어

    이처럼 기후위기 시대에 가장 적실할 수도 있는 생태경제학과 그 이론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의 부고소식을 접하자, 허먼 데일리의 이론과 업적을 외면해왔던 서구 유력언론들도 뒤늦었지만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에 이어 가디언지까지 그의 부고 기사를 게제하고 그가 남긴 생태경제학 성과를 평가해주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의 이론이나 학문적 성과등은 고사하고 아예 부고기사 자체를 찾을 수 없다. 그러니 생태경제학적 기반 아래 기후위기 대처방안을 토론하고 정책화하는 것은 아예 기대하는 것이 어쩌면 무리일지 모른다. 심각하게 편향된 한국의 지적 풍토는 여기서도 다시 한 번 확인된다.

    그레타 툰베리는 우리가 기후위기 대처를 향한 행동에 제대로 나서지 못하는 이유가 기후위기라는 문제 그 자체보다 오히려 ‘해법’에 더 두려움을 느끼고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그렇다. 기후위기보다 기후위기를 일으킨 경제를 바꾸는 것, ‘탈-탄소 경제사회’라는 해법에 더 두려움을 느끼고 있을지 모른다. 도대체 현대문명이 유지되기위한 에너지의 80퍼센트 이상을 공급해주고 있는 화석연료 없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기 때문일지 모른다.

    바로 이 대목에서 화석연료 없이 살아가는 경제, 지구 생태계 안에서 살아가는 경제의 방향을 알려주는 생태경제학, 그리고 그 골격을 잡은 허먼 데일리의 사상과 이론이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다. 현재는 1996년에 그가 저술한 <성장을 넘어서> 한 권 정도만 겨우 번역되어 그의 아이디어를 접하는 것조차 쉽지 않지만, 앞으로는 그의 이론과 정책이 좀 더 많이 소개되기를 기대한다.

    * <정의로운 경제> 연재칼럼 링크

    필자소개
    전 정의정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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