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교수, 당신보다 내가 더 많이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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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2월 18일 08:5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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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글을 썼다. 많은 사람들은 이 글을 보고 짜증스러운 반응을 보였겠지만, 나는 그래도 대통령의 최측근이 아니라면 접하기 어려운 귀한 자료를 보는 것이라서 상당히 좋았다.

쉬운 기회는 아니다. 대통령이 직접 그렇게 정성스럽게 쓴 글을 읽을 기회가 자주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다음 대통령이 와도 한참 임기 중에 있는 대통령이 이렇게 진솔하게 쓴 글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올 것 같지는 않다.

아주 귀한 글, 귀하게 대접해야

우리나라는 대통령 중심제이기 때문에 더더군다나 대통령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해진다. 자료로 치면 정말 귀한 자료다. 인터넷에 올라간 글이라서 사람들은 그냥 아무 때나 있는 수많은 글 중에 하나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정말 처음 생긴 일이고 역사적으로 대통령이 쓴 이 글은 귀한 자료로 남을 것이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주위 참모들의 언어가 아닌 자신의 언어로 쓴 정말 귀한 자료이다. 생각이 같거나 다르거나 사료로서의 가치가 대단히 높은 글이다. 보기 싫다고 덮으면 분석가로서의 자세가 아니다. 예전에 유신전집을 아주 꼼꼼하게 읽은 적이 있다. 불어로 된 김일성 선집도 아주 꼼꼼하게 읽었었고, 김영삼이 했던 수많은 연설집들도 꼼꼼하게 읽은 적이 있다.

사료로서 노무현 대통령의 이 번 글은 아주 귀한 글이다. 귀한만큼 귀한 대접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이 글을 가만히 보면 어린 시절의 삶은 몰라도 최소한 87년부터 노무현 대통령이 어떻게 살았는지 그리고 각 시기에 어떤 판단을 했었는지를 조금은 알게 된다. 전민련에 많은 것을 기대했었다는 말도 잘 알려지지 않은 과거의 생각에 관한 것이다. 아주 귀한 자료다.

정책적으로도 이 글의 가치는 높다. 각 사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걸 전부 모아서 어떻게 하나의 일관성을 가지게 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진정성’이라는 단어가 아니라고 한 것은 더더군다나 가치가 높은 생각이다. 결과와 성과에 대해서 대통령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이 몇 개의 문장이 알려준다.

   
 

정말 글 잘 쓰는 대통령

보통 이런 글들은 새로운 정보가 없는 경우가 별로 없는데, 이 글은 새로운 정보도 많이 있다.

대통령은 글을 정말 잘 쓴다. 그건 인정해주어야 할 것 같다. 이만큼 글 쓰는게 쉬운 일은 아니다. 여러 가지 압박과 자신도 대통령으로서의 압박감이 많았을텐데도 이 정도의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나는 이렇게 매끄럽고 강한 신념을 담아서 글을 쓰지는 못한다. 그보다는 더 많은 것을 살피고, 나중에 도망갈 길을 생각하는데, 대통령은 그러지 않았다. 삼국지의 한 장면을 연상하자면 조자룡이 유비의 어린 아이를 팔에 앉고 파죽지세로 대군을 뚫고 나가는 장면과 비슷하다. 글은 그렇게 길지 않지만, 그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는 잘 쓴 글이다.

최소한 종속이론을 믿던 남미의 지도자들에 비해서 대통령은 자신이 더 ‘진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 글이 최장집과 조희연 등을 겨냥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글은 훨씬 쉽게 읽힌다. ‘책임감 있는 진보’로 자신을 규정하는 것 같고, 중남미 국가의 과거사와 우리나라의 진보 논쟁사라는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글은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그러한 글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자신이 살아온 인생과 그 시대마다의 판단들을 같이 엮고 있다. 글로 치면 아주 잘 쓴 글이다.

생태주의자들이 반성해야 할 이유

이 글에서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큰 점은 생태주의자들이 더 반성해야 한다는 점이다. 새만금이나 골프장과 같이 진행 중인 사건과 같은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무의식 속에서도 아무런 존재감이 없다.

자신이 아팠던 사실에 대해서 하나하나 "그거 아니다"라고 반박하고 있는 이 글에서 생태적 질문은 없다. 이건 그의 잘못이 아니라 그만큼 생태주의자들의 말이나 주장이 현재 노무현의 생각에 전혀 존재감이 없다는 것인데, 이건 환경진영의 문제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농업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몇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다. 생태적인 질문이 존재감이 없던 것과 비교한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산업주의적 신념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포디즘 세대라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

농업 얘기는 피하고 싶은 대통령

이제 농경사회에서 완전히 산업사회로 이행하는 것이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라는 생각을 강하게 하는 중이라서, 존재감은 있어도 농업에 대한 얘기는 하고 싶지 않거나 지우고 싶은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 이후 가장 많은 사람이 죽은 부문이 바로 농업인데, 지나가는 말로라도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는 말 한 마디 정도 예의상 할 수 있지만, 이걸 안 한다.

모종의 신념과 비슷한데, 농업에 대한 일각의 주장은 중남미의 종속이론과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종속이론에서는 인디오들과 농업에 대한 언급이 상당히 강하고, 커피 산업의 메카니즘이 주로 분석대상이었다.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결국 멕시코에서는 무장항쟁 세력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종속이론은 틀렸다고 생각하면서 그와 연관된 연장선으로 현대 경제에서 농업은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진짜로 세계화 국면의 탈포드주의에 대한 개념이 아직 대통령의 머리 속에는 없는 것 같다. 만약 있었다면 과학기술이나 혹은 관련된 단어들이 등장할 것이고, 역시 예의상으로라도 황우석 사태에 대한 약간의 언급 정도는 자신의 재임기간에 생겨난 가장 큰 사건이니까 굵직굵직한 얘기 중의 하나로 조금은 언급이 있었을 법한데, 이것도 언급이 없다.

이런 것들이 대통령의 글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정보이다.

난 책임지는 진보다, 좌파는 아니고

나머지 얘기들은 그냥 하는 말에 가깝다. 노무현 대통령의 틀에 집어넣으면 YS야말로 훌륭한 대통령이다. 하나회를 없앴고, 금융실명제를 실시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얘기한 자신의 성과는 대부분의 사안이 논쟁거리이기는 한데, YS가 했던 일들은 이견의 여지가 없이 정말 잘 한 일들이다. 그렇지 않나? 그러나 IMF 경제위기를 만들었기 때문에 그 모든 것들이 묻혀버리게 된데에 역사의 안타까움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글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정보값은 ‘좌파’는 아니라는 말이다. 확실히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 대신 ‘진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상당한 기간 동안 사람들이 ‘진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을 것 같다. 나는 원래도 진보라는 말을 잘 안 쓰지만, 이 글이 미칠 가장 큰 영향력은…

"너 진보야?" "아니, 나 진보 아냐…"

이런 효과는 확실하게 발생시킬 것 같다. 진보와 보수라는 틀은 좀 퇴행적이다. 그래서 꼴통보수라는 용어를 나는 잘 안 쓰는데, 그 대신에 진보라는 말도 잘 안쓴다. 대통령은 이런 프레임을 좋아하는 것 같다. 난 진보이지, 좌파는 아니다… 이 말은 책임감 없는 좌파가 아니라 자신은 입체적이고 종합적으로 세상을 나아지게 만드는 진보이다… 이런 정도의 얘기가 될 것 같다.

노대통령 글의 가장 긍정적 효과

이에 대해서 사회가 반응할 수 있는 것은 딱 하나다. 진보라는 말을 쓰지 않는 방식으로 대응 전략이 생겨날 것이고, 이미 그 본래의 의미값을 잃어버린 진보라는 단어가 역사적으로 사장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진보라는 말이 좋은 단어이기는 하지만, 진보라는 개념을 가지고 따져본 결과가 이런 노무현 정부의 정책이 된 셈인데, 생태진영과 농민들 그리고 한미 FTA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진보라는 개념을 사용할 수가 없게 된 셈이다.

이건 좋은 일이다. 소위 명망가로 불리는 사람들이 진보라고 말하면, 보기 좋게 한 방 먹여줄 수 있게 되었다. 이건 정말 좋은 일이고, 대통령이 글이 가지고 있는 가장 긍정적 효과이다.

경제학자로서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대통령의 글은 정신분석학에서는 나중에라도 좋은 텍스트가 될 것이다. 후기에 프로이드가 분석했던 사람들은 다빈치나 모세와 같이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이었는데, 10년쯤 지나 모든 것이 명확해진 이후에 누군가 분석을 할 때 이 글은 좋은 분석자료가 될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신경증 분류로는 파라노이아 계열의 신경증이라고 분석할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파라노이아와 메갈라매니아를 종종 착각하는데, 내 지식으로는 이 경우는 파라노이아에 가깝다. 나르시시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맞지 않는데, 나르시시즘은 신경증의 종류가 아니고 에너지의 종류를 얘기할 때 사용되는 용어이다.

노대통령의 글과 정신분석학

나르시시즘을 치료하지는 않는다. 누구에게나 있다. 다만 이런 에너지가 밖으로 나갈 것인가 안으로 나갈 것인가 아니면 사물에 붙을 것인가 집착현상을 보일 것인가에 따라서 신경증을 다르게 분류하게 될 뿐이다. 이론적으로는 지나친 소명의식이 파라노이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파라노이아가 소명의식을 만들어내게 된다고 교과서에는 기술되어 있다. 내 분석 영역은 아니지만, 누군가에는 좋은 분석대상이 될 것이다.

어쨌든 여러모로 좋은 텍스트이고, 두고두고 분석할 거리가 많은 글이다. 우리나라 학문 특히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발전에는 중요한 계기 하나가 된 셈이다.

이 글에 대해서 대통령이 그렇게 한가한가, 아니면 너무 생각이 짧다, 아니면 지나친 일반화와 자가당착이라고 반응하는 것은 예의도 아니고, 좋은 방식도 아닐 것 같다. 87년 체계의 약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지금 좌파들이 무엇에 대해서 제대로 생각하고 있지 못하는 지를 잘 보여주는 약간 다른 방식이 반성문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더 많은 생태주의, 더 많은 농업에 대한 고려 그리고 과학기술에 대한 접근방식 같은 것들이 필요하다는 것이 첫 번째 느낌이다. 두번째 종류의 교훈들은 더 시간을 가지고 분석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나저나 최장집 교수가 쎄기는 쎄다. 이렇게 솔직한 글을 유도해내다니… 그저 그 영향력에 입을 다물지 못하도록 놀랄 뿐이다.

길었던 글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최장집, 너보다는 내가 많이 알아"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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