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자회담, 희망 그리고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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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2월 13일 03:2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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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 보도에 따르면 5차 6자회담 3단계 회의가 사실상 타결되었으며, 최종 합의문 발표만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 막판에 상황 변화의 가능성이 있지만, 관련국들이 상당한 의견 접근을 이룬 것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이번의 회담과 발표될 최종 합의문은 2005년 9.19 공동성명에서의 ‘말 대 말’ 단계에서 한 걸음 나아가 ‘행동 대 행동’의 조치들을 담는다. 따라서 북핵문제의 해결 가능성이 한층 더 높아지게 되었다.

    ‘말 대 말’에서 ‘행동 대 행동’으로

    힐 차관보가 지적하였던 것처럼 이번 회담의 최종합의문은 이행합의(implementation agreement)가 될 것이고, 그 내용은 북한의 초기이행조치(5개 핵관련 시설의 동결 및 폐쇄)와 그에 상응하는 관련국의 보상조치(미국의 대북 금융제재 일부 해제, 중유를 포함한 에너지 제공 등) 및 9.19 공동성명을 이행하기 위한 실무그룹(비핵화, 에너지-경제지원, 동북아 안보협력, 북-미 관계정상화, 북-일 관계 정상화)의 설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6자회담이 급진전된 데에는 지난 1월 북미 양국의 접촉의 성과 때문이다. 북미 양국이 어떠한 내용을 합의하였는지는 정확히 알기 어렵지만, 북한의 핵폐기, 북미관계정상화, 한반도 평화체제를 포함한 포괄적인 그림에 대해 합의를 하였을 수 있으며, 이를 이행하기 위한 주요 조치들의 개괄적인 로드맵에 대해 깊은 논의를 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조선신보>가 보도한 것은 북미 합의 중에서의 초기 이행조치 부분과 관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초기 이행조치와 관련하여 주목해야 할 부분은 북한의 핵 동결 혹은 폐쇄(shut down)의 대가로 미국 등 관련국이 무엇을 제공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북핵문제라고 할 때의 ‘핵’은 과거 핵, 현재 핵, 그리고 미래 핵의 문제로 세분할 수 있다. 과거 핵이란 94년 이전에 추출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핵물질, 현재 핵이란 2002년 이후 추출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핵물질을 말한다.

    이들 핵물질은 북한이 보유한 소수의 핵무기에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미래 핵은 현재의 핵시설을 가동시킴으로써 앞으로 추출할 수 있는 핵물질을 말한다.

    미래 핵의 해결과 테러지원국 해제 문제

    핵 동결 및 폐쇄는 과거 핵과 현재 핵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기보다는 미래 핵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이 점은 과거 94년의 제네바 합의와 동일하다. 제네바 합의는 현재 및 미래 핵을 동결시키는 것을 합의하였고, 과거 핵의 폐기는 경수로의 핵심 부품이 인도되는 시기에 사찰을 통해서 달성(핵물질 반출, 핵시설 폐쇄)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핵심 부품’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과 언급이 없었기 때문에, 부시 정부는 임기 초반 특별사찰을 고집함으로써 북미 갈등을 야기한 바 있다.

    이번 합의가 제네바 합의와 다른 것은 핵시설의 동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핵시설을 당장 가동할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든다는 데에 있다. 북한의 입장에서 미래 핵을 해결하는 것은 미국으로부터의 확고한 상응 조치를 전제로 이뤄질 수 있다.

    특히 제네바 합의를 통해서 핵시설을 동결하였으나 미국의 입장 변화로 다시금 미국과 갈등을 빚었던 북한의 입장에서, 미국의 확고한 상응 조치가 없다면 미래 핵문제를 선선히 양보하기는 어렵다.

    일부에서는 핵 폐쇄에 대한 에너지 제공이 쟁점인 것으로 설명한다. 에너지 제공 문제가 쟁점인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 문제 역시 중요하다. 에너지 제공 문제가 경수로 건설과 연동되는 보상 프로그램의 일환이라고 한다면, 테러지원국 해제 문제는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의 변화를 상징하는 것이다.

    이번 합의에서 북한이 60일 이내에 핵 동결 및 폐쇄를 하기로 한 이상, 미국 역시 그에 준하는 일정 속에서 테러지원국을 해제하는 문제를 약속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번 합의의 이행을 위해선 빠른 시일 안에 실무그룹회의를 가동시키고, 거기에서 북한의 핵폐기와 테러지원국 해제, 연락사무소 개설, 관계정상화를 연동시키는 로드맵을 결정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이렇듯 6자회담에서 관련국들이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행동 단계로의 진입에 대해서 합의를 하였지만 몇 가지 우려 사항들이 존재한다.

    제네바 합의의 새로운 버전에 그쳐서는 안 돼

    이번 합의가 과거 핵 및 현재 핵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은 미래 핵의 문제를 관리, 통제 하에 두겠다고 한 것인 이상, 여전히 북핵 폐기에 대해서는 낙관할 수 없다는 우려가 있을 수 있다. 미래 핵의 문제는 핵 시설을 동결 혹은 폐쇄함으로써 쉽게 이뤄질 수 있지만, 과거 및 현재 핵의 문제는 그렇게 쉽게 해결되기 어려운 면이 있다.

    가장 큰 우려는 이번 합의가 과거 핵 및 현재의 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로 나아갈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번 합의는 핵시설 폐쇄라는 점을 제외하곤 제네바 합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과거 핵 및 현재 핵을 폐기하는 행동 조치를 다루고 있는 것도 아니다.

    부시 정부는 핵 폐쇄라는 물리적 조치를 취함으로써 클린턴 정부와의 차별성을 부각시킬 수 있었고, 이것을 내년 대통령 선거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 핵과 현재의 핵을 미국이 전향적으로 해소할 것인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미래 핵을 해결한다면 얼마 되지 않을 과거 핵과 현재 핵은 얼마든지 관리, 통제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있을 수도 있다.

    언론 보도에선 확인하기 어렵지만, 이번 6자회담에서 미국이 테러지원국 해제 문제에 대해 미온적으로 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북미 베를린 합의를 공개한 까닭은 중유 제공의 수준 때문이 아니라, BDA 금융제재 해제 및 테러지원국 해제 문제를 겨냥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또한 2002년 12월 이전까지 자신이 제공해왔던 50만 톤 중유 제공에 대해 미국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이러한 미온성과 소극성은 미국에 대한 우려를 뒷받침한다.

    이번 합의가 제네바 합의의 새로운 버전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설 수 있기 위해선 최종적으로는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포괄적 합의를 전제로 한 구체적인 행동 과제들을 도출하는 일괄타결의 방식이 보다 현실적이다. 이번 6자회담 이후 초기조치를 이행하는 것과 더불어 서둘러 관련국 사이의 회담을 통해 포괄적인 목표와 이행합의를 이루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북한의 핵폐기와 평화제체가 동시 병행적으로 다뤄져야 함은 물론이다. 북한은 대미 체제안전보장과 경제보상 양면에서 핵카드를 활용하고 있는 만큼,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포괄적 합의를 통해 북한의 핵폐기를 이끌어내는 것은 결코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는 그동안 북핵 문제의 해결 이후에 평화체제가 수립될 수 있다고 강조하였지만, 평화체제로 나아가기 위한 포괄적인 이행합의의 일부분이 핵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 경제적 부담이 빛을 보려면

    이번 회담에서 각국은 대북 에너지 제공에 소극적인 입장을 취했다. 올해 7월 선거가 예정되어 있는 일본은 납치문제를 거론하면서 중유제공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고, 중국은 입장 피력 자체에 소극적이었으며, 러시아는 과거 부채를 탕감해주겠다면서 추가적인 부담을 회피하고자 하였다. 미국 역시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6자회담에서 공동분담의 원칙을 세웠기 때문에 한국의 부담이 초기에 우려했던 만큼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완전한 한반도의 비핵화 일정이 제시되지 않은 조건에서 한국이 추가적인 경제적 부담을 지는 것에 대해서 사회적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더욱이 한국의 입장에서 이미 대북 송전, 경수로에까지 간여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유제공까지 하는 것은 결코 작은 부담이 아니다.

    한국의 경제적 부담이 평화비용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필요로 한다. 이번 6자회담 합의에 대한 우려를 고려할 때, 조속히 핵폐기 및 평화체제의 명확한 일정을 결정해야 사회적으로도 평화비용의 증가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그것을 조속한 시일 내에 개최되어야 할 차기 회담 혹은 실무그룹 회의에서 결정지어야 할 것이다. 역으로 그러한 명확한 일정과 행동계획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한국이 추가적인 부담을 감수하면서 불안정한 6자회담의 합의를 지탱하는 것에 대한 비판들이 제기될 것이다.

    한반도 평화체제 담당 실무그룹이 없어

    북핵문제의 해결이 한반도 평화체제의 형성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은 북한 그리고 한국이 공히 인식하고 있는 사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합의에서 신설될 실무그룹에는 한반도 평화체제를 다룰 그룹이 없다는 것이 눈에 띈다. 동북아시아 다자안보협력을 다룰 실무그룹까지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실무그룹이 없다는 것은 의외이다.

    지난 9.19 공동성명에서 언급한 평화포럼이 한반도 평화체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에 그 내용은 과거 4자회담에 준하는 한반도 평화협정 혹은 한반도 평화체제를 논의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실무그룹에서 한반도 평화체제를 다룰 개연성이 있는 그룹은 동북아시아 다자안보협력 실무그룹 정도일 뿐, 나머지는 이와 직접 관련이 있지 않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 그리고 한반도에 긍정적이라 할 수 없다.

    실무그룹의 구성은 단적으로 말해서 한반도 문제를 동북아시아 차원에서 관리, 협력하겠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는 것이다. 북미 관계정상화, 북일 관계정상화를 통해서 북한이 국제사회의 정상적인 일원으로 참여하는 것을 보장하면서도, 남북한과 미국, 중국 등이 참여하는 평화협정의 논의를 배제하겠다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정상적인 일원으로 참여한다 하더라도, 한반도의 평화체제가 형성되지 못한다면 남북관계는 여전히 협력과 갈등이 교차하는 강대국의 세력 균형지대에 위치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는 한반도 내부의 동력에 의해서가 한반도 외부의 동력에 의해 한반도가 좌우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섣불리 비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금물이지만, 우려가 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그동안 미국과 중국 등 주변국들은 한반도의 상황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태도를 보이지는 않았다. 한반도에서 평화체제가 형성되는 것이 자국의 동북아시아 질서 재편 전략을 어렵게 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인식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번 6자회담의 합의 내용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이 평화체제를 담당할 실무그룹을 관철시키지 못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북한의 핵이 완전히 폐기되고, 북미관계정상화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형성 문제가 논의될 수 있으나 아무래도 남북한이 주도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이런 조건에서 한국은 일단 6자회담의 안팎에서 한반도 평화체제를 형성하기 위한 적극적인 전략을 수립하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평화형성전략을 추진해야

    노무현 대통령은 6자회담에서 진전된 합의가 있을 경우 남북정상회담을 할 수도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번 합의와 후속 회담을 고려한다면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을 적극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그동안 중단되었던 대북 인도적 지원 등도 6자회담의 타결에 힘입어 풀릴 가능성이 크며, 각종 남북협력 사업들이 추진될 개연성이 높아졌다.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것은 남북관계에서 중요한 진전을 이룰 수 있다. 한반도 평화선언 등을 통해서 한반도 평화체제의 논의를 이끌면서, 남북이 전략적 협력관계를 형성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남한의 경제적 공여가 결코 작지 않기 때문에, 남한의 전략적 행보를 양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과거 남북정상회담을 생각할 때, 북한은 그 추진과정에서 추가적인 경제 부담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노무현 정부는 과정의 투명성을 강조하였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합의를 이끌어낼 것인가에 있다. 상징적인 정상회담 정도로는 6자회담의 진전과 합의 내용을 뒤따라가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과거의 포용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포용정책은 주변국들의 협력과 동의가 있을 때에만 집행될 수 있으며, 그렇지 않으면 곤란하다는 것이 이번 2차 핵문제에서 드러난 바 있다. 또한 김대중 정부 이래 포용정책은 남북관계를 관리하고, 한반도의 분쟁 상황을 관리하는 것에 비중이 큰 반면 평화를 형성하는 데에는 소극적이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북한과 미국 등 주변국을 상대로 한반도 평화체제의 실질적 논의를 이끌기 위해 적극 노력할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핵문제 해결 이후에 평화체제가 가능하다는 식으로 대처하면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 자체가 어려워질 수도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핵심은 아무래도 남북협력이 되어야 한다.

    북핵문제의 해결이 가닥을 보이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한국은 평화체제 형성에 대해 북한을 설득하고 정치 군사분야에서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룰 필요가 있다. 사실 경제협력과 사회협력은 정치군사적 없이는 질적으로 발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또한 서해 NLL 문제의 해결, 정전체제의 관리 문제를 포함 다양한 군비축소의 의제들에서 의미 있는 진전을 이뤄야, 국민들도 평화비용의 증액에 흔쾌히 동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북협력을 통해 평화협정 논의를 조속히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구체적으로 평화협정에서는 북한의 핵폐기 경로와 검증체제, 미사일협정 가입과 미사일방어 도입 폐기, 남북한 군축, 미국의 대북 관계정상화 및 안전보장 조치, 서해 NLL 문제 등의 영토문제, 그리고 한반도에 주둔하는 외국군대의 문제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

    이러한 평화협정은 핵폐기, 관계정상화, 경제협력 전반을 포괄하는 평화의 로드맵으로서, 관련 당사국이 해야 할 이행 내용에 대해 구체적인 합의를 담아야 한다.

    남북 군비축소 및 평화협정의 논의 과정에서 남한은 가능한 범위에서 북한의 자율적 개혁을 지원할 수 있다. 북한은 사회간접자본을 비롯한 경제부문의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세계경제와 공존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한국은 이러한 북한의 움직임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남북은 한반도의 경제공동체 형성을 미래의 비전으로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 평화체제의 형성이 최우선적인 목표가 되어야 한다면, 안보정책 역시 그에 맞춰 수정되어야 한다. 특히 첨단 무기 구매 사업이라 할 수 있는 국방비전 2020은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한국은 북핵문제의 책임 있는 당사자로서, 6자회담 합의가 조속히 이행되며 핵폐기 일정이 명확해지도록 노력해야 하며, 회담의 형태가 어떻든 한반도 평화체제를 논의할 수 있는 틀을 이끌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남북한의 군비축소를 포함한 정치군사적 협력과 동시 병행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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