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라진 어느 노인의 뒤를 쫓으며
    [책소개] 『황 노인 실종사건』 (최현숙/ 글항아리)
        2022년 11월 11일 11:0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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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과 노인, 홈리스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마주하고 기록하던 구술생애사 작가 최현숙이 첫 장편소설로 돌아왔다. 『황 노인 실종사건』은 수상한 구석이 많은 글이다. 소설의 주인공 김미경은 한국의 여성 노인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글로 써내는 구술생애사 작가다. 돌봄노동의 최전방에서 생활관리사로 일하고 있기도 하다.

    지금껏 최현숙의 글을 꾸준히 읽어온 독자라면 질문할 수밖에 없을 테다. 노인들을 마주하는 생활관리사이자 구술생애사 작가이며 이 소설의 주인공인 미경은 최현숙 작가 본인인가?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자전 소설로 읽혀야 하는가? 소설이 한국 사회에서 노인이 어떻게 살아내고 죽는지 묘사할 때면 이런 질문들은 더 확고해진다. 소설 속 인물들은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문학적 세계관을 넘어가며, 실제 현장의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그려낼 수 없는 핍진성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만일 미경을 작가 본인으로, 또 이 소설을 작가의 개인적 서사로 판단한 뒤 책을 읽는다면 다시금 당혹스러움을 느낄 테다. 소설의 중추가 되는 ‘사건’은 자전 소설이나 회고록만으로 읽히기에 지나치게 ‘장르’적이기 때문이다. 소설이 제목에서부터 주장하고 있듯이, 이는 한 노인의 실종에 관한 이야기다. 수상쩍을 정도로 작가와 닮은 점이 많지만, 결국은 노인의 뒤를 쫓고 생각을 가다듬는 이는 작가 ‘최현숙’이 아닌 이야기 속 인물 ‘김미경’이다. 물론 소설은 독자들이 그 질문을 거듭하게끔 만든다. 작가와 인물 사이 경계는 어떻게 나뉘는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가? 이런 믿음을 품고 소설의 결말을 쫓아가다 보면 결국은 하나의 결론에 다다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실과 거짓의 지분이 아니다. 소설의 핵심은 황 노인의 실종이 대체 어떤 ‘진실’을 가리키고 있는가다.

    “실종도 죽음도 아직 아니고, 부재가 적절하다.”
    황문자가 사라졌다. 액자에서 빼둔 영정사진 한 장을 남겨두고서.

    황 노인이 사라졌다. 어느 날 갑자기, 아무런 예고도 없이 벌어진 실종사건이다. 지금껏 생활관리사로서 그를 관리하고, 또 구술생애사 작가로서 취재하던 미경에게 이 일은 어떻게 든 파헤치고 밝혀내야 할 상황이 된다. 흔히 이러한 추적 문학의 궤가 그렇듯 미경 또한 초반부에는 얼마간 정통적인 탐정 역할을 한다. 그는 황 노인이 지나간 공간들을 뒤지고, 그의 말을 되새기며, 그의 주변인들을 만난다. 그러나 결국 진실을 알아낼 수 있는 곳은 다름 아닌 황 노인의 말, 미경이 지금껏 듣고 기록해온 말들 속에 있음을 깨닫는다. 다행히 미경에게는 아주 많은 황 노인의 ‘말’들이 있다. 그가 생활관리사이자 구술생애사로 꾸준히 기록해둔 생애사 말이다.

    황문자는 일견 다른 노인들과 큰 차이점이 없는 평범한 여성 노인이다. 그에게는 아들딸이 있고 죽은 남편이 있으며 가난과 고난의 역사가 있다. 황 노인은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책으로 써준다는 미경을 크게 환영하며 자기 생애사를 모두 털어놓는다. 물론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목적은 사뭇 다르다. 미경은 황 노인의 삶의 곡절을 경청함으로써 자신이 지금껏 벼려온 내면의 상처와 마주하려 한다. 황 노인의 개인사를 통해 한국전쟁이나 광주 대단지 항쟁, 한강 물난리 등 거시적인 역사의 내부를 더 들여다보고자 하는 욕심도 있다. 그러나 미경이 황문자의 이야기를 받아적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노인의 이야기가 그를 설레게 만들기 때문이다. 미경은 타인의 비극과 절망, 혹은 사회적 재앙 앞에서 공포나 불안 대신 호기심과 설렘에 먼저 몸부림치는 인간이다. 이 설렘은 미경을 사회운동의 장으로, 노인 복지 현장으로, 또 황 노인의 실종으로 데려온 장본이기도 하다.

    소설 곳곳에 등장하는 이 ‘설렘’이라는 표현은, 어떤 독자에게는 불쾌하게 다가올지 모른다. 미경도 이를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설렘이 관조 상태에 머물지 않게 하도록 현장에 제 몸을 내던진다. “욕망은 윤리보다 먼저 오는가. 우선 보고 싶다. (…) 나중에 언제 입장이 바뀌어 아수라장도 관찰도 자신이 당하게 되어 목격한 자의 빚을 고스란히 되갚게 되리라는 불길한 예감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최선은 ‘목격’이라는 냉혹하고 건조한 욕망이자 실천이다.” 황 노인의 실종에 설레는 자신을 곱씹으며 중얼거리는 미경의 이 증언은 소설 전체를 끌고 가는 태도를 분명하게 정립한다. 미경은 자신이나 자신의 설렘을 부정하지 않는다. 숨기지도 않는다. 다만 이 정체 모를 떨림, 요동치는 감정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알기 위해 직접 현장에 뛰어든다. 그 현장이 자신을 상처 입히거나 깎아내리더라도 멈추지 않는다. 소설의 추격 극은 이 독특한 ‘탐정’으로 인해 한결 낯선 결을 띠게 된다.

    “가난한 노인들은 세상의 부조리에 자신이 만든 부조리까지 보태 징그럽게 버티며 수레를 밀어가고 있다. 자잘한 희망마저 품지 않는 건 노인들도 미경도 불가능하다.”

    미경은 황 노인을 추적하기 위해 그의 말을 들여다보고자 결심한다. 이 결심은 미경이 여태껏 구술로 들어온 황 노인의 삶을 다시 관찰하고 되새김질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황 노인의 구술생애사는 여기서 복수의 역할로 작동한다. 미경이 이를 추적의 단서로 이용한다면, 소설은 황 노인의 구술을 자기의 정체성으로 끌어들인다.

    황 노인이 쏟아부은 말들은 통념 속 ‘노인’이 던지는 말처럼 뻔하다가도, 어느 순간 갑자기 낯설고 독특한 지점을 쏟아낸다. 전자와 후자 모두 황 노인이 미경에게 지극히 솔직한 방식으로 제 삶을 털어놓았기에 만들어질 수 있는 순간이다. 황 노인은 미경에게 자기 가난의 모양새가 어떠했는지를, 또 그것이 자신의 내부를 어떻게 만들어놓았는지를 이야기한다. 어느 순간에는 마구 웃음을 터뜨리며, 또 다른 순간에는 눈이 벌게진 채 울음을 쏟아낸다. 의지할 수 없던 남편, 자식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서 황문자가 마주했던 굴곡의 세월, 생존을 위해 관계와 애정에게서 등을 돌려야 했던 젊은 날들까지. 김미경은 그가 삶에 배반당한 독한 순간이나, 타인의 애정과 연민으로 구원받은 순간을 공평하게 듣고 받아적는다.

    소설이 다루는 이야기는 황 노인의 삶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미경이 황문자의 얘기를 듣거나 그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만난 노인들은 모두 다른 방식으로 고난을 겪어왔다. 그들은 녹음기를 든 미경 앞에서 자신의 삶이 어떤 생김새인지 빚어놓는다. 겉보기에 모두 비슷하던 가난은 당사자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며 구체적인 색을 띤다. 어떤 가난은 만질 수 있을 듯 선명해지기도 한다. 자식에게 어떻게든 보증금을 물려주기 위해 남은 삶의 혜택을 모두 거부하고 우울증에 걸린 노인, 왜 자식에게 쏟은 만큼 자신을 충분히 보살피지 못했는가 한탄하며 죽을 날을 기다리는 노인, 자식이든 돈이든 없어서 오히려 편안하다는 노인까지. 이들은 대개 가난하거나 병약하며 소외되어 있다.

    미경은 그들을 섣불리 동정하거나 판단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과 마주할 때 자기 안에서 불쑥 떠오르는 감정을 들여다본다. 왜 나는 이 사람이 가여운가, 어째서 불편한가. 반사 작용처럼 발생하는 감정과 생각을 들여다보고 그 원인을 추적하려 한다. 미경은 타인의 비극에 설레는 자신을 관찰하며, 타인의 가난에 고개를 돌리고 싶은 자신 역시도 조사한다. 그는 일상생활에서도 꾸준히 의심을 번복하고 조사를 거듭하는 탐정이다.

    “작정하고 싸울 때 말고는, 미경은 누리고 사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다. 가난한 노인들과의 관계 맺기에서 미경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순간순간 떠오르는 께름칙한 판단과 느낌을 눌러 의심하며 두고두고 되씹는 것이다.”

    한편 노인들이 겪어내는 삶의 우여곡절은 필연적으로 한국 사회의 불합리와 연결되어 있다. 나날이 고령 인구가 늘어나는 한국 사회에서, 노인들은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 불편함을 주는 존재로 취급받는다. 그들은 충분한 경제활동을 꾸리지 못하며, 꾸준히 도움과 보살핌을 필요로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인들은 번거로운 잉여다. 당사자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가난한 노인들은 죽음을 염불처럼 외며 살아가고, 동시에 함부로 끊을 수 없는 생명을 어떻게 유지할까 전전긍긍한다. 작중 미경이 이야기하듯 “노인이 안 죽어서 문제가 크다는 것이고, 그러니 죽는 것은 필요한데 죽는 방식은 산 사람 생각해서 보기 좋게 죽으라는” 세상이 되어가는 것이다.

    미경은 청결하거나 쾌적한 죽음의 ‘모양새’를 위해 노인들의 존재를 지우거나 왜곡시키는 세계를 꾸준히 노려본다. 미경의 응시는 그 자신이 겪어온 삶의 경험들로 인해 더 강한 힘을 띤다. 노인복지 현장에서 일하며 겪어온 갖가지 경험, 그리고 이에 더해지는 노인들의 생활 기록들 말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황 노인 실종사건』은 장르문학의 특성을 띤 르포문학으로 읽을 수 있다. 작중에 등장하며 소설 전체를 이끄는 황 노인의 실종이 완연한 픽션인지 혹은 실제 기록을 경유한 픽션인지 분명히 알 길은 없다. 확실한 점은 소설에서 그려내는 노인들의 삶이 오늘날 한국에서 노인들이 겪는 삶과 무척 가깝다는 것이다. 사실상 소설이 그려내는 노인복지 현장은 한국의 돌봄노동 환경을 완연히 드러내고 있다. 그 안에서 언급하는 제도나 업무 상황 역시 마찬가지다. 여기에는 오랜 기간 요양보호사와 생활관리사로 일해온 작가 ‘최현숙’의 경험이 여실히 들어가 있다. 동시에 픽션 속 인물 ‘김미경’이 황 노인의 뒤를 쫓으며 되새김질하는 결심들은 한국의 노인 현장이 장차 어떤 모습으로 변모해가야 하는지 날카롭게 질문한다.

    오은교 문학평론가는 이 소설이 “독거노인 생활‘관리’사의 입장에서 도무지 ‘관리’될 수 없는 생명의 근기와 취약성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노라고 묘사했다. 과연 소설 속 인물들은 제어할 수 없는 생명력으로 움찔거리고 있다. 이러한 생명력은 소설 곳곳에 다양한 형태로 자리잡고 있다. 때로는 삶의 곳곳을 파헤치고 들여다보고자 하는 미경의 돌진으로 드러나며, 간혹 “아무리 노력해도 잘 되는 일이 없다”는 말을 듣더라도 바득바득 생계를 꾸려왔더라는 황 노인의 말로써 솟아나기도 한다. 미경이 노인들에 대해 품는 감정과 마찬가지로, 생명에 관한 마음 역시 여러 갈래로 퍼져나갈 수밖에 없다. 생명은 종종 추잡하고 혐오스러우며, 어느 순간에는 설레고 또 경이롭다. 최현숙의 구술생애사가 그 생명력의 목소리를 직접 경청하고 담아냈다면, 이번 소설은 그 생명력의 맥락을 하나씩 살피고 치밀하게 적어 내려간다.

    ‘나는 왜 가난과 고난을, 고통을 듣고 관찰하고 쓰는가? 아니, 그전에 왜 쓰고 싶은가?’
    치열한 질문과 대답, 그 사이에서 자라나는 이해의 가능성

    『황 노인 실종사건』은 묘한 소설이다. 이 소설은 작가 자신과 꼭 빼닮은 주인공을 그려내지만, 그렇다고 하여 자전적 회고록의 길로는 빠지지 않는다. 대신에 한국 사회 곳곳에서 통상 벌어지는 ‘노인 실종’ 사건을 장르적 형태로 끌어들인다. 물론 노인을 뒤쫓는 과정 역시 여타의 추리 문학과 같지 않다. 소설의 주인공이자 탐정인 미경은 황문자의 실종을 그 자체로 낱낱이 분석하고 추적하는 대신에 그의 말 안으로 몸을 담그는 방법을 택한다. 그로써 미경은 자신이 왜 그간 황 노인을 비롯한 이들의 말을 받아적으려 했는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그에게는 이토록 치열한 고민이야말로 자신이 작가로서 지킬 수 있는 최선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미경이 받아적은 황문자의 말에는 한국 근현대사와 뒤엉킨 자신의 삶과, 그와 비슷한 과거를 거쳐온 갖은 노인들의 고군분투가 스며들어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노인들은 미경 혹은 황 노인을 거쳐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들의 언어로 완성된 이야기는 현대 한국에서 소외된 자들이 어떻게 삶을 꾸리는지 알리면서도, 『황 노인 실종사건』이라는 허구를 날카롭게 가다듬는다. 마침내 바짝 날이 선 이 소설은 독자들에게 재차 질문한다. 우리는 이 이야기에 동참하면서 어디로 갈 수 있으며 또 어떤 진실에 다다를 수 있는가? 소설은 길이랄 것도 입구랄 것도 없는 숲의 한 귀퉁이에서 이 질문을 던진다. 질문 안쪽으로 더 들어가지 않는다면 누구도 만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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