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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접민주주의 통한 국가와 정치의 전환
    [책소개] 『시민권력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 (존 레스타키스(지은이)/ 착한책가게)
        2022년 11월 05일 11:3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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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합 위기의 시대, 국가와 정치의 역할은 무엇인가?

    복합 위기가 몰려오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금 고물가, 고환율, 고금리 3고의 위기를 맞닥뜨리며 경제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이는 스태그플레이션과 금융위기가 동반하는 초대형 복합위기로서 퍼펙트 스톰을 연상케 하고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은 역사상 최고”이며 위기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진단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는 경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속적인 불평등 심화와 복지 후퇴, 정치・경제적 양극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한반도 긴장 고조, 기후 위기 등 국내외에서 전방위적인 복합 위기를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에 대응하고 극복해야 할 국가와 정치에 대해 사람들은 신뢰하지 못하고 있으며 경제적 불확실성과 사회 불안은 점점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이 책은 기업과 엘리트의 이익에 포획되어 있는 자유주의 국가는 지금의 복합적인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국가와 정치를 근본적으로 전환할 필요성과 그를 추동할 힘으로서 시민권력과 심층 민주주의를 호명한다. 그리고 그 정당성에 대한 이론적, 역사적 근거와 세계에서 펼쳐지고 있는 사례들을 통해 깊이와 설득력 있는 설명을 독자들에게 전한다.

    국가의 배신과 시민권력의 새로운 정당성

    17, 18세기 계몽주의와 민주주의 혁명을 통해 등장한 민주주의 이념은 집합적 복지뿐만 아니라 정치 공동체의 자유로운 시민인 개인의 자유 및 복지와도 관련된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동시에 이러한 자기실현의 과정을 통해 사회 전체가 발전하는 수단이었던 것이다. 국가와 정부가 이러한 민주적 요구와 이상의 달성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은 근대 정치의 정당성을 이루는 기초이다. 이러한 신뢰에 대한 위반은 국가의 배신이라 표현할 수 있다. 시민과 맺은 정치적 계약을 뒤집는 국가의 배신은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를 보여주는 핵심 징후로는 미국을 필두로 세계 거의 모든 지역에서 불평등률이 가파르게 증가한다는 점, 또 특히 교육·보건·주택·공공 기반시설 등의 분야에서 공적 자원과 국가의 사회복지 투자가 급격히 쇠퇴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한편, 민주주의는 국가를 독점적 통제의 기제에서 권력 경쟁이 가능한 정치적 경기장으로 전환시켰다. 사회 전체가 일정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공식화된 투쟁의 장이 된 것이다. 또 선거 과정은 대중의 집합적 이익이 정치를 통해 실현될 수 있음을 뜻했다. 이는 소수 부유층과 엘리트의 이익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복지에 기여하는 목표로 정부의 행동을 이끌 수 있다는 의미였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 체제의 유해한 효과를 막는 것이었다. 170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중반에 이르는 150년 동안 민주주의는 공식화된 집합적 권력의 도구로서 대중이 엘리트의 지배를 제어하는 수단이 되었다. 그리고 민주주의가 고양되면서 사회적 평등에 대한 관심과 개인적, 집합적 복지 제공에 대한 관심을 반영한 제도들이 점진적으로 도입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날 민주주의의 쇠퇴라는 정반대의 상황을 목격하고 있다. 즉, 사회복지가 후퇴하고 특권과 불평등이 확대되고 나아가 공공복지의 수호자로서 국가의 역할이 무력화되고 있다. 사유재산권과 공공복지 사이의 갈등은 자본주의 국가의 핵심 모순이다. 공적 권력 도구로서의 정부를 영구적으로 훼손하기 위해 주로 활용된 것은 공공복지 증진을 위한 지출 정책의 역전이었다. 대처와 레이건 시기 조세 감면, 공공부문 민영화와 “복지 개혁”을 앞세우며 영국과 미국에서 부상하기 시작한 신자유주의 정책은 현재 전 세계의 경제 정책이자 공공 정책이 되었다. 긴축 정책을 통한 사회복지의 붕괴는 궁극적으로 공공복지의 수호자로서 정부에게 부여된 정당성에 대한 공격이다. 이러한 과정의 중심에는 자본에 의한 공공 재산 및 공유재의 사유화와 공공부문의 식민화가 있다. 그리고 긴축이 표적으로 삼는 건 언제나 취약한 개인, 또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계층에 봉사하는 프로그램이다. 부자들의 과잉, 또는 상위 1%와 그들의 기업이 지닌 헤아릴 수 없이 거대한 부는 절대 그 대상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이 첨예화하면서 자유민주주의 자체가 의문에 부쳐졌다. 외견상의 민주적 정치 체제와 시민의 이익을 보호하지 못하는 선출된 정부의 무능력이 모순을 일으키고 있다. 이로 인해 거버넌스 모델로서의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신뢰와 정당성에 위기가 닥쳤다. 이에 따라 자본권력의 전환을 자극하는 힘으로서, 동시에 역사적으로 유례없는 경제적, 정치적 부정의와 나아가 오늘날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환경 붕괴라는 훨씬 더 위협적인 문제에 맞서는 힘으로서 시민권력이 세계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다. 저자는 이 힘을 통해 근본적 변화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기업 권력과 국가의 결탁에서 비롯된 경제적·사회적·환경적 피해의 흐름을 바꾸게 하는 경제의 민주화, 정부의 민주화, 공유재의 회복, 환경의 복원, 사회의 복원, 기술의 인간화, 세계적 협력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펼쳐지는 대안과 실험

    우리는 세계 곳곳의 거리에서, 노트북의 화면에서, 또 우리의 뼈 속 깊이 불안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가 현실 중에서도 뒤틀리고 잘려나간 모습을 경험하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세상에는 다른 이야기들, 희망적인 동시에 미지의 땅을 헤쳐가기 위한 변화의 길을 닦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완전히 다른 이야기들이 있지만 그 대부분은 아직 어둠 속에 묻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미래에 대해 완전히 다른 전망을 갖고 그것으로 이어지는 길 위로 나서는 여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4개의 장을 통해 각기 매우 다른 배경의 정부와 사회 운동이 국가의 역할을 어떻게 다시 정의하는지 살펴보고 있다. 15-M 운동에서 이어지는 바르셀로나의 참여민주주의와 사회적경제 정책, 카스트 위계구조에서 피어난 인도 께랄라 주의 분권화와 심층 민주주의, 이 두 곳에서는 정책 수립 방법과 시민이 민주적 절차에 참여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추어진다. 시리아 북동부의 로자바는 쿠르드 족을 중심으로 국가 체계를 거부하면서 자치, 연방주의, 협력을 실천하여 자주적인 시민의 힘으로 거버넌스를 흡수했다. 이러한 사례들은 기존의 국가 이론과 거버넌스 체계에서 나타난 급진적인 변화가 반영된 것이다. 각각의 경우 모두 거버넌스 모델로 굳어져 있던 위계구조를 거부하고 광범위한 시민 참여와 지역화된 직접민주주의 기제를 결합했다. 또한 식량 주권을 중심으로 수평성, 자율성, 직접민주주의의 가치를 공유하는 비아 깜뻬시나 사례를 소개한다. 지역과 세계를 연결하는 글로컬리즘 전략 하에 이 조직이 수행한 지난 20년간의 세계적 시민 동원도 새로운 국가에 대한 이상과 맥을 같이한다.

    이러한 시도와 변화들은 정치를 새롭게 상상할 수 있는 재료가 될 뿐 아니라 이 책에서 제시한 파트너 국가 개념 역시 이러한 사례들을 통해 도출된 부분이 크다. 파트너 국가는 국가를 시민화하고 경제를 인간화할 수 있는 협동적, 공동체주의적 원칙이 구현된 시민경제의 형태를 잘 보여주는 예가 된다.

    공공선의 정치와 주권적 시민사회

    고장난 체제의 실패가 완연해지면서 무언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의식이 만연해 있다. 자본의 제국은 두 개의 거대한 대립적 힘들, 즉 부의 상층계(upperworld)와 세계 시민사회로 세계를 분열시켰다. 하지만 자본주의 세계화가 불러일으킨 건 단지 불평등과 부정의만이 아니었다. 세계적 규모로 투영된 권력과 탐욕은 인류와 지구 생명계 사이의 균형을 깨뜨렸고 생태계 붕괴는 전례 없는 수준의 세계적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 시대의 변화는 전환을 의미한다. 그리고 근린 지역으로부터 세계적 단계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자주적이면서 탈바꿈한 시민사회는 이러한 전망의 핵심에 놓인다. 이와 동시에 교감과 공공선의 정치라는 개념이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이 새로운 정치 개념은 사회관계의 근본적인 변화, 그리고 개인의 이익과 경쟁의 관점에서 벗어나 협동과 공공복지 관점으로 전환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에 따라 저자는 정체성의 정치에서 공공선의 정치로 전환할 것을 제안한다. 사회 정의를 지향하는 진보 운동이 지엽적으로 분산되고 배타적인 정체성 정치로 나아가면서 좌파의 보편적이고 집단적인 사회의식이 빛을 잃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저자는 정치, 특히 민주주의는 시민이 권력을 다스릴 수 있도록 하고, 권력이 특권층의 전유물이 아닌 시민의 집합적 삶을 위한 수단이 되게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 본성에 관한 개념, 즉 인간 본성은 필연적으로 사회적이어서 개인은 자기 삶의 목적을 집단과 타인과의 동반자적 관계 속에서만 실현할 수 있다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정치는 개인과 일부 집단을 넘어 공동체 전체의 행복과 안녕에 관한 것이기에 정치의 궁극적 목적과 목표는 공공선이 된다. 정부와 국가의 정당성은 이 공동의 목표가 달성되는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 그리고 공공선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시민사회라고 명명했던 정치 공동체 전체의 적극적인 참여로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수동적 복지국가에서 협력적 파트너 국가로

    위기의 시기에 국가라는 배는 정치적 격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혼란에 빠져 방향을 잃었다. 사회안전망 후퇴, 부채 증가와 생활수준 하락, 나아가 지구온난화의 재앙적 결과에 이르기까지 정부는 당면한 복합적 위기를 해결할 지도력을 발휘하거나 방향을 제시하는 데 의미 있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하여 공공복지의 청지기가 되지 못하는 국가에 대한 환멸이 깊어지고 있다. 또한 복지국가가 공공복지의 발전에 긍정적인 역할을 했음에도 그것이 가진 결함으로 많은 문제가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중앙집중식 관리 시스템의 관료적이고 획일적인 성격은 각 시민과 공동체의 개별적 요구에 반하게 되었으며 개인의 무력함과 가난함을 전제로 하면서 사회복지는 큰 비판을 받게 되었다. 복지를 구성하는 사람과 사회적 요소들이 제대로 고려되지 않고 그들을 수동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시민의 물질적, 사회적 복리에 부응하는 운영으로 국가의 정당성을 회복하는 민주주의의 복원 과정으로서 국가의 시민화(civilizing)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이 개념은 국가를 집합적 복지의 도구로 인식하는 민주화 과정의 연속이며 여기에 필요한 역할과 권력의 재편을 감안할 때 새롭게 상상되는 정치 체제를 파트너 국가라 할 수 있다. 시민이 서로 협력하고 공공선을 위한 집단행동을 하도록 촉진할 수 있는 국가의 능력은 건강한 사회와 행복을 이루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 이는 민주적 문화의 특징이며 시민사회와 국가는 소수의 특권 집단이 아닌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한 공동의 노력에 서로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이런 노력을 위해 저자는 국가 시민화의 원칙을 제시하고 구체적으로는 시민경제의 회복, 사회적 가치 시장 활성화, 기업을 통제하기 위한 장치, 공공은행 및 사회적 금융을 통한 자본의 민주화를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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