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리바게트 20대 여성노동자 죽음
    2인1조, 안전교육, 안전센서도 없었다
    현장 천 덮어 두고…사고 다음 날 바로 작업 재개
        2022년 10월 18일 12:58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파리바게뜨에 반죽과 완전품 빵을 생산해 납품하는 SPC그룹의 계열사 SPL에서 20대 여성 노동자가 끼임 사고로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진 가운데, 업무 강도가 높고 위험한 작업임에도 ‘2인 1조’ 근무 수칙을 지키지 않는 등 안전예방 조치를 취하지 않아 벌어진 사고라는 지적이 나온다.

    강형규 화섬식품노조 SPL 지회장은 18일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에서 제대로된 2인 1조 근무 수칙만 지켜졌어도 사망 사고까지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형규 지회장은 “(내부에 CCTV가 없고 밀폐된 공간이라 목격자도 없지만) 허리쯤에서 어깨를 숙여가면서 (배합기에) 재료를 붓기 때문에 미끄러져서 쓸려 들어갔을 수 있다. 공장 일이라는 게 변수가 없고 어떤 사고가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2인 1조 작업을 원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강 지회장은 ‘매뉴얼대로 2인 1조 근무를 했다’는 회사측의 주장에 대해 “회사에서 말하는 2인 1조는 한 사람은 보조 역할을 하는 것”이라며 “(한 사람이 배합 작업을 하면 다른 한 사람은) 재료를 갖다 줘야 하고 배합해서 나온 소스를 옮기는 등 왔다 갔다 해야 한다. 회사는 그렇게는 2인 1조라고 하는데, (실제론) 2인 1조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등에 따르면, 이번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 A씨는 평택에 있는 SPL 공장 샌드위치 소스 배합 작업을 했다. 이 작업 과정에서 A씨는 소스 등을 섞는 배합기를 작동하던 도중 이 기계에 빨려 들어가 숨졌다. 당시 함께 조를 이뤄 근무하던 직원은 사고 현장과 다른 곳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2인 1조 근무는 작업 중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같은 작업을 2명이 조를 이뤄하는 것을 뜻한다. 사실상 2인 1조 근무 수칙이 지켜지지 않은 셈이다.

    현재순 화섬식품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도 이날 오전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배합공정은 2인 1조가 하지만 서로 다른 작업을 한다. 배합공정은 혼자 하고 (다른 근무자는) 다른 작업을 했다. 사고 당일에는 또 다른 작업 때문에 바깥에 나가 있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사진=화섬노조

    안전센서 미부착에 안전교육도 없었다

    2인 1조 근무 수칙 외에도 배합기 내에 다른 물질이 들어갈 경우 회전날이 자동으로 멈추는 안전 센서 등이 부착돼있지 않았다는 점도 확인됐다.

    현재순 실장은 “일을 하다가 거기(배합기)에 사람의 손이 들어가거나 무슨 물건이 들어갔을 때 스크루가, 날이 멈추게 하는 센서, 이런 건 있느냐 없느냐가 핵심인데 그런 장치가 아예 없다고 한다”고 전했다.

    사고가 발생한 다음 날 현장을 방문했던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이날 오전 의원총회에서 “사고현장에서 사고유형의 모든 기계에 안전장치가 설치돼있다고 설명하다가 거짓이 들통났다. 안전장치가 있는데 어떻게 사고가 발생할 수 있냐는 계속된 의문 제기에 현장 직원이 어젯밤 사이에 센서를 새롭게 부착했다고 실토했다”고 말했다.

    강 의원은 “현장 노동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평소에도 기계 벨트에 앞치마가 끼이는 일이 자주 있어 조치를 요구했으나 사측이 이를 무시했다고 한다. 더욱이 사고가 발생한 공장에서는 일주일 전 이와 유사한 끼임 사고가 발생했으나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며 “노동자들의 요구를 귀담아 듣고 기본적인 조치를 취했다면 이런 끔찍한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조 측은 공장 직원들에 대한 안전교육도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현 실장은 “회사가 안전매뉴얼이 있다고 얘기를 하는데, 현장 노동자들은 안전매뉴얼을 본 적도 없고 안전절차에 대한 교육도 받은 적이 없다는 증언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강규형 지회장은 “안전교육 의무도 못 지키는 이유가 뭐냐 하면 라인을 세우면 안 된다. 저희가 12시간 맞교대인데 안전 교육 받을 시간이 어디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강 지회장은 전날 화섬식품노조 등이 주최한 기자회견에서도 “회사는 30분 먼저 출근해 무급으로 안전교육을 받으라더니, 무급교육에 대한 문제가 나오자 안전교육을 없앴다”고 말했다. 회사는 현장 노동자들에게 안전교육 확인 서명을 한 달 분을 몰아 받기도 했다고 한다.

    현장 천 덮어 두고…사고 다음 날 바로 작업 재개

    SPL은 사고가 난 다음날 바로 공장을 가동했다. 사고가 난 후 현장을 목격하고 시신을 수습하는 등 다른 현장 노동자들은 트라우마를 호소했지만 회사는 사고가 난 배합기에 흰 천을 덮어둔 채로 작업 재개를 지시했다고 한다.

    강 지회장은 “현장을 방문해 봤더니 진짜 작업을 하고 있더라. 회사도 당연히 물건을 납품해야 하지만 그날 하루 쉰다고 해서 납품 받는 업체들이 뭐라고 하겠나. (사고 현장) 바로 옆에서 그걸 보면서 일을 시킨다는 것 자체가 회사가 노동자를 감정 없는 기계로 보는 것 아닌가 싶었다”고 말했다.

    천으로 가린 부분이 사고 기계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이날 오전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나와 ‘사고 직후 시신 수습을 동료 노동자들이 했다고 한다’는 진행자의 말에 “그 기계만 세우고 다른 기계는 또 그대로 돌렸다는 거 아닌가. 바로 옆에서 동료가 그 기계에 끼어서 목숨을 잃었는데, 바로 옆에서 또 기계를 돌려야 하는 사람들 생각을 해 보면 얼마나 충격적이겠나. 정말 반노동적이고 반인권적”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 회사는 진짜 문제가 많은 것 같다. 일주일 전쯤 손가락 끼임 사고가 있었는데, 그분에 대해서 바로 치료하지 않고 ‘너는 비정규직이니까 네가 가서 치료받아라’ 그렇게 세워놓고 야단쳤다는 것 아닌가”라며 “이번 일로 SPC가 노동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가 분명하게 드러나 있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서는 명백하게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데도 중대재해법 개악?”

    20대 노동자의 끼임 사망사고로 야당들은 정부의 중대재해처벌법 개악 시도를 중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은미 의원은 “상황이 이런데도 기획재정부를 비롯한 윤석열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 시도를 노골화하고 있다”며 “경영책임자를 대표이사가 아닌 안전보건최고책임자(CSO)로 보고, 중대재해의 징벌적 손해배상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고 한다. 또 공인기관의 안전경영체 인증으로 안전보건관리 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하고, 10개가 넘는 안전․보건 관계법령을 6개 법안으로 축소하려는 법령개정 시도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강 의원은 “기획재정부와 윤석열 정부는 중대재해처벌에 따른 사업장 안전조치 의무가 자리잡기도 전에 법을 무력화하려는 법령 개악 시도를 당장 멈추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아울러 “노동부와 사용자측은 사건사고를 축소하거나 은폐하려는 시도를 멈추라”며 “특히 현장에 대한 사건조사 시에는 피해자측 대리인을 반드시 입회시킬 수 있도록 협조해 주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우원식 의원도 “SPC 계열사인 SPL 사업장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고, 안전 수칙과 관련한 여러 가지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어서 이 부분에 대해서 강력하게 수사하고 그에 따라서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원식 의원은 “중대재해처벌법이 발효했음에도 이런 사고가 아직도 많이 나는 이유는 이윤과 사람의 생명을 비교할 때 이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회사들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윤석열 대통령이 법무부 업무 보고에서 ‘기업 활동을 위축하는 과도한 형벌 규정을 개선해라’고 하면서 기재부에서도 문제 제기를 하고 있어서 기업들도 ‘대통령이 이렇게 말하는데 설마 처벌되겠어?’ 하는 생각이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