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쫓겨난 자들의 잊힌 기억을 찾아서
    [책소개] 『가난한 도시생활자의 서울 산책』 (김윤영(지은이) / 후마니타스)
        2022년 10월 29일 11:1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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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서 빈곤이 사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달동네, 판자촌 같은 공간이 공존했지만 이제 빌딩숲 속에 숨은 손바닥만 한 쪽방촌이나 재개발을 앞둔 공가 투성이의 마을, 그리고 기초생활수급자의 죽음 같은 모습으로만 빈곤은 간헐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서울은 곳곳의 공원과 대단지 아파트들, 초고층 빌딩들로 점점 화려해지고 있고, 10억을 호가하는 아파트들로 이루어진 주거 지역들은 비슷한 소득과 비슷한 지위의 사람들을 모아 놓은 공간으로 빈민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그렇다면 과연 빈곤은 사라진 것일까?

    반빈곤활동가 김윤영은 정체 모를 이름의 아파트들과 초고층 빌딩들로 채워져 가는 도시 서울에서 그것이 지워 버린 것들이 무엇인지 질문하며 자신이 12년간 함께해 온 철거민, 노점상, 홈리스, 장애인들의 이야기를 불러와 작은 골목과 상점들, 그리고 거기서 쫓겨난 평범한 서민들의 삶을 되살려 낸다. 저자는 도시 빈민과 함께 싸워 온 활동가일 뿐만 아니라 작은 골목을 기웃거리는 산책자이자 다정한 이웃이 되어 “가난의 얼굴”로 타자화되어 왔던 철거민, 홈리스, 노점상들이 실은 하루아침에 거리로 나앉게 된 평범한 동료 시민이었음을 보여 준다. 이는 저자가 12년간 활동하면서 함께해 온 당사자들에 대한 직접 인터뷰와 거리에서 보고 겪은 일들, 그리고 싸우기 위해 쌓아온 자료들에 입각해 있다. 그가 만난 신계 강정희, 홍대 두리반 안종녀, 서울역 홈리스 정기영, 돈의동 쪽방촌 동선 아저씨, 잠실 포장마차 김영진 등의 이야기와 재개발 과정에 대한 생생한 기술은 지금 이 도시의 깔끔한 외관을 가차 없이 벗겨내고 그것이 가난한 세입자, 소상공인들을 얼마나 폭력적으로 몰아내며 형성된 것인지 깨닫게 해준다.

    # 반빈곤활동가가 만난 거리의 사람들1 : 노점상, 철거민…평범한 이웃의 얼굴들

    도시가 새로워질 때마다 사라진 사람들이 있다. 이 책의 각 공간을 살아 있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 저자가 높은 빌딩과 아파트들 사이에서 기억해 낸 사람들이다. 경의선숲길 주변의 아파트 단지들, 용산의 빌딩숲, ‘마래푸’가 들어선 아현동에서 반빈곤활동가 김윤영은 텐트를 치고 농성하던 사람들, 망루를 짓고 올라간 사람들, 빈집을 옮겨 다니며 잠을 청했던 사람들을 본다. 모두 도시 재개발로 하루아침에 거리로 나앉게 된 사람들이다. 이들은 보통 ‘철거민’이나 ‘노점상’ 같은 이름으로 불리며 “자기 땅도 아닌데 보상을 해달라고 떼쓰는 사람” “세금도 안 내면서 장사하는 사람”으로 비치곤 하지만, 김윤영이 전해 주는 신계 강정희, 두리반 안종녀, 아현의 박준경, 잠실포차의 김영진 등의 이야기는 모두 우리와 같은 평범한 시민이 각자의 터전에서 아둥바둥 최선을 다하며 살았던 삶들이다.

    강정희는 시골에서 상경한 부모님과 함께 신계동 달동네에 자리를 잡았다. 부엌 창을 열면, 도원동 철거민들이 지은 망루가 보였지만 그땐 그게 뭔지도 몰랐고 남의 일로만 알았다. 이른 나이에 이혼하고 혼자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이었던 그녀에게 신계동 그곳은 판자촌이라고 부르기엔 부족한 정겨운 이웃들과 딸과 함께한 추억들이 살아 있는 삶의 터전이었다. 하지만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무너진다. 철거용역들의 위협을 견디다 못한 이웃들이 하나둘씩 떠나고 아랫집은 자살했으며, 자기 집도 외출한 사이 철거당했다. 지금도 그녀는 그때 빼앗긴 세간살이가 생각난다. 그래서 물건을 잘 못 버리는 습관도 생겼고, 오랜 노숙농성 탓에 지금도 깨보면 앉아서 선잠을 자고 있다.

    어머니와 함께 300에 20짜리 아현동 단층집에 살던 1981년생 박준경은 자신이 살던 곳이 재개발 구역이 아닌 재건축 지역으로 지정된 탓에 하루아침에 아무런 보상도 없이 거리로 나앉게 됐다. 갈 곳이 없었던 모자는 이대로 내쫓기지 않기로 결심했고, 집에서 쫓겨난 이후 빈집들을 전전하며 버텼다. 그러나 철거 용역들 역시 포기하지 않았다. 11월 30일, 강제철거가 금지되는 동절기를 하루 앞두고 그는 결국 빈집에서마저 쫓겨났다. 그리고 나흘 뒤 물에 빠진 주검으로 발견된다. 박준경의 장례가 치러지던 날 각종 개발 관련 사이트에는 “세입자 관련 이슈”가 해결돼 퇴거 절차가 마무리되었으며 곧 착공에 들어간다는 속보가 떴다.

    지금은 용산센트럴파크해링턴스퀘어라는 이름의 43층짜리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선 곳은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의 목숨을 앗아간 남일당 망루가 있던 자리다. 재개발 인허가 과정은 이례적으로 초고속으로 이루어졌고, 이로 인해 세입자들은 개발이 진행되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철거 상황을 맞닥뜨렸다. 보상대책은 이사비와 3개월 평균 소득으로 책정된 휴업 보상금뿐. 그것으로는 갈 곳을 찾을 수 없었던 상인들은 망루를 짓고 올라갔다. 저자는 폭력적인 이미지로만 재현돼 온 망루의 철거민들이 실은 구청으로부터도 거절당하고 세상 아무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아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힘없는 평범한 시민이었음을 잘 보여 준다. 이듬해 법원은 용산4구역의 관리처분계획 인가가 절차상의 문제로 무효라 판결했다.

    이 책의 또 다른 주인공들은 바로 노점상들이다. 노점상은 오랫동안 막다른 곳에 다다른 이들의 마지막 생계로서 기능해 왔지만 지독한 편견의 대상이기도 했다. 하지만 저자가 만난 아현포차의 상인들과 잠실포차 김영진의 이야기는 이들이 20, 30년간 그 자리를 지키며 우리의 또 다른 이웃으로서 그곳을 가꿔 왔음을 보여 준다. 하지만 30년 넘게 아현역 앞을 지켰던 아현포차는 마래푸 주민의 민원으로, 또 1989년부터 21년간 자리를 지켰던 잠실포차는 123층짜리 롯데월드타워의 건설이 결정되면서 흔적도 없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린다.

    • 2002년 시범 뉴타운을 시작으로 서울 곳곳에 2008년까지 26개 지구, 316개 구역이 뉴타운으로 지정됐다. 이렇게 해서 뉴타운으로 지정된 면적은 그 이전 36년간 재개발이 완료된 면적의 2.4배에 달했고, 이 지역에 거주 중인 서울 시민은 85만 명(서울 시민의 8퍼센트)에 달했다. 하지만 이 가운데 69퍼센트는 세입자였다. 이들은 대부분 뉴타운 건설 후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뉴타운 사업 전후 이 지역의 60제곱미터 이하 주택은 63퍼센트에서 30퍼센트로, 전세금 4000만 원 미만 주택은 83퍼센트에서 0퍼센트로 하락했다. 그리고 거주 가구의 평균 소득은 207만 원에서 653만 원으로 상승했다.

    # 반빈곤활동가가 만난 거리의 사람들2 : 홈리스, 장애인…타자화된 빈곤의 얼굴들

    이 책은 홈리스나 장애인 같은 또 다른 도시생활자의 눈으로 광장이나 역사驛舍 같은 서울의 공적 공간들을 다시 보는 책이기도 하다. 서울역 지근거리의 사무실에서 홈리스들과 일상을 공유해온 저자는 지하철 운행이 끝난 새벽 1시가 돼서야 잠을 청할 수 있고, 4시면 역 청소가 시작돼 일어나야 하는 잠자리와 하수도에서 올라오는 모기를 견뎌야 하는 여름과 겨울, 벽을 보고 앉아도 뜨끈하게 쏟아지는 시선을 견뎌야 하는 일상, 그리고 거리에 누우면 사람들의 발소리가 천둥소리처럼 들리는 등의 노숙인의 삶을 자세히 들려주는데, 이는 기차를 이용하며 스쳐지나가는 승객이 아닌, 역을 집 삼은 노숙인의 입장에서 서울역이라는 공간을 다시 경험하게 한다. 또 한때는 방직공장을 운영하던 평범한 시민이었으나 지금은 서울역 인근 텐트에 사는 정기영 아저씨의 이야기는 노숙인을 타자화된 빈자의 얼굴이 아닌 한때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의 모습으로 다시 보게 한다.

    하지만 서울역은 이들을 끊임없이 몰아내고 있다. 2004년 문을 연 민자역사에 대형마트와 백화점이 들어서고 역사 내 역무시설의 비중이 16퍼센트로 급감하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또 2010년 말 공항철도가 개통되면서 노숙인 강제퇴거 방침은 공식화되었고, 코로나19의 유행 이후 이런 구조조정은 더욱 심각해졌다. 이제 역사 내 노숙인들이 세상사를 접하던 티브이에는 광고 화면만 나오게 되었고, 의자 위에 쓸모없이 달린 손잡이, 기둥 아래 문어발 받침대, 억지스럽게 장식된 화단, 그리고 시시때때로 이루어지는 물청소를 통해 이들은 오늘도 끊임없이 거절당하는 중이다.

    # 결코 자연스럽지 않은 재개발의 역사: 합동재개발과 철거 폭력

    이 책은 또한 반빈곤운동에 몸담아 온 저자가 도시 빈민을 압박하는 각종 제도와 법률들, 그리고 물리적 폭력을 당사자의 입장에서 생생하게 재현해 낸 글이기도 하다. 2012년부터 5년간 광화문역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인 장애인들의 이야기는 부양의무제와 장애등급제가 어떻게 많은 이들을 빈곤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만드는지 잘 보여 준다. 또 저자는 상계동과 도원동의 재개발사를 추적해 1982년, 정부가 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한 합동 재개발 방식(주민들이 조합을 결성해 토지를 제공하고 건설업체가 아파트를 지어 조합원에게 배정한 뒤 나머지를 일반에 분양하는 방식)이 민간 자본과 토지 소유주, 대형 건설업체에 막대한 이윤을 안겨주는 한편, “개발 전 조합의 자진 철거” 방침으로 철거 폭력이 공권력이 아닌 조합에 의해 직접적으로 저질러지게 해 이를 같은 시민들 간의 싸움으로 만들었음을 폭로한다. 지금도 수많은 아파트들이 이 같은 방식으로 지어지고 있으며 개발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강제로 내쫓기고 있다. 또 철거 현장에 용역업체가 동원되며, 경찰이 수수방관함으로써 공모하는 상황도 여전하다. 마지막으로 용산참사 이후 금지된 동절기 강제 철거가 오히려 그 직전의 철거 폭력을 더 격하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은, 위와 같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시시때때로 도입되는 정부의 근시안적 조치들이 어떤 결과를 빚는지 잘 보여 준다.

    # 노점상, 홈리스, 장애인을 향한 편견의 논리 : 우리는 어떤 이웃, 어떤 시민이 될 것인가

    이 책에 등장하는 철거민, 홈리스, 장애인, 노점상들을 무엇보다 힘들게 하는 것은 동료 시민들의 편견어린 시선이다. 철거민들에게는 흔히 ‘소유권’이 없는 자가 분에 맞지 않는 권리를 달라고 생떼를 쓴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노점상들에게는 세금을 내지 않고 자기 것도 아닌 공간을 점유하며 불법적으로 장사를 한다는 혐의가 붙는다. 하지만 저자가 보아온 노점상들은 남편과 헤어진 뒤 먹고살 길을 찾다 노점을 차리게 된 여성, 티브이 브라운관을 수리하다가 더 이상 그걸로는 먹고살 수 없어 노점상이 된 초로의 남성, 기술이 있어도 취직할 곳을 찾을 수 없던 장애인 등이다. 이제 노점상들의 모습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고 서울시는 이를 성과로 자랑한다. 하지만 저자는 노점조차 할 수 없게 된 이들이 과연 무엇으로 먹고살고 있을지 되묻는다.

    홈리스가 견뎌야 하는 세간의 편견과 폭력들도 이 책은 당사자의 목소리를 통해 생생히 들려 준다. 홈리스에 대해 사람들은 일을 하지 않고 술만 먹는다, 게으르다, 노력하지 않으며 자립 의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돈의동 쪽방촌 동선 아저씨의 이야기나 서울역 정기영 씨의 이야기는 이들 대부분이 한 번도 쉬어 본 적이 없을 만큼 열심히 일해 온 이들이라는 점, 평생을 최저임금만 받으며 살아왔다는 것, 그래서 노동의욕이 쉽게 꺾일 수밖에 없는 점, 또 이런 편견과 자괴감 속에 자포자기나 알코올의존증에 빠지는 등의 악순환을 겪게 된다는 점을 잘 보여 준다.

    저자는 이런 이들의 삶과 목소리를 다정한 친구로서 전하며, 결국 빈곤이란 개인을 “다양하게, 총체적으로 실패하게 만드는 것”으로서 우리가 빈곤한 이들의 어떤 특성을 볼 때 그것이 빈곤의 원인인지 결과인지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일용직으로 일하며 쪽방과 거리를 오가던 동선 아저씨가 수급 신청을 위해 오랫동안 보지 않던 부모를 찾아갔다가 거절당하고 결국 술로 세월을 보내다 눕지도 못한 채 세상을 떠난 가슴 아픈 이야기는 그가 마지막을 살던 돈의동 쪽방촌의 재개발 소식으로 끝이 난다. 그곳에 밀집한 쪽방과 고시원, 여인숙, 그리고 5000원짜리 백반집들이 없어지면 거기 살던 주민들은 과연 어디로 가게 될까.

    # 가난을 쫓아낸 도시 서울에서 되살려 낸 것들 : 따뜻하고 용감한 사람들

    하지만 이 책은 무엇보다 이들의 역사를 ‘실패의 역사’로 그리지 않는다. 저자는 쫓겨난 사람들을 기억하는 게 패배를 기억하는 일이 아니라 치열한 싸움이 있었음을 기억하는 일이며, 도시가 결코 자연스럽게 변하지 않았다는 증거임을 강조한다. 또 신계 철거민 강정희가 용산 남일당 상인들을 대신해 농성을 하고, 아현동 박준경의 죽음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와 눈물짓는 모습 등은 자기 잇속만 챙기는 이들로 가득한 듯한 세상에서도 말없이 곁을 내어 주는 사람들이 있음을 보여 주며 따뜻한 감동을 안긴다. 2012~17년까지 5년간 광화문 농성을 통해 생겨난 동료 시민들의 변화나 철거용역에 맞서 서로 욕을 가르치며 연대한 아줌마들의 이야기 또한 비관과 냉소에 빠지기 쉬운 상황에서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돌진하는 사람들의 용기를 전해 준다. 저자는 무엇보다 이 도시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마주치면서 조율과 타협의 무수한 시간을 거치며 공존의 기술을 배우는 곳”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 13년차 반빈곤활동가 김윤영의 ‘운동의 이유’

    :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수고스러운 일을 정성스럽게 한다”

    이 책의 저자 김윤영은 학생운동을 하다 활동가의 길로 들어섰다. 스물다섯 살 때 이불 한 채와 옷만 들고 무작정 집을 나와 친구 집에 얹혀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부모로부터 독립해 알바를 하고 최소한의 소비만 하고 살았다. 짧게는 3년, 길게 봐야 5년을 생각하고 들어온 곳이지만 “어영부영” 일하다 보니 12년이 넘었다.

    보통은 “이상한 소리” 취급당하는 주장들을 한다. 예를 들어,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같은 게 그런데, 처음 이 주장을 할 때만 해도 복지부 정책 담당자들은 “말 같지 않은 소리 하지 마시고 실제 대안이 될 만한 걸 얘기하라” 했다. 그럴 땐 잠시 “내가 사기를 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실제 사는 모습과 지금 필요한 걸 생각하면 물러설 수 없었다. 이런 편견과 관성에 맞서는 게 가장 어렵고 답답하다.

    운동을 한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서 더 계속하고 싶어졌다. 내가 하는 대로 세상이 바뀐다면 그 책임이 무거워서 해나갈 수 없으니 말이다. 우리는 “언젠가의 변화”를 준비하는 사람들이고 “할 수 있는 만큼 하자”는 게 목표다. 의견이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내 고민을 넓히고 깊게 만드는 것, 나를 조직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단 “지금 내가 실천할 수 있는 것”을 하되, 그중 “가장 수고스러운 일을 정성스럽게 하려고 노력”한다.

    머리가 복잡할 땐 남이 개최한 집회에 간다. 그러면 발언도 더 잘 들리고, 앉아서 구호도 외치고 땀흘리며 행진하다 보면 상념이 사라진다.

    빈곤사회연대에서 만난 사람들 덕분에 내가 얼마나 부족한 인간인지 깨닫고 그래서 오늘도 좋다가 도망치고 싶다가 하는 마음 사이를 갈팡질팡하며 걸어간다. 쉬운 날이 없었지만 아주 망하겠구나 싶은 날도 없었다. 최근 용산의 재개발 붐으로 남영동의 2층집에서 쫓겨났지만, 홈리스들이 서울역에서 걸어오기 쉬운 곳에 또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았다.

    • 김윤영이 몸담은 빈곤사회연대는 2001년 12월, 뇌성마비 장애인이자 싱글맘으로 28만 원의 생계급여를 받고 살아가던 최옥란이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요구하며 명동성당 앞에서 농성을 시작한 것을 계기로 기초생활보장제도 개정을 요구하는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면서 탄생한 단체다(그녀는 간헐적으로 노점일을 해서 생계를 보충했으나 신고가 들어가 수급 탈락 위기에 놓였으며, 2002년 양육권가 수급권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에서 괴로워하다 극약을 마셨다). 노점상・철거민 등 전통적인 빈민운동과 홈리스・장애인 등 새로운 빈민운동을 연결해 만든 연대체로 지금은 40여 개 단체들이 참여하고 있다. 생활소득 쟁취, 불안정 주거민들의 주거권 쟁취, 공공서비스의 시장화 저지를 비롯한 사회 전체의 빈곤 문제, 빈곤에 따른 차별 문제, 빈곤정책과 복지정책의 보수화 문제에 대응한다. 매년 1017빈곤철폐의날 행사, 동짓날 개최되는 홈리스추모제, 반빈곤영화제 등을 주관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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