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짜장면집, 미장원 그리고 열린우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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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2월 14일 08:4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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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창공원 근처에 가면 ‘신성각’이란 짜장면집이 하나 있다. 옛날부터 맛있단 소문이 있어서 가보려고 노력했으나 번번히 장소를 찾지 못하고 돌아오곤 했는데, 단골을 자처하는 어여쁜 여성 동무의 인도로 최근에야 찾아가볼 수 있었다.

    막상 가보니 그간 찾지 못했던 이유를 알 수가 있었다. 좌로는 해태우유 대리점에 우로는 계란총판을 거느리고 있는데, 이상의 두 가게와 외관상 전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지금에는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누런 샤시(표준말은 섀시. chassis)에 셀로판지로 바른 유리창을 가진 음식점을 누가 맛있다고 생각하고 들어가겠는가 말이다. 꼴에 가게 입구에는 가게 외관과 딱 어울리는 ‘쌍팔년도틱’한 주인장의 자작시가 붙어있었으니

    지구촌에 살고있는
    어떤사람이라도
    단 한그릇
    먹어보고
    눈물을 흘려 줄 음식을
    내 혼신의 힘을 다하여
    만들고 싶다
    21세기가 기다리고 있기에…..

    88년 10月 이문길

    “난데없는 21세기는 또 왜 등장하는거야?” 왠지 오묘한 정신세계를 느낄 수 있는 주인장의 자작시를 뒤로한  채 ‘낄낄낄’하며 가게문을 열고 들어가니, 코딱지만한 홀에 테이블 네 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의자는 옛날 학교에서나 쓰던 직각 나무의자. 오른쪽 벽에는 달력 뒤에 대고 매직펜으로 그린게 분명한 수제 메뉴판. 메뉴판에 적힌 영업시작 시간은 오전 11시37분이다.

       
      ▲ 신성각의 한쪽벽을 장식한 수제 메뉴판. 정말 정겹군요…
     

    ‘아니 11시 30분도 아니고 11시 40분도 아니고 왜 37분이란 말인가? 주인장의 정신세계 한 번 정말로 오묘하군’이라 생각하며 왜 37분이냐 물어보니, 목늘어진 하얀 면티를 입은 주인장이 손을 앞으로 가지런히 모으고 벨보이 같은 정자세를 한 채 대답을 한다.

    “넵. 손님! 아침 8시쯤부터 재료 손질을 하는데 그게 끝나는게 11시35분쯤이고 2분 여유를 두어 11시 37분에 오픈을 합니다” 내용보다 목늘어진 하얀티를 입은 벨보이가 각 잡고 대답을 한다는 사실이 더 웃겼다. “그  옆에 있는 술 반입 금지는 왭니까?”라 물으니 짜장면 먹으러 온 애들이 보고 배울까봐 그런다했다. 역시 오묘하군.

    오묘한 정신세계의 주인

    짜장면으로 유명한 집이니 짜장면을 시켰다. 그러자 주문을 받은 주인장이 부엌으로 들어가더니 반죽을 치대기 시작했다. ‘헉! 이제부터 반죽을 치기 시작하면 도대체 음식이 언제나오는 거지?’란 생각이 들었으나 목늘어진 흰티를 입고 정중하게 주문까지 받아간 주인장이 땀을 뻘뻘 흘리며 면을 뽑고 있는데 뭐라 할 수도 없고 해서 음식이 나오기까지 기다려 보기로 했다.

    ‘짠!’ 짜장면 등장! 생각보다 빨리 나왔다. 갓 만들어서인지 갓 뽑아낸 가래떡처럼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맛은 어떨까? 울퉁불퉁한 면에 단맛, 고소한 맛도 없이 짠 맛만 느껴지는 소스. 요즘 짜장면에 기본으로 들어가는 캬라멜이랑 조미료가 안들어가서 그렇다던데 여튼 기존에 먹던 짜장면과 달리 상당히 소박한 맛이었다. 짜장면계의 평양냉면이라고 해야할까? 허나 난 이 짜장면이 너무 맘에 들어버렸다.

    갓 뽑아 나온 쫄깃쫄깃한 면발에 금방 볶아서 나온 속까지 뜨거운 소스. 이미 대량으로 뽑아놓은 면에 살짝 데워 미지근한 소스를 얹어주는 기존의 중국집 짜장면과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음식의 기본에 충실한 맛. 먹었을 때 배속까지 뜨뜻해지는 기분좋은 맛이었다. 음식이 가장 맛있는 상태에서 손님이 먹을 수 있게 하는 목늘어진 티의 주인장의 배려가 느껴졌다.

    배달도 가게에서 50m 밖은 안 한다는 소문을 들었기에 주인장한테 왜 그러냐 물어봤더니, 예의 손을 앞으로 가지런히 모은 자세로 스르륵 나타나셔서는 50m 바깥으로 배달하면 짜장면이 불어서 제맛이 안나기 때문이라 한다.

    면을 미리 뽑아놓고, 소스를 미리 만들어 놓으면 음식이 빨리 나오고 손님 순환이 빨리 되고 돈을 더 많이 버는데 왜 그러지 않을까? 맛이 좀 떨어지더라도 배달을 시작하고, 직원을 더 뽑으면 돈을 더 많이 버는데 왜 그러지 않을까? 저녁 때 가보니 점심 때 복작거리던 손님이 하나도 없었다. 어린애야 보든 말든 술을 팔면 저녁 때 손님이 많이 올텐데 왜 그러지 않을까?

    꼴에 주워 들은 건 많아서 주인장의 경영방침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렇게 돈 안 되는 영업방침을 26년 넘게 유지할 수 있다니, 그 뚝심이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주인장과 함께 그 부인이 있었는데 아저씨의 고집에 거의 체념을 한 표정이었다. 말할 때도 얼굴 전체는 굳어 있고 입만 움직였다.

    왜 거 있잖은가? 옛날 코미디 프로 같은데서 사람사진 갖다놓고 입만 움직거리는 그런거. 아줌마의 표정에서 아저씨가 26년간 긁혔을 바가지의 양을 측정할 수 있었다. 허나 뚝심의 아저씨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

                                                              * * * 

    가게(미용실)를 운영하다 보니 하루하루가 유혹 및 고난의 연속이다. 옛날에 내가 회사 다니던 시절, 사업을 하는 남편을 둔 개인적으로 친한 ‘싸모님’과 밥을 먹은 적이 있었다. 내가 월급이 너무 적다고 궁시렁 대자 “월급 꼬박꼬박 나오는 일하는 니가 부럽다. 사업은 힘들어~”라 했다.

    아, 월급 받던 때가 그립다

       
      ▲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신민영 사장.
     

    앞에서 대놓고 뭐라고는 못했지만 속으론 ‘배부른 소리 하네’란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양반의 돈 관념이 당시 나의 돈 관념에서 0을 두 개를 뺀 거랑 똑같아 보였으니 말이다. 내가 100원 쓰듯이 그 양반은 10,000원을 쓰곤 했다.

    그 외에도 한 달 외식비만 300만원이 넘고말야.(사업하는 사람이 아닌 그 사람의 부인이 외식비로 300만원을 쓴것에 유의할 것!) 흠. ‘외식비만 줄여도 웬만한 월급쟁이 봉급이 나올텐데?’라고 얘기하고 싶었다.

    여튼 다년간의 월급쟁이 생활을 청산하고 시작한 미용실 경영! ‘아 나도 기존의 돈관념에서 0이 몇 개쯤이 줄어들겠구나’란 부푼 마음을 안고 시작했으나. 정식 오픈한 지 4개월이 지나는 이 시점에서 나는 3년 전 그 언니의 대사를 반복하고 있다. “월급받던 때가 그립다!!!!!!!!!!”ㅠㅠ.

    돈 문제 이런 거는 둘째 치고라도 사람관계(혹은 인력관리)가 보통 힘든 게 아니다. 특히, 미용실의 핵심인력 같은 경우는 ‘싫으면 그만둬~’라고 해보고 싶지만 경쟁업체에서 언제라도 채가려고 침을 뚝뚝 흘리고 있으니 배짱 튕기기도 쉽지가 않은 일이다. 사람관계(혹은 인력관리,혹은 노사관계)를 잘 풀어가보려고 하는데 마냥 돈을 많이 준다고 조직에 대한 충성도가 높아지는 것도 아니고… 아흑 진짜 복잡하다.

    유혹도 엄청나다. 미용실에 오자마자 의자에 앉히고는 “어떻게 잘라 드릴까요?”라고 묻곤 우물쭈물 제대로 대답을 못 하면 그냥 맘대로 잘라버리고는 맘에 안들어도 맘에 안든다고 제대로 말도 못하고 며칠 후 AS 요구하면 ‘예쁘게 나왔는데 뭘그러시냐’는 류의 반응을 하는 미용실은 되고 싶지 않았다.

    유혹에 흔들리고, 시험에 빠진 미장원 주인 

    애초의 미용실 컨셉은 상담도 20분 이상 충실하게 오래 하고, 어울리는 스타일이 무엇일지 손님이랑 같이 고민도 해주고, 혹 맘에 안든다 하면 부담없이 AS를 받을 수 있는 그런 미용실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가게가 이름이 나고 손님이 많아지니깐 잡생각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예약은 밀려드는데 일부러 찾아온 손님을 돌려보낼 수가 없어서 스케쥴을 빽빽하게 잡게 되고, 기다리는 손님이 많다보니 상담 등으로 시간을 오래보내는 미용사가 있으면 슬슬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기다리는 손님도 손님이고, 돌아가는 손님도 손님이니 애초의 컨셉을 살짝 수정하는 것도 괜찮겠지’ 싶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애초의 컨셉을 아예 뒤엎고 기존 미용실처럼 빡세게 돌려서 일단 목돈을 만든 다음 2호점이나 3호점에서 부터 꿈을 이뤄볼까 싶기도 하고 꾀가 슬슬 나기 시작한다. 불과 가게 오픈한지 4개월만에!!!!!!!!!!!!!ㅠㅠ

    가게를 차릴 때 절대 따먹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선악과를 따먹으라는 뱀의 유혹이 머릿속에서 혀를 살랑살랑하고 있다. 겨우 누르고 있긴 한데 나도 어찌될지는 모르겠다. 잉잉. ‘신성각’ 아저씨의 뚝심이 부럽기만 하다. 애초에 우리 미용실만의 컨셉으로 승부를 보려고 했고, 돈은 이 컨셉에 대한 평가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미용실의 컨셉이 돈이 되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지려 하고 있다.

    더 걱정되는 건 원칙을 사수하고 지켜가려는데 잔머리가 돌아가는게 아니라, 원칙을 버릴 명분을 찾는 쪽으로 자꾸 잔머리가 돌아가려고 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미용실이 열린우리당 꼴 날까봐 겁이 난다.

    정당이란게 정치적 노선이나 정책을 중심으로 뭉치는 거고 지지율은 이에 대한 평가에 지나지 않는 것인데. 지지율이 떨어졌다고 당을 깨면 이게 무슨 당이란 말인가?

    시청률 핑계로 드라마를 중단해도 욕을 먹는 판에 집권당이 지지율을 핑계로 간판을 내리려 하다니, 허허. 뚝심이 없으면 잔머리라도 좀 그럴듯하게 굴리든가 "한나라당의 집권을 손놓고 바라볼 수는 없다"라니 자기들이야 그럴듯하다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볼 땐 이미 약발이 다한 명분이다.

    자칭 타칭 엘리트란 분들이 모여서 만들어 내는 명분이 이거 밖에 안되는 판국이니, 내가 잔머리 굴려 만드는 핑계는 얼마나 남보기에 우스워 보일지 걱정이 된다. 뚝심이나 확실한 잔머리 둘 중 하나만 있으면 소원이 없을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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