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쟁이 삶이 된 이들의 '삶과 투쟁'
        2007년 02월 15일 02:0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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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 연휴를 사흘 앞둔 13일 저녁 6시 서울 영등포의 한 허름한 술집에서 비정규직 투쟁의 상징인 하이닉스, 기륭전자, KTX 조합원이 술잔을 마주잡았다. 창밖에는 바람이 거세게 불고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길거리로 쫓겨난 지 얼마나 됐냐는 물음에 정확히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100일, 200일까지는 기억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잊어버렸다. 아니,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비정규직 3사 중에서 KTX 승무원이 가장 ‘쫄따구’로 350일째 싸우고 있다. 2005년 8월 공장에서 쫓겨난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은 540일로 두 번째 겨울을 보내고 있다. 2004년 12월 25일 직장폐쇄로 10년 넘게 일하던 공장에서 쫓겨난 하이닉스매그나칩 하청노동자들은 ‘최고참’으로 자그마치 780일이다. 모두 합치면 4년 8개월, 1,650일이다.

    KTX 승무원들은 민족의 명절인 설날을 길거리에서 보낸다. 기륭전자는 벌써 두 번째고, 하이닉스는 공장 앞에서 차롓상을 차리는 게 세 번째다. ‘지긋지긋하다’는 말도, ‘끈질기다’는 말도, 그 어떤 단어도 이 기나긴 고통의 시간을 설명해주지 못한다.

    맛있는 거 시키라고 하자 기륭전자 윤종희 조합원이 맥주와 훈제치킨, 그리고 닭도리탕을 주문했다. 하이닉스 하청지회 이세규 교육부장(35)이 “우리 조합원들은 라면 먹고 있는데 나만 맛있는 거 먹으면 미안하잖아요”라고 말한다. 그는 8명의 조합원들과 서울에 올라와 금속노조 사무실에서 먹고자면서 하이닉스 채권단 은행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중이다.

    “투쟁의 힘은 먹는 거다. 먹는 거 아끼지 말자”

    윤종희(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조합원, 37) 기륭이 유명하잖아요. 먹는 거 아끼지 말자. 투쟁의 힘이 먹는 거다. 안 먹으면 못 싸운다. 이런 신조로 살아요. 삼겹살도 장난 아니게 먹어요.

    민세원(철도노조 KTX여승무원지부장, 34) 저희 승무원들도 못 말려요.

    윤종희 우리 조합원들 민주노총 위원장 이취임식 때 조금 늦게 갔는데 마치 우리가 돈 낸 것처럼 먹었어요. 고기를 배터지게 먹고도 냉면을 꼭 먹어요. 근데 우리만 먹은 게 아니라 KTX도 그렇게 먹었다고 하더라구요. (웃음)

    우리 조합원들 초기에 돈도 없고 상황도 어려우니까 잘 안 먹었어요. 2005년 8월 55일간 현장점거하고 있을 때 굶거나 김밥에 라면이나 먹거나 그랬죠. 근데 이젠 안 그래요.

    작년에 비정규직들이 9박 10일 공동투쟁 했었잖아요. 한명숙 국무총리 집 앞에서 한국합섬 동지들이 요리를 했는데 정말 맛있었거든요. 근데 KTX 동지들이 안 먹는 거예요. 우리가 노숙자냐면서. 그래서 속으로 생각했죠. 아직 정신을 못차렸다고.

    민세원 철딱서니가 많이 없었죠.

    윤종희 기륭전자도 KTX하고 비슷한 나이의 ‘아가씨’들이 많잖아요. 근데 KTX 동지들이 경계하고 많이 못 섞이는 것 같았어요. 공장에 다녔던 사람하고 대학 나와 어렵게 공채로 들어간 사람하고 차이가 있었던 것 같더라구요. 근데 최근에는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사람들이 이제 노동자의 모습이 보인다고 하더라구요.

    “1년 싸워도 제대로 못 싸우면 불량감자 돼요”

    민세원 1년 가까이 싸웠는데 과연 노동자 계급의식을 갖고 있는 건가 그런 고민이 돼요. 제대로 의식을 갖추면 투쟁이 실패하든 성공하든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불량감자가 안 나오는데 복직만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그런 걱정이 돼요. 그래서 많이 발전하고 성장했는데도 항상 아쉬운 게 있는 것 같아요. 계속 노력을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간부들이나 조합원들은 많이 지쳐있는데 저는 새해 들어서 수배생활을 끝내고 대외활동을 시작했잖아요. 조합원들 ‘언니만 3월 1일이다’ ‘혼자 1년 전이다’ ‘혼자 신났다’고 얘기해요. 우리는 에너지가 다 고갈되었는데 혼자 그런다고. 작년에 못한 부분을 많이 채우려고 해요. 외부에 있는 동지들과 연대사업도 잘 하려고 하구요.

    윤종희 그런 에너지를 나눠주면 되죠. 다행이네요. 한 명이라도 에너지가 남아있으면.

    민세원 그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이세규 우리도 지회장이 1년 살고 나왔어요. 조합원들을 1년 전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한참 싸울 때를 생각하니까. 조합원들 많이 지쳤는데 지회장이 나와서 활기차게 활동하니까 좋은 것 같아요. 조합원들이 믿고 갈 수 있는 부분이 있으니까.

    민세원 9개월 반 동안 못 움직이다가 움직이니까 스트레스가 안 싸여요. 매일매일 즐겁고. 물론 정치적인 판단을 해야 하니까 머리가 아프죠. 우리은행 사례를 대대적으로 키우는 걸 보면 앞으로 예상하고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은 것 같구요. 이철 사장도 철도노조 집행부가 바뀌어서 교섭도 해야 할 테고. KTX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해결에 포함되어서 해결되지 않으면 시간이 길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에요.

    윤종희 요즘 뭐해요?

    민세원 새마을호 승무원들이 노조에서 농성하고 있고, 우리는 서울역 바깥에서 나팔차로 방송하고 퇴진 서명 받고 집회하고, 공개토론회 하고, 사실 공세적이기보다는 유지하는 차원의 활동을 하고 있어요.

    설 연휴 끝나고 나서 판단해봐야 할 것 같아요. 내일 보자고 해서 만나기로 했어요. 떠보기만 할 것 같은데, 새마을호 여승무원들도 포기하지 않고 싸우고 있어서 설 끝나고 나면 철도공사도 어떻게든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거예요. 자존심 안 구기고 해결할 방법을 찾고 있겠죠.

    이세규 하이닉스 우의제 사장이 이천공장 유치 안되면 중국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충청권으로 확정되면서 입지가 좁아져 사의를 표명했어요. 겉으로는 후임자를 위해서 그랬다는데 정치적 압박으로 그런 것 같아요.

    윤종희 대표이사가 바뀌면 변화가 생기겠네요.

    이세규 회사 내부 인물 중에 생기겠죠. 2~3명이 물망에 오르고 있고, 3월 주주총회도 예정되어 있어요. 그래서 1인 시위 하고 있죠.

    “투쟁 오래되면 초등학생처럼 되는 것 같아요”

    먹는 얘기를 좀 하나 했더니 어느새 다시 ‘공장’ 얘기로 빠져들었다. 좀 가벼운 얘기를 더 하고 싶어서 술 얘기로 화제를 돌렸다.

    민세원 술 마시면 금방 빨개지지만 오래 마실 수 있어요. 몸에서는 안 받는데 좋아서 먹는, 안 좋은 사례죠. 스트레스 받고 미쳐버릴 것 같으면 술이 땡겨요. 그것도 밤에.

    조합원이 380명 있을 때나 280명 있을 때나 80명 있을 때나 비슷비슷한 것 같아요. 단체생활 오래 하다 보니까 우리가 초등학생이 되가는 것 같아요.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을 때 혼자서 먹을 때도 있죠. 혼자 마시면 캔 하나 마셔도 벌개져서 취해요.

       
     ▲ 윤종희(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조합원, 37)
     

    윤종희 오래되면 초등학생화 되어서 그런 게 아니고, 집에서도 가족끼리는 쉽게 얘기하고 상처를 주는 것처럼, 평소에 항상 같이 있고 너무 잘 알아서 상처도 많이 주고 그러는 것 같아요.

    민세원 그런 것도 있지만 이런 거 없으세요? 누구는 주어진 일정과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는데 누구는 뺀질거리고 안 아픈데 아프다고 하고 맨날 놀러가는 것 같고. 한마디로 얄미운 거죠.

    윤종희 감정의 골이 생기죠.

    민세원 피해의식이 생기고 자기 고통이 제일 큰 것 같고 배려를 못하고 이해를 못하는 것 같아요. 파업 초기에는 별 문제가 없다가 지금은 그런 것 같아요.

    이세규 조합원들은 간부들이 고생하는 걸 알면서도 안 보이면 논다고 생각하고, 새벽에 집에 들어가는 거 알면서도 안 보인다고 불만 토로하고 그러죠.

    민세원 저도 수배되고 있을 때도 빽빽하게 일을 했지만 같이 경험하고 같이 경찰이랑 대치해보고 추운 데 농성해보고 그러지 못해서 무늬만 지부장 아닌가 이런 회의도 많았어요. 조합원들은 간부들에게 동질감을 원하는 것 같아요.

    이세규 투쟁이 길어지면서 자신을 중심에 놓고 생각하면 동지애가 상실되는 거잖아요. 남들하고 얘기할 때는 내가 제일 힘든 게 되어버리고 나랑 같이 안하면 나쁜 놈이 되고.

    윤종희 저는 간부들이 진짜 고생하는지 안하는지 조합원들이 가장 정확하게 판단한다는 걸 느껴요.

    이세규 그걸 격하게 표출하는 조합원들이 있는 거죠.

    윤종희 출근투쟁 나왔다가 싸워서 울면서 가버리기도 하죠.

    이세규 우리는 20대 초반부터 50대까지 조합원들이 있어요. 동생들하고 형님하고 막말이 오가는 상황까지 가기도 했다가 서로 미안하다고 화해하고. 우리는 다 남자밖에 없어서 그래요.

    장기투쟁의 고통과 아픔들

    윤종희 장기투쟁하면 진짜 정신질환 생기겠어요.

    민세원 그 부분 때문에 용서를 못하겠어요. 우리 조합원들 긴 시간 동안 정신질환과 신체질환이 많이 생겨서 용서가 안 된다. 그래서 보상까지 받아야겠어요. 몸 힘들도 마음 힘들고. 정말.

    윤종희 아픈 거 다 투쟁으로 인한 산재 줘서 정말 보상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심리상담도 받고 그랬는데 투쟁 오래하면 불안하고 스트레스 엄청나죠. 가족들하고도 트러블도 생기고.

    이세규 큰애가 다섯 살이고 작은 애는 이제 돌잔치 했어요. 큰애가 높은 데만 보면 올라가서 ‘투쟁’ 하고 외쳐요. 얼마 전에는 싸우다가 머리를 다쳐 여덟 바늘 꿰맸는데 비디오로 피 흘리는 걸 찍었거든요. 근데 애가 그걸 봤어요. 그리고는 “경찰 때려죽이겠다”고 하는 거예요. 정말 속상했어요.

    윤종희 애들이 공포스러워해요. 코오롱에서도 애들이 아빠 연행돼가는 모습 보면서 경찰 다 죽여버리고 싶다고 했대요. 그래서 판사가 애들 돌보라고 내보내줬다는 얘길 들었어요.

    장기투쟁에는 가슴아프고 속상한 얘기만 있는 건 아니다. 지난 해 12월 <레디앙>에 ‘연대투쟁은 사랑을 싣고’라는 기사로 연대하면서 만난 기륭전자 조합원 두 명의 결혼 얘기가 실렸었다. 자연스럽게 결혼 얘기로 옮아갔다.

    기륭 42살 언니까지 세 명이 결혼하다

    민세원 우리 조합원 한 명이 경찰과 3월 3일 결혼을 해요. 파업하기 전에 소개로 만났는데 파업하면서 남자친구가 출동해 서로 대치하는 상황도 있었대요. 서로 “내 눈에 띠지 말라”고 그러면서 연애를 계속 했는데 남자친구가 불만을 많이 들어주고 그래서 결국 결혼까지 가게 됐어요. 경찰 조사 받다가 연애한 조합원도 있었는데 파업대오에서 이탈해 나갔어요.

    윤종희 기륭이 결혼 잘 이뤄지기로 유명해요. <레디앙>의 ‘연대투쟁은 사랑을 싣고’ 기사에 난 것처럼 두 쌍이 결혼했어요. 한 명은 신한발브 조합원이었고 한 명은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조합원이었어요. 둘 다 연대투쟁 하다가 눈이 맞았죠.

    근데 현대하이스코는 순천이잖아요. 결혼하기 전에는 서울에 집 마련해서 활동할 수 있게 한다고 하더니 임신하니까 방 빼서 순천으로 데리고 갔어요. 그래서 분회장이 지침을 내렸죠. 투쟁 끝날 때까지 연애 못한다고.

    이세규 하이닉스도 반이 총각인데 아직 한 쌍도 연결이 안 됐어요. 하이스코보다 거리도 가까우니까 예외로 해줘요. 조합원 데려가지 않을 테니까. (웃음)

    윤종희 안돼요. 일단 연애하면 여자들이 무조건 불리해요. 투쟁 끝날 때까지 눈도 마주치지 말라고 했어요.(웃음) 근데 이번에 42살 언니가 결혼해요. 거기는 남자가 우리 지역이고 항상 연대하러 오니까 예외로 인정해줬죠. 민주노동당 활동을 하는 분이예요.

    민세원 와, 진짜로 축하할 일이네요. 

    “우리는 투쟁 중에 애들이 많이 생겼어요”

    이세규 우리는 투쟁 중에 애들이 많이 생겼어요. 투쟁하다 새벽에 들어가니까. (웃음)

    윤종희 하이닉스 투쟁이 길어진 이유가 다 있었네요. (웃음)

    이세규 아니 그게 아니고…

    민세원 그런 에너지 있으면 투쟁하는 데 써야죠.

    이세규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요?

    민세원 아니요. 농담이예요.(웃음)

    이세규 애가 생긴 집이 많은 건 아니구요, 한 대 여섯명 되는 것 같아요. 아이를 위해서라도 투쟁을 빨리 승리로 끝내야겠다고 다짐하죠.

    민세원 스트레스 더 받는 거 아닌가요?

    이세규 애를 보면서 웃게 되고 스트레스도 풀리고 그래요.

    윤종희 우유값도 없는데 스트레스 더 받지요.

    이세규 애도 눈치가 있으니까 뭐 사달라는 말을 잘 안하는데, 다른 애들하고 비교할 땐 좀 마음이 아프죠. 애가 뭔 잘못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니까. 애한테는 학교 들어가면 해준다고 약속해요.

    민세원 우리는 대부분 미혼이잖아요. 근데 부모님이 경제력이 없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왜 이렇게 부모님이 다 편찮으신지. 20대인데도 생계문제가 힘든데 하물며 결혼한 남자는 어떻게 투쟁을 이어나가는지 대단하단 생각이 들어요.

    전기 수도 끊기고, 압류되고, 말로 할 수 없는 어려움들

       
     ▲ 하이닉스 하청지회 이세규 교육부장(35)
     

    이세규 우리가 투쟁기금으로 받는 게 30~40만원이예요. 다른 조합원들은 낮에는 투쟁하고 야간에 주유소나 택배회사에서 일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어요. 근데 저는 전에 몸을 다친 적이 있어서 택배 하루 나가서 5만8천원 갖다주고 일주일을 앓아누웠어요. 아내가 돈 걱정 하지 말고 싸우라고 했어요. 가족들 형제들에게 빌려서 버티고 그랬죠. 장가를 잘 갔어요.

    윤종희 진짜 장가 잘갔네요.

    이세규 아내는 일을 계속 다녔어요. 낮에는 애 보고 밤에는 빵집, 산후조리원 알바 하고 피곤한데도 내색도 안하고.

    민세원 진짜 훌륭하네요.

    이세규 우리 조합원들 집회나 투쟁 때문에 주말에도 일을 못하니까 아내가 주말에 일을 나가서 돈을 벌어와요. 대부분이 그렇게 살고 있어요.

    윤종희 가정이 파탄난 상황이네요.

    이세규 이혼상황까지 간 조합원도 있었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한 조합원은 집에다 2년만 싸우고 그만두겠다고 약속하고, 하루도 안 빠지고 나왔어요. 근데 약속했던 시간이 지나서 이제 안 나와요. 서로 연락은 하고 있지만 정말 가슴 아프죠. 대부분은 아내가 남편을 믿고 따라줘서 버티고 있어요.

    윤종희 저도 상당히 어려워요. 남편이 한국타이어 다니다가 IMF 터지면서 미용사 일을 배웠어요. 1년은 한푼도 못 받았고, 이후에는 30~40만원 받으면서 3년을 보냈어요. 그리고 가족들에게 돈을 빌려서 미용실을 차렸고 벌써 이 일을 한 지 8년 정도 됐는데 직원들 월급 주고 나면 50만원 가져와요.

    지난 번에 집에 갔는데 전기가 안 들어오는 거예요. 정전됐나보네 했는데 다른 집은 불이 켜져있고. 밖에 나갔더니 전기공급 중단 예고통지서가 붙어 있었어요. 돈 생각하면 이 투쟁을 지속할 수가 없죠. 이걸 망각하고 살아야죠.

    갑자기 남자 성토대회로 바뀌다

    민세원 저도 결혼했는데 애기는 없어요. 애기가 있으면 힘들지 않았을까 싶어요. 투쟁하면서 여성학에 대해 관심이 생기더라구요. 집안일에 대해 남자는 도와주고, 여자가 다 해야 한다고 하잖아요.

    윤종희 남자들은 도와준다며 선심 쓰듯이 얘기하죠. 같이 직장생활하면 가정이 공동의 생활공간이고 공동분담해야 하는데. 사회의 문제인 것 같아요.

    민세원 노조 하면서 문제의식을 많이 느꼈어요. 여자들은 밖에서 일하다 집에 오면 또 노가다를 해야죠. 꼭 돈을 버는 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사회활동을 하면 서로 분담해서 해야 하는데.

    윤종희 우리가 직장에서 사회에서 불합리한 것과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정 내에서도 끊임없이 싸워서 가정의 민주화를 이뤄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당하고 있는 사람이 권리를 찾는 거죠. 한 순간에 바뀌는 것이 아니겠죠.

    이세규 결혼 전에는 아내를 많이 도와줬는데 투쟁하면서 줄어들었어요. 새벽에 들어가니까 애 재우거나 청소하는 것 정도를 해주고 있어요.

    윤종희 거 봐요. 도와준다고 하잖아요. 언어에서 정서가 나타난다니까요. 애 재우고, 설거지하고 밥하고 빨래하고 이건 서로가 분담해서 해야 할 부분이에요.

    이세규 집사람에게 해달라고 해서 안해주면 내가 해서 먹어요.

    윤종희 남자는 해주는 거 먹어야 하는 거다, 배려를 받아야 하는 입장이라는 의식이 배어있는 거예요. 우리가 보고 배우고 자란 게 그것이었죠. 저도 초등학교 6학년과 7살짜리 둘이 있어요. 연대투쟁 다니니까 늦게 집에 들어가요. 남편은 하숙집이냐고 하는데, 아침에 밥이 없으면 밥을 해놓고 나와야 하고, 모처럼 휴일이 생기면 그 때부터 청소하고 빨래하고 그러면 잠잘 때가 돼요.

    그래도 아직 일할 게 남아 있으면 갑자기 스트레스가 몰려와요. 너는 니가 좋아서 하는 일이고 우리한테는 피해를 준다고 얘기하는데 너무 힘들죠. 우리 50이 넘은 아주머니들 금속노조가 3개월 동안 금속최저임금인 83만원을 지원하기로 했는데도 결합을 못해요. 허리병이 심각하게 와서 앉지도 못하니까.

    민세원 여성들이 신체적으로 남자들보다 약해서 허리나 관절에 병이 있거나 산부인과적 질환이 당연하게 생기더라구요. 수술받은 사람도 있고. 심신의 병을 준 것에 대해서는 정말 용납이 안되요.

    윤종희 우리 아줌마들 반드시 보상받자 그랬는데. 인혁당 보상 받으면 뭐할 거예요. 죽은 사람 살려내면 보상이 되겠지만. 우리 투쟁하는 노동자들 당하는 현실이 같은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두 여성들은 연거푸 술잔을 비우며 남자들을 맹렬히 성토했다. 말한 그대로 다 옮기기 힘들 정도로. 90년대 초 박노해 시인의 ‘이불홑청을 꿰매면서’라는 시가 떠올랐다. 20년이 지났는데 참 바뀌지 않았다.

    여성들의 맹렬한 분노와 비판을 받고 있던 이세규 부장이 “상급단체가 똑바로 했으면 이런 거 안 생겼죠”라며 화제를 돌렸다. 이 때부터 상급단체에 대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원망과 분노가 쏟아졌다.

    이제는 상급단체 성토대회

    윤종희 회사가 다 해고시킨다고 했을 때 우리는 세상과 격리된 채 공장점거농성을 55일간 했어요. 근데 상급단체에서 단 한차례도 회사와 면담을 하지 않았죠. 가장 빨리 불법파견 판정을 받아서 명분도 좋았어요. 금속노조나 민주노총이 하이닉스나 하이스코처럼 투쟁했으면 우리는 이미 해결됐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이스코는 광주전남 지역 전체가 나서서 싸워 승리를 만들었고, 하이닉스는 금속노조 전체가 집중해서 싸웠죠. 기륭은 집회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어요.

    작년 5월 노조설립 1년을 맞으면서 간부들이 단식을 했고, 처음으로 금속노조 이름으로 집회를 했어요. 금속노조를 움직이려면 단식이 필요하다고 해서 한 거에요. 조합원들 1년 맞으면 힘들기 때문이었죠. 근데도 금속노조 간부들보다 장기투쟁 사업장이 더 많이 왔어요.

    하이스코는 기륭 보면서 답답하다고 그래요. 1천명이 모인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고 얘기하는데 우리 조합원들은 500명만 모여도 너무 좋다고 해요. 비정규직 문제 사회적 문제잖아요. 금속노조, 민주노총이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거 다들 알고 있어요. 이 투쟁을 금속노조가 어떻게 책임지고 갈 것이냐인데.

    우리는 인원이 적으니까 금속노조 대의원을 한 명도 낼 수 없어요. 우리 얘길 전달할 수 있는 통로가 없는 거죠. 그래서 투쟁할당제라고 해서 투쟁하고 있는 사업장은 한 명이라도 배정해달라고, 장기투쟁 사업장의 목소리를 대의원들이 들을 수 있게끔 해달라는 거예요.

    민세원 투쟁할당제 좋네요.

    윤종희 진짜 해결할 의지가 있다면 민주노총 전체 조합원이 우리 문제로 안고 갈 수 있다는 결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금속노조는 노조-지부-지회의 체계인데 우리는 분회에요. 분회는 회의체계도 아니어서 얘기할 구조가 안돼요. 오히려 기업별 투쟁할 때보다 더 힘들다는 얘기도 있어요. 산별이란 게 힘이 넓어질 것이라고 했는데, 형식적인 것으로만 되어 가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민세원 저도 산별이라는 게 투쟁하려는 노동자들의 권한은 축소시키고 간부들의 권한을 확대시키면 안된다고 봐요.

    금속노조 막강한데 왜 해결 안돼나

    윤종희 물론 다른 연맹의 투쟁사업장들은 금속을 막강하다고 하죠.

    민세원 막강해요? 근데 왜 해결이 안돼요?

    윤종희 올바른 산별노조는 아직 아무 것도 없잖아요. 이것을 누가 할 것이냐, 열심히 투쟁하고 있고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우리부터 진정한 산별노조를 만들어가야죠. 위에서부터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작은 노력들이 산별을 만들어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제 막 시작인데 이런 것들이 다양하게 논의되고 토론되면서 만들어가면 된다고 봐요.

    장기투쟁사업장 생계문제가 심각한데 민주노총 조합원들 매달 1천원씩만 내면 다 먹여살리고도 남잖아요. 근데 50억 기금 모금도 안됐어요. 비정규직 투쟁을 내 투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죠. 남의 일이라고 바라보는 거예요. 비정규직들이 나서서 우리 문제를 같이 알려내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우리만 싸우면 해결될 수 없다는 생각해요. 작년 하이스코 동지들이 양재동 120m 크레인에 올라갔을 때 우리가 제일 먼저 달려가서 울면서 그 자리에 있었어요. 내 거점만을 지킨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비정규직 문제는 사회적 문제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민세원 해결되지 않은 이유가 뭘까요?

    윤종희 기륭을 해결하는 순간 전체가 다 바뀌는 거예요. KTX가 공공부문의 선례가 되는 것처럼. 정부와 자본의 입장에서 그렇죠. 그래서 뭉쳐서 싸워서 하는 거죠. 노동부장관 집도 찾아가고, 면담도 요구하고 같이 투쟁을 해보자는 거예요.

    민세원 상급단체는 기존 정규직 노조에 의해 움직이는 곳이죠. 정규직 조합원 비위 상하면 안될 것 같고, 그래서 파업 하다가 KTX 여승무원만 남겨두고 끝내고, 임금인상 때도 KTX  버리고. 그게 현실인가 싶어요. 민주노총 대부분이 정규직인데 거기에 맞추다보니까 비정규직은 제낄 수밖에 없고.

    상급단체는 기존 정규직 노조에 의해 움직이는 곳이죠. 정규직 조합원 비위 상하면 안될 것 같고, 그래서 파업 하다가 KTX 여승무원만 남겨두고 끝내고, 임금인상 때도 KTX  버리고. 그게 현실인가 싶어요. 민주노총 대부분이 정규직인데 거기에 맞추다보니까 비정규직은 제낄 수밖에 없고.

    노동자가 하나라고 외치지만 하나가 아니라는 걸 계속 느끼고 있어요. 비정규직이 정규직의 문제라는 걸 공감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죠.

    집행부를 탓하기 전에 전체 노동자가 바뀌어야 해요. 집행부도 중심이 선 집행부가 되어야 하고.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하나가 돼야 한다는 게 민주노총 지도부가 해야 할 사업이라고 생각해요. 필요하다면 우리들이 같이 다니면서 해야겠죠.

    윤종희 우리만큼 우리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없어요. 하이닉스 동지들이 요구해서 금속노조도 영구적립금을 털어 비정규직 생계비를 지원하게 됐어요. 정규직 동지들이 자기 밥그릇 지키려는 것도 있지만 비정규직을 외면할 수 없는 게 있고, 노동조합이 양심이 있기 때문에 가장 빠른 길이라고 생각해요.

    “보여주기식 일회성 집회는 아무 도움 안돼”

    이세규 전술적인 부분에서 미스가 많았던 것 같아요. 오히려 우리나 하이스코 같은 투쟁이 기륭한테 갔으면 빨리 끝났을 것이고, 우리는 1~2천명이 계란이나 던지고 가두행진을 하는 건 도움이 별로 안돼요. 실천할 수 있는 투쟁이 배치되어야 회사가 느끼는 압박이 크죠. 규모있는 집회도 10여차례 이상 했는데 보여주는 일회성 집회가 대부분이었어요.

    총연맹 차원에서 보면 다 지원을 하는 것도 좋지만 어느 하나를 선택해서 집중적인 지원을 통해서 이길 수 있는 싸움을 만들어 선례를 남긴다면 좋을 것 같아요. 선례가 생기면 자본도 버티는 게 쉽지 않겠죠.

    윤종희 레이크엔사이크 CC 사업장 연대투쟁을 갔을 때 손가락 짤리고 실명위기까지 갔는데 그걸 뚫고 들어가서 교섭 물꼬가 트였어요. 내 사업장 해결해달라는 게 아니라 어느 사업장이든 승리하는 걸 만들어줬으면 좋겠어요. 제네들 힘은 위력적이구나 그걸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는 거죠.

    이세규 자본은 연대의 힘이 더 잘 되고, 노동자들은 결정적 순간에 잘 안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산별노조로 더 크게 늘어났지만 내부적으로 단결이 안되면 걱정이죠. 내 차례가 밀리더라도 이길 수 있다면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서 선례를 만드는 건 중요한 것 같아요.

    닭도리탕과 공기밥이 나왔다. 맥주 500을 서너잔씩 들이켰는데도 모두 밥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술자리 좌담’ 시작할 때 얘기했던 것처럼 다들 잘 먹었다. 먹어야 싸우고 잘 먹고 잘 싸워서 꼭 정든 일터로 돌아가겠다는 마음이 밥 풀 하나 남지 않은 밥그릇에 담겨있는 것 같았다.

    “경찰과 법이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고 30년 넘게 믿었는데”

    윤종희 항공사 스튜어디스 했던 사람이 KTX에 많이 왔다는 뉴스를 봤는데 그게 민 지부장이었네요?

       
     ▲ 민세원(철도노조 KTX여승무원지부장, 34)
     

    민세원 철도공사가 항공사 출신이 수십명이 몰렸다고 그랬어요. 근데 KTX 개통하고 3월까지 계속 저한테만 언론사 인터뷰를 시키는 거예요. 알고봤더니 저밖에 없었어요. 잘 이용당했죠. 사실 이 싸움 하기 전에는 사회정치적 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아버지 사업 망해서 돈 벌려고 항공사 들어갔고, KTX에도 오게 됐죠.

    근데 여기서 너무나 노골적인 착취가 이뤄지니까 상식 선에서 싸움을 시작했어요. 하청은 아무 권한이 없고 알고 보니 원청 문제였고, 알고 보니 정부 문제였어요. 처음에는 쉽게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알면 알수록 정말 힘들었어요. 용역깡패나 경찰도 충격이었죠. 경찰과 법이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고 30년 넘게 믿고 살아왔는데.

    그 분노가 너무나 큰 것 같아요. 이렇게 올인하고 노력해도 안되면 이 더러운 나라 떠나야 겠다는 생각까지 들지만 그것도 어려운 일이고. 유신정권이니 독재정권이니 이런 시대보다 더 끔찍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윤종희 단병호 의원실에서 설문조사를 한 적 있는데 10년 동안 임금을 쓰라고 하더라구요. 근데 다 정규직이었다가 비정규직이 되었는데 10년 전의 임금하고 지금하고 똑같거나 줄어들었어요. 그거 보면서 진짜 우울해지더라구요.

    이세규 저도 처음 들어왔을 때 2천3백 받았는데 10년 지나서 2천 넘는 사람이 없었어요. 최저임금 인상으로 기본급이 올라가면 그걸 수당으로 메꾸면서 오히려 임금이 줄어든 거죠.

    윤종희 기륭은 64만원 받고 살았고 개․돼지 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죠. 그 분노를 참지 못했어요. 여기서 지면 어디 가서 살 수도 없겠다 싶었죠.

    “3~4일이면 끝날 줄 알았어요”

    민세원 두 달이면 끝나겠지 다 그렇게 얘기했는데.

    이세규 우리는 3~4일이면 끝날 줄 알았어요. 생산 지원부서고 회사가 24시간 돌아가니까 우리가 파업하면 엄청난 생산손실을 입게 되거든요. 근데 너무 정석으로 했어요. 부분파업 먼저 하고, 전면파업하고. 회사가 준비를 했죠. 한방에 파업을 했으면 바로 끝날을 텐데.

    민세원 기회를 놓치고 나면 계속 길어지는 것 같아요. 강금실 선본 점거했을 때 해결하지 못하니까 9월까지 왔고, 불법파견 해결하지 못하니까 지금까지 왔고, 이제 공공부분 비정규직 대책에 포함되지 않으면 기약이 없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어요.

    이세규 그걸 기대하다가 안되면 더 실망감이 들어요. 우리가 그걸 두 번 세 번 겪다가보니까 길어지고 힘들어졌어요.

    정말 이제는 끝났으면 좋겠는데, 언제까지 이 싸움을 계속 해야 하나 싶었을까? 민세원 지부장은 술을 들이켰다. ‘최고참’ 하이닉스 이세규 부장과 기륭 윤종희 조합원은 조금 여유로웠다. 장기투쟁의 선후배가 술잔을 부딪히면서 서로를 위로했고, 취하기 시작했다.

    오랜 투쟁의 순간들 중에서 가장 힘들었을 때와 가장 기뻤을 때를 얘기해보기로 했다.

    가장 힘들었을 때와 가장 기뻤을 때

    이세규 우리 조합원들이 가족들까지 야유회를 한 적이 있었어요. 부인들이 서로 얘기하고, 애들까지 데리고 가서 물놀이 하고 그랬는데 정말 좋았죠. 그리고 투쟁 1년, 2년 됐을 때 투쟁문화제를 한 것도 기억에 남구요.

    민세원 100일도 아니고 1년, 2년이라니.

    이세규 경찰들과 싸우고 우리 조합원들이 다치고 그랬을 때가 가장 힘들었죠. 저는 사진을 찍으니까 밖에 많이 있었는데 우리 조합원들을 둘러싼 전투경찰들이 바퀴벌레로 보였어요. 같이 싸워야 하는데 못 싸우고 사진을 찍고 그럴 때 마음이 아팠죠.

    윤종희 그거 써먹을 데가 제일 많아요.

    민세원 그게 굉장히 중요한데 잘 안되더라구요.

    이세규 3년 싸운 게 사진이 6만장 정도 되요. 동영상도 100여개 되고, 영상작업하는 컴퓨터가 100기가인데도 부족하다니까요.

    윤종희 그게 역사예요. 잘 기록해둬요.

    이세규 2005년 8월 KBS하고 싸워서 열린채널에서 우리 얘기가 방영됐어요. 회사가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을 했는데 통과가 됐죠. 다른 사업장에서 교육자료로 쓴다고 달라고 하기도 하고.

    민세원 중고등학생들에게 투쟁영상을 방송하는 날이 올까요?

    윤종희 그런 날이 온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100명만 조직하면 끝난다고 했는데 10분간 200명이 노조에 가입했어요. 못생겼다고 짤리고 잡담으로 짤리고, 아파서 쓰러졌는데 병원에 입원시키고 해고시키고, 늘 해고의 공포에서 사는 노동자들의 분노였죠. 근데 이게 시작이고 모든 공장으로 확산되고 있어요.

    아이 낳았다고 500만원을 전달한 한 대학원생

    민세원 그거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어떻게 가능하냐는 거죠.

    윤종희 절망의 끝에 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싸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죽느냐 아니면 떨쳐일어나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기 때문이죠. 우리 조합원들 대개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어요. 우리는 할 수 있다. 이길 수 있다. 기륭투쟁 승리해서 금강산 여행가자. 정규직화 쟁취해서 금강산 여행가자. 이런 구호를 외쳤어요.

    얼마전 서울대 대학원생이 애를 낳았다면서 500만원을 가지고 왔어요. 우리 아이가 태어났는데 이 투쟁을 하는 게 우리 아이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하면서 전해줬어요. 이 투쟁이 그만큼 상징성이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우리끼리 싸우다 지쳐 포기하고 힘들고 그랬는데 많은 곳에서 이렇게 생각하고 있구나 싶었어요. 500일 넘게 갈 수 있었던 게 그거였죠.

    이세규 같이 싸우는 입장에서 남자들도 못하는데 여성 동지들이 그렇게 하는 걸 보면 정말 대단해요. 저는 조합원들에게 싸움을 즐기라고 얘기해요. 내 가족을 위해서 내 자신을 위해서 내가 즐기면서 해야지 끝까지 갈 수 있지, 남을 위해 한다면 어느 순간 그 사람 때문에 못하게 된다고 생각해요.

    민세원 저는 수배로 갇혀 있어서 조합원들하고 좀 다를텐데, 1년 가까이 싸워서 인권위 결정이 났을 때 정말 기뻤죠. 조합원들 너무 좋아했어요. 처음으로 얻어냈다는 게. 근데 그게 약발이 없어서 그렇죠. 개인적으로는 지난 12월 마지막주 금요일 수배 풀리고 나서 1년 만에 처음 집회 나갔을 때 좋아서 울었어요.

    조합원들 끌려나가고 연행되고 경찰서에 갇히고 그 충격과 고통으로 힘들어하고 있는데 나는 수배라고 지켜보기만 했을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또 380명 전 승무원이 소중하고 다 제자리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동영상을 보면서 예전에는 같이 구호를 외치고 있던 떠난 동지를 동지들이 보면서 정말 가슴이 아팠고 눈물이 났어요.

    한사람 한사람 기억이 나고. 그 친구들 투쟁을 포기하고 나간 이후에 어디를 전전하고 있을지, 후회하면서 살아갈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까 속상한 거죠.

    이세규 이걸 그만두고 나가서 잘되면 기분이 좋을텐데 그런 상황에 있는 사람 보면 마음이 아프죠.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윤종희 대우자동차 끝까지 싸워서 정리해고당한 노동자들은 다 복직했는데 스스로 싸움을 포기하고 명예퇴직한 사람들이 지금 GM대우를 상대로 싸우고 있다고 하더라구요. 현대자동차도 그랬고. 포기하면 끝이죠.

    “맨날 언론에 나는 KTX가 부럽다”

    하이닉스는 지금까지 11명이 구속됐고, 불구속으로 기소돼 집행유예를 받은 조합원이 70명이며 손배가압류가 80억이다. 기륭은 2명이 구속됐고, 54억 손배가압류를 맞았다. KTX는 연대투쟁을 했던 정규직 2명이 구속됐지만 비정규직은 아무도 구속되지 않았다. 3억 6천만원의 손배가압류만 있다. 더해 보니 세 사업장의 손배가압류가 138억이었다.

    많은 투쟁사업장들은 KTX 여승무원들을 부러워했다. 자기들은 죽어라 싸워도 언론에 나오지 않는데 KTX는 언론에 많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민세원 지부장은 “20대 여성들이 대부분이고, 언론이 선정적으로 다뤄서 KTX가 많아 언론에 나온 것 같다”면서 “주요 일간지에서는 삭발했다 점거했다 연행됐다 이런 것밖에 없었고 인터넷신문에서 주요하게 다뤄줬다”고 말했다.

    어쨌든 부러운 건 사실이다. 하이닉스 이세규 부장은 “하이닉스는 중앙 언론은 물론 광고를 꽉 잡고 있는 지역 언론에도 우리 투쟁은 실리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민세원 정규직인 철도노조도 우리에게 많은 도움이 됐어요. 지난 5월 15일 해고된 뒤 석달 동안은 실업급여로 살았고, 양말 재정사업으로 두 달 정도 살았고, 비정규직 기금과 CMS로 지금은 버티고 있죠.

    윤종희 정규직이 훌륭하게 지원했다고 생각해요. 코오롱이나 한국합섬 이런 동지들은 금속으로 가고 싶다고 얘기해요. 우리도 금속노조가 83만원씩 3개월 동안 생계비를 지원하고 있어 여러 가지로 큰 힘이 되고 있거든요.

    연대투쟁과 초심이 중요하다

    이세규 조합원들 이렇게 길어질 줄 알았으면 안했다고 얘기해요. 사실 억울해서 시작했고, 앞으로 생길 비정규직 사업장들 위해서라도 승리해야겠다고 버티고 있죠. KTX라도 빨리 끝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민세원 나이, 투쟁여건 모든 게 천차만별인데 차이를 극복하고 동지로 느낄 수 있다면, 비정규직이 비전과 희망이 있다면 좋겠어요. 끊임없이 긍정적인 면을 보려고 하지만 힘든 게 많아요. 오늘 자리는 매우 뜻있는 자리였어요. 그동안 대외활동을 못해 배울 기회도 없었는데 소중한 자리였다고 생각해요.

    윤종희 오늘 우리 조합원들 대우자동차판매와 우진에 연대투쟁을 했어요. 처음에는 우리도 사람 없는데 왜 가냐고 했죠. 근데 연대투쟁을 열심히 다니면서 어려움을 보고 함께 하고 "이 사람들과 하나구나" 이런 걸 보면서 바뀌었어요. 몸으로 부딪히면서 바뀐 거죠.

    민세원 처음 우리가 싸울 때 연대하는 동지들이 없어서 우리 조합원들 불만이 많았어요. 상처도 많이 받았구요. 내부에 폐쇄적인 분위기도 있었구요. 이제는 연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윤종희 기륭이 연대 참 잘 한다는 얘기 들어요. 싸울 곳이 여러 군데 있어도 다 보내니까. 그래서 우리 집회 한다고 하면 정말 많이 와요. 조합원들은 우리가 이렇게 발로 뛰었을 때 다른 동지들이 달려오는 거라고 느끼죠.

    이세규 저는 초심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왜 이 싸움을 했는지, 10년 15년 일하면서 내 스스로 느껴서 했기 때문에 시작했고, 결과가 어떻든지간에 우리가 초심을 지키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얘기를 조합원들과 같이 해요. 

    민세원 달별로 사진을 찍어놓고 그 때를 회고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변질되면 안되니까.

    이세규 내가 어려웠을 때 도와줬던 사람들 생각하면 포기하지 못하잖아요.

    6시 30분부터 시작한 술자리 대화가 밤 10시까지 이어졌다. 이세규 부장이 “오늘 자리 너무 좋은데 컴퓨터 끄고 본격적으로 한 잔 하면서 얘기하자”고 말했다. 한국사회 비정규직 투쟁의 상징인 노동자들의 ‘취중진담’을 더 기록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노트북을 내려놓고 술잔을 잡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통과 회한과 절망, 그리고 기대와 희망의 이야기들은 자리와 차수를 옮겨가며 새벽까지 계속 계속됐다.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 이날 비정규직 술자리 좌담에는 세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와 함께 공공연맹 이근원 조직실장이 함께 해 1차 술값 7만원을 쐈다. 그는 레디앙에 <속깊은 이야기>라는 인터뷰 꼭지를 맡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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