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은 일중독인가? 체크해보세요"
        2007년 02월 17일 11:5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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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최고 수준의 노동시간, 주요 22개국 평균 1,701시간보다 40%가 많은 2,380시간 노동”, “직장인 70% 스트레tbody>

    "공산주의의 대표곡: 혁명가요선집Best of Communism: Revolutionary Songs"이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을 단 이 음반은 1997년 헝가리에서 제작된 것이다. 부클릿의 해설에는 아예 대놓고 50년대~80년대 사회주의 국가에서 유년기나 청년기를 보낸 사람들의 추억을 위한 기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말하자면 공산주의 정권시절의 기억이라는 상상속의 관광유적을 돌아보고 나서 구입하는 기념품인 셈이다.

    ‘혁명가요’라는 부제를 달았지만 자랑스런 혁명의 기억 따위는 이 음반 어디에도 없다. 모든 것을 상품으로 만들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자본주의를 도입한 이후 옛 사회주의 정권시절의 기억조차도 팔아먹을 수 있는 무엇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다급함만이 가득하다.

    이 음반을 제작한 헝가로톤Hungaroton은 러시아의 멜로디아나 체코슬로바키아의 수프라폰과 같이 국영레코드회사로서 독점적 지위를 보장받던 기업이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그런 보호는 당연히 사라졌고 이제는 외국의 거대음반자본과 경쟁해야 하는 입장이다. 돈만 된다면 ‘최고의 공산주의 가요집’은 물론이고 ‘최악의 공산주의 가요집’도 만들어서 팔아야 한다.

    이 앨범에 들어있는 23곡은 새로 녹음 된 것들이 아니라 헝가로톤 레코드가 보유한 자료들 중에서 고른 것들이다. ‘옛 추억’을 새록새록 떠오르게 하려면 당연히 ‘옛 녹음’을 사용하는 것이 정석이다. 길게는 1952년에 녹음된 곡부터 가장 최근에 이루어진 녹음은 1975년도의 것이다.

    노래들은 헝가리의 고유한 작품들과 함께 옛 사회주의권에서 보편적으로 불러졌던 노래들이 반반 정도 섞여 있다. 헝가리인들 뿐만 아니라 러시아나 폴란드 같은 옛 사회주의 진영의 사람들과 많지는 않겠지만 호기심에 가득 찬 서구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기획한 음반이기 때문이다.

    발매 된지 10년이 지난 기획이지만 올해가 1917년 10월 혁명 90주년이기도 한 만큼 겸사겸사해서 소개해 본다.

    첫 곡은 당연하게도 국제공산주의운동의 찬가인 ‘인터내셔널The Internationale’이다. 헝가리 라디오텔레비전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헝가리어로 부른 버전이다. 혹시 우리네 방송 앞뒤에 애국가가 나오듯이 이 나라의 텔레비전은 인터내셔널을 내보내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이어서 나오는 것은 레닌의 육성이다. 무슨 내용인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느낌이 묘하기는 하다. 언제 어디서 진행된 연설인지 자세한 내용이 나와 있지 않은데 소비에트 정권 수립 후 이러저러한 정부의 행사에서 녹음된 것이 아닐까 짐작한다. 노래는 아니지만 이 앨범에서 가장 오래된 녹음이다.

    레닌의 연설에 이어서 나오는 것은 ‘레닌 찬가Lenin-Song’다. 대학시절 비슷한 나이또래의 러시아유학생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중등학교에서 교과과정으로 레닌의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을 배웠다고 했다. 그리고 너무 지루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생각해보면 그럴 만도 하다. 헝가리의 학생들은 레닌 찬가를 배우면서 존경의 마음으로 따라 불렀을까 아니면 가사를 외우느라 짜증을 냈을까.

    이어지는 두곡(‘진군하라 프롤레타리아의 붉은 근위대여Onward Red Guards, Proletarians’, ‘아무르강가의 빨치산The Partisans Of The Amur River’)은 모두 러시아의 노래다. ‘붉은 체펠 공업지구The Red Csepel Works’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금속산업단지와 공장의 혁명적인 노동자들에 대한 노래다. 그런데 체펠 섬은 1956년 헝가리혁명 당시 시민군이 소련군에 밀리면서 마지막 저항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헝가리 인들에게는 금남로와 같은 의미를 지닌 장소이다.

    ‘바르샤바의 노래Varshavyanka’는 폴란드 곡으로 아마도 인터내셔널 다음으로 널리 불려진 공산주의 운동의 찬가다. 우리에게는 ‘바리케이드’라는 제목으로 알려졌는데 바리케이드는 에스파냐 내전 당시 무정부주의자들이 개사한 버전으로 공산주의자들은 절대 부르지 않는다. 멜로디는 같지만 전혀 다른 노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 앨범에 들어있는 것은 헝가리어로 된 ‘공산주의자용 가사’다.

    11번째 트랙인 ‘라코시 동지에게 감사드립니다We Thank You, Comrade Rakosi’는 들으면서 가장 복잡한 마음이 드는 곡이다. 마차시 라코시는 헝가리 공산주의 지도자로 자기 입으로 스탈린의 가장 충성스러운 헝가리인이라고 자랑하고 돌아다녔던 인물이다. 헝가리 혁명 전에 개혁파의 압력으로 실각했지만 소련조차도 골치덩어리로 여겨 후루시초프는 부다페스트를 무력으로 진압한 이후 그를 복권시키지 않고 소련으로 압송해버렸을 정도다.

    라코시가 권력의 정점에 있던 1953년에 녹음된 이 ‘찬송가’는 유치원 또래밖에 안 되어 보이는 아동들의 생기발랄한 합창으로 녹음되어 있다. 독재자에게 아버지의 이미지를 부여하기 위해 아이들로 둘러쌓는 것은 공산주의 선전선동의 오랜 법칙이다. 하지만 최소한 이 노래만은 지나간 시대의 추억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 1956년 헝가리 혁명 당시 시민들에 의해 철거된 스탈린의 동상

    사회주의 군가 몇 곡이 이어진 후 나오는 노래는 헝가리 집권당인 ‘사회주의노동자당’의 청년조직이었던 청년공산주의자조직KISZ의 찬가다. (‘KISZ는 우리를 단결케 한다The KISZ Welds US Into Unity’) 북한의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이나 옛 소련의 콤소몰, 동독의 자유독일청년단FDJ 등등등 유사한 조직들처럼 KISZ도 8~90%의 학생들, 30% 가량의 청년노동자들이 준의무적으로 가입되어 있던 만큼 40대 이상의 헝가리인들에게는 어린 시절의 추억 그 자체인 셈이다.

    이어지는 ‘세계민주청년연맹행진곡The DIVSZ March’은 사회주의 청년조직의 국제조직의 찬가다. 한총련도 가입해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세계민주청년연맹WFDY’은 현재도 존속하고 있다. 1989년 임수경이 방북해 참가했던 세계청년학생축전의 주최자가 바로 이 연맹이다.

    청년의 노래가 두 곡 더 이어지는데 ‘청년이여 사회주의를 향해 전진하라Onward Youth, For Socialism’는 내용이야 알 수 없지만 밝고 경쾌한 멜로디가 인상적이다. ‘즐거운 개척자The Happy Pioneer’는 노래제목이 아니라 KISZ의 어린 단원들이 캠프파이어에 둘러앉아 불렀음직한 동요 2곡의 메들리다.

    이어지는 ‘해방의 노래The Song Of Liberation’와 ‘5월을 맞이하며A Welcome To May’도 앞의 곡과 같은 합창단이 녹음한 것으로 보아 청년들을 위한 노래가 아닐까 생각한다.

    ‘소비에트국가The National Anthem Of The Soviet Union’는 1944년 2차세계대전의 와중에 스탈린이 당시 소련 국가로 사용되던 인터내셔널 대신 도입한 노래다. 서기장 동지는 전쟁으로 고취된 애국주의를 더욱 장려하기 위해 인터내셔널의 국제주의를 폐기하고 ‘일국사회주의’의 찬가를 채택한 것이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에 탄생한 동구의 위성국가에는 사회주의 모국인 러시아를 위해 충성할 것을 강요하는 의미로 이 노래를 부르게 했다.

    그리고 이 앨범의 마지막 곡은 작곡자의 이름을 보아 러시아 노래로 여겨지는, 그리고 모든 수록곡 중에서 가장 느끼한 노래인 ‘공산주의찬가The Anthem Of Communism’다. 슬라브 특유의 멜로디와 붉은군대합창단 스타일의 연주가 어우러져서 죽어버린 당과 이념을 찬영하고 있다. 다소 코믹한 결말이기는 하지만 ‘옛 사회주의 정권시절’을 추억하기엔 더없이 적당한 선택이다.

    이 앨범의 인기(?)에 힘입어 2년 뒤인 1999년 ‘카츄사Katyusa’, ‘스탈린 칸타타Sztalin-Kantata’ 등이 수록된 2집이 발매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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