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을 투표장에 동원하지 말고
당신들이 대중 속으로 들어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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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2월 14일 05:5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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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0일 열린 민주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는 당내 대통령 후보 선출방식과 관련해 ‘개방형 예비경선제’를 도입키로 하고 당 대회에 관련 당헌 개정안을 올리기로 했다. 중앙위에서 61% 찬성률로 통과되기는 했지만 이에 대한 이견이 적지 않다.

<레디앙>은 민주노동당 당 대회의 최종 결정을 앞두고 관련 논의를 소개함으로써 진보정당사에서 중요한 결정으로 기록될 당 대의원들의 선택 과정에 조촐한 참고서 역할을 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한국의 정당체계와 구조의 역사를 생각할 때, 민주노동당이 가장 기여한 것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진성당원제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진보정당으로서의 민주노동당의 당내민주주의뿐만 아니라 소수의 엘리트들이 지배하는 보수독점의 정당체계에서 과연 정당이, 정치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며 어떤 모습을 보여야하는지를 대중들에게 자각하게 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수구 내지 자유주의 보수정당들조차도 이러한 의미를 부정하지 못하였고 오히려 부러워하며 유사한 제도를 도입하고자 시도하였다.

개방형 경선제는 관심과 득표를 보장해주나

그런데 그 역사적 의미가 생생하게 살아 있는 진성당원제를 둘러싸고 적절치 못한, 곤혹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10일 민주노동당 중앙위원회는 12월 대통령선거의 후보를 결정하기 위해 이른바 ‘개방형경선제’의 도입을 담은 당헌개정안을 당 대회에 상정키로 결정했다고 한다.

이번 중앙위에서는 그 동안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던 ‘당직공직겸직금지’ 조항을 폐지하는 내용도 확정했다고 한다. 왜 이런 결정을 내린 걸까. 물론 중앙위원들이 심사숙고한 후에 내린 결정이겠지만, 그 내막을 자세히 알 수 없는 입장에서는 납득할만한 이유를 찾지 못해 답답할 뿐이다.

다만 그 근거로 보이는 것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언론과 세인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그 동안 하락한 당의 지지도를 다시 만회할 수 있는 하나의 계기로 삼고자 하는 것이 핵심인 듯하다.

그렇다면 진성당원제를 시나브로 구축하는 이러한 행태들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민주노동당에 ‘개방형경선제’의 도입이 왜 적절치 못한지, 그것을 둘러싼 몇 가지 문제를 다시 한번 더듬어 보는 것이 불필요한 일은 아닐 것이다.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분주함과 당원의 소외

첫째, 진성당원제는 진보와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정당과 보수정당의 존재 의미를 명확히 구분해 주는 중요한 준거이다. 수구, 보수정당이야 현존하는 비대칭적이고 억압적인 사회관계 자체를 문제시하기보다 그것을 확대재생산 내지 재생산하기 위해 정치를 하는 세력들이 만든 조직이니 만큼 따로 ‘진성당원제’를 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그들에게 고통의 담지자인, 대중의 아래로부터의 생생한 목소리를 활성화시키는 ‘진성당원제’는 골칫거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수구 한나라당에 왜 이 제도가 없을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자유주의 정치세력인 열린우리당의 기간당원제가 왜 유명무실할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그들의 정치적 발상은 대중의 고통을 자기화하지 않는 엘리트민주주의의 범주에 갇혀 있으며 실제 행태 또한 그렇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금 목도하고 있듯이 국회 임기 한 기수도 채우지 못한 채 저렇게 무너지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이합집산을 당연한 것으로 설왕설래하는 자유주의 정치세력들의 분주함 속에서 일반당원의 어떤 의미 있는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실제 그들 당의 주인은 당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본질적 연유로 그들은 선거 시기가 되면 자신들의 그 근본적 약점을 희석시키고 보강하기 위해 국민경선제라는 이벤트성 축제를 벌이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기에 그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국민경선제는 깜짝쇼이기는 하지만, 그 실제 내용과 형식이야 어떻든 대중을 소외시키는, 자신들의 협소한 최소민주주의를 보완한다는 나름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국민경선제는 진일보한 정치적 발상의 실현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그것의 도입을 침이 마르도록 선전하며 마치 자신들이 민주주의 정당의 화신인 양 선전하는 것이다. 즉 그들에게 국민경선제는 그 무엇도 손해를 볼 것이 없는, 오히려 명분으로도 득이 되는 카드인 것이다.

대통령 선거야말로 개방형 경선이다

그렇다면 지금 민주노동당은 왜 ‘개방형경선제’가 필요한가. 그것도 민주노동당의 존재 의미를 상징하는 진성당원제가 살아 숨쉬고 있는데 말이다. 혹시 수구 내지 보수정당들처럼 민주노동당의 운명을 쥐고 있는 대주주들이 따로 존재하는가.

그리하여 삶에 고통 받는 비정규직 등 대중의 사회정치적 이해를 대변하지 못할 만큼 당 내부의 분파성, 관료화가 너무 심하여 진보정당으로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기 때문인가. 당의 대통령후보를 뽑는 것조차 외부의 냉철한 판단 없이는 불가능하여 새로운 피를 수혈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이미 기성화되어 막혀 있기 때문인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설사 그렇다 치더라도 ‘개방형경선제’가 의미 있는 해소책이 될 수는 없으며 이 경우 오히려 당원들의 목소리를 더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안들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정당정치의 핵심 가운데 하나의 특징은 특정의 정당이 자신들의 강령과 정책을 선출된 후보를 통해 선거에서 대중의 신임을 묻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많은 문제를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수구, 자유주의, 진보의 후보가 대중을 상대로 서로 경쟁하는 대통령선거 그 자체야말로 ‘개방형 경선’인 것이다. 따라서 각 정당은 그 당에 헌신하는 책임 있는 당원들이 직접 후보를 선출하여 이 경선에 내보내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지적한 것처럼 이것은 당원이 의미 있는 정치적 실천의 단위로 존재하는 진보적이고 민주적인 정당들에서만 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여기에 보수정당들이 ‘당의 주인이 당원이 아니라 국민’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담겨 있다.

즉 수구, 보수정치세력들에게는 당은 있으되 당원은 그 실체가 없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민주노동당 등 진보정당만이 진정한 정당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진성당원 중심제를 보수적 발상으로 왜곡 

   
  ▲ 2002년 3월 광주에서 치러진 새천년민주당 국민경선에서 선거인단이 투표를 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
 

따라서 설사 그들이 무차별적인 대중 가운데 한 사람이든, 민주노총 조합원, 전농 등 진보적 대중단체의 조합원이든, 아니면 진보적 성향의 명망가이든 그가 당원이 아니라면 민주노동당을 비판하고 격려할 수는 있을지언정, 따라서 민주노동당이 입장에서는 그러한 비판을 ‘의미 깊은 참고자료’로 챙길 수는 있을지언정 그들은 직접 당내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어떤 명분도 자격도 없으며 민주노동당도 이를 보장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원리의 진성당원제를 버리고 ‘개방형경선제’를 선택하는 것을 대중 참여를 통한 민주주의의 확대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양자가 결코 대립되는 선택지가 아니라는 점에서 ‘대중참여’를 명분으로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동일성’을 추구하는 민주주의 원리를, 그 맥락 위에 있는 진성당원제의 의미를 보수적 발상으로 왜곡시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물론 ‘당원증’이 훈장은 아니지만, 어떤 이벤트를 위해 당원의 추천에 의해 남발되거나 소정의 비용을 납부한다고 그에 준하는 권리와 의무가 남발될 수 있는 친목계의 회원증일 수도 없다.

어떻게 정당정치에서 당원과 비당원이 동일한 권리와 의미의 지위를 가질 수 있는가. 특히 대중을 대상화시키는 제도정치의 구조적 한계에 주목하고 그것을 넘어나가는데 필요한 대안을 구축하는데 몰두해야 할 진보정당이 기존의 의미 있는 기제를 옹호하고 발전시키기보다 희화시키는 이러한 행태야 말로 화석화된 제도정치에 스스로를 재단하는 적절치 못한 행태인 것이다.

진성당원제는 보수 엘리트민주주의의 한계를 돌파하는, 당원이 직접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이 사회 전체를 통틀어서도 흔치 않은 귀중한 ‘인민적 기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방형경선제’의 도입은 거기에 그 어떤 아름다운 수식을 붙이더라도 민주주의를 기술적인 수준으로 전락시키는 것임을, 그리고 그와 같은 편의적 발상들에 의해 민주주의가 형해화되어 왔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유연함과 기성화는 다르다

둘째, ‘개방형경선제’의 도입을 통해 더 많은 지지, 후원자를 조직하여 더 많은 득표를 할 수 있다는 발상과 논리 또한 진보정당과는 어울리지 않는 본말 전도이다. 이러한 발상을 하기에 앞서 먼저 뒤돌아보아야 할 것은 지지와 후원의 빈곤이 무엇으로부터 기인하는가의 문제에 대한 숙고이다.

이것은 민주노동당의 경우, ‘왜 지지율이 자유주의정치세력의 그것과 부침을 함께하는가’라는 뼈아픈 지적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러한 현상은 한마디로 민주노동당이 진보정당답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눈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보다는 조직노동자들을 대변하는 정당으로만, 핵무기로 평화를 지키겠다는 모순적 발상이 통용되는 정당으로, 여전히 지혜롭지 못한 대북인식에 사로잡혀 있는 정당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개혁’을 ‘진보’로 바꾸었을 뿐 실제 나타나는 발상과 행태는 기존 자유주의 정당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동당의 트레이드마크이며, 오직 진보정당만이 실천할 수 있는 진성당원제를 폐지하고 ‘개방형경선제’를 채택하는 것에 대해 많은 지지, 후원자들, 특히 잠재적 층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민주노동당이 결국 기성의 정당과 크게 다르지 않은 길을 가는, 별 수 없는 정당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조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들끼리 다 해 처먹겠다는 짓이군.”이라는 말로 ‘개방형경선제’의 기저에 흐르는 엘리트민주주의 발상을 인지하는 날카로운 우려의 비판들을 그냥 냉소로만, 기우로만 보아 넘길 수 있는가.

당원 지지자 확대운동의 다른 이름

이런 맥락에서 수구정당 내지 자유주의 정당 또한 쾌재를 부르고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민주노동당의 정책을 허가 없이 자주 무단으로 도용해 대중의 비판을 받았던 그들이 내심 환호하는 것은 그 진위 여부를 떠나 민주노동당에 ‘국민경선제’를 수출했다는 자부심 때문만은 아니다.

그 저류에는 바로 그들이 추구하는 ‘엘리트민주주의의 수출’을 통한 적지 않은 ‘계급 정치적 승리’라는 그들 나름의 판단이 자리 잡고 있다. 그 동안 민주주의에 대해 비타협적인, 확고한 태도를 보였던 민주노동당 또한 선거를 앞둔 ‘표심’ 앞에서는 별 수 없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에게 좀 더 실용적이고 유연하게 행동할 것을 요구해 왔던 이들은 민주노동당이 기성화되어 가는 것에, 그리하여 자신들과의 본질적 차별성이 점차 희미해져가는 것에 대해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거기에는 원칙을 소중히 여기며 어려운 길을 걸을 때 그들이 내심 품었을 수도 있을 마음 속 ‘두려움과 존경’은 없다.

결국 어떤 미사여구를 붙여도 ‘개방형경선제’는 지지자 내지 후원자의 획기적 조직화를 목표로 하는 이른바 ‘당원 및 지지자 확대운동’에 다름 아니다. 물론 대통령선거라는 중요한 이벤트를 매개로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개방형경선제’를 말하기 이전에, 그것이 더 많은 표를 가져올지 여부를 논의하기에 앞서 다시 한번 숙고해야 할 문제가 있다. 민주노동당의 무엇이 보수정당과 그렇게 다르기에 지지하고 후원해야 하는가. 좀 더 구체적으로 이 정당에서 과연 당원은 어떤 지위를 갖는 것인가.

민주주의 확장인가, 이벤트 대상화인가

   
▲ 지난 2002년 4월 6일 민주당 대선후보 국민경선 인천 선거인단 대회(사진 위).
노무현 후보가 지난 6일 인천 경선이 끝난 직후 언론발언과 관련해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사진=미디어오늘)
 

이 문제에 대해 민주노동당은, 아니 진보정당으로서 민주노동당은 납득할만한 설명을 해야 한다. 이 경우 ‘개방형경선제’가 폭넓은 대중을 참여시키는 민주주의의 확장인지, 아니면 내용적으로 당원을, 나아가 대중을 이벤트 속에 대상화시키는, 그리하여 민주주의를 또 다른 형식의 ‘페이퍼 스톤’(paper stone)으로 전락시키는, 이제는 너무도 익숙하여 무감각해진 또 다른 보수적 정치기제의 작동인지를 말이다.

기우에서이지만, 대중참여의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내용과 형식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다시 한번 확언하건데, 그것은 진성당원제와 대립하거나 치환될 수 있는 것이 아닌 다른 차원의 문제이며 이벤트성의 기획으로 성취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미 그것은 민주주의를 외치며 한때 성가를 구가하던 시민운동의 경험과 현주소가 반면교사로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개방형경선제’를 위해, 그것도 객관성이 빈곤한 기준을 가지고 선거인단의 모집, 관리에 그나마 어려운 당의 인적, 물적 자원과 역량을 소진하는 것은 적절한 대선방침이라고 할 수 없다.

지금부터라도 다양한 연대활동을 동반한 정치사업, 현장에서의 투쟁, 지역활동을 통해 당원에게 자부심을 심어주고 주변의 잠재적 지지, 후원자에게 다가가 보수정당들처럼 그들을 대상화시키지 않을 정당이라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항상 어려운 자리에, 고통의 자리에 민주노동당이 있음을 잊지 말도록 혼신의 노력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진정 대중참여를,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진보정당의 모습 아닌가. 이렇게 될 때, 요즘 회자되는 ‘백년정당’이 가능한 것 아니겠는가. 보수정당에게는 꿈인 그 백년정당을 진보정당이 먼저 이룰 수 있는 것 아닌가.

보수와 날을 세워야할 때 따라가선 안돼 

이제 채 몇 년도 되지 않은 걸음마 단계의 어린 민주노동당이, 그것도 중앙위원회라는 막중한 책임단위가 그 발상과 행태에서 보수정당과는 다른 내용과 형식의 첨예한 날을 세우기보다 그들을 따라가는, 민주주의의 원칙에 어긋나는 ‘개방형경선제’ 도입에 미사여구를 붙여 합리화시키는 것을 보면서 곤혹스러운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자유주의정당의 지지율과 부침을 함께 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서구 진보정당의 초기 역사가 보여주듯 이러한 발상과 행태는 결코 득표율의 제고에도 도움이 안된다. 오히려 진보정당으로서의 성격과 괄목할 만한 득표 획득이라는 두 마리 토끼 모두를 잃게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하지만 아직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문제를 지니고 있는 ‘개방형경선제’의 도입이 최종 결정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당대회가 남아 있다. 거기에서 어떤 식으로든 결정되겠지만, 그 이전에 더 많은 숙고와 논의가 있기를 기대한다.

직접적으로는 민주노동당의 운영 및 결정과 관련된 당원의 지위 문제와 연관된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사회에서 진보정당, 진보운동이 담지하고 있는 민주주의의 현주소가 어디인지를, 나아가 향후 그들의 정치적 행보가 어디로 갈 것인지를 예측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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