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끝없는 한반도 선제타격 치킨게임
    [국방칼럼] '추크츠방'의 늪에서 빠져 나갈 길은?
        2022년 11월 09일 09:3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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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관계가 상당히 위험한 상황에 빠져들고 있다. 북한은 지난 11월 2일 하루 동안에만 적어도 23발 이상(한국 합참 기준 25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과 지대공 미사일을 동해상과 서해상을 향해 발사했다. 하루 종일 진행된 북한의 무력시위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연혁을 살펴보아도 대단히 이례적인 행동이다.

    특히 원산 일대에서 발사된 SRBM 3발 중 한 발이 동해 NLL 이남 남측 국제수역(공해)에 떨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전무후무한 일로써 한반도 정세가 매우 엄중한 상황임을 말해준다 게다가 미사일이 발사된 북한의 원산과 한국의 을릉도를 일직선으로 잇는다면 가상의 ‘원산-을릉도 선’은 미사일이 낙하한 수역을 통과하게 된다. 똑바로 날아가는 탄도미사일의 특성에 주목한다면 이번 사건의 파급력은 그리 간단치 않다.

    데일리엔케이는 북한이 10월 31일 최전방 지역 군부대에 전시 작전태세 바로 아래 단계인 ‘준전시 작전태세’를 선포하였고 11월 3일 현재 이 같은 작전태세를 유지한 것으로 보도했다. 이후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조선인민군 총참모부가 한미연합공중훈련인 ‘비질런트 스톰’을 ‘반공화국 전쟁연습’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대응작전의 일환으로 11월 2~5일까지 다량의 미사일을 발사한 것으로 7일 보도함으로써 북한의 의도가 확인되었다.

    『북한이 ‘비질런트 스톰’ 대응작전에서 발사한 미사일들이다. 다른 사진에는 북한군이 구형 스커드 미사일까지 동원하여 발사한 장면이 있는데, 현 대치국면에 대해 북한도 상당한 압박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엔케이뉴스)』

    북한이 2022년 들어 지금까지 발사한 탄도 미사일 수량은 60기를 넘어섰다. 이는 북한이 2019년에 발사한 미사일 총 수량인 27기의 두 배를 훨씬 뛰어넘는 엄청난 규모이다.

    올해 들어 북한의 반복되는 강경 대응의 배경에는 다음 세 가지 사실들을 들 수 있다.

    첫째, 한반도에서 강대강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강대강’은 ‘힘에는 힘으로 맞선다’는 뜻으로 북한의 ‘자위적 국방력‘ 건설의 근간이자 필수원칙이다. 미국과의 핵협상이 최종적으로 실패하자 북한은 2019년 12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개최하여 미국의 이른바 ‘대조선 적대시 정책’에 맞서 자력갱생과 국방력 강화에 전력하는 ‘정면돌파전’을 채택하고 국가전략의 대대적인 방향전환을 시작했다.

    2022년 1월의 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가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과 ‘군사적 위협’을 재차 비판하며 ‘평창올림픽 임시평화국면’에서 시행한 ‘신뢰구축조치’를 전면 재고하는 중대 결정을 내렸다. 곧이어 북한은 중장거리 탄도미사일(IRBM)인 ‘화성12형’의 발사를 재개했고, 3월에는 새로운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7형’의 시험발사를 단행하며 ‘임시평화국면’의 토대를 무너뜨렸다. 북한은 6월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도 강대강, 정면승부의 투쟁원칙을 재확인한 바 있다.

    한국과 미국 역시 북한의 공세에 역공세로 맞서면서 상황을 악화시켰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선제타격’을 말함으로써 강경보수의 지지를 얻는 대신 북한의 불신을 초래했고, 집권 후 내놓은 ‘담대한 구상’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선행조건으로 요구한다는 점에서 이는 실현불가능한 정책이다. 윤석열 정권이 ‘동맹외교’와 ‘가치외교’를 강조할수록 북한은 윤석열 정권을 체제에 대한 위협으로 생각할 것이기 때문에 대통령 임기가 끝날때까지 남북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미국 민주당 주류인 중도파가 가진 한계는 –행정부 장악에 성공하고도 여러 정책에서 전임 공화당 행정부가 채택한 지침에서 벗어나길 주저하거나 전환에 소극적인– 북미관계에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 비핵화의 전통적인 원칙인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폐기)’로는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다른 대안을 내놓지 못함으로써(그 이유는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역설적으로 또는 관성적으로 ‘CVID’를 고수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둘째, 한미군사동맹에 대한 북한의 강력한 무력 경고이다. 북한에 강경한 대응 명분을 제공하고 있는 것은 한미연합군사훈련이다. 이 갈등은 한반도의 오래된 관행이며 익숙한 패턴이다. 한미 양국은 2022년 4월 ‘연합지휘소훈련’(CCPT)을 시작으로 8월에는 ‘을지 프리덤 실드(UFS) 연습’의 일환으로 사단급 야외기동훈련인 ‘연합∙합동 화력운용연습(CJFCX)’을 실시했다. 9월과 10월에는 두 차례에 걸쳐 미 제7함대 소속 항공모함인 ‘로널드 레이건호’를 중심으로 한 항모타격단이 동해상에 전개되어 9월에는 한미연합해상훈련과 한미일대잠수함훈련에(LAⅢ급 핵잠수함 아나폴리스호 참가), 10월에는 한미일연합해상훈련에 참가하였다. 윤석열 정권의 한미연합군사훈련 강화에 맞서 북한은 ‘북침연습’이라며 강한 적의를 표출해왔다.

    10월 31일에 시작된 한미연합공중훈련인 ‘비질런트 스톰’은 2017년 12월 이후 5년만에 재개된 훈련으로써 한국 공군의 F-35A와 미 해병대의 F-35B(국내기지 최초 착륙) 등 양국 군용기 240여 대가 참여했다. 이처럼 ‘비질런트 스톰’은 합참이 선전하는 것처럼 통상적인 방어훈련이 아니다. 북한은 이 훈련에서 한미 군용기들의 총출격 횟수(Sortie)가 ‘사상 최고’라고 비난한 후 예년의 연간 미사일 발사 물량을 단 하룻만에 소진했는데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박정천은 조선노동당 비서이자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서 북한군 서열 1위이다. 11월 3일 박정천은 훈련 연장이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실수”라는 담화를 발표했다.』

    셋째, 실질적인 작전을 위한 미사일 발사 비중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북한은 생존을 위해 미사일 생태계의 지속적인 발전이 필요하다. 먼저 무기체계 획득에는 지속적인 기술 개발과 시험이 필요하다. 예컨대 38노스에 따르면 북한은 3일 한 단계 진일보한 ‘화성17형(추정)’ 시험발사 이전까지 올 한 해에 적어도 6차례의 ICBM 관련 시험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이 다탄두형 ICBM을 획득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는 뜻이다.

    특정 미사일의 시험에 성공하면 양산된 미사일의 정상 작동 여부와 개선점을 찾는 노력이 진행될 것이며, 그 과정에서 신형 미사일의 작전교리도 완성된다. 북한의 전략군이 지속적인 운용 능력을 확보하기 위한 차원에서도 끊임없는 미사일 발사는 반드시 필요하다. 이 과정을 거쳐 최종 배치된 미사일들은 한미연합군의 움직임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작전에 투입된다. 특히 2022년 들어 북한의 집중적인 SRBM(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와 같이 시험보다는 운용과 대응 측면의 미사일 발사 비중이 높아진 것을 볼 수 있는데, 북한의 의도는 한미연합군 전력을 억제할 수 있는 직접적인 능력을 시연하고 경험을 쌓는 것으로써 이는 한반도 긴장 고조의 기본적인 동인이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에서 북한의 무력시위는 결코 일회성이 아니며, 탄도미사일 발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특히 남북한이 10월 24일 새벽 서해 해상에서 경고사격을 주고받은 것은 매우 우려스럽다. 남측과 북측은 약 두 시간 가량의 시차를 두고 각각의 북방한계선과 해상접경선을 침범한 북한 상선과 한국 군함에 대해 경고사격을 실시했다고 발표했다. 이처럼 지금의 남북관계는 제2의 천안함 사건이나 제2의 연평도 포격사건과 같은 무력충돌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가 없 다.

    2022년을 좀더 세분화해 볼 때 북한전문가인 가브리엘라 버널(미국 퀸시연구소 기고)은 현재 진행중인 위험확대국면의 첫 단초를 9월 23일 미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의 부산 해군작전사령부기지 입항에서 찾고 있다. 이때 합참은 25일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을 처음에는 ‘이동식 발사대(TEL)’에 기반한 SRBM인 KN-23으로 추정했으나, 10월 10일 북한은 발사된 미사일을 ‘저수지 수중 발사장’에서 발사된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이라고 주장하며 관련 영상을 공개했다. 국외전문가들은 그 미사일이 SLBM이 아니라 수중에서 발사된 SRBM 개량형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한국군은 미사일 발사 당일에 원점을 실시간으로 정확하게 탐지하지 못한 것인데, 이는 북한이 우주 기반 미사일 추적 시스템 없이 지상 및 해상에 기반한 미사일 탐지에만 의존하고 있는 한국군 미사일방어체제의 취약점을 파고든 것이다. 작년 9월과 올해 1월 북한은 ‘철도기동 미사일연대’가 열차에서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장면도 공개한 바 있다. 이처럼 저수지 수중 기반 미사일과 열차발사형 미사일체계와 같이 북한이 발사 플랫폼을 다양화하는 것은 발사 징후 포착의 난이도를 높힘으로써 한국의 신속한 대응을 저지하려는 목적이다.

    10월 4일에는 북한이 신형 IRBM을 발사하면서 5년여만에 북한 미사일이 일본열도를 통과하여 바다에 낙하했다. 이 테스트는 시연된 범위를 줄이기 위한 ‘고각(Loft)’방식이 아닌 정상궤적에 기반한 발사였다는 점에서 관련국들이 받은 충격이 컸다. 이에 미국은 ‘로널드 레이건호’를 중심으로 한 항모타격단을 재차 동해에 전개하는 강수를 두게 된다. 한반도에서 미국 주도의 합동군사훈련에 대한 북한의 대응이나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한 한∙미 대응은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일이라서 굳이 새삼스럽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이 상황들이 극심한 긴장고조의 디딤돌이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사실이 얽혀있어서이다.

    『11월 3일 일본은 일부 지역에 공습경보를 울리고, 북한이 발사한 ICBM(추정)이 일본 상공을 통과하여 태평양에 떨어졌다고 발표하였지만, 이는 미사일 추적 실패에 따른 잘못된 정보였다. 일본 입장에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이 절실했던 이유이다(출처-엔에이치케이)』

    첫째, 미군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이다. 전략자산은 핵추진 항공모함, 전략핵잠수함, 전략핵폭격기를 말한다. 지난 5월 한미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안정에 반하는 행위에 직면하여, 필요 시 미군의 전략자산을 시의적절하고 조율된 방식으로 전개하는 데 대한 미국의 공약”을 양국 정상이 재확인하였다. 이 합의에 따라 한반도와 그 주변에 대한 미군 전략자산의 전개 빈도 및 강도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공약은 11월 3일(미국 현지시간) 제54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 공동성명에서도 “적시적이고 조율된 방식”이라는 표현으로 재확인되었는데 한국 국방부는 미군 전략자산의 ‘상시배치’를 원하고 있다.

    둘째, 북한이 핵보유국임을 대내외에 재차 과시하였다. 북한은 2012년 4월 헌법 개정을 통해 서문에 핵보유국임을 명기했고, 2013년 4월에는 ‘자위적 핵보유국의 지위를 공고히 할 데 대한 법령’을 공포했다. 이어 2017년 11월 ‘화성15형’ ICBM 발사가 성공하자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였다. 지난 9월 8일 최고인민회의에서는 2013년 4월 법령을 대체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력 정책에 대하여’라는 새로운 법을 채택함으로써 핵보유와 관련한 모든 법적 근거를 완성하였다. 같은 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시정연설은 ① 핵보유국의 지위는 돌이킬 없다, ② 핵정책이 바뀌기 위해서는 세상이 변해야 하고 한반도의 정치∙군사적 환경이 변해야 한다, ③ 핵포기, 비핵화는 없다, ④ 핵무력은 계속해서 강화해 나갈 것이다 등으로 요약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력 정책에 대하여’라는 법령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① 제3조 3항의 국가핵무력 지휘통제체제가 위험에 처하는 경우 핵타격이 즉시 단행된다는 조항과 ② 제6조 1, 2항의 북한(또는 국가지도부)에 대한 핵무기, 비핵공격 또는 대량살상무기공격이 감행되거나 임박하였다고 판단되는 경우 핵무기를 사용할 있다는 조항이다.

    기존 법령의 추상적인 내용을 구체화한 새 법은 한∙미의 참수작전에 의해 북한 최고지도부가 위험에 처할 경우에 핵무기를 사용할 것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또한 새 법령에는 이전에 없던 선제타격을 수용하는 문구가 들어감으로써 이제 한국은 남북 간의 우발적인 충돌을 공격의 징후로 해석하여 재래식 전력이 열세인 북한이 선제핵공격을 시도할 가능성을 고려치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지금 북한은 선제적인 핵사용을 암묵적으로 금지하는 국제사회 규범인 ‘핵금기(Nuclear Taboo)’를 훼손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 조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핵금기’에 대한 신념에 조금씩 금이 가고 있는 우울한 국제 현실을 반영하며, 미국의 전통적인 핵사용 고려 원칙인 ‘극단적 상황(extreme circumstances)’이라는 모호한 개념에 대한 북한 나름의 대응으로 볼 수도 있다.

    『북한 신∙구 법령의 핵무기 사용조건을 비교한 것이다. 임박하였다고 판단되는 경우는 사실상 선제적 예방공격을 말하는 것이다. 북한 역시 선제타격을 상정하고 있다(엔케이뉴스)』

    김정은 위원장은 지구상에 핵무기가 존재하고 제국주의가 남아있는 한 핵무력 강화를 끝낼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 같은 발언은 북한의 핵무장 강화가 침략과 전쟁을 억제하고 대미 협상력을 강화하기 위한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다. 예컨대 북한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 등 관영매체들이 10월 10일 조선노동당 창건 77주년을 맞이하여 9월 25일부터 10월 9일까지 실시한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한 대대적인 보도는 우리가 경각심을 가질만한 내용들로 가득 차 있는데, 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현지 지도와 당 중앙군사위원들의 참석 ② 모든 미사일 발사는 전술핵운용부대에서 실시 ③ 9월 25일 전술핵탄두 탑재를 모의한(시뮬레이션) 탄도미사일발사훈련을 저수지 수중 발사장에서 진행 ④ 9월 28일 한국 비행장들을 무력화시킬 목적으로 전술핵탄두 탑재 모의 탄도미사일발사훈련을 진행한 사실 등이 확인된다.

    결국 전략적 억제를 담당하는 ICBM과는 별개로 한국을 겨냥한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과 전술핵무기의 실전사용능력에 집중하고자 하는 현 북한 군사전략 목표는 우리에게는 실질적인 위협이 된다. 따라서 북한핵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억제하고 평화와 통일에 기여할 수 있다는 급진적 민족주의자들의 주장이 얼마나 현실을 왜곡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기본적으로 핵을 보유한 국가 간에는 직접적인 충돌은 자제되는 반면, 국지적 분쟁은 늘어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핵을 보유한 국가는 높은 전략적 안정성을 갖게 되므로 비핵국가에 대한 재래식 군사행동의 공간이 그만큼 넓어지게 되는 강점을 갖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그 예이고,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같은 현상을 일컬어 ‘안정-불안정의 역설(stability-instability paradox)’이라고 한다.

    『9월25일부터 10월9일까지 북한이 발사한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들이다. 오픈 뉴클리어 네트워크는 이 기간 북한이 선제타격 가능성에 대응해 핵과 재래식 무기로 한국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함으로써 전쟁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모의훈련을 했다고 분석했다.』

    북한의 강경한 행보는 작금의 국제환경과 강대국 경쟁이 북한에게 고립을 탈피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는 북한 나름의 판단 때문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9월 8일 시정연설에 따르면 북한은 현 국제정세를 ① 한반도를 둘러싼 세계구도가 명백해지고 있고, ② 미국이 주창하는 일극세계에서 다극세계로의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현재 유엔 상임이사국들은 완연하게 분열되어 있기 때문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미국의 의도가 관철되는 것은 불가능하며 국제사회가 북한의 행동을 억제할 방법은 아무 것도 없다.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의 정책을 지지하고, 중∙러는 북한의 행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밀월관계가 이어지고 있어 북한이 7차 핵실험을 하더라도 중∙러는 방관할 가능성이 크다.

    한반도가 미중경쟁의 최전선이라는 점도 한 몫 한다. 지금의 한반도 상황은 지난 8월의 대만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예컨대 싱가포르에 입항중이던 미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를 중심으로 한 항모타격단이 8월 초 낸시 펠로시 미 하원 의장의 대만 방문에 대한 안전 확보를 명목으로 남중국해를 거쳐 대만 오른쪽 바로 아래에 위치한 필리핀해까지 진입하여 본격적인 작전에 들어가자, 이에 반발한 중국이 대규모 무력시위를 전개하면서 대만 위기의 광풍이 거세게 몰아쳤던 순간을 기억해 보자. 미중경쟁의 회오리바람이 동아시아의 대만해협과 한반도를 오가며 극심한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한미가 ‘비질런트 스톰’ 합동공중훈련을 시작하자 북한은 ‘반공화국 전쟁연습’ 대응작전으로 응수했고, 한미는 ‘비질런트 스톰’을 5일까지 하루 연장하고 재래식 전략폭격기인 ‘B-1B’를 참가시킨데 이어, 한국군은 7~10일까지 모의훈련인 ‘태극연습’을 시행하고 있다. 현재 북한 핵∙미사일과 한미군사동맹이 서로 충돌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극단적인 군비경쟁은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남북한을 위기의 소용돌이로 몰아가고 있다. 그러나 외교적 전망은 매우 어둡다. 이미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달 10일 “우리는 적들과 대화할 내용도 없고 또 그럴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북한의 핵무력은 계속해서 성숙되고, 발전하고, 고도화되고, 확장되고 있다. 북한의 국방력 강화 노력이 계속 진행중인 상황임을 볼 때 향후에도 북한은 추가 핵실험과 전술핵무기의 완성 등 스스로 만족할만한 성과 구현에 집중할 것이다. 안키트 판다(카네기국제평화기금)는 만약 2010년과 같은 남북 간의 군사적 충돌에 직면하여 북한의 전술핵무기가 배치된다면 신뢰할 수 있는 보복 수단 없이는 한미동맹이 마비될 수 있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하고 있다.

    『지난 4월 5일 김여정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은 담화문에서 서욱 국방부장관의 선제타격 발언을 거론하며 남측이 군사적 대결을 선택하면 핵전투무력을 동원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최근 들어 몇몇 국외 언론들은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 종전과는 완연히 다른 새로운 방향성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10월 9일, 서울 주재 특파원), 뉴욕타임스(10월 13일, 외부 기고), 블룸버그(10월 24일, 내부 칼럼), 그리고 씨엔엔(10월 28일, 자체 분석) 등의 기사가 그것이다. 이들 언론에 게재된 핵심내용들을 종합해서 정리해보면 ① 한반도에서 군비경쟁이 촉발하면서 전쟁 위험은 커졌으며, ② 한반도 비핵화가 불가능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③ 30여 년 동안의 방법이 실패했기 때문에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④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해야 한다로 집약된다. 일부 언론은 전문가의 견해를 빌어 미국은 북한의 핵보유를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북한은 핵능력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는 이스라엘식 해법(모호성)을 타결방안으로 제시했다.

    “북한은 핵보유국이다”. 이 명제는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거나 말하지 않을 것(파이낸셜타임스)”, “상상할 수 없는 것(뉴욕타임스)”, “말할 수 없는 말(씨엔엔)”, “세상은 듣고 싶어하지 않을 수도 있다(블룸버그)”와 같은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이것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 이유로는 첫째, 대중의 지지를 받기가 어렵다. 대다수 한국인들은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 인정을 북한에 대한 한국의 패배로 받아들일 것이며, 이를 인정하는 토대 위에서 남북관계를 재정립하려는 정치세력은 몰락이 예견된다. 둘째,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한다고 해서 북한이 주는 위협 요소가 약화된다는 보장이 없다. 한반도에서 핵보유국 대 비핵국이라는 기본적인 불균형구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닌데다가, 1994년 ‘북미제네바합의’를 시작으로 2018년 ‘남북군사합의’에 이르기까지 합의된 사항들은 남북미관계에서 제대로 이행되지 않거나, 위반이 일어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셋째,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 인정이 한국이 핵무장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명분이 될 수 있다. 만약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와 ICBM 폐기만을 교환하는 방식의 협상이 타결된다면 정파에 관계없이 핵보유 지지세가 강력한 한국은 SRBM(또는 IRBM)을 여전히 보유한 북한에 대항하기 위해 다른 길을 모색하게 될 것이다.

    “상호 군사적 대응을 중단하자”는 정의당의 ‘쌍중단’ 제안이 남북 양측에 받아들여진다면 긴장 완화에 일시적인 도움이 되겠지만 한반도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점에서 명백히 한계가 있다. 실제로 민주당 집권기에는 긴장이 완화되고, 국민의 힘 집권기에는 긴장이 고조되는 한반도 정세가 반복해서 재현되고 있다. 이것은 그동안 한반도 비핵화에서 실질적인 진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민주당 집권기의 정책이 제한적인 평화 국면을 창출하는 성과를 넘어 실질적인 비핵화를 담보해내지 못하는 한계를 가졌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냉철하게 비판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북한의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확인하는 데만 치중했을 뿐 또다른 상대방인 미국이 실질적인 실행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를 의심해본 적이 없다. 미국은 항상 이 문제에 대해 북한과 중국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전략을 고수해왔는데 한국은 미국에게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철저한 이행을 구체적으로 요구할 필요가 있다. 만약 미국의 태도가 지지부진할 경우 한국은 미국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인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등의 과감한 결단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 방안은 미국 주도 세계질서에서 한국이 누리는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는 점에서 한국인들이 그 같은 위험부담을 감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북한핵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도, 북한핵과 평화롭게 공존할 수도, 북한핵에 적응하며 살아갈 수도 없는 이상한 늪에 빠져 있다. 이 같은 판국을 체스용어인 ‘추크츠방(Zugzwang)’에 비유할 수 있겠다. ‘추크츠방’은 대국자가 어떤 수를 두더라도 자신에게는 무조건 불리하고, 상대방에게는 무조건 유리한 국면을 말한다. 대국자는 기물을 움직이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경기 규칙상 기물을 반드시 움직여야만 한다. ‘추크츠방’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서는 결국 희생과 보상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비핵화를 위해 감내해야 할 것은 무엇이고, 상대방에게 그 대가로 지불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묻고 스스로에게 대답해야 할 것이다.

    * <국방칼럼> 연재 링크

    필자소개
    국방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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