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 장난에 놀아난 민족문학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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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2월 15일 10:0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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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보수 언론들은 ‘민족문학작가회의’ 명칭 변경 사안을 민감한 ‘정치적 이슈’로 변질시키는데 기민한 역할을 했다. 또한 황석영 작가의 언론 인터뷰 내용과 이를 둘러싼 작가 논쟁에서는 작가회의의 명칭 변경문제와 함께, 현실 정치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민감한 문제들까지 거론됐다.

    문학평론가 홍기돈씨는 이와 관련, 언론이 구부러뜨린 논쟁의 주름살을 살펴보고, 명칭 변경에 대한 본인의 견해 그리고 현실 정치와 관련된 발언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3차례 걸쳐 실을 예정이다. <편집자 주>

    내가 보기에 문제의 핵심은 간단하다. 최근의 논란은, 어렵지만 3차방정식을 풀어보겠다고 나선 이들과 우직하게 2차방정식의 세계 안에 안주하겠다는 이들 사이의 갈등에서 비롯된다. 문제가 계속 꼬이고 논란이 증폭되는 것은 이게 왜 3차방정식인지 제대로 해명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치권 보는 시각으로 문학계 다뤄

    여기에는 보수언론의 ‘장난’이 커다란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그러니 우선 논란의 구부려진 지점을 밝히는 데서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민족문학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에서 ‘민족문학’을 뗄 수 있는가. 보수신문들에서는 단체의 이름에서 ‘민족문학’을 떼는 마당에 근본적인 성격까지 바꾸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현재의 논의가 2차방정식에 머무는 데는 보수신문들이 설정해 놓은 이런 어이없는 문제의 틀이 주요하게 작동하고 있다. 지금도 그 틀은 굳건하게 작용하고 있다. 이게 왜 어이없는 문제의 설정인가.

    현재 우리 사회의 정치적 분위기는 극단에서 극단으로 치우쳐왔다. 대통령 탄핵 정국이 끝난 뒤 보수 세력은 정신적으로 패닉(공황-편집자)에 빠져 있었다. 보수언론 또한 여기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그런데, 2007년 현재 분위기를 보면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져 있음을 알게 된다. 여당은 갈기갈기 찢어졌으며, 마땅한 대통령 후보도 내세우지 못해 한나라당에서 어떻게 데려올까 고심하고 있을 정도이다. 답답하기는 민주노동당도 마찬가지다. 보수신문들은 문학계를 이해하는 데에도 이 틀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작가회의가 수세에 몰린 끝에 명칭 개정을 고민하고 있는 것처럼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작가회의의 상황은 다르다. 정치권의 동향과 관계없이 나름대로 내실을 쌓아왔기 때문이다. 2005년 ‘민족작가대회’를 개최하고, 2006년 ‘6.15민족문학인협회’를 결성한 것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남과 북의 작가들이 한 데 모여 논의를 펼칠 수 있는 형식적인 장치는 마련해 놓은 셈이다.

    작가회의 산하 위원회로 자리하는 ‘민족문학연구소’의 활동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민족문학연구소는 지난 몇 년 동안 북의 사회과학원과 학술적인 논의를 지속해왔다. 2006년에는 해방 이후 처음으로 남과 북의 학자들이 공동으로 연구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 1980년대 민족문학작가회의 문학교실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민족문학 틀 안에 있는 사람들이 개명을 주장했다

    『강경애, 시대와 문학』(랜덤하우스코리아)이 그것이다. 민족문학연구소에서는 민족문학의 현재적 의미와 가치를 심도 있게 연구하기도 한다. 나는 『내일을 여는 작가』 2006년 겨울호에 「한국 근현대문학사에 붙이는 아홉 개의 주석」을 발표하였는데, 여기서 예각화한 민족문학에 대한 견해는 연구소 내에서 진행했던 논의에 기대는 바가 컸다. 문학의 상업화에 맞서 미학적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 또한 병행하고 있다.

    그리고 누가 명칭 변경에 적극적인가를 따져야 한다. 작가회의 총회에서 명칭 개정의 필요성을 발표했던 이는 소설가 방현석(이사)이었다. 김남일(이사)도 이런 입장을 개진하였으며, 김형수(사무총장)도 마찬가지였다. 정도상(통일위원회 위원장)은 『한겨레』를 통해 같은 입장을 피력하였다. 민족문학연구소 소장 김재용 또한 같은 생각인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 열거한 작가들은 ‘민족작가대회’를 개최하고, ‘6.15민족문학인협회’를 결성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이나 이라크, 몽골, 동남아시아 작가들과의 조직적 연대를 위해 현재 동분서주하고 있기도 하다. 북측과 함께 ‘겨레말큰사전’을 편찬하는 일도 진행하고 있다.

    하나의 문학사에 접근하기 위해 북의 학자들과 공동으로 노력하는 태도는 앞에 이야기한 그대로다. 그러니까 명칭 개정에 나서는 이들이 남과 북, 세계의 여러 국가들을 아우르며 활발한 활동을 벌인다는 사실은 충분히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 보자. 이들의 활동은 ‘민족문학’이란 틀 안에 있는가, 바깥에 있는가. 그리고 그들의 작품이나 논문을 한 번 읽어보라. 그 내용은 ‘민족문학’이란 틀 안에 있는가, 바깥에 있는가.

    내 입장에서 답변은 분명하다. 그들은 민족문학이란 틀 안에 있다. 그들은 ‘민족문학’을 버릴 사람들이 아니다. ‘민족문학’을 부여안고 뚜벅뚜벅 걸어 나갈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그들에게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문학권력에 빌붙어서 안위를 꾀하려 한다는 혐의가 가해지고 있다.

    나는 이런 혐의와 비난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 그리고 ‘민족문학’의 개념이 무엇인지 비분강개한 연설을 들어야 할 정도로 내 공부가 짧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문제는 의견이 제대로 소통되지 않는 데서 발생한다. 그들은 민족문학의 틀 안에 있으면서도 왜 명칭의 개정을 주장하고 나선 것일까.

    누가 ‘민족’과 ‘민족문학’을 버리자고 했나

    다시 총회 자리로 돌아가 보자. 명칭 개정에 대해 논의를 시작하기 전 정희성 이사장은 분명하게 밝혔다. “우리 조직의 이름에서 ‘민족문학’을 빼자는 것은 ‘민족문학’을 폐기하자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 점을 분명하게 인지하시고 의견을 개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만, ‘문학’은 버릴 수 있어도 ‘민족’은 버릴 수 없다는 입장이 회의장을 가득 메우고 말았다.

    누가 ‘민족’을, ‘민족문학’을 버리자고 하였나. 그렇게 한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그 자리에 없었다. 비분강개한 시인들은 왜 가상의 상대를 만들어 내는가. 그리고 작가회의가 그렇게 민족문학의 존폐를 논의해야 할 정도로 수세적인 상태에 몰려있는가. 이는 정치적 상황을 문학단체의 존립에 기계적으로 적용한 관점에 불과할 따름이다. 그 관점은 대체 누가 만들어서 유포한 것인가.

    그러니 결국 보수신문들이 펼쳐놓은 문제의 틀 안에서 시끄럽게 놀아난 꼴이 되고 말았다. 이것도 꼴사나운 일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인신공격으로까지 막 나가고 있다. 이래서는 논의가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 없다. 이런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데서부터 논의는 다시 새롭게 시작되어야 한다.

    오늘은 일단 현재 진행되는 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 만족하기로 한다. 그리고 명칭 개정에 대한 나의 생각은 내일 밝히도록 하겠다. 사실 나는 바꾸자는 의견에 소극적으로 동조하는 편이지만,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내몰리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환기시키기 위해서이다.

    덧붙이자면, 젊은 작가들과의 술자리에서 그런 생각을 지나가는 소리로 밝힌 바 있으므로 ‘신고’ 들어가기 전에 자수하자는 심정도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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