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일노동-동일임금,
    산업별 직무급 지향해야
    [기고] 연공급·직무급, 노조 개입력
        2022년 10월 20일 02:5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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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진보진영 내에서 논란과 토론이 심화되고 있는 임금체계, 직무급-연공급 등의 문제에 대해 필자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게재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여 동의를 얻어 게재한다. 페이스북 글이다 보니 개인적 글쓰기 성격이 강하지만 별도로 고치지 않았다. 고민할 지점을 많이 담고 있다는 판단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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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장은 자본 및 현 정부의 기업별 직무급(사실은 직무급도 아니다. 기업별 임금체계는 결국은 해당 기업의 성과에 연동될 수밖에 없으므로 이건 본질적으로 성과급이다)을 반대하는 것이 중요하고, 산별노조의 힘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적어도 운동권이라면) 거의 없을 것이다.

    문제는 반대만 하고 있으면 그건 잘 되어도 현상유지 즉 현재의 기업별 연공급 (그것도 대기업이나 공공부문 일부에서나 적용되는) 체제를 사실상 인정하자는 논리가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반대만이 아니라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를 내부적으로 합의하고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그래야 노동운동을 포함한 사회운동과 진보정당운동이 이 세상을 책임지겠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노동자가 기업을 직접 관리할 수 있는 경영능력을 키우는 것이기도 하고 (나는 장기적으로 이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기업별 연공급 체제가 문제가 매우 많은 체제이고 지속불가능한 체제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이걸 인정하지 않으면 할 말이 없지만, 현재의 기업별 연공급 체제가 한국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핵심적 원인 중 하나라는 것에 대해서는 그간 많은 연구가 있었다), 이 체제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방법을 노동운동 내부에서부터 합의하고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내 생각에는 이건 산별 직무급 이외에는 없다.

    산별 직무급보다 더 나은 체계, 가령 산업별 격차나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격차 등까지도 해소시킬 수 있는 임금체계는 산별 직무급보다 더 어려운 일인데, 그걸 핑계로 산별 직무급이 이런저런 문제가 있다고 주장해버리면 그건 앞서 말했듯이, 더 이상적인 목표를 핑계로 그냥 이대로 가자는 것밖에 안 된다. 산업별 격차나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격차까지 해소시킬 정도라면 그건 사실은 이 사회의 전면적인 변혁이다.

    전면적인 변혁이 아닌 개량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분이라면 그 자체는 존중하겠지만 (나도 결국에는 변혁을 바라니까) 그건 적어도 내가 판단하기에는 상당히 먼 미래의 일이다. (역시 아니라고 믿으신다면 그 자체는 존중하겠다. 다만 내 판단은 그렇지 않다는 것일 뿐.)

    사실은 산별 직무급조차 현재로서는 매우 쉽지 않은 과제이다. 이건 적어도 산별노조 즉 조직노동 내부에서는 일정한 합의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 합의가 과연 가능할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 방향으로 합의해야 한다고 계속 주장할 것이다. 기업별 연공급 체제를 이대로 인정하는 것은 내 양심과 활동가로서의 원칙이 허락하지 않으므로.

    물론 양심과 원칙은 그렇더라도, 현실적으로는 많은 난점이 있다. 산별 직무급을 하려면 산별노조가 실제로 직무평가를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하는데 지금 산별노조가 과연 그런 수준이 되는지도 잘 모르겠다 (준비조차 제대로 안 하고 있으니 더욱 그렇다). 게다가 노동자 쪽만이 아니라 사용자 쪽도 마찬가지다. 솔직히 한국의 산업 생태계에서는 산별 직무급이 아니라, 원하청 관계 등으로 묶여있는 수직계열화된 기업집단 내부에서부터라도 직무급을 적용하는 게 더 현실적일 것이다.

    즉 적어도 원청이 동일하면 그 원청에서 수주를 받은 하청기업의 노동자에게도 원청과 동일한 직무에는 동일한 임금을 주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를 전제로 하청단가가 정해져야 한다는 것. 이 정도도 사실은 쉽지 않다. 그리고 이 정도에서도 원청 수준의 연공급은 쉽지 않다. 1차벤더라면 몰라도 2차나 3차벤더는 지금도 거의 최저임금 수준인데, 이들 모두에게 원청 수준의 연공급을 적용할 수 있을까? 원하청 집단교섭에서도 직무급 정도가 현재로선 최선일 것이다.

    차라리 공공부문 가령 교사나 공무원 및 공기업이 더 쉬울 수도 있다. 여기는 사용자가 사실상 국가니까. 총액임금제 하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그건 한꺼번에 바꿀 때의 이야기다. 앞서 말했듯이 직무급으로의 전환은 상당한 시간을 갖고 단계적으로 추진할 문제이지, 갑자기 한꺼번에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단계적으로 호봉 상승분을 지금보다 지속적으로 줄이고 대신 직무수당을 계속 늘려나가는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총액임금제 하에서도 직무급적 성격을 강화시킬 수 있다. 가령 교사의 경우 호봉 상승분을 줄이는 대신 담임수당 등을 늘리는 식으로 가면 총액을 유지하면서도 더 힘든 일을 하는 사람이 더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어느 직무에 직무수당을 더 줄 것인가는 관리자의 주관적인 직무평가 따위가 아니라 반드시 노조와의 합의 즉 노동자가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어떤 일이 더 힘든 일인지 가장 잘 아는 것은 노동자다.

    동일노동이란 해당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같은 임금을 주어야 한다고 합의하는 노동이다. 다만 이게 기업별로 정해지면 기업 간 격차는 해소가 되지 않으므로 직무급은 반드시 산별 직무급이라야 한다. 아니면 공공부문부터 단계적으로 도입하든지. 물론 산별 직무급에서도 앞서 말했듯이 산업간 격차나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격차는 해소되지 않는다. 하지만 일단 산별 차원에서부터 이런 원칙들이 합의되고 단계적으로 실현되다보면, 산업간 격차 등도 같은 사용자집단에 고용된 사람들끼리라도 단계적으로 줄여나갈 수 있다.

    한꺼번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이런저런 미흡함이 있다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 자체를 폄하해서는 안 된다. 현재 주어진 조건 하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면서, 그게 현 체제를 유지시키는 수준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계속 전진할 수 있도록 토대 내지 조건을 만들어주는 정도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한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방향이 속도보다 훨씬 중요하다. 나는 느린 것은 인정한다 (아니 오히려 한꺼번에 바꾸려고 하다가는 부작용이 더 클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느리더라도 나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사회주의와 노동해방의 그 날을.

    필자소개
    노동당 경남도당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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